일리아스 (Ilias)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리스 최대 최고의 서사시로서, 1만 5693행, 24권으로 이루어졌다. 각 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순(順)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옛날에는 각권마다 그 내용에 부합되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알파벳순으로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BC 3세기에 처음으로 쓰인 권별법(卷別法)이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별명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10년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것이다.
그 내용은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에는 푸리아모스란 선량한 왕이 있었는데 파리스라는 아이를 낳지만 왕비가 그 아이가 이후에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불길한 꿈을 꾸자 트로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다라는 산상의 숲속에 버린다. 버림받은 파리스는 양치는 사람의 구함을 받아 양육된다.
이때 신들으 세계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이 벌어진다. 전쟁을 관리하는 신 아레스는 유일하게 올림푸스 산상에 초대되지 않자 신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는 겨교를 꾸민다. 이에 미를 자랑하는 세 여신, 제우스의 처이며 가정의 여신인 헤라, 승리와 수예의 여신 아테네 및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경쟁을 하게 된다.
제우스는 심판관으로 이다산의 파리스를 임명한다. 파리스의 환심을 사려는 세 여신으 제의 중 그는"그대에게 세계에서 제일의 미인을 택하여 주리라"라는 비너스의 청을 따르게 된다.
파리스는 비너서에 의해 자신이 트로이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스를 유람하다가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로 절세의 미인인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도망쳐간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메넬라오스왕의 형인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지휘로 1,000척의 배를 거느리고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트로이성(城)은 함락되지 않는다. 자기의 딸 헬레네가 포로가 된 데 격노한 아폴론신(神)이 벌로 액병(厄病)을 내린다. 이 수습책 때문에 벌어진 말다툼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그리스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가 노하여 싸움에서 손을 뗀다. 이 아킬레우스의 이탈이 바로 《일리아스》의 주제이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간청으로 주신(主神) 제우스는 신(神)들에게 양군을 원조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리스군을 패배케 한다.
패배한 그리스군의 참상을 좌시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와 전차를 빌려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적을 패주(敗走)시켰으나 그는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이 소식에 접한 아킬레우스는 복수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준 갑주를 입고 출전하여 파리스의 동생인 헥토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욕보인다. 그리스군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는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맞아 죽고 파리스는 어느 문둥병환자의 독화살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리스군의 오딧세우스는 지혜와 계략을 써 트로이 성문 앞에 목마를 놓아두고 물러간다.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한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잔치를 베풀지만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에 의해 삽시간에 트로이는 함락된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은 신들의 비호(庇護)로 야음(夜陰)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일리아스》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무용(武勇)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BC 9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마침내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가 되었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호메로스
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 전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진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한다. 거북해진 주신(主神)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한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다.
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遠征軍)을 편성한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 - 은 이제 유괴당한 헬레네를 찾아오기 위해 각기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참가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 휘하의 10만 대군이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했다. 그러나 때마침 아가멤논 왕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신의 사슴을 죽인 탓으로 갑자기 바람이 자버려 그리스 함대는 출항할 수 없게 된다. 예언자의 말에 의하면 아가멤논 왕의 맏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가멤논은 오딧세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구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다.
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트로이 성주(城主)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한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한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리아스》(일리오스의 노래)의 구성은 전편이 24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장마다 5백 행 내지 8백 행의 시로 되어 있으므로 전체 행수는 1만 5천7백 행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 전후 51일 동안 전쟁터에서 생긴 일들이 이 속에 담겨져 있는데, 그 중 중요한 사건은 제 1장, 제 9장, 제 15장, 제 16장에 나타나고, 그 밖의 장들은 이를 이어가는 삽화들이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제 1장부터 9장까지는 전편, 제 10장부터 17장까지는 중편, 제 18장부터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戰功)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한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된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防壘)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른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도록 권해보는 데서부터 중편 부분이 시작된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한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빌려 입고 나가 싸운다. 그는 적병을 무찌르며 전진하다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처음에는 그를 아킬레우스인 줄 알고 두려워했던 트로이군의 반격을 받아 헥토르는 그를 죽이고 갑옷을 벗긴다.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분해한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종말되기 시작하는 후편 부분이다. 복수하기로 결심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른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간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한다. 이때 트로이의 노왕(老王)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兩軍)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진다.
이와 같이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며,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이다.
작품읽기
〈전략〉
천벌,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언쟁
오, 여신이여, 아카이아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가져다 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말해 다오. 수많은 용사들을 하데스로 다투어, 보냈으며, 수많은 영웅들을 개와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하였으니, 이토록 제우스의 조언이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 대왕과 아킬레우스가 언쟁을 처음으로 시작하던 날부터 실현된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께서 그들에게 불화(不和)를 가져다 주었단 말인가 ? 그것은 제우스와 레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폴론 신의 탓이니, 아트레우스의 아들이 자기의 사제(司祭)인 크리세스를 불경(不敬)했었기 때문에. 그는 왕에게 분노가 치밀어 민중에게 경고를 보내고자 그의 군주에게 흑사병을 보냈던 것이다. 크리세스가 딸을 찾고자 아카이아 함대로 귀한 보석을 가지고 왔었다. 더욱이 그는 손에 애원자의 화환을 아로새긴 아폴론의 홀을 들고 와서 아카이아 국민들에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청은 누구보다도 그들의 군주인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에게 했다.
"아트레우스의 두 아드님이시여, 그리고 모든 다른 아카이아 인들이시여. 올림포스에 거하시는 제 신들께서 당신들이 프리암 시(市)를 정복하고, 무사히 귀향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저의 딸을 놓아 주시고 대가로 이것을 받으시어, 제우스의 아드님 아폴론에게 경의(敬意)를 보여 주십시오."
이에 모든 아카이아 인들은 입을 모아 사제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가 올린 것을 받기로 했으나, 아가멤논 왕만은 달갑지 않은지 심한 언사(言辭)로 그 사제를 맹렬히 물리쳤다.
"늙은이."
왕이 입을 열었다.
"우리 함대에서 빈둥거리는 꼴을 다시는 보이지 않도록 하고,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않도록 하여라. 그대가 가져온 신의 홀이며 화환 따위는 그대를 이롭게 해 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대의 딸을 놓아 주지 않을 테니. 그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알고스 내 집에서 길쌈도 하고 내 잠자리 시중도 들면서 해로(偕老)하게 될 테니까. 자, 비켜라. 성미 돋우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게 해로울 것이다."
노인은 공포에 질려서 명령에 복종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출렁이는 해변을 따라 걸으며 레토께서 친히 낳은 아폴론 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것이었다.
"간청합니다. 오, 크라이세와 성스러운 킬라를 보호하시고 그대 힘으로 테네도스를 통치하신 은활(銀)의 신이시여, 간청합니다. 오, 스민디안이시여 ! 제가 일찍이 신께 영광을 드려 신전을 이룩하였다면, 황소와 염소의 살진 고기를 구워 올린 것을 기억하신다면,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다나아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화살로써 저의 눈물의 대가를 받게 하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올리자, 아폴론 신이 이를 들었다. 그는 어깨에 활과 화살통을 메고 노한 나머지 올림포스 정상에서 내려왔다. 그의 등에서는 화살이, 떨리는 노여움과 더불어 덜거덕거렸다. 밤처럼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자신의 함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그들 중간을 향해 화살을 날리니, 그의 은활은 죽음의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그들의 개며 노새를 쏘아 죽였으나, 이젠 사람들을 겨누어 살을 날리니, 종일토록 화장더미가 타올랐다.
꼬박 아흐레 동안 군중을 향해 화살을 날린, 열흘째 되던 날 아킬레우스는 전군을 소집했다. 아카이아 사람들이 몰살되는 광경을 보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 헤라 여신에 의해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모이자, 그는 일어서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드님이시여, 우리가 멸망을 피하려면 이제 귀향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내 소견입니다. 전화(戰禍)와 역병(疫病)으로 전멸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제나 잠언자 혹은 어떤 해몽가(꿈 또한 제우스 신의 뜻이니)에게 묻도록 하심이 어떨지. 그들은 우리에게 포이보스 아폴론 신께서 왜 그토록 화를 내시고 계시는지 알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약속을 어겼거나 우리의 축원이나 제물이 부족해서 마음이 상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신께서 구운 양이며 큰 염소의 향기로운 제물을 받으시고, 질병에서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해 줄 것 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가 자리에 앉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만사를 다 알고 있는 가장 현명한 복점관(卜占官)인 테스토르의 아들 칼카스가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포이보스 아폴론 신께서 내려 준 예언에 따라 아카이아 사람들의 함대를 일리엄(트로이아)으로 안내해 온 자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모든 성실과 호의를 기울여서 그는 이렇게 좌중을 향해 말했다.
"신의 총아(寵兒)이신 아킬레우스 장군. 그대께서 제게 아폴론 신의 분노에 대해 말씀하라고 명하시니 일러 드리겠습니다. 하오나 먼저 말이나 행동으로 진정 저를 지켜 주실 것을 유념하시는 맹세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저는 힘으로써 알지브 국민들을 통치하고, 모든 아카이아 사람들이 종속되어 있는 어느 한 분을 손상시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민이 한 왕의 노여움을 거스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왕께서 당장은 자기의 불쾌감을 참고 있다지만, 그일을 성취하는 날까지는 원한을 품을 것입니다. 하오니 저를 보호해 줄 것인가를 맹세해 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아킬레우스가 대답했다.
"신의 뜻에 따라 말해 주시오, 칼카스. 아폴론 신의 이름을 따라 그대는 기원하고 우리에게 그의 신탁(神託)을 밝히는 것이니, 내가 살아서 세상을 대하고 있는 한 우리 함대에 있는 어느 다나아 사람이든 두려워하지는 마시오. 그대가 우리 국민의 대군주이신 아가멤논 대왕을 뜻함이 아닐진대 말이오."
드디어 예언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신께서 분노하심은 맹세에 대한 것도, 황소 백 마리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가멤논 왕께서 사제를 모욕하여 몸값을 물리치고 그의 딸을 풀어 주지 않은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재난을 내리시고 앞으로는 또 다른 재난을 면치 못하게 할 것입니다. 활의 신께서는 대왕께서 그 총명한 여성을 돌려 보내되, 보상금도 몸값도 없이 할 뿐더러 크리세스에게 고귀한 선물을 올릴 때까지는 다나아 사람들을 이러한 재난에서 헤어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를 위로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말을 마치고 칼카스가 자리에 앉자, 아가멤논은 화가 치밀어 일어섰다. 그의 심장은 분노로 먹칠이 되었고, 그의 두 눈은 불꽃을 튀겼다. 그는 찌푸린 얼굴로 칼카스를 응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악한 예언자여, 그대는 나와 관련된 유리한 소리는 한 마디도 해 본 적이 없소. 불리한 말만 골라서 지껄이기를 좋아했단 말이오. 좋은 말이라고는 한 번도 들려 준 적이 없소. 그래 이젠 다나아 사람들 간에 일장의 예언을 하였는데, 아폴론 신께서 내가 크리세스의 딸, 그 여자의 대가를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화를 내리셨단 말이오? 그 여자를 내 집으로 데려갈 결심이었소. 얼굴이나 몸매, 이해심과 사람됨이 내 부인과 흡사해서 부인 클루타임네스트라보다 더욱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래도 사람은 살리고 보아야 할 일, 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녀를 포기할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내게 대신 전리품을 찾아 주어야 하오. 그렇지 않을 경우 알지브 사람들 중에 나만이 빈손이 될 터이니 말이오. 그것은 잘 되지 않을 거요. 모두들 들으시오. 내 전리품(戰利品)이 사라질 모양이니."
이때 아킬레우스가 답했다.
"모든 인간 중에 욕심이 많고 가장 점잖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우리 아카이아 사람들이 어떻게 그대에게 다른 전리품을 드리리까 ? 하나쯤 가져갈 공동 비축물이 없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얻은 것들은 분배하였으니, 이젠 무더기로 모으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소녀를 신께 돌려 드리지요. 그리고 만일 제우스 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트로이아 성을 함락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우리는 그대에게 세 곱절, 네 곱절로 보답하겠소."
하자 아가멤논이 응수하였다.
"아킬레우스, 그대가 용감하다지만 이렇게 나를 속이지는 못하리다. 나를 속인다든지 설득하지는 못할 것이란 말이오. 자신의 전리품은 간직하면서 나는 빈손으로 멍청히 앉아 그대의 말을 따라 그 소녀를 단념하란 말이지요? 아카이아 사람들이 내게 좋을 대로 공정한 교환품을 보내도록 하시오. 그러지 않을 경우 내가 가서 당신 자신의 것을 가져가겠소. 그렇게 되면 내가 누구에게 가든 그는 내가 가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리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재고토록 하시죠. 현재로선 바다에 배를 띄어 적당한 사공을 찾아 내서 황소 백 마리의 제물을 싣고 크리세이스 또한 태워 보냅시다. 나아가 우리들 중에서 어떤 분을 우두머리로 동승케 합시다. 아이아스나 이도메네우스, 오디세우스 혹은 힘센 장사 펠레우스의 아들 당신 스스로 나서든지 합시다. 제물을 올려 신의 분노를 진정시키도록 말입니다."
아킬레우스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대 거만하고 탐욕에 빠진 자여. 무슨 심사로 아카이아 사람들이 그대의 명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침략과 공공연한 싸움에서 말이오. 난 트로이아 사람들이 나에게 해 주었던 푸대접 때문에 이 곳에 원정을 온 것은 아니오. 그들과 말다툼할 일도 없다오. 그들은 내 송아지, 망아지 한 마리 건드리지 않았소. 아니 프디아의 오곡(五穀)이 풍성한, 평원에 있는 곡식 하나 꺾어 내지 않았지요. 나와 그들 사이에는 산과 거센 바다로 된 커다란 공간이 있기 때문이오. 우리는 당신을 따라왔지요, 이 오만한 양반아 ! 우리가 아니라 당신의 쾌락을 위해서- 메넬라우스와 당신 자신에 대한 과오를 씻고자 트로이아로부터 만족을 얻기 위해서 말이오. 이러한 사실을 잊은 채 내가 혈전고투(血戰苦鬪)해서 얻은 것과 그리고 아타이아의 아들들이 준 전리품을 훔쳐 가고자 위협을 한단 말이오. 아카이아 사람들이 트로이아의 부자도시를 점령하였을때, 훌륭했던 싸움이 내 손에서 끝났는데도 난 그대가 차지했던 그런 훌륭한 전리품을 받지 못했던 것이오. 분배를 할 때 그대의 몫은 가장 훌륭한 것들이었단 말이오. 그러니 이젠 내 함대로 돌아가서 손에 들어오는 것이나 가지고 싸움이 끝나는 것에 감사나 드려야겠소. 자, 난 프디아로 돌아갈 것이오. 그대를 위해 황금이나 귀중품을 모으느라 여기에 머물면서 수치스러운 짓을 하느니, 내 함대를 거느리고 귀국하는 것이 훨씬 낫겠소."
그러자 아가멤논이 말했다.
"가겠다면 썩 물러가시오. 내가 무릎을 꿇고 머물러 주십사 하고 애걸치는 않겠소. 이 곳에서는 내게 영광을 베풀 사람들이 많소. 그 중에서도 조언의 군주이신 제우스 신께서 같이하시지요. 여기엔 당신과 같이 증오스러운 사람은 없지요. 당신은 늘 언쟁이며 싸움질만 일삼으니 말입니다. 그대가 용감한들 무슨 상관이오 ? 그대를 이렇게 만드신 것이 신이 아니었소? 그대의 함대와 동료들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가 밀미돈에 대해 뽐내기나 하시오. 난 당신에 대해서도, 당신의 분노에 대해서도 상관치 않소이다. 나는 이렇게 할 것이오. 포이보스 아폴론이 내게 크리세이스를 빼앗아 가니 난 내 함대와 추종자들과 더불어 그녀를 보낼 것이로되, 나는 당신의 진영(陣營)으로 가서 그대의 전리품, 아리따운 브리세이스를 데려갈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보다 얼마나 힘이 더 센지를 알게 될 것이며, 다른 자들도 감히 나와 동등하게 놓는다든지 비교를 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오."
펠레우스의 아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거센 심정은 칼을 뽑아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러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죽여 버릴까, 아니면 스스로 억제하여 자기의 분노를 참을 것인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렇게 두 갈래의 길에서 망설이다 칼집에서 칼을 뽑는 순간 아테나 여신이(두 사람에게 똑같이 사랑을 아끼지 않는 헤라 여왕이 보냈으므로) 천국에서 내려와 펠레우스 아들의 아름다운 머리를 잡아당기니, 그의 눈에만 이 여신의 모습이 비칠 뿐, 다른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놀라며 돌아서서 두 눈에서 번쩍이는 광채를 보고는 그녀가 아테나 여신임을 즉석에서 알아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방패의 주인 제우스 신의 따님이시여 ?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허식을 참관코자 오셨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지만-그는 이 오만에 대한 대가를 목숨으로 보상하게 될 것입니다."
아테나 여신이 대답했다.
"난 그대의 분노를 말리고자 천국에서 왔소. 그대 둘 모두를 보호하시는 헤라 여왕께서 나를 보낸 것이라오. 언쟁을 거두고 칼을 뽑지 마시오. 정히 하겠다면 그를 말로 꾸짖으시오. 그대의 꾸짖음은 헛일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내가 말하지만-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니-그대는 이후 지금과 같은 봉변 때문에 세 번의 훌륭한 선물을 받게 될 것이오. 그러니 칼을 거두고 내 말에 복종하시오."
"여신이시여."
하고, 아킬레우스가 대답했다.
"화난 자가 누구일지라도 그대 두 여신의 명을 따라야 하겠지요. 신들께서는 일찍이 자기들을 숭배하는 자의 기원에 귀를 기울이시니,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길이겠지요."
그는 은빛 칼자루에 댄 손을 멈추고, 아테나 신의 명에 따라 칼집에 도로 밀어넣었다. 그러자 아테나 여신은 방패의 부인 제우스 신이 계신 곳, 올림포스를 향해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펠레우스의 아들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다시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개의 얼굴에다 암사슴의 심장을 지닌 주정뱅이여."
그가 고함을 쳤다.
"그대는 대군을 이끌고 싸움에 감히 나가 본 적이 없고, 선발된 전사와 함께 공격에 참가한 적이 없지요. 이런 일은 마치 죽음을 멀리하듯 피해 온 것이오. 그대는 마냥 돌아다니며 그대에게 반대를 하는 사람에게서 약탈이나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오. 그대는 연약한 무리의 왕이라서 백성의 피나 빨아먹고, 한편으로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시여, 이러한 모욕을 할 기회는 이제 마지막이 될 것이오. 그래서 말하는데, 그리고 맹세코 단언하지만-자, 산 위에 있는 몸체에서 잘려진 날부터 잎도 싹도 돋지 않는 홀을 두고-도끼로 잎과 껍질을 벗겨, 지금은 아카이아 자손들이 하늘의 율령이요 심판관으로 그것을 지니고 다니는-내가 분명히 그리고 솔직히 맹세하니 온 동포가 아킬레우스를 그릴 날이 올 것이나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대 부하들이 살인마 헥토르의 손에 쓰러져 죽어 갈 때면 그대는 아카이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에게 모욕을 퍼부었던 날을 후회하며 분함 마음을 되씹을지언정 그들을 도와 줄 방도는 알지 못하리라."
이 말을 마치자, 펠레우스의 아들은 금징을 박은 흘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한편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자리에서 다른 쪽으로 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 필로스 사람 중에서도 달변가인 유연한 입의 소유자 네스토르가 일어나고,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들은 꿀맛보다도 더욱 달콤했다. 필로스에서 사람들이 두 세대를 살다가 그의 통치하에서 사라져 갔으며, 지금 그는 삼대(三代)째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정성과 호의를 다하여 그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토로(吐露)했다
"분명 커다란 고뇌가 아카이아 땅에 떨어졌습니다. 전쟁이나 상담에 있어 그토록 탁월한 그대들의 언쟁을 들을 수 있다면 분명 프리암 족은 자손들과 더불어 기뻐 날뛸 것이며, 트로이아 족도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할 것이오. 난 그대들보다는 연상이오. 그러니 나의 뜻을 따르시오. 더욱이 난 그대들보다도 훨씬 위대한 사람들과 친숙했었는데, 그들은 나의 조언을 무시하지는 않았다오. 이제 다시는 피리도우스와 드리아스의 지도자와 카에니우스, 엑사디우스, 신과 다름없는 폴리페무스, 신의 동료인 아지우스의 아들 데세우스와 같은 그런 분들을 쳐다볼 수는 없을 것이오. 이들이야말로 이 지구상에 태어나신 최강자, 절대의 강자들이시며, 가장 억센 산악 야만족들과 싸워서도 일격에 그들을 넘어뜨렸다오. 난 머나먼 필로스에서 그들의 청을 받고 그들과 합류해서 마땅한 일인 것처럼 맞서 싸웠죠. 지금 생존해 있는 뉘라도 그들에게 대항할 자는 없다오. 그러나 내 말에는 순응해서 따랐습니다. 이게 보다 탁월한 길이니, 그대들 자신도 내 말을 유념토록 하시오. 그러니 아가멤논이시여, 그대가 강자일지라도 이 여자를 빼앗아 가지 마시오. 아카이아 자손들은 그녀를 이미 아킬레우스께 상납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대 아킬리우스여, 더이상 대왕과 겨루기를 삼가시오. 제우스의 은총으로 왕권을 쥔 왕이란 일반적인 권리를 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오. 그대는 강자요, 그대 모친은 신입니다. 그러나 아가멤논 대왕께서는 그대보다 더욱 강자이십니다. 슬하에 보다 많은 국민을 거느리고 계시기 때문이죠. 아트레우스의 아드님이시여, 내가 간청하니 분노를 거두시고 아킬레우스 장군과의 언쟁을 멈추시오. 그분께서는 전쟁이 있을 때는 아카이아 국민들을 위한 힘의 아성(牙城)입니다."
이에 아가멤논 대왕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하신 말씀 모두가 지당하오. 하지만 이 친구는 우리의 군주가 되고자 바라고 있으며, 주인이, 그리고 만인의 군주가, 만인의 왕이, 만인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소망하오. 그렇지만 어디 될 법이나 한 말이오 ? 불멸의 신들께서 그를 위대한 전사로 만드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또한 그에게 그토록 무례한 말을 지껄이도록 권리를 주셨단 말입니까?"
아킬레우스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당신의 말만 모두 듣고 있다가는 천박한 겁쟁이가 될 것 같소. 명령은 내가 아닌 딴 사람에게나 하시오. 난 더 이상 순종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더욱이-지금의 내 말을 새겨 두시오.-이 여자 문제로 당신하고 또는 다른 어느 사람하고도 싸우지는 않을 것이오. 주었던 것들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내 함선에 실린 기타 어느 것도 강제로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오. 자, 다른 사람들이 목격할 것이오. 만일 그대가 그 따위 짓을 한다면, 나의 창이 붉게 물들리란 것을 말이오."
그들은 분에 못 이겨서 이토록 언쟁을 벌인 끝에, 일어나서 아카이아 함대에서의 회합을 해체했다. 펠레우스의 아들은 메네티우스의 아들과 동료들을 동반하고 함대의 진지로 돌아갔다. 한편, 아가멤논 대왕은 물에 배를 띄우고 스무 명의 선원을 선정했다. 그는 크리세이스를 배로 호위해 와서 신에게 올릴 제물을 실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지휘를 하고 출범했다. <후략>
갈래 : 영웅 서사시
성격 : 서사적, 비극적
어조 : 삶과 죽음의 중대사를 논하는 장중한 어조
심상 : 묘사적, 서술적 심상
제재 : 트로이 전쟁의 신과 영웅들
주제 :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용감한 영웅정신
트로이 전쟁의 발생 원인
'일리아스'의 장엄한 배경이 된 트로이 전쟁은 세 여신들과 하나의 사과 때문에 발생한다. 아름다움을 다투는 여신인 헤라와 아프로디테와 아테네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준다'라고 씌어진 황금 사과를 각기 자기가 가지려고 했고, 신들은 그 심판을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청년인 파리스에게 맡겼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권력을 주겠다고 했고,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영광과 성공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했다. 미청년 파리스는 그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이 된다. 그리하여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렌을 얻는 동시에 두 여신의 영원한 증오를 받게 된다. 그 때문에 메넬라오스의 원한을 풀어주려는 희랍의 원정군과 파리스를 지키려는 트로이의 진영 사이에 십 년 동안 전쟁이 계속된다. 호머는 이를 소재로 '일리아스'를 썼다.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비극
<일리아스>의 주제는 트로이 시 밖에서 야영 진지를 치고 있는 그리스 장군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이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 왕의 아들로 어릴 때 황천의 강 스티크스에 몸을 담가 불사신이 되었으나 발 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았다. 이 약점은 영웅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아킬레우스는 폭력에 의해, 그리고 폭력을 위해 사는 사람이며, 오직 맹렬한 행위를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얻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트로이 앞에 머물고 있으면 살해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화롭게 살기보다는 싸우다 죽는 비극의 필연성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분노로 인해 사령관과 동료 왕들과 단절되고 외톨이가 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그리스 성격 비극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작품 세계
서구 문화의 원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으며, 이 두 서사시(敍事詩)가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는 호메로스는 실제 인물이었으며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도 그의 작품이란 것이 거의 정설(定說)로 낙찰되었다. 이 정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기원전 약 9세기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변의 스미르나 또는 키오스 시(市)에 살았으며, 이 두 작품도 모두 소아시아 서해안 아이오네스족 무사계급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영웅담을 호메로스가 그의 천재를 발휘하여 그리스 고래의 신화, 전설들을 혼합·가미하여 장단단(長短短) 6각운(六脚韻)의 시형(時形)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눈먼 노인으로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금전을 구걸하며 여러 도시를 편력하고 다닌 음유시인이었다고 하나 사적(史的) 근거는 없다. 그의 이름은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史學者) 헤로도투스의 저서 안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이 최초에 나타난 확실한 역사적 전거(典據)가 되고 있다. 하여튼 호메로스가 그리스 최고(最古)의 문인일 뿐 아니라 서구(西歐)의 시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은 오늘날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기에 번역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가장 완전한 서사시의 전형으로서 높이 찬양되는 서구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걸작이다.
《오딧세이아》와 《일리아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8백년 전에 다시 말하면 기원전 약 9백년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서사시(大 事)의 자매편( 妹篇)이다. 《오딧세이아》는 <오딧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며, 《일리아스》는 <일리오스(트로이)의 노래>라는 뜻이다. 《오딧세이아》는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수많은 난관의 이야기가 주요한 골자로 되어 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전사(戰士)들의 무용, 영웅들의 알력(軋轢), 적장(敵將)과의 결투 따위의 사건이 중요한 줄거리로 다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일리아스》는 전쟁 중의 이야기요, 《오딧세이아》는 전쟁 후의 이야기이므로 《오딧세이아》는 《일리아스》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양자의 차이는 적지 않다. 《일리아스》는 순전한 전쟁 서사시로서 처참한 전쟁터에서 혈투하는 영웅들의 용맹과 열정이 흥미의 중심이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힘세고 겁없고 자존심이 강한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자아내는 파란곡절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있다. 한편 《오딧세이아》는 전쟁은 이미 지나간 일로 이따금 회상될 뿐, 마지막 복수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편에 평화스런 분위기가 흐른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 오딧세우스의 용기와 지략과 침착성이며, 거기에 부인의 정절, 부부 또는 부자간의 깊은 애정과 의리 등 가정적인 요소가 곁들어져 있다.
이러한 주제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용어와 격조와 종교생활 양식에도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오딧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훨씬 후대의 작품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러한 주장에는 확실한 증거가 따르지 못하고 있다. 본서에서 《일리아스》를 앞에 놓은 별다른 뜻이 없고, 다만 일반 독자에게 처참한 전쟁의 비극과 살육이 장황하게 펼쳐지는 《일리아스》는 다양한 모험담과 사랑, 방랑 등의 낭만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오딧세이아》보다 용맹이나 열정이 더욱 흥미를 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일리아스》에 대하여
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 전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진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한다. 거북해진 주신(主神)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한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다.
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遠征軍)을 편성한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 - 은 이제 유괴당한 헬레네를 찾아오기 위해 각기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참가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 휘하의 10만 대군이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했다. 그러나 때마침 아가멤논 왕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신의 사슴을 죽인 탓으로 갑자기 바람이 자버려 그리스 함대는 출항할 수 없게 된다. 예언자의 말에 의하면 아가멤논 왕의 맏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가멤논은 오딧세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구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다.
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트로이 성주(城主)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한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한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리아스》(일리오스의 노래)의 구성은 전편이 24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장마다 5백 행 내지 8백 행의 시로 되어 있으므로 전체 행수는 1만 5천7백 행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 전후 51일 동안 전쟁터에서 생긴 일들이 이 속에 담겨져 있는데, 그 중 중요한 사건은 제 1장, 제 9장, 제 15장, 제 16장에 나타나고, 그 밖의 장들은 이를 이어가는 삽화들이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제 1장부터 9장까지는 전편, 제 10장부터 17장까지는 중편, 제 18장부터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戰功)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한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된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防壘)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른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도록 권해보는 데서부터 중편 부분이 시작된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한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빌려 입고 나가 싸운다. 그는 적병을 무찌르며 전진하다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처음에는 그를 아킬레우스인 줄 알고 두려워했던 트로이군의 반격을 받아 헥토르는 그를 죽이고 갑옷을 벗긴다.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분해한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종말되기 시작하는 후편 부분이다. 복수하기로 결심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른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간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한다. 이때 트로이의 노왕(老王)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兩軍)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진다.
이와 같이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며,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이다.
《오딧세이아》에 대하여
헥토르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알렉산드로스(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발꿈치를 활로 쏘아 아킬레우스는 그 화살의 독으로 죽는다. 아킬레우스가 남긴 훌륭한 갑주를 놓고 아이아스와 오딧세우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나 결국 오딧세우스의 차지가 된다. 실성한 아이아스는 자살을 하고 이어서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트로이의 알렉산드로스도 마침내 죽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전세는 일진일퇴를 거듭하여 아직 어느 편의 승리를 단정하기 어려웠다. 이때 오딧세우스의 지략으로 그리스군은 큰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무사들을 숨겨서 성 밖에 갖다놓고는 전쟁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체하며 바닷가에 머물러 있었다. 트로이군은 사제(司祭) 라오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자, 밤중에 그리스군 무사들이 뛰어나오고 함대에서도 쳐들어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 승리한 그리스군의 각 부대는 마침내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고국을 향하여 귀향 길에 오른다.
오딧세우스는 열두 척의 배에 6백 명의 부하를 태우고 떠났으나 바다 위에서 재난을 겪는다. 그들은 트로이 성에서 아테네 신의 성상(星像)을 농락하여 노여움을 받게 되었고 이어서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게 되어 난파를 당하고 10년 동안이나 바다 위를 이리저리 헤맨다.
한편 오딧세우스의 고국인 이타케에서는 그가 원정한 지 10년, 트로이를 떠난 지는 2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오래 전부터 근처의 많은 귀족 무리들이 그의 궁전에 모여 부인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하다시피하며 횡포가 심했다. 그들의 야망은 페넬로페를 아내로 삼고 이타케의 왕위에 오르려는 것이었다. 절세(絶世)의 열녀인 페넬로페는 남편에게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꾀를 내어 구혼자들의 성화를 물리친다. 우선 늙은 시아버지의 수의(壽衣)를 만드는 동안은 기다려 달라는 핑계를 대고 천을 짜지만, 낮에 짠 천을 밤에는 다시 풀며 시일을 끌어간다. 오만한 구혼자들은 주인도 없는 궁전의 큰 식당에서 매일 실컷 먹고 마시며 오딧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할 뿐 아니라 그의 외아들 텔레마코스를 조롱한다.
《오딧세이아》(오딧세우스의 노래)는 그 길이가 1만 2천1백 행이나 되는 장시(長時)로서 모두 24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원래 각 장이 별권으로 되어 있는데, 권마다 그리스어의 알파벳 a로부터 w까지의 소문자가 표시되어 있고 그 밑에 한두 줄 매우 간단한 개요 같은 것이 적혀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원정의 귀로에서 10년 동안 겪은 온갖 고초와 그의 부재중에 고향 집의 가족들이 겪은 사건들이 담겨져 있는데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병행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의 서술이 반드시 시간적 순서에 따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제 1 장 <신들의 모임>은 오딧세우스가 원장을 떠난 지 20년째, 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귀향 길에 오른 지는 10년째 되며, 나중에 그가 자기 집에 도착되는 날짜로부터 40일이 앞선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4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지나간 긴 세월 동안 집안과 타관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다루어지기 때문에 그 서술이 현재에서 과거의 회상으로, 다시 과거에서 현재의 묘사로 되돌아오곤 하는 매우 교묘하고 변화가 많은 수법이다.
전체 24장을 크게 나누면 제 1장에서 4장은 전편(前篇)의 1부, 제 5장에서 13장까지는 전편의 2부, 제 14장에서 19장까지는 중편, 제 20장에서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
각편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편 1부는 오딧세우스의 귀국 준비에 관한 것이로, 아테네 여신이 신들의 회합에서, 7년간이나 요정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는 오딧세우스를 집에 돌려보내 주도록 제의하여 허락을 얻는다. 한편 이타케 왕국에서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영주들의 성화 같은 청혼을 무릅쓰고 오로지 남편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만 20세의 성인이 된 그의 외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그는 배를 타고 집을 떠나 필로스의 왕 네스토르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만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편 2부는 귀국 도중에 오딧세우스가 겪은 재난과 모험에 관한 것으로, 그가 트로이를 떠난 후 요정 칼립소에게 붙들려 부하를 잃고 7년간이나 외로움을 겪었으며, 이제 그녀 곁을 떠났으나 다시 배를 탄 지 18일 만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로 난파를 당하여 표류한 끝에 겨우 파이아키아족의 나라에 다다른다. 그곳서 아름다운 공주 나우시카의 안내로 알키노스 왕의 대궐에서 대접을 받는다. 이때 그는 그때까지 겪은 모든 경험담을 털어놓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족, 무서운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마녀 키르케와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레네스(사이렌), 아이데스의 명부에서 망자들과의 대화, 태양신 헬리오스의 노여움으로 배와 부하들을 잃고 표류했던 요정 칼립소의 섬 이야기 등 한없이 다양한 모험담이 펼쳐진다. 중편은 귀국 후의 신중한 준비에 관한 것으로, 거지꼴을 하고 고국 이타케에 돌아온 오딧세우스는 시골 농장에서 돼지를 치고 있는 충복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나 그는 얼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텔레마코스는 자기를 죽이려는 영주들의 복병을 피하여 무사히 이곳에 도착하여 마침내 감개무량한 부자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오만불손한 청혼자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오딧세우스가 누더기를 걸치고 대궐로 들어가자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지 취급을 하며 마구 모욕하고 행패를 부린다. 그러나 오딧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에게까지도 그의 정체를 숨기고 모욕을 참아가며 집안에 있는 모든 무기를 먼저 치워 놓게 하는 등 계획대로 치밀하게 행동한다. 후편은 마지막 복수의 심판에 관한 것으로 청혼자들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페넬로페는 과녁을 맞히는 자에게 개가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활쏘기 시합을 제의한다. 그리고 이 시합에 사용할 활로 그녀의 남편만이 다룰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활을 내놓는다. 호언장담하던 청혼자들은 그 큰 활을 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마음대로 당길 수가 없어 당황한다. 이때 그들이 업신여겼던 거지꼴의 사나이가 나서서 별로 힘도 안들이고 활을 쏘아 도끼의 과녁을 정통으로 맞혔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기겁을 한다. 이를 신호로 아들 텔레마코스와 두 사람의 충복이 합세하고, 아테네 여신도 힘을 주자, 오딧세우스는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둘러 처자식을 괴롭히던 무례한 자들과 그들에게 놀아났던 방종한 하녀들을 모조리 살육한다. 이리하여 20년 동안 헤어졌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늙으신 아버지 라에르테스와 재회의 기쁨을 비로소 나눈다. 이윽고 죽은 자들의 유족들이 그에게 보복하려고 몰려와 위태로울 듯했으나 아테네 여신의 중재로 마침내 영원한 평화를 이룩했다.
다시 말하면 《오딧세이아》는 첫 장에 표현되어 있듯이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방랑 중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들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과 습관"을 보고 다닌 모험담 속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 부부간의 의리, 가족의 재회 등 아름다운 인정의 이야기가 인상깊게 담겨져 있어, 잔인한 전쟁과 영웅의 분노를 그린 《일리아스》보다는 한결 더 낭만적이고 다양한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니벨룽겐의 노래 (Das Nibelungenlied)
요점 정리
지은이 : 작자 미상 / 허창운 옮김
갈래 : 영웅 서사시(1200년경에 쓰인 작자 미상의 영웅 서사시)
작가 : 미상 / 허창운 옮김
성격 : 영웅적, 비극적, 서사적, 전기적, 낭만적, 환상적
제재 : 민족 이동기의 역사적 상황, 기사들의 사랑
배경 :
시간 - 4세기 말 게르만 족 대이동시
공간 - 독일
구성 : 1부가 19장, 2부가 20장으로 구성된 총 39장의 대작이다.
1- 3장 : 크림힐트와 지그프리트의 만남
8-10장 : 브린힐트와 군터의 만남
11-14장 : 크림힐트와 브린힐트의 갈등
15-16장 : 지그프리트를 하겐이 암살
17-19장 : 범인이 밝혀지고, 니벨룽의 보물이 라인 강에 수장됨
20-22장 : 크림힐트와 에첼의 혼인
23-28장 : 브르군트 인이 에첼을 방문
29-39장 : 브르군트 인과 훈족의 전쟁, 군터, 하겐, 크림힐트의 죽음
주제 : 지크프리트의 일생, 사랑을 얻기 위한 영웅들의 모험
특징 : 서양 중세 문학의 가장 특징적 장르인 영웅 서사시로서, 독일 민족의 민족성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이고, 복수의 연속으로 이어져 결국 비극에 이르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구연(口演)에 적합한 운율과 희곡적 구성 방식을 취함
출전 : 니벨룽겐(Nibelungen)의 노래
줄거리 : 줄거리는 제1부가 〈지크프리트(Siegfried)의 죽음〉, 제2부는 〈크림힐트의 복수〉로 되어 있다. 제1부의 서두에서, 부르군트족의 왕 군터의 누이동생인 크림힐트가 불길한 꿈을 꾼다. 이 꿈은 훗날 자기 남편이 될 사랑하는 기사를 여의는 꿈이다. 크림힐트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네덜란드 왕자 지크프리트가 보름의 성을 방문하게 된다. 지크프리트는 전에 니벨룽이란 소인족(小人族)을 정복하였을 때 보물을 얻었는데, 당시 그 보물을 지키고 있던 용(龍)을 퇴치할 때, 그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신(不死身)의 영웅이 되었으나, 다만 등의 일부분에 보리수 나뭇잎이 붙어 있어서 피가 묻지 않아, 거기가 유일한 약점이었다.
그런데 지크프리트는 약 1년 가까이 그 곳에 머물다가 겨우 크림힐트를 만날 수 있게 된다. 한편 보름의 성주(城主)인 군터는 이젠란트의 여왕인 브룬힐트에게 구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무예로써 겨루어 자기를 이기는 남자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자신이 없었다. 그는 손님인 지크프리트에게 도움을 청하고, 만일 일이 잘 되면 자기 누이동생을 왕비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의 보물을 이용하여 몸을 숨기고 군터를 몰래 도와 브룬힐트를 이기게 하여 줌으로써 두 쌍의 부부가 출현하게 된다.
그 후 10년 만에 지크프리트 부부는 보름을 다시 방문하게 되고, 이 때 크림힐트와 브룬힐트는 제각기 자기 남편을 자랑하다가 말다툼을 하게 된다. 이 말다툼의 결과로 결혼하기까지의 비밀이 폭로되고, 지크프리트는 브룬힐트의 원한을 사게 된다. 브룬힐트는 복수를 하기 위해 자기 남편의 부하인 하겐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게 되고, 하겐 역시 평소에 지크프리트가 자기보다 강자(强者)라는 것에 질투심을 품고 있던 터라, 자기 주인에 대한 의무라는 구실로 그녀의 편이 되기를 약속한다. 하겐은 책략으로 지크프리트의 몸 중 꼭 한 군데에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2번째 간계로 뒤쪽에서 지크프리트를 암살한다. 그 후 크림힐트는 훈족의 왕인 에첼과 재혼하지만, 잠시도 복수를 잊지 않고 있던 그녀는 13년 후에, 자기 2번째 남편에게 부탁하여 친정 오빠와 그의 신하를 초청하여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살해하여 복수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늙은 영웅 힐데브란트에 의해 의분의 칼을 맞고 죽게 된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내용 연구
제6장
군터가 어떻게 이젠란트로 가서 브룬힐트에게 구혼했는가[독자의 호기심을 유도함]
325
전혀 새로운[뜻밖의] 소식이 라인 강[중부 유럽의 최대강, 독일의 상징]을 건너 그들에게 들려 왔답니다. 그 곳 어딘가에 많은 미녀들이 있다는 이야기였지요. 뛰어난 왕인 군터는 그녀들 중 하나를 골라 아내로 삼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결심을 하자 영웅[군터]의 마음은 기쁨 때문에 몹시 두근거렸지요.[설레임에서 나온 반응]
326
바다 건너 저편에 한 여왕[브룬힐트]이 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튼 알려진 바로는 어떤 여인도 그녀와 (미와 힘에 있어서)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녀는 한량없이 아름다웠으며, 그리고 그 밖에도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지요[브룬힐트의 면모]. 용감한 영웅이 나서서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할 경우, 그는 그녀와 창던지기에서 우열을 다투어야 했었답니다.[무예로써 이겨야 결혼할 수 있었으므로]
327
그녀는 돌을 멀리 던질 수 있었고, 그러고 나서 굉장한 도약을 하여 그 돌을 뒤쫓아 뛸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는 자는 언제나 이 세 가지 경쟁[창던지기, 돌던지기, 도약후 달리기]에서 그 여왕을 이겨야만 했었죠. 그가 만약 한 가지에서라도 실패하는 경우, 그는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그녀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름다운 아내를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영웅 서사시에는 목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고난 극복의 고난 극복의 모티브가 설정되어 있다.]
328
그 처녀는 이미 그런 힘겨루기 시합들을 무수히 이겨 냈는데[많은 영웅들이 도전이 실패함], 그런 이야기를 하인의 한 고귀한 기사가 들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는 이제 모든 생각들을 아름다운 그녀[부룬힐트]에게로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나중에는 많은 영웅들이 죽음을 당해야만 했지요.[이 작품에서 서술자는 이야기에 직접 개입하여 뒷날 인물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암시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지적 서술은 335, 337, 338절에도 나타난다. 서건의 비극성에 대한 복선]
329
그 때 라인의 왕[군터]이 말했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건, 나는 강을 따라 그 바다까지 가서 브룬힐트에게로 항해해 갈 것이며, 그녀에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 내 생명을 걸겠노라.[부룬힐터에 대한 군터의 도전 의지] 만약 그녀가 내 아내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내 목숨을 버릴 것이니라."[사랑을 얻기 위한 군터의 열정]
330
"저는 그런 일을 하지 마시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도전의 위험성 때문에]" 하고 그 때 지크프리트가 말했습니다. "그 여왕은 너무나 무서운[목숨에 관계된] 조건들을 내걸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매우 값비싼 희생[죽음]을 치르게 됩니다. 그 때문에 당신은 여행에 관한 생각을 영원히 머리에서 지워버리셔야 할 것입니다."[청혼 계획의 단념 촉구]
331
"이 경우에는" 하고 그 때 하겐[군터의 부하로 나중에 지크프리트를 암살함]이 말했습니다. "전하께서 지크프리트에게 당신과 함께 이 험난한 위험들을 헤쳐 나갈 것을 부탁하시기(주체 : 군터)를 권고하옵니다(주체 : 하겐).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정말 전하께 조언드리옵니다. 왜냐 하면 그[지크프리트]는 브룬힐트에 관해서 아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옵니다."[하겐이 군터에게 지크프리트의 개입을 유도함]
332
그러자 군터가 말했습니다. "고귀한 지크프리트여, 그 사랑스러운 처녀[브룬힐트]를 얻을 수 있도록 그대는 나를 도와 주겠소? 만약 그대가 내 청을 들어 줘서 그 사랑스런 여인이 나의 아내가 된다면, 나도 그대를 위해 명성과 생명을 다 바치겠소. 만약 그대가 그것을 원한다면 말이오."[성공에 대한 대가의 제시]
333
그 때 지크문트의 아들인 지크프리트는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만약 고귀한 여왕이자 당신의 여동생인 크림힐트를 아내로 주신다면[협조에 대한 유일한 조건] 저는 기꺼이 동의할 것이며, 그 힘든 과제[부룬힐트를 이기는 일]에 대해서는 그 밖의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334
"지크프리트여" 하고 군터가 말했습니다. "내 그것[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의 결혼]을 그대의 손에 쥐어 줄 것을 약속하겠소. 만약 아름다운 브룬힐트가 여기 이 나라에 온다면[부룬힐트가 내 아내가 된다면, 부르군트의 왕인 군터는 미색의 여왕 브룬힐트에게 구혼하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시합에서 이겨야만 하고, 만약 지게 되면 생명을 바쳐야만 한다. 그래서 지크프리트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대에게 내 여동생을 아내로 줄 것이오[브룬힐트를 얻도록 도와 주면, 여동생을 아내로 맞게 해 줄 것이라는 약속]. 그러면 그대는 아름다운 그녀[군터의 여동생인 크림힐트]와 함께 영원히 커다란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이오."
335
그 고귀한 영웅[지크프리터와 군터]들은 그것을 선서로써 맹세하였답니다. 하지만 그들이 브룬힐트를 라인으로 데려올 수 있기 전에 이미 그들의 어려움은 그것[서로 간에 한 약속]으로 인해 다만 커졌을 뿐이었죠. 심지어 나중에 그 용감한 자들은 엄청난 위험[결국에는 복수심 때문에 모두 죽게 됨]에 자신들이 내맡겨져 있음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뒷날 군터의 아내가 되는 브룬힐트와 지크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아내가 되는 크림힐트가 적대적 관계가 되어 비극이 발생하게 됨을 암시하고 있다.]
336
지크프리트는 몸을 안 보이게 하는 마법의 망토[지크프리트는 니벨룽겐 족의 보물을 지키던 용을 무찌르고 불사신의 용사가 되며, 그 때 망토도 얻게 됨]를 가지고 가야만 했답니다. 그것은 그 용감한 영웅이 커다란 위험 속에서 '알베리히'라는 이름의 한 난쟁이로부터 빼앗았던 것입니다. 그 용감하고 막강한 영웅[지크프리트와 군터]들은 이제 여행 준비[부룬힐트에 대한 도전]를 하게 되었지요.
337
힘이 센 지크프리트는 마법의 망토를 입자마자 굉장한 힘을 갖게 되었답니다. 즉, 열두 용사의 힘이 자기 고유한 힘에 더 보태어졌지요[망토가 가지고 있는 마력]. 마법의 술수[마법의 망토를 이용하여]로 그는 나중에 그 아름다운 여자[군터의 동생]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뒷날 지크프리트가 마법의 망토를 사용하여 군터 왕을 도와 시합에 이기게 함으로써 자신도 크림힐트를 아내로 맞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338
게다가 누구나 그 마법의 망토를 입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원하는 일[망토의 신비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브룬힐트를 얻었지만[마법의 망토를 이용해서 군터가 브룬힐트를 이기게 함], 역시 그에게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너무나 값비싼 일[지크프리트의 암살을 암시함]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지크프리트는 니벨룽겐의 보물인 마법의 망토를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안 보이게 함으로써 군터를 몰래 도울 수 있었다. 이처럼 지크프리트는 군터가 부룬힐트를 이기게 해 줌으로써 군터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지만, 결국 브룬힐트의 복수심 때문에 브룬힐트에 의해 죽게 됨]
339
"그대 지크프리트 영웅이여, 내가 돛을 올리기 전에 나에게 말 좀 해 주구려[군터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암시함]. 우리가 그 바다로 나설 때, 충분히 영예를 획득하기 위해서는[경쟁에서 이기려면] 브룬힐트의 나라에 다른 영웅들도 데리고 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소? 3만 명의 용사들은 아주 빨리 모을 수가 있을 것이오[군터가 다스리던 제국의 규모가 방대함을 알 수 있음]."
340
"우리가 아무리 많은 군사를 데리고 간다 할지라도" 하고 지크트리프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여왕[브룬힐트]은 오만한 자신감에서 역시 모두를 다 죽이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극단적인 공포를 마구 퍼뜨릴 것입니다[병사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 아닙니다, 용감하고 뛰어난 영웅들이시여, 저는 여러분들에게 좀 더 나은 제안[이길 가능성이 높은]을 해 드리겠습니다.
341
우리들은 옛 영웅들처럼 라인강을 따라 내려갈 것입니다[정공법의 선택]. 이제 누가 함께 갈 것인가를 당신께 말씀드리죠. 우리는 4명[지크프리트, 군터, 하겐, 당크바르트]이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릴 것이고, 그 후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생긴다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꼭 그 여인을 얻어 올 것입니다.[승리에 대한 확신]
342
제가 동행자들 중 한 사람이며, 둘째는 당신[군터]이 될 것이고, 셋째는 하겐이요, 넷째는 용감한 당크바르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미 살아서 돌아오리라는 것이 보장되는 것이죠.[자신감의 표출] 왜냐 하면 1000명의 장정들이라 하더라도 감히 우리를 섣불리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43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나는 정말 브룬힐트의 왕궁에서 제대로 정장 차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역시 알고 싶은데, 그러한 정보를 얻는다면 매우 기쁘게 생각하겠소. 제발 그것을 좀 말해 주오!"
344
"사람들이 일찍이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브룬힐트의 나라에서는 늘상 입는답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경우, 우리를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그 여주인 앞에서 훌륭한 옷을 입는 것이 우리의 도리일 것입니다."
345
그 때 그 훌륭한 영웅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나의 사랑하는 대비마마께 가서 그녀의 훌륭한 시녀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입고 그 아름다운 처녀 앞에서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게 함으로써 우리를 도와 주도록 간청해 보리다."
346
그 때 트론예의 하겐이 그다운 침착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왜 대비마마께 그런 일을 부탁하려 하시옵니까? 전하께서는 당신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전하의 누이동생에게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면 그녀는 중요한 궁정 여행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전하를 도울 수 있을 것이옵니다."
347
그래서 군터는 자신의 누이동생에게 자신과 영웅 지크프리트가 그녀를 심방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게 했지요. 그러자 그들이 오기 전에 이미 그 미녀는 가장 세련된 옷을 입고 있었답니다. 왜냐 하면 그녀는 그 용감한 남자들이 오는 것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군터의 누이동생인 크림힐트는 이미 지크프리트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1. 주인공 '지크프리트'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작품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는 작품의 전체 줄거리와 주제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추리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전체에 대한 해제를 통해서나, 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지크프리트에 대해 조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지크프리트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정도로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게르만 민족의 영웅이라는 점을 알아내어 발표할 수 있는가에 있으므로,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하되 그의 인물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오라는 주문을 할 필요가 있다.
예시 답안 :
지크프리트 전설은 라인강 하류 지역의 프랑켄인 사이에서 발행하여, 7세기에는 스칸디나비아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이 북유럽 계통의 설화에 따르면, 지크프리트는 게르만 민족의 주신(主神) 오딘의 자손으로 되어 있다. 이 지크프리트가 널리 알려진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인공의 원형(原型)이다.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인공인 지크프리트는 게르만 민족의 영웅 전설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영웅이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 전설의 도깨비 감투 같은 것을 쓴 투명 인간으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자유자재로 싸워 이기는 영웅의 대명사이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13세기 초경에 완성된 것으로서, 거기에는 5세기 훈족의 왕 아틸리아의 유럽 침입, 부르군트 왕국의 멸망, 그리고 지크프리트 전설 등이 섞여 있는데, 오래 전부터 민중 사이에 전해 내려온 설화가 소재이다.
지크프리트는 라인강 하류 지역에 있던 네덜란드의 왕자이다. 니벨룽겐족의 보물을 지키던 용을 무찌를 때, 그 용의 피로 전신을 적셔서 피부가 각질(角質)이 되어 불사신의 용사가 되었다. 당시 이젤란트(아이슬랜드)의 여왕 브룬힐트는 힘센 여장부로 알려졌다. 지크프리트는 그녀를 아내로 아내로 맞이할 것을 열망하던 군터를 도와 그의 결혼에 협력한 대가로 군터의 누이 동생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룬힐트 왕비는 크게 노하여 원한을 품고 있던 중, 군터의 신하인 하겐으로 하여금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이용하여 암살케 한다. 지크프리트가 용의 피를 뒤집어 쓸 때, 양어깨 사이의 잔등 한곳만은 피가 닿지 않았는데, 이곳이 그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것이다. 하겐은 간교로 지크프리트의 잔등에 나뭇잎을 붙인 다음 그곳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써 지크프리트는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 '원탁의 기사', '아이반호',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 등 중세 서구에서는 기사(騎士)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작품은 시대의 소산이라는 말이 있다. 이 점을 이 활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짓이 중요하다. 중세 서구는 봉건 사회였다. 봉건 사회에서 기사는 영주의 신하로서 일정한 지위와 농토를 부여받았고 대신 영주를 호위하는 임무를 행하였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 문제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짓이 필요하다.
예시답안 :
중세 서양의 사회·경제 체제에 근거하여 그 이유를 추리할 수 있다. 중세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로 구성되는 봉건 제도를 사회·경제 체제로 하는 시대였다. 이 시기에 기사는 영주에게서 일정한 지위와 농토를 배정받고, 한편으로는 영주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서명에 비추어볼 때, 기사는 영주와 농노에 비해 역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이러한 점이 기사도 문학을 양산(量産)하게 한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귀향자 모티프와 선원 모티프
이 작품에서는 '귀향자 모티프'와 '선원 모티프'가 나온다. '일리아드'에는 분노의 모티프 하나밖에는 없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의 모티프는 여러 가지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그 중 하나는 귀향자 모티프이다. 어떤 사내가 젊어서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객지를 방랑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고향에 들어와서 아내의 구혼자들을 죽이고 다시 옛 권리를 회복한다는 모티프가 그것이다.
다음은 선원 모티프이다. 어떤 뱃사람이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다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혼자 살아남아 온갖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모티프는 해양 민족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양 민족의 경우 이 두 모티프는 쉽게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아'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이 두 모티프가 '오디세이아'라는 인물을 통하여 트로이아 전설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그밖에 '일리아드'에서는 사납고, 자제력이 없고, 굽힐 줄 모르고, 오직 불멸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아킬레우스(Achilles)가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음에 비추어, '오디세이아'에서는 호메로스 당시에 이미 해상 무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유연한 이오니아인들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해와 감상
4세기 말경 게르만 민족은 인구의 증가, 그리고 아시아족인 훈족의 압박을 받아 소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하였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민족 이동기의 이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1200년경에 쓰인 작자 미상의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1부가 19장, 2부가 20?揚막? 구성된 총 39장의 대작이다.
1부에서는 부르군트 왕의 누이동생인 크림힐트와 네덜란드 왕자인 지크프리트의 결혼,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지는 지크프리트의 암살이 줄거리를 형성한다. 2부는 부르군트 족의 멸망 이야기이다. 즉,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암살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 훈족의 왕인 에첼과 결혼하고, 그의 도움으로 뜻을 이룬다. 그러나 잔인한 복수를 보고 한탄하는 왕의 신하에 의해 그녀 역시 죽게 된다. 이로써 부르군트는 니벨룽겐, 즉 죽음의 나라의 사람이 되고 만다.
이 작품에는 게르만 민족의 민족성이 잘 나타나 보인다.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삶 속에서 게르만인 특유의 철저성과 견인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충성심과 정조 관념 등이 지극히 순수하고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시 전체가 희곡적인 유기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즉, 지크프리트의 암살이 원인이 되고, 마지막에 크림힐트의 복수가 결과를 이루는 인과 관계로써, 최후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유기적인 극적 구조를 지니는 사건의 연쇄화 기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후일 헵벨이 이 서사시를 가지고 거의 원형 그대로를 재현하면서 하나의 극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특색에 근거한다 하겠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 교과서')
이해와 감상1
중세 독일의 영웅서사시. 독일 기사문학의 최대걸작일 뿐만 아니라 독일 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정확한 작품성립 연대와 작자는 알 수 없으나 1205년 무렵 도나우강의 지리에 밝은 오스트리아 기사나 음유시인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시의 형식은 이른바 <니벨룽겐 시절(詩節)>로, 4행씩 1시절을 이루고 그 각 행은 앞뒤 두 편으로 끊어져 있다. 모두 39가장(歌章)으로 이루어졌으며, 전반은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후반은 <크림힐트의 복수>를 다루고 있으나 원전에서는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
〔내용〕
네덜란드의 왕자 지그프리트는, 라인강변 보름스에 성을 쌓고 있는 부르군트족의 왕 군터의 여동생 크림힐트가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청혼을 하기 위해 찾아간다. 지그프리트는 일찍이 니벨룽겐이라고 하는 난장이족을 정복하고 많은 보물을 손에 넣었을 때, 보물을 지키고 있던 용을 물리치고 그 피를 전신에 묻혔기 때문에 살갗이 갑(甲)처럼 단단해져서 칼로 벨 수 없는 불사신이 되었으나, 등의 일부분에 보리수 잎이 떨어져 피가 묻지 않아 거기가 유일한 약점이 되었다. 그가 보름스에 머무르는 동안 색슨족이 침입해 오자 지그프리트는 이를 물리치고, 그 공으로 비로소 크림힐트와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한편 군터왕은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여왕 브룬힐트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여왕은 자기와 시합하여 이기는 남자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없던 군터는 크림힐트와의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지그프리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지그프리트가 복면을 하고 신분을 바꾸어 브룬힐트와의 시합에서 이긴 뒤에 두 쌍의 결혼식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에도 브룬힐트는 침실에서 남편의 힘을 시험하려 했으므로, 왕의 청탁을 받은 지그프리트는 또다시 왕 대신 그녀를 꺾어 뉘었다. 그때 무의식적으로 브룬힐트로부터 빼앗은 띠와 반지를 자기 아내에게 주었다. 일단 귀국한 지그프리트 부부는 10년 뒤에 다시 보름스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두 왕비는 각각 자기 남편 자랑을 하다가 마침내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크림힐트는 자기 남편이 군터를 능가한다는 증거로 띠와 반지를 보이고 군터의 비밀을 폭로하였다. 심한 굴욕감을 느낀 브룬힐트는 방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했다. 그러자 군터의 충신 하겐은 왕과 짜고 지그프리트를 암살하기로 하고, 크림힐트를 속여 지그프리트의 약점을 알아내서는 사냥터에서 샘물을 마시고 있던 지그프리트의 등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정성을 다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난 크림힐트는 복수심에서 남편으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니벨룽겐의 보물을 많은 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하겐은 그녀의 보물을 라인강에 던져 버렸다. 여기까지가 서사시의 전반이다. 훈족의 대왕 에첼(아틸라)은 죽은 왕비의 자리에 크림힐트를 앉히려고 한다. 크림힐트는 단지 복수하기 위해 에첼의 왕비가 되었다. 13년이 지난 어느날 왕비는 부르군트 일족을 성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복수를 꾀한다. 크림힐트는 포로가 된 오빠 군터왕의 목을 자르게 하고, 지그프리트를 죽인 원수 하겐은 자신이 죽여버린다. 그러나 크림힐트의 지나친 잔인성에 분개한, 궁정의 손님인 동(東)고트의 노장 힐데브란트에 의해 그녀 자신도 칼을 맞고 죽게 된다. 그 다음에는 혼자 남게 된 에첼과 수많은 부인들이 영웅들의 최후를 슬퍼하며 우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것이 《니벨룽겐의 재난》이다.
〔평가〕
이 작품의 전반은 북구 신화와 관련된 지그프리트와 브룬힐트에 관한 설화, 후반은 훈족에 의한 부르군트족 멸망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이용한 것이다. 이 서사시는 기사시대에 성립되었으므로 대체로 그리스도교를 받드는 기사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나, 소재는 옛 게르만 시대의 영웅 전설이므로 정신내용은 어디까지나 이교적인 무력 본위의 영웅주의이다. 전편의 구성은 놀라울 정도로 균형이 잘 잡혀 있고, 희곡적인 줄거리 전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견줄만한 걸작으로 손꼽히며, 괴테는 <이 시는 국민이 어느 정도의 교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기초로 쓴 헤벨의 희곡 《니벨룽겐》이 있고, 같은 소재를 사용한 것으로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가 있다. 곽복록(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1200년경 도나우 지방 태생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오스트리아 사람이 중세 고지(高地) 독일어로 쓴 서사시.
이 작품은 13세기 3개의 주요사본에 실려 있다. 뮌헨에 있는 A사본, 생갈에 있는 B사본, 도나우에슁겐에 있는 C사본 가운데 오늘날 학자들은 B사본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본다. 초기 중세 고지독일어 제목은 〈니벨룽의 고난 Der Nibelunge Not〉으로, 이 시의 마지막 줄에서 따온 것이다. 14세기의 한 초기 사본에는 제목이 〈크림힐트의 책〉으로 나와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내려왔기 때문에 서로 엇갈리는 내용도 많다. 예컨대 '니벨룽'이라는 말 자체가 난점을 안고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니벨룽은 지크프리트의 나라와 백성 및 보물을 가리키지만, 후반부에서는 부르군트족(族)의 또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작품의 내용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처음에는 보름스 지방 부르군트족의 왕녀 크림힐트와 라인 강 하류지방의 지크프리트 왕자가 각기 등장하는 2개의 장(章)이 나온다.
지크프리트는 부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크림힐트에게 구혼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보름스에 이르렀을 때, 크림힐트의 오빠인 군터 왕의 신하 하겐이 그를 알아보고 보물을 손에 넣은 일을 비롯하여 지난달 지크프리트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이야기한다. 보름스에서 데인족과 색슨족이 선전 포고를 해오자, 지크프리트는 부르군트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다. 전투에서 돌아온 지크프리트는 처음으로 크림힐트를 만나게 되고, 궁정에 머무는 동안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이 시점에서 이야기에 새로운 요소가 도입된다. 뛰어난 힘을 지닌 미모의 여왕이 있는데, 그녀의 무예에 대적하는 남자만이 여왕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 왕궁에 들려온다. 군터 왕은 이 여왕, 즉 브룬힐트에게 구혼하기로 마음먹고 지크프리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면 그에게 누이동생인 크림힐트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지크프리트는 브룬힐트의 왕국으로 원정대를 이끌고 가서 군터의 신하 행세를 한다. 곧 시작된 시합에서 군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투를 입은 지크프리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 시합에서 지자 브룬힐트는 군터를 남편으로 맞는다. 그리고 약속대로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는 결혼하게 되지만 브룬힐트는 여전히 의혹을 가지며 만족하지 못한다. 곧 두 여인은 말다툼을 하게 되고, 브룬힐트가 신하와 결혼한 크림힐트를 비웃자, 크림힐트는 브룬힐트가 지크프리트와 군터에게 속았음을 폭로하게 된다.
이때 하겐이 브룬힐트 편에 서서 복수를 꾀하면서 주요인물로 부각된다. 크림힐트의 신임을 얻은 그는 지크프리트의 몸 가운데 단 한 군데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그곳에 치명상을 입혀 지크프리트를 죽게 만든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브룬힐트는 거의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으며, 지크프리트의 죽음은 브룬힐트의 앙갚음이라기보다는 지크프리트의 힘이 점점 세지는 것을 경계한 하겐이 그를 처치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지크프리트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지고, 슬픔에 잠긴 크림힐트는 보름스에 계속 머물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군터, 하겐과 사이가 멀어진 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보름스로 옮겨온 지크프리트의 보물을 처분하기 위해 화해한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보물을 모두 나누어주기 시작하지만 크림힐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두려워한 하겐이 보물을 라인 강에 빠뜨려버린다.
작품의 후반부는 훨씬 단순하게 짜여 있으며, 하겐과 크림힐트의 다툼 및 부르군트족에 대한 크림힐트의 복수를 주로 다루고 있다. 훈족의 왕 에첼( 아틸라)이 크림힐트에게 구혼하자, 크림힐트는 복수를 위해 이를 받아들인다. 여러 해가 지난 뒤, 크림힐트는 에첼에게 부탁하여 자기 오빠들과 하겐을 궁정으로 초대한다. 하겐은 수상쩍어 하지만 모두 초대?? 받아들여 에첼의 궁에 오게 되고, 결국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살해당한다. 크림힐트는 군터를 죽이도록 명령하고, 끝까지 보물있는 곳을 밝히지 않은, 묶여서 꼼짝 못하는 하겐을 지크프리트의 칼로 죽인다. 그러자 크림힐트가 저지른 잔혹함에 분개한 힐데브란트라는 기사가 크림힐트를 죽이게 된다.
이 작품에는 아주 오래된 몇 가지 설화가 들어 있다. 브룬힐트의 이야기는 고대 노르웨이 문학에도 나타난다. 짧게 언급된 지크프리트의 영웅적 업적들은 몇몇 고대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상당수는 스칸디나비아의 〈시 에다 Poetic Edda〉·〈뵐숭가 영웅담 Volsunga Saga〉·〈티드리크스 사가 Thidriks Saga〉에 들어 있는데, 지크프리트는 여기서 지구르트라 불린다. 부르군트족의 멸망을 다룬 후반부 전체는 더 오래된 에다의 시 〈아틀리의 노래 Atlakvida〉에 나온다. 그렇지만 〈니벨룽겐의 노래〉는 각각의 이야기를 단순히 모아놓았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완성물 속에 통합된 느낌이 든다.
이 시의 후반부야말로 〈크림힐트의 책〉이라는 제목에 꼭 맞다. 부르군트족(니벨룽겐)을 멸망시키는 것이 크림힐트의 목적이다. 전반부에서 절정을 이룬 남편 지크프리트의 죽음은 크림힐트가 복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더욱이 크림힐트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첫번째 인물이며, 그녀가 죽음으로써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에 걸쳐 하겐이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렇듯 크림힐트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와 하겐의 적의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크림힐트의 복수라는 주제를 강조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웅 서사시가 씌어진 것은 중세 독일 문학에서 적절하고 잘 다듬어진 교양과 몸가짐이라는 '궁정' 덕목이 강조되던 때였다. 격정을 드러내고 복수와 명예를 철저히 강조하는 내용의 〈니벨룽겐의 노래〉는 이 시기와 대조적으로 이전 시대를 반영하는 바, 튜튼족의 대이동 시기의 영웅설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시의 바탕이 되는 주제도 그때로 거슬러올라가는데, 부르군트족의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437년 훈족이 보름스의 부르군트 왕국을 멸망시킨 것에서 소재를 얻고, 브룬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이야기는 600년경 프랑스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역사에 나오는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설화 본래의 영웅적 성격이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하겐을 엄격하게 군터 왕의 명예를 지키는 사람으로 그린 데서 잘 나타난다.
아마 이 서사시보다 더 독일 예술에 이바지한 문학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변형하거나 번안한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프리드리히 헵벨이 쓴 희곡 〈니벨룽겐 사람들 Die Nibelungen〉(1862)과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연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1853~74)가 유명하다.
심화 자료
니벨룽겐〔독〕 Nibelungen
북유럽 전설에 나오는 난장이들의 왕. 이 난장이들은 신비스런 힘을 지니고 있으며 저주받은 보물을 가지고 지하세계에 산다고 한다. 이 보물을 빼앗아 니벨룽겐의 지배자가 되는 자를 <니벨룽크>라고 한다. 지그프리트에게 멸망당했다고 하는데, 지그프리트와 그 다음의 부르군트족도 니벨룽크 및 니벨룽겐이라 불린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니벨룽겐의 반지(-斑指 Der Ring des Nibelungen)
독일 낭만파 작곡가 R. 바그너 작사·작곡의 악극. 1876년 첫상연되었다. 서야(序夜) <라인의 황금>이 1막(幕)으로 이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제 1 야(夜) <발퀴레>, 제 2 야 <지그프리트>, 제 3 야 <신들의 황혼> 등 모두 3막으로 되어 있다. 바그너의 악극은 고대와 중세의 전설·신화 등에서 소재를 얻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중세 독일의 유명한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혹은 고대 게르만의 설화 《밸중 전설》 또는 고대 북구의 설화 《에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전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상징하는 황금반지를 중심으로, 니벨룽겐의 난장이족과 북구의 신이 서로 심하게 싸우다 마지막에는 모두 멸망함으로써 구세계의 몰락이 불가피해지고 그 대신 신세계가 탄생된다는 줄거리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이 순수한 사랑의 힘에 의한 내용과는 다른 방향을 취한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구원사상(救援思想)>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바그너의 오페라로 전야제와 3일간의 무대극 제전극(祭典劇), 즉 전야제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첫째날 밤 〈 발퀴레 Die Walkure〉, 둘째날 밤 〈지크프리트 Siegfried〉, 셋째날 밤 〈 신들의 황혼 Gotterdammerung〉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의 대본도 12, 13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에다 Edda〉와 독일의 〈니벨룽겐 영웅담 Nibelungen Saga〉을 기초로 작곡자 자신이 썼다. 1876년 8월 13~17일에 바이로트에서 바그너 축제극장 개관 때 4일간에 걸쳐 전곡이 초연되었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는 그 이전에 따로 공연된 적이 있다. 바그너 자신은 〈라인의 황금〉을 서곡으로, 나머지 오페라를 삼부작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세계가 서로 다투는 세 왕국, 즉 신의 왕국(발할라와 그의 부인 프리카, 젊은이의 여신 프리아, 불의 신 로게), 인간의 왕국(보탄의 아들 지크문트, 그의 누이 지그린데의 남편 훈팅, 그들의 아들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하겐, 군터, 구르투네 등이 대표하는 지구), 지하세계에 사는 난쟁이들 니벨룽겐의 어두운 왕국(알베리히, 미메)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독일의 세계관을 그 기본개념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보탄의 딸들(브륀힐데와 그녀의 자매들), 거인들(파솔트와 파프너), 영원한 운명을 대표하며 신들까지도 그에게 종속되는 운명의 여신 노르누 등이 등장한다.
2가지 줄거리가 작품에 함께 들어 있는데 첫째는 알베리히가 라인에 감추어진 금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마법의 반지를 둘러싼 전설이다. 그 반지는 보탄, 요정 프리아를 판 대가로 이 반지를 받았고 자신의 몸을 용의 형태로 바꾸어 이를 지킨 파프너, 그 용을 죽이고 반지를 브륀힐데에게 사랑의 표시로 주었다가(〈지크프리트〉에서) 나중에는 그것을 그녀에게서 빼앗아간(〈신들의 황혼〉에서) 지크프리트 등의 손에 들어간다. 2번째는 〈발퀴레〉에 나오는 지크문트와 지그린데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둘러싼 인간 이야기로 〈지크프리트〉에서는 그들의 아들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신들의 황혼〉에서는 사랑의 미약(媚藥)으로 장님이 된 지크프리트가 구르투네와 사랑에 빠지지만 죽음 직전 다시 한번 브륀힐데를 기억하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이 거대한 줄거리를 짜맞추기 위해 바그너는 그의 다른 어느 오페라에서 보다 주도동기(主導動機)에 의존해 통일성을 이루고자 하였다. 각 연기자가 각기 독특한 행동 동기를 가질 뿐 아니라 '저주', '반지', '칼' 등 기본개념을 상징하고 있다. 더욱이 〈탄호이저〉·〈로엔그린〉 등 이전 오페라와는 대조적으로 바그너는 이 곡에서 아리아, 합창 등을 완전히 버리고 대신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웅변적인 '무한선율'을 채택해 악곡의 종지, 악절 구분 등을 일부러 피하고 처음부터 각 막의 끝까지 연속적으로 흐르도록 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지크프리트(Siegfried)
고대 노르웨이어로는 Sigurd. 고대 게르만족의 영웅문학에 나오는 인물로 독일 문학과 고대 노르웨이 문학에 나타나지만, 이 두 게르만어족이 전하는 지크프리트 이야기의 판본 내용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크프리트는 브룬힐트의 이야기에서는 죽게 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주도적인 인물로 승리를 구가한다. 이 모두에 공통되는 그의 특질은 뛰어난 힘과 용기이다.
어떤 이야기는 지크프리트가 용과 싸운 내용을, 어떤 것은 상속문제로 서로 다투는 두 형제들로부터 어떻게 그가 보물을 얻었는가를 이야기한다. 노르웨이의 〈시(詩) 에다 Poetic Edda〉에서는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반면, 독일 문학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전달내용이 빈약하여 주로 암시적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지크프리트가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는 원래 소재에다 더 최근의 이야기들이 많이 첨가되었다. 1500년경 이전에 그 자료가 입증되지 않은 〈각피(角皮)로 무장한 자이프리트의 노래 Das Lied vom hurnen Seyfrid〉가 있는데, 시의 중심 주제는 용으로부터 소녀를 구출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옛날 소재를 계속 쓰고 있다. 어떤 〈에다 Edda〉는 지크프리트가 주문에 걸려 잠자고 있는 전쟁의 처녀, 발키리를 어떻게 깨웠는지를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역시 많은 비평가들이 독일 전설과 노르웨이 전설을 연관시켜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서로간의 중요한 차이점은 별개로 하더라도 양쪽의 정확한 연원 역시 불명확하다. 원래 이야기에서 지크프리트는 부모의 보살핌 없이 자란 고귀한 혈통의 아들로 나타나는데, 이런 배경은 노르웨이본과 독일본 양쪽 다 그가 궁정에서 양육되었다는 점을 공들여 설명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브룬힐트와의 관계에서 볼 때 지크프리트가 신화상의 인물인지 역사(메로빙거 왕조)상의 인물인지는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궁정 세계에 대한 탈환상화
이 작품은 그 근원을 추적하면 민족 대이동의 시대까지 이르는 구비 문학적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속 변모해 가는 가운데 이 소재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형상화되다가 1200년경에 이르러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텍스트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다른 궁정 문학들과 구별되는 작품의 독특한 성격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궁정 내부의 갈등이 종국에 가서 화합과 조화로 승화되지 않고 철저한 파멸로 끝나고 있을 뿐 아니라, 궁정적 규범의 취약성이 작중인물들의 행동과 태도 그 자체 속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의 심층 구조적 차원에서는 궁정 세계에 대한 일종의 탈환상화(脫幻想化)가 추구되는 듯싶다. 그러한 의도는 평화스럽고 조화로운 결말이 배제된 옛 소재로부터 하나의 처절한 인간적·정치적 비극이 형상화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우리는 이 작품에서 우의(友誼)로 맺어진 부르군트의 세 왕에 대한 신의와 자신의 봉건군주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봉건 신하로서의 위치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한 몸으로 끌어안는 베헬라렌의 뤼디거 같은 인물에서 격조 놓은 인간적 산화(散華)를 목격한다.
또한 우리는 1200년경 당시의 역사적 현실로부터 정치적 암살과 배신, 방화와 약탈, 절도와 모함, 기만과 협박 등으로 얼룩진 난무하는 혼란상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시인, 작가들이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미덕의 이상과 고귀한 인간의 꿈들을 구축해 놓았다고 한다면, 이 작품은 바로 그 험악한 정치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같은 긍정적 가치 규범들이 냉혹한 현실의 요구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거짓 가치들임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해석이 설득력을 확보한다면,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당시의 궁정·기사문학에 대한 일종의 문학적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중세 문학을 거론할 때 언제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봉건 군주와 봉건 신하가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규제된 관계로 맺어져 있는 형태의 사회적 체제를 봉건제라고 할 때, 이 제도는 봉건 영주가 그의 군사력을 토대로 당시 주된 생산수단인 토지와 영토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면서 충성과 봉사를 맹세 받는 대가로서 그 봉건 신하들에게 봉토를 하사하는 바로 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군신(君臣)관계를 통해 소수의 영주계급이, 토지를 경작하여 지배계급의 기본적인 생계까지도 보장해주는 다수의 농민집단을 지배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폭넓은 기층이 노동력을 가진 농민들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피라미드 형태의 봉건 사회 구조 중에서 ‘니벨룽겐의 노래’, 속에는 다만 협소한 상층 부분만이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봉건 신하와 봉건 영주의 관계는 ‘신의’, 즉 상호 계약상의 특징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른바 상호간의 신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봉건 군주는 봉건 신하에 대하여 보호의 의무가 있는 반면, 신하는 자기 주인에 대하여 신사(臣事)의 의무, 즉 ‘충고와 조력’을 할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계약으로 규제되는 '조력'에는 역시 전시의 군무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제관계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이 작품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출처 : 허창운. '정치 문학으로서의 영웅 서사시')
서사시(敍事詩/epic)
영웅적 업적을 찬양하고 역사적·국가적·종교적·전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주제를 고상한 문체로 다룬 이야기체의 장시.
서사시와 좀더 짧은 영웅시, 덜 고상하고 규모가 작은 민간 설화와 발라드, 좀더 일관되게 허황하고 환상적인 로맨스 등은 구별되어야 하지만, 아리오스토·보이아르도·스펜서의 이야기체 시에는 이런 특징들이 뒤섞여 있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영웅시대의 전설과 구전으로 이루어진 '1차' 서사시, 즉 전통적 서사시와, 세련된 시인들이 전통적 서사시 형태를 특수한 문학적·사상적 목적에 적용하여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2차' 서사시, 즉 문학적 서사시를 구별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와 〈오디세이아 Odyssey〉는 1차 서사시이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d〉와 밀턴의 〈실락원 Paradise Lost〉은 2차 서사시이다.
가장 오래 된 서사시에 해당하는 작품은 BC 3000년경에 운문 이야기체로 씌어진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중요한 서사시이자 서유럽의 2차 서사시에 형식과 특징을 부여한 주요원천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은 BC 900~750년에 완성된 호메로스의 시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판에 박힌 묘사, 상투적인 수식어구, 정형화한 어구와 시행의 반복 등은 즉흥적인 시작(詩作)과 전수에서 서술의 전개와 운율의 충족을 쉽게 하기 때문이라는 데에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의견이 일치해 있다.
서사시적 관행의 주요양상들은 군사적·민족적·종교적으로 중요한 영웅이나 반신(半神)적 존재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 거의 우주적일 만큼 넓은 지리적 배경, 영웅적인 전투, 장기간에 걸친 이국적인 여정,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등이다. 서사시는 대개 주제를 먼저 소개하고 뮤즈 여신에게 도움을 호소한 다음, 이야기의 본론으로 곧장 뛰어들어 이야기의 앞부분은 나중에 등장인물들이 회상하는 형식으로 채워넣는다. 서사시는 친숙하고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초기 단계를 건너뛰어도 청중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서사시의 극적인 전개에 몰두할 수 있다. 주로 특정한 지역과 연관되어 주인공들의 이름이 계속 나열되는 것은 서사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며, 그런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미리 준비한 공식적인 연설일 때가 많다. 서사시의 서술에는 장황한 서사시적 비유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 가지 유사점을 근거로 하여 일단 비유가 시작되면 전혀 다른 경험의 영역에서 끌어온 장면이나 사건이 장황하게 전개된다.
영웅시대 이후에 나타난 문학적 서사시의 자의식과 그 문화 배경은 관례적 서사시의 소재 및 전통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적 전개, 또는 익살스러운 모방까지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네이스〉에 이미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는 서사시적인 전투가 영웅적일 뿐 아니라 잔인하고 불명예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밀턴은 〈실락원〉에서 전통적인 서사시에서는 전쟁터의 영웅이 갖고 있던 특징의 대부분을 악당인 사탄에게 부여하고 있다. 형식적 인습과 초자연적인 '장치'(machinery) 및 획기적 사건으로 가득 찬 영웅들의 세계는 알렉산더 포프의 〈머리카락의 겁탈 Rape of the Lock〉·〈바보전 The Dunciad〉, 바이런의 〈돈 주안 Don Juan〉 같은 시에서 풍자적 목적을 위해 시시하고 한심하며 부적절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테두리로 이용될 수도 있다. 헨리 필딩은 〈톰 존스 Tom Jones〉에서 서사시의 장엄함과 구조, 그리고 그런 웅장한 틀에 현재의 경험을 집어넣었을 때의 부조화를 이용해 익살스런 효과를 냈다. 반면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Ulysses〉 같은 후기 소설들은 호메로스의 소재를 재생하여 서사시의 수준에 도달했다. 워즈워스의 자서전적 시 〈서곡 The Prelude〉은 서사시의 진지함을 갈망하며 샘솟는 시적 상상력을 묘사하기 위해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무운시를 표현수단으로 이용한다.
베르길리우스가 2차 서사시를 널리 보급한 지 오래된 뒤에도 유럽에서 자국어로 영웅적인 경험을 기록한 1차 서사시는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스페인의 〈엘 시드의 노래 Poema de mio Cid〉는 11세기에 무어인과 싸운 전쟁영웅을 찬양하고 있다. 12세기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Chanson de Roland〉는 8세기에 피레네 산맥에서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와 사라센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를 기린 작품이다. 13세기 독일의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는 5세기에 부르군트족과 훈족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에서 유래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앵글로색슨족의 〈베오울프 Beowulf〉는 영웅적 공동체를 위협하는 늪지대의 괴물들과의 투쟁을 묘사하면서 6세기의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 속에 포함된 역사적 요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신화가 되었으며 오늘날 남아 있는 형태 속에는 다른 시대와 전설에서 끌어들인 다른 소재와 주제가 뒤섞여 있다. 1835년 처음 출판된 핀란드의 국민시 〈영웅들의 땅 Kalevala〉은 엘리아스 뢴로트가 구전되어 오는 고대의 짧은 담시들을 하나의 서술 구조로 통합하여 구성한 종합적인 1차 서사시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서사시는 낡은 시 형식으로 간주되었지만, 이 장르의 방대한 규모와 웅장함은 다른 형식의 작품들, 예를 들면 프랭크 노리스의 미완성 3부작 장편소설인 〈밀의 서사시 The Epic of the Wheat〉(1901~03)와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의 영화 〈이반 뇌제 Ivan the Terrible〉(1944~46) 같은 작품에 이따금 나타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문헌학자 J. R. R. 톨킨이 쓴 환상적인 3부작 〈반지 대왕 The Lord of the Rings〉(1954~55)은 세상에서의 모험과 탐구를 서사시 형태로 서술하면서,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영웅 이야기와 앵글로색슨족의 시문학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맛과 형식을 반영했다.
한국의 서사시로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을 제일 먼저 꼽는데, 이는 고구려 건국과 관련하여 해모수·동명왕·유리왕 3대의 이야기를 전3편으로 나누어 쓰고 지은이의 소감을 덧붙인 작품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1924년 발표된 김동환의 〈국경의 밤〉을 꼽는다. 근대시가 대체로 짧은 서정시였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을 긴 서술체로 쓴 것인데, 이전의 서사시가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였던 것과는 달리 이 시의 내용은 민중들의 이야기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서사시라 할 수 있을지에 ?淪漫?는 논란이 있다. 이처럼 긴 서술체 시 일반을 서사시로 본다면, 일제시대 한 가족이 유이민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용악의 〈낡은 집〉도 서사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시를 '이야기시' 또는 '장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1967년 발표된 신동엽의 〈금강〉은 전봉준·최수운·최해월·신하늬가 이끄는 민중들의 모습을 장중하게 그렸는데, 서화(序話)·본장(本章)·후화(後話)의 3부로 나뉘는 서사시의 기본형식을 따르고 있다. 근대와 현대로 들어서면서 서사시의 내용은 점차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민중들의 삶과 애환을 그리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니벨룽겐의 노래 분석 평가
니벨룽겐의 노래를 읽으면서 영웅으로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영웅성을 의심하게 됐다. 그들의 영웅성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을 갖고 책과 영화를 따져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영웅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에는 군중을 이끄는 지도력, 카리스마,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오는 지혜를 기대했지만 니벨룽겐의 노래에서는 그런 요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하겐의 간계와 크림힐트의 복수극은 그 시대 여러 인물들을 뒤흔들어 놓는 위력을 보이지만 영웅으로 지칭하기에는 웬지 깊이가 얕고 정당성도 없어 보였다. 지크프리트의 인과성없는 영웅성, 군터의 유약함, 하겐의 간계, 크림힐트의 복수극 이 모든 것에는 헐리우드식 영웅주의나 삼국지 수호지에 등장하는 군웅들의 캐릭터와 동급으로 평가하는데는 여러모로 주저하게 된다. 이런 감상의 차이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대의 영웅성에 편중한 나머지 니벨룽겐 시대의 영웅적 요소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둘째, 니벨룽겐의 노래는 영웅성을 부각시킬 의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어서 굳이 그런 요소를 찾으려는 시도가 잘못되었다. 따라서 첫 번째 관점에 따라서 니벨룽겐 시대의 영웅적 요소를 분석하고 영웅성을 뒷받침해줄 만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두 번째 관점에 따라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작품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며 그것이 영웅성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니벨룽겐 시대의 영웅적 요소를 파악하기에 앞서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영웅성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지크프리트나 브륀힐트로 대변되는 영웅들은 타고난 영웅이라는 점이다. 즉, 스스로의 노력과 성취로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이다. 브륀힐트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천하장사였고 지크프리트는 천부적인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운세도 좋았던지 우연에 의해 초인적인 능력을 얻었다. 이들은 대중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위대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작품에서 영웅성의 근거를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브륀힐트가 지크프리트를 처음 봤을 때 그를 영웅이라고 생각한 근거는 '유난히 존엄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미의 상징 크림힐트를 설명하는데도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훈족의 왕이 크림힐트와 결혼하는 후반부에서도 훈족의 왕은 크림힐트의 존귀함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장면이 있다. 존귀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크림힐트는 당연히 고귀한 존재로 인정하고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왜 그랬을까? 영웅으로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근거가 부족하고 작품은 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너무나 인색하다. 영웅이 영웅이어야 하는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일까? 현대의 민주사회라는 정치적 환경에서 우리는 우월성에 대해서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사람은 평등하고 따라서 누군가를 나보다 더 높은 지위의 지도자로 뽑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에 따른 지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볼 때 이유없는 지도자, 이유없는 영웅이라는 관념은 이해하기 힘들며 용인할 수도 없다. 그런데 만약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정말로 우월한 존재가 있다면 혹은 그런 존재가 필요한 삼엄한 생존의 현장이라면 누군가를 영웅으로 선택할 만큼의 여유를 갖기는 힘들 것이다. 적어도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등장하고 있는 고대라는 시대적 정황으로 볼 때 어떠한 논리적 근거에 앞서 영웅의 존재 그 자체가 절실했을 것이다. 이민족이 자기 부족의 영지를 넘보고 있고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생존을 보장받지 못할 상황에서는 자신들을 지켜줄 영웅 요구하게 된다. 설령 힘없는 영웅, 영웅답지 못한 영웅 그래서 이민족의 영웅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인 영웅이라 하더라도 자기 부족을 지켜주는 영웅이 있다는 믿음만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성의 근거를 따질 이유도 없을뿐더러 영웅성을 해부하려는 행위자체가 불경스런 행동이 될지 모른다.
이렇게 볼 때 니벨룽겐 시대의 영웅성은 불안한 정치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부족보호본능에서 비롯되었고 그 영웅성은 옳고 그름을 논할수 없는 자명하며 원초적인 요소로 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지크프리트의 일족과 훈족의 신체는 분명 니벨룽겐족보다 열등해 보인다. 현대사회는 강인한 신체가 영웅성을 획득하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렇지만 고대라는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일 수 있다. 물론 지크프리트가 근육질의 우람한 사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영웅 캐릭터와 대적할만하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강인한 눈빛으로 대변되는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영웅은 필요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펼쳐지는 사건은 무엇인가? 지크프리트의 죽음이다. 표면적으로는 브륀힐트와 크림힐트의 자존심 싸움과 하겐의 간계가 사건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크림힐트는 복수를 준비하며 훈족의 왕과 결혼한다. 그리고 무수한 영웅들은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사건의 배후에 남녀의 애증, 주군과 가신의 종사관계, 이민족과의 갈등 등 다양한 상황이 놓여있고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 니벨룽겐의 노래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추리해 볼 필요가 있다. 후반부의 주요 인물은 하겐과 크림힐트다. 이 둘의 대결양상과 이들이 얻고자했던 것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작품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하겐의 지위와 의도는 작품의 처음부터 매우 일관적이다. 군터와 자신이 속한 군터의 일족을 지켜가는 것이다. 군터가 유약한 군주로 그려지지만 하겐은 목숨을 무릎쓰고 군터를 보호한다. 이 부분은 가신의 의무 정도로 해석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크림힐트의 변모는 어떻게 해석해햐 할까? 지크프리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상실감 때문에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은 것일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관념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벨룽겐의 노래는 연애소설이 아니며 민족흥망을 그린 대서사시다. 그리고 크림힐트는 오빠인 군터를 처형한다. 사랑이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쳐 보인다. 그렇다면 크림힐트는 사랑에 대한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 하겐은 군주에 대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대결한다는 것은 짝이 맞지 않는다. 크림힐트의 복수극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와 하겐이 지향하는 가치는 분명 동일선상에 있었을 것이고 그 둘이 충돌하면서 영웅들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나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크림힐트가 자신의 혈족과 등을 돌려야 했을 만큼 절실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질문을 바꿔 크림힐트가 되찾아야 했던 지크프리트의 존재, 지크프리트의 존재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지크프리트를 앗아간 하겐에게 크림힐트가 되찾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림힐트를 여성이나 여왕과 같이 개인적 존재로 해석하는 것보다 영웅의 상실로 야기되는 부족 사회의 정치적 혼란 때문에 방황하는 인물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크프리트는 제각기 영웅성을 내세우는 여러 부족 중에서도 가장 영웅성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브륀힐트는 강한 영웅 지크프리트에 의해 굴복한 인물로 군터는 지크프리트와의 동맹을 통해 공생을 추구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동맹은 진정한 힘의 균형이 아니었다. 사실상 지크프리트는 브륀힐트 일파와 군터 일파의 대결에서 군터를 구해준 격이 되었고 무력침략이 없었을 뿐 군터일파를 굴복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표면상으로는 군터가 지크프리트의 군주로 비춰지고 있었다.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제거하려 했던 이유는 이러한 실질과 형식의 괴리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크프리트에 비해 열등한 군터의 영웅성에 대한 내부적인 불신은 이미 지크프리트가 등장할 때부터 있었고 브륀힐트와 크림힐트의 갈등을 통해 그러한 불안감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군터일족이 위협받는 부족의 영웅성을 되찾는 길은 지크프리트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터를 버린다거나 지크프리트에게 굴복하는 것은 군터 일파가 지켜온 부족의 영웅성과 자긍심이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웅성을 담보받기 위해 절대 강자 지크프리트를 제거하게 된다.
하겐의 도전은 여러 부족이 스스로의 영웅성을 놓고 대결하게 되는 혼란을 야기했을 것이다. 브륀힐트, 지크프리트를 제압한 군터일파는 지크프리트로 인해 균형을 이루고 있던 부족세력간의 균형을 무너뜨리게 된다. 사실상 한 부족내의 영웅과 그 영웅에 대한 믿음은 부족을 응집시키고 존속시키는 가장 중대한 가치로 볼 수 있다. 부족의 일원으로 영웅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하겐의 도발로 인해 부족은 영웅성의 전면 대결을 요구받게 된다. 이제는 스스로의 영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족의 믿음뿐만아니라 외부와의 대결에서 승리 또한 필요하게 되었다. 크림힐트는 그러한 영웅성을 상실했다.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앗아감으로써 영웅성으로 유지되던 일족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자긍심을 모두 박탈당했다.
이렇게 본다면 하겐과 크림힐트가 대결하게 된 배경에는 영웅성을 확보하려는 세력과 잃어버린 영웅성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세력간의 갈등이 숨겨져 있다. 작품에서는 지크프리트에 대한 크림힐트의 순결함이 마치 사랑에 대한 감정처럼 그려지고 있다. 훈족과 니벨룽겐 족과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부족시대의 정치상황은 정치적 협력으로 부족이 동맹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종사관계에 의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누가 먼저 언약을 했느냐에 따라 종사관계가 뒤바뀔 수 있는 매우 불안한 평화였다. 불안한 시대 속에서 개인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부족단위뿐이었고 영웅성에 대한 확인과 부족의 응집은 순결한 사랑처럼 지켜가야 할 절실한 가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영웅의 등장과 영웅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영웅의 존재가치와 한 집단의 영웅성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스스로의 영웅성에 대한 믿음과 예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