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피우며(김홍은) - 하학상달(下學上達)
태양이 찬란하게 서서히 떠오른다. 장엄하다. 수없는 생명의 환성이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아침이다. 대성전 문을 활짝 여니 어느새 햇살이 방안 가득하다. 푸른 대숲을 흔들며 향교의 담을 넘어온 바람도 상쾌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혼잣말로 인사를 하며 청소를 한다. 늘 하는 일이건만 순서가 있다. 마룻바닥을 쓸고 제단을 닦는다. 제일 먼저 공자님, 다음으로 안씨 공씨 증씨 맹씨다. 다음은 우측 좌측의 제단을 차례로 문지른다. 내가 스스로 정한 차례다. 직접 지도를 받은 스승은 아니어도 인생의 문사(文師)들이시다.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방안이 참으로 고요하다. 그 어디에서도 느껴보기 어려운 고요로움이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겸손함이 스스로 온몸에서 우러나오는 순간이다. 왜 이런 마음을 일찍이 알지 못했는가.
향로에 숯불을 피워 담아다 제단위에 놓았다. 엷게 빗어낸 향나무 조각을 조심스럽게 향로에 넣었다. 향불에 타는 은은한 향기가 방안 가득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줄기 연기만이 조금씩 흔들릴 뿐이다.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고 쓴 공자의 위패 앞에서 사배를 올렸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논어를 읽으면서 질문을 하고 싶었던 글귀들이 모두 사라지고 한숨만이 가득 차오른다. 알량한 짧은 지식 한 토막을 앞세우고 대단하게 아는 체 떠들어 대며 살아온 지난날이 민망스럽다. 사서삼경을 책꽂이에 두고도 더 일찍 가까이하지 못한 게을렀음이 부끄럽다.
공자님의 하학상달(下學上達)이란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다시금 느낀다. 아래서부터 쉬운 지식을 배워 어려운 이치를 깨달음임을 수없이 일러주었다. 그 뜻만을 이해하였을 뿐 실행이 부족하였음을 이제서 뉘우친다. 어느덧 고희를 넘어 몸은 늙음에 지난 세월만 탓할 뿐이다.
공자께서 이미 학이편(學而篇)에서 가르치었건만 문장 구절구절마다의 그 깊고 깊은 배움의 길은 잊고 소인하달(小人下達)에 이르는 삶으로 살아왔음을 이제 와서 어찌하겠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을 향기로 정신을 맑혀주고 있다. 향교관리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마저도 깨닫지 못하고 여생을 허무하게 살아가게 되었을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패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공자님 "어떻게 해야 향교의 진리를 잘 이끌 수 있습니까?" 여쭈었다.
“너야말로 참으로 기특하구나. 세상이 모두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 좇건만 너는 어찌 향교를 관리할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내가 이미 한 말이다. 다시 너에게 이르마. 다섯 가지 미덕을 높이고, 네 가지 악을 물리치면 향교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어떤 것입니까?"
"유자(儒者)는 은혜롭게 살지만 낭비하지 않아야하며, 수고롭게 행하지만 원망을 듣지 않아야하고, 원하기는 하지만 탐내지 않아야한다. 태연하지만 교만하지 않아야 되며, 위엄이 있지만 두려움을 주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은혜롭게 하지만, 낭비하지 않아야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사람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해주면 이 또한 은혜롭게 함이고,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수고롭게 할 일만을 가려서 수고롭게 하면, 또 누가 원망하겠느냐. 어질음을 원하여 어질음을 얻게 되면, 무엇을 탐내겠는가. 유자는 많거나 적거나, 작거나 크거나, 감히 소홀하지 않으니 이 또한 넉넉하되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유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며, 바라다보는 것을 근엄히 하고 엄숙하여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면 두려워하니 이 또한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음이 아니냐."
과연 나는 남에게 얼마나 은혜롭게 한 것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도 혜택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수고로움이란 바로 봉사가 아니겠는가. 몸과 마음을 다해 베풂이다.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돌봄이며 보시(報施)다. 보시란 자애로움이 아니던가.
가난한 이웃에게 마음을 열고 너그러움을 나눈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이리라. 삼강오륜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오늘의 사회가 안타깝다. 굳게 닫힌 향학의 문을 열어 인륜의 정신이념을 바로잡는 뿌리를 지탱하는 교육이 그립다.
상하좌우를 모르며 살아가는 현실 사회가 한탄스럽다. 나만이라도 향교에서 자중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행실은 그 사람의 언행과 몸가짐이다. 말 한마디에도 예와 덕이 담겨져 있다. 한번 뱉은 말에는 책임이 주어진다. 말은 자신을 지키는 품위요 인격이다. 사람답게 살아감이란 은혜롭게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은혜로움은 스스로를 낮추며 살아감이리라. 향불이 꺼져가고 있다. 향기로움이 가득한 시간이다.
대성전 방문을 닫고 돌아서니 멀리 바라다 보이는 대청호 푸른 물결이 조용히 가슴으로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