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그러니까 시는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린다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한밤중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대는 침묵의 말벌들
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은 검은 열매 하나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나는 오늘 밤 잠든 당신의 등 위로
달팽이들을 모두 풀어놓을 거예요
술집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창백한 담쟁이 잎이
창문 틈의 웅성거림을 따라와
우리의 붉은 잔 속에 마른 가지 끝을 넣어봅니다
이 앞을 오가면서도 당신은 아무것도 얻어 마시질 못했죠
아버지를 부르러 수없이 드나든 이곳의 문을 열고 맡던 냄새와 표정과 무늬들
그 여름 당신은 마당 가운데 고무 목욕탕의 저수지에 익사할 뻔한 작은 아이였어요
아 저 문방구 앞, 떡갈나무 아래, 거기가
당신이 열매를 줍거나 유리구슬 몇 개를 따기 위해
처음으로 희고 부드러운 무릎을 꿇었던 곳이군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나의 손을 잡고
어린 시절이 숨어 있던 은유의 커다란 옷장에서
나를 꺼내 데려가주세요
얇은 잠옷 차림으로 창문 너머 별을 타고 야반도주하는 연인들처럼 가볍게
들판의 귀리 싹이 몇 인치의 초록으로 땅을 들어 올리듯
차력사인 봄을 불러다 주세요
붉은 담쟁이 잎이 잔 속에서 피어나고 흰 양털 장화 속이 축축해지도록 눈 내립니다
별과 알코올을 태운 젖은 재들 휘날립니다
내가 고백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술냄새로 문패를 달았던 파란 대문, 욕설에 떨어져 나간 문고리와 골목길
널, 죽일 거야 낙서로 가득했던 담벼락들과 집고양이, 길고양이, 모든 울음을 불러주세요
당신이 손을 잡았던 어린 시절의 여자아이, 남자아이들의 두근거리는 심장,
잃어버린 장갑과 우산, 죽은 딱정벌레들,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와 다 써버린 산수 공책
마을 전체를 불러다 줘요
다리 잘린 그들의
기다란 목과
두 팔과
눈 내리는 언덕처럼 새하얀 등 위로
나는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놓을 겁니다
사실
별들이 움직이지 않는 물 위를 고요가 흘러간다는 사실
물에 빠진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
오늘 밤에도 그 애가 친지들의 심장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물을 무사히 건넌다는 사실
한양대학교 옆 작은 돌다리에서 빠져 죽은 내 짝은 참 잘해줬다, 사실은
전날 내게 하늘색 색연필을 빌려줬다
늘 죽은 사람에게는 돌려주지 못한 것이 많다, 사실일까
사실 나는 건망증이 심하다
죽은 사람에게는 돌려주지 못한 것도 많을 텐데
노래가 여기 저기 떠도는 이유 같은 거
그 사람이 꼭 죽어야 했던 이유 같은 거
그 이유가 여기저기 떠도는 노래 같은 거
사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 짝은 입을 꼭 다물고 건져졌다는데
말할 수 없다
그 애가 들려주려던 사실
어둠의 긴 팔에 각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산 사람대로 죽은 사람대로 사실대로
사랑의 전문가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