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4/08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통과 공감의 지도자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을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같다. 타게 엘란데르(1901~1985) 23년간 총리를 지냈다.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 때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이 넘는 53.1%의 득표율로 재집권했다. 스웨덴이 다당제 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결과다. 하지만 그는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정치계를 떠났다. 우리의 정치권을 생각하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대목이다. 스웨덴 국민이 20년 넘게 한 정치 지도자를 믿고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 의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토니 비크란데르 의원(당시 78세, 스웨덴 민주당)을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엘란데르가 이끈 사회민주당과 대립하는 극우 정당 소속이다. 그가 책상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인다. 엘란데르의 친필 사인이 있는 자서전이다. 책을 소개하는 그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감격스러워한다.
토니 의원은 “엘란데르 총리는 국민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잘 들어주고 대변하고자 노력한 지도자였다”며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엘란데르의 정적이었던 야당 지도자들도 그를 그리워한다. 보수당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에릭 마르코 전 의원은 “엘란데르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겸손하고 동정심이 많았습니다. 유능한 협상가로 야당과도 늘 비공식적으로 만났습니다”라며 그를 스웨덴을 구한 영웅이라고 했다.
♣. 마음과 노력
스웨덴 국민이 세상을 떠난 정치 지도자를 눈물로 기억하고, 야당 정치인조차도 존경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 해답이 엘란데르의 자서전에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귀담아듣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 국민이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이것이 23년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그는 떠났지만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마음은 특권 없는 정치로 유명한 스웨덴 정치의 정신으로 살아 있다.
엘란데르 아들 부부가 사는 곳은 지은 지 100년이 넘는 목조건물이다. 장기 집권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 사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름하다. 아들은 린셰핑대학교 총장을 마치고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펴냈다. 아들 부부가 엘란데르의 유품이 있는 지하실로 안내했다. 재임 시절 찍은 사진이 가득하다. 아들 부부가 풀어놓는 전직 총리의 삶은 감동의 연속이다. 그들이 엘란데르 총리가 재임 시절 입었던 양복과 구두를 꺼내왔다. 상표를 보니 가격이 저렴한 양복이다. 어깨와 손목 부분은 해지고 빛이 바랬다. 총리는 그 양복을 20년 동안 입었다. 구두는 밑창을 갈아 오래도록 신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다. 집권 23년 동안 총리 부인으로서 국회 개원식에 참석할 때 입은 옷이 단 한 벌이다.
아들 부부가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총리 전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어머니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하셨습니다.” 당시 총리의 출근 소식은 언론에도 소개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감동은 계속된다. 엘란데르 부부는 총리 관저 대신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지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서민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다. 월세도 꼬박꼬박 개인 돈으로 냈다. 아들은 아버지가 최고 권력자였지만 검소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한때 가난과 노사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행복한 국가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의 산파 역할을 한 특별한 장소가 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하르프순드’라는 시골 마을이 나온다. 이곳 넓은 호숫가에 단층 건물 세 채가 보인다. 내부 시설도 특별하지 않다. 총리의 여름별장이다. 엘란데르는 집권 23년 동안 이곳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매주 목요일 기업 대표, 노동자 대표, 야당의원, 지방의원들을 총리 별장으로 초대해 식사하고 대화하며 정책을 협의했다. 그리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제도를 만들어냈다. 목요모임은 ‘하르프순드 민주주의’로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유럽 정상들도 대화의 장소로 이용하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생각과 이념이 다른 정당과 단체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안데쉬페르베 금속노조위원장의 말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리를 신뢰한 것은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우리를 존중해 주는 진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엘란데르는 항상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야당과 대화를 한 다음, 국회에서 정책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동무상급식, 자녀수당, 주택수당, 산업재해보상, 의료보험, 9년제 의무교육, 국비대여장학금은 엘란데르의 대화 정치가 만들어낸 정책들이다. 서민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선물이다. 스웨덴 국민이 엘란데르 총리를 눈물로 기억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노사갈등이 심해지자 스웨덴 모델을 도입해 노사정이 참석하는 대타협 기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번번이 합의에 실패한다. 정치권도 협치를 실천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지만 말뿐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결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상이몽이다.
♣. I feel your pain
1969년, 엘란데르는 과반이 넘는 지지로 총선에 승리했지만 후계자인 팔메(1927~1986)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정계를 떠났다. 그런데 스웨덴 국민은 엘란데르 부부가 돈이 없어 거처할 곳을 구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놀란다. 당원들이 급하게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주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 호수가 있는 한적한 시골이다. 그는 이곳의 작은 주택에서 16년 동안 살았다. 놀라운 것은 총리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중 상당수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과 기업 대표들이었다. 그가 살던 집은 정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꼭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집권 사회민주당은 이곳에 정치학교를 세워 엘란데르가 실천했던 봉사의 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엘란데르 아들 부부는 “부모님의 삶은 겸손 그 자체입니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위해 돕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신 부모님과 함께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입니다”라고 부모를 회고했다.
“I feel your pain(나는 당신의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 우리말로는 공감의 뜻과 같다. 공감(共感)은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장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국민이 행복하고 정치가 신뢰받는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공감지수가 높다는 점이다. 2016년과 2017년, 다섯 편의 북유럽 정치 다큐를 방송하고 파장이 무척 컸다. 우리 국회의원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왔다. “우리와 정치 상황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할 일이 태산인데 자전거 타고 출근하고 보좌관 수를 줄이면 어떻게 일을 하나, 단순 비교는 안 된다.” 놀라운 것은 동조하는 의원이 여당 야당 구분이 없고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소장파도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북유럽 정치를 소개한 것은 그들의 정치를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에게 공감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구수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2022년, 95-106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