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완성은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것
- <울지자 톤즈> 故 이태석 신부
어느 날, 한 소녀가 가시덤불에 걸린 나비를 보고 가시를 헤치고 들어가 구해줬습니다. 나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소녀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원하는 걸 무엇이든 말해봐. 다 들어줄 테니.”
“정말? 으음, 난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럼 이렇게 해보렴.”
나비는 소녀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였습니다.
그 후 소녀의 삶은 정말 행복해졌습니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 후에도 행복은 계속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녀는 아주 어릴 적, 나비가 자기에게 해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그대로 들려주었습니다.
“행복이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죠. 다시 말해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죠. 행복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완성은 내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게 필요한 사람만 찾지 말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법입니다. 남에게 주는 일을 게을리하면 내게 필요 없는 것조차도 남에게 주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주 큰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다정한 미소, 따뜻한 손길, 마음이 담긴 따뜻한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과 눈물로 물들였고, 교황청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남수단과 북수단의 분쟁으로 인해 내란이 끊이지 않고, 가난과 질병, 굶주림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나라로 날아가 생의 마지막 삶을 토해내며 수단 사람들의 슈바이처로 살다 48살의 젊은 나이로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님. 그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도려내는 눈물을 머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의사로서의 삶이 보장된 편안한 길이 열려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힘든 사제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수단으로 날아가 병원과 의사가 없는 톤즈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종교를 넘어선 따뜻한 의술과 인술을 펼쳤습니다.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주민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찍어 병원을 세우자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를 만나면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100km가 넘는 곳에서도 환자들이 몰려왔고, 한밤중에도 그를 찾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명의 환자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한센병과 결핵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이동 진료를 하며 톤즈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한 일은 톤즈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12년 과정의 학교를 설립해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수단의 앞날에 빛을 심어 주는 길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이들이 스스로 일어서 모국의 앞날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장기간의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료하기 위해 35인조 브라스밴드를 조직해 직접 학생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한국 지인들의 도움으로 단복을 입혀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정부의 각 기관에서 실시하는 행사에 참여해 연주했습니다. 그로 인해 톤즈 사람들은 아픈 몸과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었고,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으로 얼룩진 톤즈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햇살이 내리쬐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미처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던 그는 대장암이란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로 살면 잘 살 수는 있었겠지만 행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의 가슴이 설레는, 하면 할수록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 ‘편안한 삶’ 대신 ‘진짜 삶’을 택한 것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마음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모든 편안함을 잠시 접어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묻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줄곧 머릿속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가슴이 뛰는지, 가장 간절한 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만약 그것을 찾았다면, 그 다음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기득권을 포기하더라도 진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모두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