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3 - 연하천에서 장터목까지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선지 새벽 1시 50분에 눈을 떴다. 화장실엘 다녀와야 하는데 숙소에서 5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데다 재래식이다. 밖은 완전 깜깜하고 바람 소리까지 들려왔다.
괴기스런 생각이 들며 화장실 가는 게 겁났다. 잠에 빠져있을 남편에게 전화하여 깰 수도 없고. 더이상 못 참겠다 싶어 조심조심 밖엘 나갔다. 생각보다 어둡지는 않은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로 눈앞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산짐승이 훅!!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콩알만한 가슴이 되어 화장실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숙소 바로 앞에다 방뇨를 해버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산속을 주시한 채 에라! 숨을 몰아쉬고 부리나케 화장실을 다녀왔다. 비바람치는 깊은 지리산속의 밤. 지금도 오싹하다.
‘근데 비가 와서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잠이 들었다.
04:00. 벌써 여기저기 침소에서 인기척들을 하며 오늘 산행 준비를 한다.
05:30 남편과 문자하여 연하천 대피소 입구에서 만났다.
비바람에 운무까지 심했다. 조용했던 대피소가 등산객들로 꽉 차 있었다. 연하천 대피소 곳곳에서 각자 준비해 온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듣자니 오늘 새벽 3시에 화엄사를 출발해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오늘 하루에 천왕봉까지 등정한 후 바로 하산한다고 했다. 모두들 날쌘돌이였다.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누룽지를 끓여 따끈한 아침 식사를 했다. 비는 계속 강도를 달리해가며 오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 일정보다 더 짧고 쉬운 코스라니 우선 마음이 가벼웠다. 다행히 어제의 힘든 산행에도 우리 셋 모두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다.
오늘 산행할 거리는 장터목대피소까지 14킬로미터.
비 오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어 비가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부산을 떨었던 천왕봉행 산객들은 이미 떠나고 08:00가 조금 지나자 안개, 비가 자취를 감췄다.
“자~ 출발이다,”
맥주 5캔을 아빠 짐에 순순히 보태준 아들의 배낭이 내 눈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는데 아들은 훨씬 가볍다고 하였다. 눈치를 보니 어젯밤 휴식으로 피곤이 좀 풀린듯해 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오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08:20. 우리 셋, 비 갠 지리산을 걷기 시작, 땅은 촉촉 공기는 청량 비 먹은 초록이라니... 게다가 지리산의 아스라한 운무 속을 직접 걷고 있었다, 이건 실제가 아닌 환상 같았다. 신선이 따로 없다. 3.6km 벽소령까지 우리는 신선놀음을 했다.(1시간 50분 소요).
상쾌하게 벽소령 도착, 인증샷!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
세석대피소에서 15:00에는 장터목대피소로 출발해야 한다.
어쩐지 이름부터 예쁜 세석대피소! 가는 길, 여러 봉우리를 거치는데 여기라고 쉬울쏘냐. 어제 무리함으로 체력이 급감, 세석대피소까지의 6.3km가 또 얼마나 멀고 힘들던지. 계속되는 오르내리막길의 고단함에 말문마저 막혔다. 봉우리에 서서 전망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피로 회복제가 되었을 텐데 내가 정말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지리산의 운무는 온 산을 형체 없이 하얗게 만들었다. 구름 위를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을 뿐, 세석대피소에 한시라도 빨리 닿기를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아들이 지리산 대피소 중 가장 애착해 하는 세석대피소가 가까워짐을 알려준 순간, 녹색 수풀 사이사이에 피어있는 연분홍 철쭉으로 뒤덮인 아름답기 그지없는 널따란 봉우리가 우리 눈을 번쩍하게 하였다. 지리산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세석평전’이었다. 이 맛에 고된 산행을 하나 보다. 내 발로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다면 이 경치를 어찌 볼 수 있으리. 스위스의 알프스가 이만할까. 여기까지 걸어온 10km의 힘듦이 세석평전의 감동으로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곳곳에서 만난 운무 속의 철쭉꽃과 함께
병 주고 약 주는 지리산에 울고 웃고, 고된 산행의 진미인가? 점심은 시간에 쫓겨 라면 끓여 건더기 먹고 국물에 밥 말아 먹었다. 입맛은 지침이 없는지 여전히 라면 국물 맛은 혀끝에 매혹적이다. 이제 장터목까지 4km만 가면 오늘 일정은 끝난다.
세석대피소에서 15:00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출발. 세석대피소에서 건너다보였던 아름답기 그지없는 세석평전을 직접 걸었다. 정녕 天上가는 길이런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뒤돌아 내리보이는 세석대피소의 그림 같은 전경은 또 얼마나 예쁜지 아들이 사랑할 만했다. 지리산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명경이 있을 줄이야.
변화무쌍한 지리산 높은 지대의 날씨 따라 우리 마음도 흐렸다 갰다를 반복, 비바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아예 생각도 못한 나, 우리들. 지리산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늘 경로는 어제보다 수월타 생각함도 큰 교만이었다. 평전을 넘어가니 또다시 오르막 하고나면 내리막 또 오르막내리막... 마치 지리산이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는듯했다. 500m, 1km마다 우릴 반기는 이정표가 구세주처럼 반갑고 조금씩 줄어드는 거리가 또 얼마나 큰 위안이고 희망으로 다가오는지. 줄어가는 거리에 반색하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 부모님은 자식 공부농사에 특별히 헌신하셨다. 농사로 5남매를 공부시키자니 급할 때는 빚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벼보리를 매상하여 빚을 갚아나갔다. 빚을 갚고 오시는 날이면 온 얼굴이 환해지시며 “빚도 갚아가다보면 조금씩 줄어드는 재미가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험한 산길인들 아버지가 짊어졌던 빚에 비길 수가 있을까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서 줄인 거리가 빚 갚는 아버지의 재미를 생각나게 했다. 발 더딘 엄마에게 보조를 맞추며 끙끙 뒤따라오는 아들, 아무리 봐도 아들 배낭만큼 큰 배낭을 짊어진 사람이 없다. 엄빠와 화대종주 동행 이유 중 하나, 배낭이 너무 커서 혼자 화대종주하기에 좀 민망해서였다나~~ 어이없는 아들의 변에 “너답다.” 쉴 때면 배낭을 냅다 내려놓고 바위에 벌렁 누워버리는 아들 왈, “눈보라 속에서 했던 화대종주 때보다 더 쉬울 줄로 생각했는데 이번이 훨씬 힘들어요.” 하며 곁에 없는 형(매형)타령을 한다. 짐을 나눠 질 형(매형)이 직장 업무로 함께 오지 못함이 못내 애석했던 게다. 이후로는 다시 화대종주 하지 않으리라. 절로 다짐하게 되는 결심에 아들과 난 공감대가 최대치에 이르렀다. 그러다가도 간혹 자리를 비켜주는 운무 덕으로 깜짝 눈앞에 나타난 지리산의 겹겹 능선에 자지러지게 감탄사를 질러대고, 1500m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내내 환한 미소를 안겨준 연분홍 철쭉들에겐 효성 깊은 자식에게 효도 받는 느낌이었다. ‘지리산 화대종주 아니었음 이런 귀한 선물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17:10 장터목에 도착. 연하천 대피소완 달리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린 너무 지쳤던 터라 우선 각각 배정된 침소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난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누워 금세 잠들었다.
18:00에 취사장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꽤 넓은 취사장이 시장 속 같았다. 온갖 음식 냄새,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꼭 수용소의 모습과 흡사했다. 지칠 대로 지친 다리는 꼼짝을 못 하겠는데 음용수는 취사장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나온단다. 날은 어둑어둑하고 비바람은 몰아치는데도 저녁은 먹어야 하기에 아들과 남편이 핸폰 라이트를 켜고 물을 뜨러 갔다. 다른 사람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저녁 메뉴는 오리훈제구이와 닭훈제구이. ‘음주, 흡연 금지, cctv가 지켜보고 있다.’ 경고를 무시한 채 대부분 산객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있다. 아들과 나도 배낭에 맥주를 살짝 감추고 훌훌 마셨다. 우린 어떻게든 마셔야 했다. 짐을 줄여야 하니까. 아들이 바싹하게 구워낸 오리훈제구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맛! 지리산 화대종주 아니고서 이 맛 또한 볼 수 있을까? 아들이 엄빠의 모든 것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 저격에 완전 성공했다. 여기도 21:00 소등. 간신히 소금으로 양치만 하고 땀, 비로 얼룩진 몸은 옷만 갈아입는 걸로 통과. 2일간 걷다 보니 무릎 보호대를 했음에도 무릎 상태가 썩 좋지 않고 발바닥도 아팠다. 난 아들이 붙여준 관절 테이프로 남편은 발가락 테이프로 내일에 대한 무장을 했다. 하루 일과가 드디어 마감됐다. 벌써 이틀을 견뎌냈다.
침소로 드니 1,2층에 사람들이 꽤 들어찼다. 내 양옆, 왼쪽엔 침낭을 둘러쓴 채 자고 있고 오른쪽 사람은 물침대 위에 누워있다. 난 그냥 맨 마루바닥인데 뭐지? 왠지 내 자신에게 소홀한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나와 남편은 먹는 것, 입는 것 등 거의 모든 생활면에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별 불편 없이 살고 있다. 화대종주를 준비하면서도 평소 산행 때 입었던 옷가지를 챙겨입고 온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산행 중에 변화무쌍한 날씨와 악천후를 겪다 보니 좀 더 철저한 대비의 필요성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 틈 사이에 끼여 잠을 잘못 이루는 나이기에 공석인 비상구 바로 앞쪽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비상구의 빛은 밝지, 출입구는 들락날락, 비바람은 어찌나 센지 대피소가 들썩들썩... 좀체 잠이 들것 같지 않았다.
‘화대종주?’ 생각하다 22:00경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첫댓글 변화무쌍 날씨에 대응하는 산악인 발걸음들에서 인생이 보입니다. 지리산 힘겨움과 함께하는 천상의 길, 풍광 세석평전의 철쭉..'이런 귀한 선물을 어디서 받을까.'. 힘든 결실의 보람이 느껴집니다.
화장실 이야기를 보며 오래전 보길도 폭우,풍랑을 만나 예송리 분교에서 비 홀딱 젖은 채 밤새우다, 나무 화장실 삐그덕~ 용기 내서 갔다가 문고리 잠겨 속에 갇힌 일 생각 나 오싹합니다.
지리산이란 산은 앉음새가 열두폭치마 처럼 넓고,품고있는 골짜기가 그 치마의 주름보다 많아 피신하는 백여명을 찾아내기란 모래밭에 빠뜨린 바늘을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가당찮은 일이었다.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소설에서 지리산을 표현했던 글귀인데요 저는 지리산하면 꼭 이말이 떠올라요.
이렇듯 험난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지리산 화대종주를 하고 오셨으니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사진속의 장터목은 예전과 다름없어 더 반가웁네요.
세석평전이 펼쳐진 비교적 깨끗한 세석대피소.
아련히 떠오르는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
빨치산의 발길이 닿았을 흙길들을 누볐던 때가 언제였던가 헤아려봅니다.
다시 찾기 힘든곳이라 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거예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서 가능했을 지리산 화대종주.
축복입니다.
사진과 글들이 스펙터클 영화보는듯 합니다
산행 글을 여러 번 쓰신 듯 유려함에
재밌어 놀랍습니다
아스라한 雲霧속을 신선처럼 환상속에 천상을 저도 걷습니다
先親말씀까지 , 올곧게 듣습니다
자지러지게 감탄 질러대는 다이돌핀
효도받는 느낌으로 대체 ㅡ
父子. 母子간 화목의 힘으로
날쌘돌이들과 도전 정신
형언할길없이 감탄만합니다
멋진 가족, 존경스럽습니다
어쩜이리도잼있게 잘 쓰시는지^^
품격 없는 저는 放尿 합니다 ㅋ
우리 사모님 지리산 다람쥐 처럼 귀요움은 어떻게 하죠?
정말 큰 도전하시고 되돌아 오셔 글로써 공유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석평전! 문순태 소설 "철쭉제"에서 글로만 보던 곳인데... 세세한 묘사에 감성 폭발하신 사모님 표정, 탄성이 생생합니다. 선친의 말씀, 눈물겹게 듣습니다.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재미와 감동, 따뜻함, 설렘이 지리산을 덮은 구름과 안개처럼 글 속에 가득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