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6/24
6·25 기념일을 앞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월요일입니다. 우리 민족은 거의 80년 동안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살았으니 그만큼 화해와 일치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됨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보다 오랜 세월을,
곧 1000년 이상을 한 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된 모습은 지금-이곳에 갈라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효성 공동체 안에 고착된 교직원들의 분열을, 각자의 내면에서 굳어진 진짜 자아와 가짜 자아의 분열을, 그리고 Abba 하느님과 자기 자신의 분열을! 너무나 오래 지속된 분열에도 불구하고, 하나 됨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보다 오랜 세월을, 곧 창조된 순간부터 우리는 Abba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힘에 의한 통일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전제로 하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입니다. 근원적인 통일은 분열된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각자의 분열된 모습을 직시해야 하고, 분열된 자아상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Abba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돌이켜봄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한 명의 존재자로서 나는 다층적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비결은 우선 Abba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 다른 차원의 관계들도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오늘, 나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를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첫 번째 의무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라는 글이 있는데, 조금 다른 시각에서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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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 부모 역시 하나의 커플 -
부모를 위한 가상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해야 한다. “자녀를 잘 돌보길 원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아주 잘 돌봐야만 한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첫 번째 의무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자신들도 남편과 아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사랑이 자녀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부모의 유대 관계가 강하게 살아 있고 자주 일치하며 지낸다면, 가족의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고 여러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간혹 잊어버리는 이 문제에 관한 몇 가지 간단한 주의점을 살펴보자.
1. 반대의 극은 서로 끌린다
현실과 여러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항상 여성적인 방식과 남성적인 방식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반드시 드러나야 하며 억압되지 말아야 한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너무 가볍게 뒤집혀서도 안 된다. 그리되면 둘 중 한쪽은 결국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양성’은 여러 일을 바라보는 ‘가족적 방식’을 보완하고 조화롭게 만들며 형성된다.
2. 스스로를 쇄신하라 그리고 변화하라
이를 위해서는 습관이라는 그늘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단순히 수용성의 단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성장이란 말의 뜻은 스스로를 쇄신하는 것, 똑같은 일상을 깨는 것, 귀를 기울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나 일에 관해 기억 속에 고착되어 버린 지난날의 일만을 자동적으로 말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남성은 또한 여성이 가사 책임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부족하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엄마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끔은 내가 실망하고 지루해하며, 나약해지는 순간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마디로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고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빈자리가 큰데 말이야. 그들이 나를 그저 우유나 주는 젖소처럼 여기지 말고 모든 순간과 결과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나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기념일을 기억하고 파티, 선물, 축하 카드를 나누는 일이 일상 안에 무겁게 내려앉은 납덩이를 치워 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3. 마음속을 둘러싼 벽돌담 허물기
고전에 따르면, 두 명의 사막 은수자가 서로 가까운 동굴 속에서 사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신이 완벽에 가깝다고 믿었기에 다른 한 명의 사소한 결점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수도자가 성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직접 증명해 보여주기 위해, 상대방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동굴 입구에 돌을 놓아두기로 결심했다. 몇 달이 지나자 그의 동굴 앞에는 숨 막히게 만드는 잿빛 돌로 쌓인 돌벽이 생겨났다. 우리는 때때로 원망, 분노, 침묵,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 우울함이라는 일상의 작은 돌멩이로 자신의 마음 안에 벽을 쌓는다.
피할 수 없는 타인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며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을 생생히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여성은 자기 말을 경청해 주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원하며, 진솔한 감정을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 남성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는다고 느끼길 원한다.
4.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두기
신뢰, 배려, 존중, 수용, 이해심이 사라지면 상호 이해의 문이 갑자기 닫히고 만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 상처를 받을 때, ‘사랑스럽게’ 보이던 모든 것이 혐오스러워지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남편과 아내가 단지 상대방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일로만 소통하려 하는 동안, 그리고 서로를 공격한다고 느끼며 항상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때 상황은 심각하게 변해 버린다.
5. 사랑, 낭만, 신뢰심
가정은 정서적 핵심이 안정적일 때 제 기능을 한다.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희망을 매일 주입받아야 하므로 확실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호흡하는 일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 꽃다발을 앞에 두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정기적으로 낭만적인 의식을 되살리며 앙금을 털어내자.
가족에게 진짜 교활한 적은 나태함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 나태함의 폐해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목숨마저 바치리라는 걸 알지만, 막상은 배우자를 위해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양말 하나 들어 올리지 못하는 지경처럼 사소한 일 말이다.
우리 사회와 같이 즉흥적이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고 살아내는 일은 마치 날마다 꽃에 물을 주는 일과 같다.
6. 의존성과 자율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찾기
가정은 지휘관과 부하가 있는 군대의 일종이 될 수 없으며, 사장과 직원이 있는 기업도 될 수 없다. 그래서 진정한 화합에 다다르는 일이 요구된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무엇보다도 많이 경청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것은 천사의 날개를 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학습과 노력, 희생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한 걸음을 내디디면 상대방은 그 걸음에 맞추어 한 걸음을 물러나야 한다. 한 번에 한 명씩, 하지만 서로를 꽉 잡아야만 할 수 있다.
7. 하나의 사명을 위해 함께 살아가기
이는 아마도 가장 위대한 비밀이리라. 결혼은 가장 높은 목적을 위한 하나의 계약이란 점 말이다. 거기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보통 서로 다른 임무와 책임을 가지고 함께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한 지붕 아래서 사는 좁은 지평 너머의 목적에 함께 시선을 고정하고 서로를 도우며 ‘앞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 브루노 페레로 신부, 「SALESIO 가족」(2024년 05월호), 24-26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