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3/03 첫날 등교 후 신입생 학부모님께 한 교육과정 소개
효성 교육의 방향성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인 듯합니다. 이런 변화의 전환점마다 부모님께서 동행하시는 것이 부모님께는 근심도 되지만 큰 설렘이 아닐까 합니다. 어릴 때, 아이들은 누구랑 함께 지내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큰 변화를 겪는데,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 중에서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동행자들의 가치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효성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립니다.
1. 효성 교육은 한 마디로, 알파벳 “C”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육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21세기의 주요 역량으로 꼽는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창의력, 소통, 비판적 사고력, 협업력입니다. 이 네 가지 역량은 모두 알파벳 “C”자로 시작합니다. Creativity, Communication, Critical thinking, Collaboration.
이 역량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지요? 어떤 독창적인 방법을 찾게 마련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행위이고, 협업을 추구하는 몸짓이지요. 그리고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사고력이, 곧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네 가지 역량의 바탕과 목적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해당하는 라틴어를 찾아봤더니 이 또한 알파벳 “C”자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참되고 순수한 사랑인 까리따스Caritas, 사랑의 화신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살아있는 또 한 명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은 모두를 환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곧 까톨리쿠스Catholicus! ‘가톨릭’이란 단어에는 ‘보편적인’이란 뜻도 있지만 ‘모두를 환대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환대할 수 있는 것이,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유용한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곧,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이지요. Carpe diem!
이런 뜻을 지닌 여덟 개의 알파벳 “C”자를 모아보면, 그리스어 시그마 모양(Σ)이 됩니다. 시그마의 첫 자는 알파벳 ‘S’인데, 가톨릭 학교는 예부터 “3S” 교육을 추구했습니다. Scientia, Santitas, Sanitas! 일명, 지 · 덕 · 체 교육! 이런 지향을 본관 출입문에 “시그마”(Σ)와 알파벳 “C”자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가톨릭 학교교육’임을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2. 전인교육의 꽃은 단언컨대,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기쁨’은 정서적인 만족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스러워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때때로 힘겨워하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승화시키지 않는지요? 기쁨은 고통 속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어떤 처지에서든지 기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것이 Carpe diem, 곧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이지요.
효성 교육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오늘을 즐기는 참된 모습 안에는 내일을 위한 투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것’과 ‘내일을 위한 투자가 포함된 오늘을 즐기는 모습’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항상’ ‘즉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숨겨져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 여기에 숨겨진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역량이 그 어떤 역량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입문 신발장 위에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문구를 새겨놓았습니다. 한글로 새기기도 머쓱하고, 영어로 새기기도 머쓱해서 라틴어로 새겨놓았습니다. 왜냐하면 명문학교는 가끔 라틴어 문장을 활용하니까요. 일례로, 서울대 교훈은 “Veritas, lux mea.”입니다. “진리는 나의 빛!”
효성 가족이라면 누구나 ‘항상, 즉시, 기쁘게!’ 살 것을 기원하는 뜻으로 신발장 위에 “Beatitudo, hic et nunc!”를 새겼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보다 보편적인 라틴어 명사는 ‘felicitas’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beatitudo’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beatitudo는 ‘행복하게 하다’는 동사 ‘beo’와 ‘마음가짐’(태도)을 뜻하는 명사 ‘attitudo’의 합성어로서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질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진복선언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셨을 때, ‘행복’에 해당하는 단어도 felicitas보다는 beatitudo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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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동산을 오고 가시는 분들 모두, “지금, 여기에” 숨겨진 행복을, 곧 평범함 속에 · 보잘것없음 속에 · 나약함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좋으신 목자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자매님께서 쓰신 댓글로 인해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신발장 위에 "Beatitudo, Hic et Nunc!"를 새길 때의 마음이 떠오르네요.
사실, 위의 구절은 제가 매일 되새기는 구절입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혼자 조용히 되새기고 있지요.^^
기쁨과 희망 간직한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