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醴泉)과 주천(酒泉)
한국의 지명은 중국의 지명과 유사한 곳이 많다.
내가 사는 강릉(江陵)이란 지명도 중국에 있으니, 이백(李白)의 유명한 조발백제성(朝發白帝城)이란 시에도 등장한다.
조발백제성(朝發白帝城); 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다
조발백제채운간(朝發白帝彩雲間)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
아침에 오색 구름 감도는 백제성을 떠나
천리 ‘강릉’을 하루만에 돌아왔네
강 양쪽 언덕에는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질 않고
가벼운 배는 이미 만 겹의 산을 지나왔네.
유배에서 풀려 강릉으로 돌아가는 신나는 길을 읊은 시다.
위에서 제목을 적은 예천과 주천도 우리나라에 있다.
그러나 경북 예천은 예(禮)의 고장이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므로 예천(禮川)이라고 한자로 표시할 것이지만, 강원도 영월군에 속한 주천은 주천(酒泉)으로 표기하는 것 같다. 즉 술이 넘치는 샘이란 뜻이니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지금 주천강변에는 정자와 별장을 짓고 천렵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관광객이 많이도 모인다.
물이 맑고 수량(水量)이 풍부한 곳이기에 가족 놀이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예천(醴泉)과 주천(酒泉)은 모두 중국 이야기다.
먼저 예천 이야기를 해본다.
예천은 당나라 구성궁(九成宮) 안에 있는 샘의 이름이다.
구성궁은 황제의 별궁으로, 관산(冠山) 항전(抗殿) 북쪽 험난한 지형에 위치하여 주로 여름철에 황제가 피서를 위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異宮)이었다.
원래는 수(隨) 나라 인수궁(仁壽宮)이었다가 당대(唐代)에 와서 이를 수리하여 구성궁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궁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원래 수원(水源)이 없었고, 수(隨)나라 당시에는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다가 연못을 만들었다.
당 태종 6년(貞觀六年), 황제가 황후와 함게 이 궁을 찾아 갔을 때, 우연히 땅이 젖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을 파게 하니 물이 솟아나왔다.
그 물이 달고 시원하다 하여 이를 단술 예(醴) 샘 천(泉)자를 써서 예천이라 이름하였다.
이 내용을 기록에 남기고자 감검교시중(監撿挍侍中-삼정승급) 위징(魏徵)이 칭송의 글을 짓고, 당시 최고의 명필 구양순(歐陽詢)이 글을 써서 비에 새기니 이것이 유명한 구성궁예천명(九成宮 醴泉銘)이란 이름으로 오늘에도 전한다.
나도 이 글을 몇 번 썻거니와, 구양순의 필법이 하도 엄격하고 정교해서 해서(楷書)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반드시 한번은 써봐야 하는 전범(典範)이 되고있다.
황제에게 써 바치는 글이니 어찌 엄격하고 정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내용은 황제가 백성의 노고를 염려하여 궁을 짓지 아니하고 인수궁을 수리하였으며, 수리도 가급적 간소화했다는 것과, 우연히 샘이 솟아나온 것을 개발한 공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누구나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였다는 평범해 보이는 얘기이나,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흔한 샘물이 아니었다.
실제 중국 시안(西安-옛 長安)이 위치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되는 서중국 땅은 언제나 황토 먼지가 날리는,
가물기로 유명한 곳이다. 물이 그만큼 귀한 곳이기에 병마총 유적도 2천년 이상을 보존될 수 이었다. 그런 곳에서 물이 솟아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경비를 절약하여 인수궁을 수리한 것이며 샘물이 솟아나온 것을 빗대어 우(禹) 임금이나 요(堯) 임금에 견주고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능가하는 것으로 칭송을 하였으니, 우리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비할 바가 못된다.
샘물을 나누는 황제!
다시 주천(酒泉)으로 가보자.
중국 감숙성(甘肅省)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고대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였다.
한대(韓代)에 이르러 서역(西域)에 가는 상인들이 외적의 침입으로 자주 피해를 당하기에 황제는 이 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정벌(征伐)을 명하였다.
이때 동원된 장수가 곽거병(藿去病)이라 전해지나 확실치는 않다.
흉노를 무찌르고 승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는 황제가 하사한 술을 물이 솟아오르는 샘에 부었다.
황제가 내린 술로는 군사들에게 다 베풀 수는 없었다.
황제가 하사한 술을 자신과 휘하 장수 몇몇이서 나누어 마신게 아니라, 모든 병사가 다 마실 수 있도록 술을 샘물에 부어버렸다.
그리고는 그 샘물을 군사들에게 고루 마시게 하였다.
어디 술맛이야 낫겠냐마는 그 뜻이 얼마나 그윽한가!
역시 공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모든 공을 병사들에게 돌리니,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충천해지고 전쟁에서는 연전 연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샘을 주천(酒泉)이라 불렀다.
술을 나누는 장수!
공을 병사들에게 돌리니, 오히려 공이 장수에게 돌아오는 그런 이치를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술(述)하였다.
시이성인(是以聖人)은 -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은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하고 - 무위의 방식으로 일하고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한다. - 무언으로 가르친다.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하며 - 만물은 스스로 자라는 법이니 간섭하지 말며
생이불육위이불시(生而不育爲而不恃) - 자라게 놓아둘 뿐 억지로 기르지 말고, 그에 의지하지 말라.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하라.- 공을 이루거든 그것을 차지하지 마라.
부유불거 시이불거(夫唯弗居 是以不去)니라! - 공을 차지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공이 사라지지 않는것을!
甲午 顯忠日 豊江
첫댓글 경북 예천과 강원 주천인 줄 알았더니 중국 지명이었습니다.
아뭏튼 역사 기행을 잘 하여 감사 드립니다.
대단하신 푸른늑대님이십니다. 천천히 공부하겠습니다. 댓글을 다시 쓸께요.
푸른늑대님의 뇌는 아마도 꽉꽉 차있을 겁니다. 어찌 모든 방면에 모르는 것이 없으시니, 풍기에 난 인물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큰 인물이지요. 그저 술술이시니 술도 그리 좋아하시고 예배도 그리 자주 드시나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 같이 잘 잊어 버리는 사람이 머잖아 잊어버리겠지만 두고 공부해야겠지요./ 풍기 인물로 치면 하리온에 또 계시지요. 음악방면에 대한민국의 제일가는 구름밭님, 겸손함을 잃지 않으시고 인자하신 현욱 법사님, 이 외에도 여러 분들이 많습니다만 ....자랑스럽습니다. 대단하신 분들이 이렇듯 저와 인연을 맺었으니 어찌 제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오려니 중국 예천도 알게되고 알짜베기 풍기사람들도 알게되어 자주 못왔는게 죄스럽습니다..주인장님 언제 풍기 집합한번 시키면 인삼주 들고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