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바라기 농장
이미 목숨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보다도 그는 장미의 행방을 빨리 알고 싶었다.
차는 여기저기 동산처럼 쌓여 있는 모래 더미 사이로 이리저리 빠져 나가다가 이윽고 멈추어 섰다.
그곳은 차도 쪽에서 보면 모래 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들이 납치해 온 인물이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인물이었던 때문인지 그들은 차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신분을 알게 된 그들은 그가 자진해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화는 뒤로 손이 묶인 채로 차에서 내려섰다.
그들은 묵묵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내려서자 그들은 그의 묶인 손을 풀어 주며 그를 에워쌌다.
종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걷히면서 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은 구름 사이를 재빨리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달은 그 자리에 떠 있었다.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장미는 내 외동딸이오. 제발 내 딸을 돌려줘요.
내 딸을 돌려주기만 하면 난 당신들을 원망하지도 않을 거고 당신들을 찾아다니지도 않을 거요.
제발 내 딸을 돌려줘요."
그는 격정에 못 이겨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애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상대하고 있는 사내들의 태도는 냉담하기만 했다.
"장미라고? 우린 그런 애 몰라!"
어둠 속에서 쥐새끼처럼 생긴 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잡아떼지 마십시오. 난 다 알고 있으니까 거짓말하지는 마십시오. 내 딸은 어디 있습니까?"
"그런 애 모른단 말이야!"
쥐새끼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화의 두 손이 앞으로 나가더니 쥐새끼의 앞가슴을 움켜잡았다.
"거짓말하지 마! 이놈, 이 나쁜 놈! 내 딸 내놔, 내 딸 내놓으란 말이야!
이 나쁜 놈들! 더러운 놈들! 내 딸 어딨어? 내 딸 어딨냔 말이야!"
힘껏 움켜쥐고 흔드는 바람에 쥐새끼의 남방이 북 하고 찢어졌다.
달이 구름 속에 들어가자 주위는 다시 어두워졌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이 새끼 봐라. 이 새끼가 죽을려고 환장했나?"
쥐새끼는 발끈해서 주먹으로 종화의 얼굴을 갈겼다.
종화가 두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는데 이번에는 옆에 서 있던 자가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괴로운 신음을 토하며 비틀거리는 종화를 뒤에 서 있던 자가 팔꿈치로 내찔렀다.
종화는 앞으로 쓰러졌다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입 밖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는 딸을 내놓으라는 말만 흘러 나왔다.
"내 딸 어딨어? 이 나쁜 놈들…… 내 딸 내놔."
"네 딸 여기 있다."
건장한 자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종화를 붙잡더니 무릎으로 얼굴을 올려찼다.
종화는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가 다시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다시 무릎이 올라와 그의 얼굴을 위로 강타했다.
그는 또 쓰러졌다가 무릎으로 땅을 짚으며 가까스로 상체를 세웠다.
안경이 깨지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침침한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내 딸 어딨어……내 딸 내놔……."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왠지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교수, 딸 찾을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마."
쥐새끼가 종화의 뺨을 철썩철썩 갈기며 말했다.
종화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딸 내놔라, 이 죽일 놈들…… 내 딸 내놓으란 말이야…….
내 딸 내놓지 않으면 네 놈들을 모두 죽이고 말 거야……. 난 내 딸을 꼭 찾아내고 말 거야……."
쏴아 하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종화를 때리기 시작했다.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와 자신의 몸뚱이에 날아와 부딪치는 주먹과 발길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종화는 사랑하는 딸이 받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몸뚱이에 가해지는 충격이 조금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캄캄한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쥐새끼가 그의 가슴 위에 구둣발을 올려놓았다.
"교수, 우리를 찾으려고 하지 마. 두 번 다시 그러면 아예 죽여 버릴 거야. 알았어?"
"내 딸 내놔…… 이놈아……."
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말 듯 아주 가늘게 흘러 나왔다.
"지독한 놈인데."
말상처럼 생긴 자가 종화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종화는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는 쥐새끼의 구둣발을 움켜잡았다.
"내 딸을 돌려주기만 하면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겠다.
일억도 좋고 이억도 좋아. 얼마든지 줄 테니까 내 딸을 돌려줘."
"돌려줄 수 없어. 돈이 문제가 아니야.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소용 없어.
당신 딸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어. 이미 늦었단 말이야!"
"어디로 떠났다는 거야?"
종화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가슴이 짓눌리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멀리 떠났어. 찾을 생각하지 마."
쥐새끼는 종화의 가슴에서 발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돌아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종화는 여기서 그들을 놓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들을 붙잡고 늘어져 그들의 입에서 장미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종화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서서 필사적으로 외쳐댔다.
"안 돼! 갈 수 없어! 내 딸을 내놓기 전에는 갈 수 없어!"
엔진소리가 높이 주위를 울렸다.
차는 그대로 달려오다가 종화 앞에서 급정거했다.
"이 새끼, 저리 비켜!"
차 속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종화는 비키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보닛을 짚었다.
"내 딸을 내놔!"
그는 보닛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깔아 버려!"
차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차가 갑자기 뒤쪽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종화는 앞으로 쓰러졌다.
그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데 차가 다시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차를 막으려 했다.
"안 돼!"
그것은 제3의 목소리였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여봉우의 모습이 보였다.
쿵 하는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종화의 몸뚱이가 공중에 떠올랐다가 땅 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차에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종화는 의식을 잃었다.
그의 몸뚱이 위로 차가 굴러갔다.
차는 난폭하게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가 또 한 사람을 칠 뻔했다.
"서라!"
여우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권총을 빼들고 차를 겨누면서 고함쳤다.
그러나 차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왔다.
그는 얼른 옆으로 비켜 섰다.
차는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갔다.
수 미터 앞 차도에 대기해 있던 경찰의 위장 택시가 차도를 올라오는 길을 가로막았다.
위로 올라가던 승용차는 그 바람에 위장 택시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범인들이 탄 차는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든 형사들에게 포위되었다.
"모두 내려! 머리에 손을 올리고 모두 내려!"
김종화는 병원에 입원해서야 의식을 차렸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옆에서는 그의 아내 양미화가 병상을 지키며 울고 있었다.
"장미…… 장미는 어떻게 됐어?"
그는 헛소리처럼 아내에게 물었다.
양미화는 흐느끼면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장미는 어떻게 됐어, 우리 장미는 어디 있어?"
그는 고개를 돌리다가 다른 얼굴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여우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창 밖으로 던지고는 종화를 향해 목례를 보냈다.
병실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비 오는 소리가 병실 안에까지 들려 오고 있었다.
"제발 장미 찾는 건 경찰에 맡겨요. 이러다가는 당신이 죽겠어요. 장미 때문에 당신이 죽겠어요!"
양미화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종화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 죽는 건 상관하지 마. 난 살 만큼 살았어. 내 목숨하고 장미하고 바꿨으면 좋겠어."
창가에 기대 서서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던 여우가 몸을 움직였다.
그는 창가에 그대로 기대 서서 몸만 움직였다.
"김 교수, 당신은 너무 어리석었어요. 그렇게 어리석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종화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콧잔등은 주먹만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한 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든 채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 식으로는 장미 양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날뛴다고 해서 딸이 찾아지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딸을 찾기가 어렵게 됐어요."
종화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당신이 뭐라고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그런 태도였다.
"김 교수, 당신이 더 이상 딸을 찾기가 어렵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요.
첫째 당신은 살인을 했어요. 오지애를 죽인 살인범이란 말입니다. 부인하지 않겠지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종화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그것뿐이 아니지요. 당신은 칠칠이 아줌마를 납치해다가 잔인한 고문을 가했고,
그 결과 그 여자는 두 눈을 잃고 말았어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때까지 울고만 있던 양미화가 발끈해서 말했다.
"우리 딸이 납치돼서 고통받고 있는 건 생각지 않나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죽어도 싸요!"
갑자기 쏘아붙이는 말에 여우는 주춤했다가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네, 말씀대로 그런 자들은 죽어도 싸지요. 그 자들은 정말 쓰레기 같은 자들이지요.
이 사회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오히려 해만 끼치는 쓰레기 같은 자들이지요.
내 마음 같아서는 그런 자들은 일거에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 없애 버렸으면 좋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쓰레기들을 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이 사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라 야만 사회가 되고 말지요.
아무리 죽이고 싶은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우리한테 그의 죄를 단죄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의 죄를 단죄할 수 있는 것은 법밖에 없습니다.
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를 단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케케묵은 말 같지만……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말이 아주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그 말씀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에요. 하지만……
하지만 그러면 우리 장미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법을 믿고 그 애가 돌아오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하나요?"
"불행하게도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모순이 어딨어요!"
양미화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여우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종화 쪽으로 돌렸다.
"김 교수가 더 이상 장미 양을 찾을 수 없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당신은 불구가 될 것 같습니다.
한쪽 다리, 아니 양쪽 다리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다리를 못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양미화의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차에 치인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습니다."
여우는 종화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그로부터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종화는 무표정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있있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원 두 명이 스트레처 카를 밀고 들어왔다.
"자, 일어나세요. 수술실로 가야 해요."
간호원 한 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면서 종화의 상체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우가 다가가 종화의 다리에 손을 대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종화는 카 위에 실리고 나서야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풀고 여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놈들을 잡았습니까?"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가늘게 말소리가 흘러 나왔다.
"네, 모두 잡았습니다."
"그놈들이 장미가 있는 곳을 말했나요?"
"아니오, 그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자백시켜야 합니다."
그의 찌그러진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여우는 끄덕였다.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종화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여우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어떻게 할 셈입니까?"
"수술이나 끝나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어두운 복도로 나오자 종화는 눈을 감았다.
양미화가 흐느끼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울지 마, 우는 건 질색이야."
종화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미화는 울음을 삼켰다.
경찰은 김 교수를 폭행한 자들을 분리 신문했다.
여우는 그들을 상대하면서 또다시 지루하고 인내심을 요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싸움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에 이겨야만 되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그 싸움에서 이기도록 되어 있었다.
날이 밝아 왔고, 수사관들은 해장국을 먹어 가며 신문을 계속했다.
신문은 하루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백하려 들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비상 수단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여우는 그 점에 대해서 상부에 건의할까 하다 그만두기로 하고 비상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고
부하들에게 허락했다.
그 자신은 직접 손을 대지 않기로 하고 부하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는 신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안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뼈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은 소리였다.
다른 방에서도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복도를 걸어가다가 밖으로 나와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한 시간 가까이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돌아가니 지 형사가
쥐새끼처럼 생긴 자로부터 자백을 받아 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지 형사는 의미 있는 눈짓을 보내 왔다.
다른 방에서도 수사관들이 말상처럼 생긴 자로부터 자백을 받아 내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었다.
"놈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독종이라도 견뎌 낼 수야 없지요."
여우를 따라 밖으로 나오면서 형사 한 명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런 방법을 써 자백을 받아 낸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날이 저물었다.
낮에 내리던 비는 가는 비로 변해 밤이 되어서도 계속 내렸다.
여우가 지휘하는 수사진이 출동한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다.
두 대의 봉고차와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탄 인원은 거의 서른 명 가까이나 되었다.
본래의 수사진만으로는 수가 모자라 지원 병력까지 태우고 출발했던 것이다.
맨 앞 차에는 여우와 함께 쥐새끼처럼 생긴 자가 앉아서 차의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었다.
출발할 때 쥐새끼는 차에 타지 않으려고 완강히 저항했지만 뒤에 가서 여우의 설득에
고개를 떨구고 차에 올랐다.
그에게는 경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정상 참작의 여지가 클 것이라는 정도의 언질이 주어졌다.
그는 조직을 비호하기보다 자기 살 길을 찾아 기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 외곽을 북쪽으로 빠져 나와 달리던 수사진의 차량은 한 시간쯤 지나 강물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달려갔다.
얼마 후 네 대의 차는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왼쪽으로 나 있는 소로로 접어들었다.
"바로 저겁니다."
쥐새끼가 소로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초라한 간판을 가리켜 보였다.
나무 사이에 세워져 있는 그 간판에는 ‘해바라기 농장’이란 글귀가 까만 색깔로 씌어져 있었다.
"해바라기 농장……."
여우는 중얼거리면서 피우고 있던 담배를 껐다.
그리고 무전기로 차의 불을 모두 끄라고 지시했다.
"불을 끄고 모두 내려!"
네 대의 차는 소로의 입구에서 엔진을 껐다.
사나이들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불을 끈 채 좁은 길을 차를 타고 올라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면 오 분 정도밖에 안 걸리지만 걸어가기 때문에 이십 분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것이 쥐새끼의 말이었다.
"안에는 사나운 셰퍼드가 두 마리나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앞장서 걸어가면서 쥐새끼가 주의를 주었다.
그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허리에는 줄이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줄 끝을 형사 한 명이 잡고 있었다.
"그 개를 유인해서 마취시켜. 자네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해."
여우의 말에 쥐새끼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래시 사용도 금지됐기 때문에 일행은 삼십 분이 지나서야 농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멀리 불빛이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똑바로 가면 정문이 있습니다.
뒤쪽에도 문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건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만들어 놓은 겁니다."
쥐새끼의 설명을 듣고 나서 여우는 우선 다섯 명을 정문이 마주 보이는 곳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요원들을 데리고 뒤쪽으로 돌아갔다.
뒤쪽으로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긁히기도 하면서
가까스로 전진했다.
주위에는 이중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이 거의 뒷문 쪽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개 짖는 소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윽고 철조망 안쪽에서 두 마리의 개가 미친 듯 날뛰며 울부짖는 것이 보였다.
"메리, 쉿! 메리, 쉿!"
쥐새끼가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부르자 개들은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형사가 고깃덩이가 들어 있는 비닐 봉지를 건네 주자 쥐새끼는 수갑 찬 손으로 고깃덩이를
꺼내 철조망 안으로 던졌다.
그러자 개들은 미친 듯 달려들어 그것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오 분도 못 돼 개들은 조용해졌다.
놈들은 땅바닥 위에 길게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밑에서부터 철조망을 잘라 나갔다.
이윽고 사람 한 명이 엎드려 기어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기자 여우가
제일 먼저 안으로 기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