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두루마리 모임에서 올해 가장 열심히 한 것을 돌아다보며
은성이는 중학교에 다닐 때에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공책을 한 권 놔두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들의 생각을 적도록 했던 일을 기억하고 친구들과 비슷한 것을 해 보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자기 집의 서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질 때에 친구들이 자유롭게 글을 써 왔습니다. 굳이 이름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솔직하게 쓸 수가 있어서 친구들은 모두 이 공책을 좋아하였습니다. 나중에 공책을 읽어보면 친구들의 생각이 참으로 다양하고, 차마 말로 털어놓을 수 없는 그들의 기쁨과 아픔이 잘 나타나 있어서 서로 공감도 하고 위로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올해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교제를 나누고, 늘 그랬듯이 글을 쓰되 두루마리에 써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서 올해를 돌아보며 생각되는 것들을 써 보았습니다. 과연 얼마나 기쁜 일이 있었고, 얼마나 슬픈 일들이 있었을까요? 무슨 일에 마음과 시간과 힘을 쏟으며 살았을까요? 얼마나 보람을 느끼고 웃었고, 실망을 느끼며 좌절했을까요? 은성이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보고 싶어서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 나는 올해 계획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일에 바빴던 것 같네요.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젊어서인지 의욕이 넘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계속하지를 못하고 곧 다른 것을 시작하는 것이 문제였어요. 왜 이런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새해에는 미리 연간 계획을 세워서 되도록 바꾸지 않고, 갑자기 충동적으로 하는 것을 고쳐 보아야 하겠어요.
* 요즘 먹방이 대세인지라 TV를 좋아하는 나 역시 먹는 것에 너무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리고 맛있게 잘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런 것을 본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올해 몸무게가 5kg이나 늘고 말았다. 작년에는 몸무게를 잘 유지해 온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내년에는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몸무게가 늘지 않는 생활을 해서 몸무게를 확 줄여야 하겠다.
* 올해는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서 오늘은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난다. 조금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요, 나 자신이 속 좁은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을 알면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는데, 내년에는 제발 이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더구나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있으니 멍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짜증이 날 때는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볼까? 달력에 짜증을 낸 날을 표시해 두면서 점점 그 횟수를 줄여가도록 해 볼까?
* 나이가 많아질수록 왜 이리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남들이 말을 많이 하면 듣기 싫어하는 나인데 왜 내가 점점 말이 더 많아지는지 괴로운 일이다. 내년에는 제발 말 좀 줄이자. 듣고 또 듣다가 한마디를 하고, 또 듣고 듣다가 한마디를 하자. 말이 많으면 나만 잘난체하는 것처럼 보이고, 등 돌리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올해는 유튜브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물론 세상이 하도 어지러워서 하루라도 소위 우파 유튜브를 보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TV 방송이야 지극히 일부만 알리거나 거짓된 것이나 왜곡된 것만 보여주니 어찌 그것을 보며 1분이라도 보낼 수가 있었나. 차라리 좌파 유튜브를 보면 저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으니 그것을 보고 말지.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할 일은 많은데 유튜브를 보다가 시간을 몽땅 보내고 나면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이 나라가 이렇게 위태로운데 달리 어쩔 수가 있나.
* 어리석은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한 올해다. 나는 왜 남의 단점만 보려고 할까? 그리고 참지 못하고 그것을 지적하려고 할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기에 지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당연히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이 많이 모이는 시간이 식사하는 시간이니까 지적을 많이 하는 시간도 식사 시간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개도 밥을 먹을 때 건드리면 싫어하는데 감히 사람을 그럴 수는 없으니 건드리지 마라는 경고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족들을 지적하는 나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 철저히 알아야 하겠다. 내년에는 가족들의 잘못을 보더라도 입을 다물고 넘어가자. 특히 식사 시간에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하자.
* 퇴직을 하고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요리에 관심이 많아지고, 그래서 요리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TV를 볼 때도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보았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것 같아서 반성을 한다. 이미 많은 유튜브를 보았으니 내년엔 골라서 보면서, 내가 시도해 보고 싶은 요리 방법은 공책에 적어서 다시 유튜브를 볼 필요가 없도록 해야겠다.
* 올해는 내가 많이 무기력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슬프다. 몸이 약간 아픈 탓도 있지만 나는 별스럽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불안감을 느끼거나 우울한 느낌을 먼저 가진다. 다른 사람들은 하자고 하는 일도 나는 하지 말자고 하거나 다음에 하자고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이렇게 약하니 몸도 점점 연약해지는 것 같다. 새해엔 제발 이런 나의 모습이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 올해는 은혜로가 아니라 산술적으로 산 날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 자신은 뭐든지 원칙을 따지려고 하고,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돌아다보면 그런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먹고 살 만한 환경이 되었으니 이제는 마음이 넓어질 필요가 있지 않나? 내년엔 나누고 베푸는 삶을 힘쓰도록 하자. 나도 거저 받은 것이 많으니 거저 주는 것을 연습하고 숙달하도록 하자. 남이 한 말이나 행동도 웬만하면 받아주고 품어주도록 하자.
* 남들은 밖에 나가서 일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돈도 벌고, 건강도 챙겼는데 나는 집에서 꽃을 가꾸다가 시간을 많이 보내고 말았다. 나는 봄이 되면 꽃들이 너무 예뻐서 거의 미친 듯이 꽃을 산다. 그래서 집안에 온통 화분이 널려 있고, 그것을 돌보다 보면 하루에도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꽃만 아니라 잎만 보고 있어도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어서 황홀감(?)에 사로잡혀 한참을 보내다 보면 금방 몇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거의 병적인 증상인 것으로 생각되니 내년엔 정신을 차리고 일상생활도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하고 지낸 것만 기억난다. 아침에 해가 뜨면 나가서 운동을 시작하고, 아침 식사도 식당에서 사 먹고, 아침 내내 운동을 하다가 점심도 식당에서 사 먹고, 오후 내내 또 운동을 하다가 해가 넘어간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 날이 많았다. 남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할 일은 열심히 하면서 운동을 했으니까 할 말은 있지만 아무래도 내년에는 운동을 하는 시간을 좀 절제해야겠다.
* 홈쇼핑에 빠진 날이 많은 한 해였다. 남들은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나는 홈쇼핑에 중독된 사람 같다. 솔직히 산 물건이 만족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또 사고 또 산다. 그러나 연말에 돌아다 보니 내가 과연 제정신이었던가 궁금하다. 실제로 사용할 것도 아니건만 산 것도 많고, 산 후에 포장만 풀어본 후에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도 많다. 내년에는 그러지 말자.
* 올해는 많은 시간을 승부욕에 사로잡혀 보냈다. 나는 지는 것이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운동을 할 때 말로는 즐겁게 하자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기어이 이기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내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가기를 잘한다. 내 의견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속이 상한다.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모든 일에 기준이 되기를 바란 한 해였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 왜 이런 무모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새해에는 이런 황당한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던 배고픔(?)을 채우고자 여행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 물론 코로나 발생 이전보다는 적게 했지만 말이다. 내년에는 여행을 하되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살려서 해야겠다.
*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가족이나 교회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버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을 벌고, 마음을 버는 일도 필요하다. 돈은 늘어났지만 시간과 마음을 많이 잃어버린 올해처럼 살고 싶지 않다. 새해에는 균형을 이루며 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 누구나 다 하는 것처럼 나도 다이어트에 마음과 시간과 힘을 기울인 한 해였다. 덕분에 내 몸무게를 원하는 수준에 묶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살펴보아야 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건강하게 될 것이고, 건강하게 되면 해야 할 일을 힘있게 잘하며 살 것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다이어트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고, 건강은 조금 효과를 보지만, 나아가 실제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새해에는 일을 잘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하자.
은성이는 여기에서 두루마리가 끝나는 것을 보고 처음처럼 잘 접어놓고 서재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방금 읽은 글들이 선하게 기억되어서 밤새 생각될 것 같았다. 과연 은성이의 새해는 어떻게 시작될 것인가?
* 묵상할 성경 말씀- 어찌 살든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6:13)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