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2004년 12월 12일
사랑스런 우리교회
시편87:1-7
1.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2.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3.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4.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6.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7.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 설교말씀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생각나는 작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양초를 사서 모으는 일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전등불이 이렇게 밝은데, 양초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남대문 시장 길거리를 다니면서 예쁜 양초들을 사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작은 행복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 아름다운 성탄의 밤에 예수님께서 내 맘에 빛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방에 작은 촛불 하나쯤 밝힌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영화를 보고,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좋아하는 소품을 모으기도 합니다. 언젠가 일본 TV프로그램에서 <인기 정상의 가수와 멋진 저녁을 함께 먹는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멋진 스타와 다섯 시간 동안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비용은 우리 돈으로 무려 2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 상품을 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여성은 부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은 버스 안내양이었는데, 그녀의 수입은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무려 10달치 월급을 하루 저녁 식사에 쏟아 부은 셈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하고 싶다!> 이 말은 모든 인류의 공통된 관심입니다. 그러므로 요즘 성공하려면 상대방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을 주는 주택을 건설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가전제품을 개발하고, 행복을 주는 서비스를 한다면 성공할 것입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에 일본 정국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집권 자민당이 인기가 없는 이유를 <꿈을 배신했고, 희망의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자민당과 드라마 <겨울 연가> 중에서 겨울 연가가 훨씬 일본인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길 원합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 자들>로 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이게 주님의 뜻입니다. <행복하여라!> 이것은 명령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참 행복 가운데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여러 방안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중 첫째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에덴은 행복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에덴동산은 사단의 공격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에덴동산은 우리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아득한 이상향이 되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에덴이 실패한 후, 하나님께서 또 다시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마련하신 것은 성전종교였습니다. 성전종교는 몇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할례였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선택된 백성의 일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둘째는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킬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셋째는 제사였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전종교는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 제사장들은 말할 수 없이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몸에는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은 죄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은 버리고, 오히려 율법으로 형제 자매를 정죄하였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잊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시면서,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후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에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 하나님은 이 땅의 불쌍한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시려고 또 다른 한 가지를 세우셨는데, 그게 바로 교회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중대한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아름답고 영광스럽기를 원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이란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영광스러운 공동체가 되길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교회가 구약의 성전을 대신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2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여기 <시온>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에 있는 조그마한 구릉인데,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진 곳이며, 후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그 어떤 곳보다 시온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 성전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이제 성전은 더 이상 <시온>이란 아름다운 이름과 어울릴 수 없엇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온>이란 이름을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찬송가 245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주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성도 여러분, 영도중앙교회는 우리의 시온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전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인데,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부산을 아름답게! 하나님을 영화롭게!>란 교회의 목표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한 마디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길 기원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언젠가 서울에 갔을 때 버스를 탔습니다. 무심하게 바라보니 버스에 어느 미술학원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광고엔 많은 사람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그 학원에서 공부하여 명문 미술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사진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어느 학원 출신>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차 온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창구 앞에서 등록할 때가 올 것입니다. 거기 책이 펼쳐 있고, 그 책에 등록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에게 <어디 출신인가>라고 물을 때 <영도중앙교회 출신>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희망 없는 사람들도 와서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4절을 보세요.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라합>이란 원래 폭풍우란 뜻으로서 바다 속의 불분명한 괴물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종종 애굽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애굽>이 어떤 나라입니까? 이스라엘을 억압하여 노예살이를 시킨 악한 원수의 나라입니다. 또 <바벨론> 역시 나중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끌어간 원수의 나라입니다. <블레셋>은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과 경쟁하고 싸웠던 원수의 나라입니다. <구스>는 저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서 그 먼데서도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나라들, 다시 말해 구원받을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구원받아서도 안될 것처럼 여겨지는 나라 백성들까지도 <거기서 났다>는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들도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악한 사람도 교회가 증거하는 복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술고래, 도박에 미친 사람, 가정을 버렸던 사람, 심지어 사람을 여러 명씩 죽인 살인범도 교회의 품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들이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우리 교회를 그런 교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그 목적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로 어언 5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영도 지역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해왔습니다. 인구가 많이 감소하는 영도 지역에서 빠른 부흥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영도에 사는 성도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복을 받은 교회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모든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게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대한 감사가 우리에게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목사로서 말씀드립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귀로 홀로 교회에 나와 눈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의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집의 일을 제쳐놓은 채로 달려온 분들이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좋은 옷 한 벌 입어보지도 못하면서 쌈지 돈을 모아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드린 분들이 있습니다. 결혼 반지까지 드린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성도님들이 우리 교회를 좋은 교회 만들기 위해서라면 지금도 무슨 어려운 일도 감당할 마음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기에 지난 해 이 부족한 목사를 계속 여기 있어 달라고 붙잡으신 줄 압니다. 저는 여러분의 그 뜻을 단지 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높고 거룩한 목적, 즉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뜻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일념은 최근 몇 년 동안에 우리 교회 새 식구가 되신 분들도 마찬가지인 줄 믿습니다. 근간에 오신 분들도 이런 우리의 기도 제목에 힘을 보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다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힘차게 전진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저희 당회에서는 교회의 미래에 대한 뜻을 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영도중앙교회를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리모델링 한다고 해서 건물을 수리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영적 정체성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동안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가 영도와 부산에 희망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보는 교회>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람, 즉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이집을 거쳐 나중에는 병들어 누운 어른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까지, 그리고 장례하는 일까지 교회의 섬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사역은 종합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역을 잘하는 교회, 주님께서 하시다가 우리에게 물려 주신 그 일을 잘 하는 교회가 부흥되고, 행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행복은 예배당 건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답고 좋은 예배당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영적 행복과 보람을 줄 수는 없습니다. 비록 허름한 창고에서 모인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우리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거기가 천국인 줄 믿습니다.
한 목사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교회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일>입니다. <교회일>은 교사, 구역장, 권찰, 찬양대원, 남녀선교회원 등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일입니다. <교회일>은 일부만이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일>은 우리 성도들 모두가 합니다. 그것은 나아가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이 일엔 전 교우가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교회일>과 더불어 <교회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곳으로 온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역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고, 부흥되고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 후보지로 영선초등학교와 새마을연수원이 물망에 올랐었습니다. 물론 성사되지 못했지만, 우리의 꿈은 여전합니다. 그 후 당회원들은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했는데, 한 곳에 가보니 그 곳에 창고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데 그 창고를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영감을 주셨습니다. <영도중앙교회는 앞으로 영도와 부산에 창고가 되어라!>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창고는 겸손을 가르칩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대리석 예배당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기 쉽지만, 창고는 우리를 겸손하게 할 것입니다. 초라한 마구간에 나신 예수님을 배우게 할 것입니다. 둘째로, 창고는 <모으는 곳>입니다. 이것은 전도와 선교의 사명입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영혼을 모으게 되길 원합니다. 셋째로 창고는 모으되 알곡만 모읍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했습니다. 되길 원합니다.
넷째로 창고는 하나님의 복의 장소입니다. 신명기 28장 8절에는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라고 했고, 잠언 3장 10절에서는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영육간에 하나님의 복으로 차고 넘치게 되길 원합니다. 다섯째로 창고는 나눔을 위한 장소입니다. 창세기 41장 56절을 보면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라고 했습니다. 모으는 이유는 나눠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가 모았다가 필요할 때 창고 문을 열고 나눠주는 봉사와 섬김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예배당 건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 예배당 잘 짓고 편히 앉아 이으려고 하지 말라! 깡통 교회도 좋다! 창고라도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사역에 힘쓰는 교회가 되라! 그러면 내가 복을 주고, 내가 부흥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창고 교회입니다. 아니, 창고교회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공식 명칭은 영도중앙교회이지만, 우리 입에서 창고교회로 불렸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터전이 나타나면 용기 있는 도전을 통해 교회를 이전하고자 합니다. 건물은 허름해도,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이룰 수만 있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남을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투자하게 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당회는 2005년도 첫 주일에 온 교인이 한꺼번에 예배드리기로 했습니다. 학생부터 노인까지 단 한번에 이 자리에 다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비전을 선포하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위해 2010년을 목표 년도로 정하여 교회의 부흥과 아름다운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비전 기금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예산과 우리의 헌금을 통하여 모두 100억의 비전 기금을 작정하기로 하였습니다. 1월 첫 주일부터 2010년을 목표연도로 하여 마음에 감동되는 대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새 가족으로 보내주실 분들까지 계속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위해 투자해야 할 때, 그 헌금을 빛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
지난주일 당회가 끝난 후 이경석 장로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했습니다. 장로님의 장인이신 <박무생>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교회는 나부대야 부흥한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교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한 분이 있습니다. 30년을 목회하면서 신앙잡지 <풀핏, Pulpit>을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공간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소년 소녀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 차 있고, 죽어 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로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으로 운행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 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히 전도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가 화석처럼 된다> 여러분, 교회는 나부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길 기원합니다.
2005년부터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길 원합니다. 교회의 리모델링에 앞서서 우리 자신의 영적 모습을 새롭게 하길 원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교회, 아름다운 성도들, 그리고 영광받으시고 활짝 웃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