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문화대학 시창작반을 마치고 임수빈 선생을 내 차에 탑승시킨 뒤 염창역에 내려 드렸다. 그의 집이 발산역 근처이기 때문이었다. 집에 들러 아내와 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내는 고범수 미용실로 가고 나는 곧장 서산 딸네 집으로 향했다. 서산에 도착하니 오후 6시 경이었다. 호세와 즐거운 시간을 갖고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서울 갈 준비를 하였다. 오늘 가면 다다음주에나 서산에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9월 1일부터 다운이가 홍은 초교에서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세도 9월부터는 화곡동 곰달래길에 있는 구립 어린이집에 다녀야 해서 챙겨야 할 것이 꽤 많았다.
6개월 근무 후에는 다시 서산으로 간다하니 따로 거처를 세를 얻을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집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우선 호세를 볼 사람이 우리 뿐이 없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이제 만 5살이어서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하다. 아주 중요한 나이이다. 사위는 태안에서 근무를 하니 볼 수가 없고 시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안되고 천상 우리가 딸이 직장에 있는 동안에 돌보아야 한다.
아내도 월,화, 수요일에는 수업이 있어서 서울에 있다 하더라도 호세를 계속 볼 수 없으므로 어쨌든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늦은 시간까지 돌보아 주고 잘 먹여 주는 곳을 열심히 찾은 결과 최근 이사간 원아 한 자리가 비어 있는 틈새를 찾았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연말까지는 딸이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호세도 크고 넓은 집을 두고 조금은 더 협소한 답답한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쪼록 여기서의 반년 동안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가 서산만 못하더라도 막상 닥치고 익숙해지면 서울 생활도 그럭저럭 할만 하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호세는 잠꼬대 같은 소리로 크게 외치고 있다. "두유! 두유 줘!"
저렇게 귀여울 수가! 무엇을 해도 귀여운 것이 손자이다. 이 집에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마침 나의 동생 기년이도 왔다가 호세를 보고 가서 더욱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