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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 김기택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찌르지 못하는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심장이 있는
안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팔처럼
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같다
푸르고 둥근 줄기
핏줄 다발이 올라가는 목이
그 앞에 있을 것만 같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와락 안겨올 것 같아
날은 몸을 둥글게 말아
자꾸 웅크리고 있다
ㅡ <현대시> 2018년 7월호
* 김기택 :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음.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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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당신에게 등을 보였던 까닭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미워서도 아니었습니다. 행여나 당신과 눈이 마주치게 되면 당신에게 다시 달려갈까 봐 싶어서였습니다. 당신에게 달려가 어쩌면 독한 저주의 말을 남길까 봐 두려워서였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신에게 매달려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속말을 내뱉을까 봐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습니다. 대신 지금도 "핏줄 다발이 올라가는 목" 한가운데가 날선 낫에 베인 듯 뜨겁습니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온몸에 맺혀 "자꾸 웅크리고 있"습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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