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리가!
24년 1월 4일 오후부터 오른쪽 발이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또다시 통풍의 신호다. 미리 예비된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럼에도 오른쪽 발의 모지쪽이 발갛게 붓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오른쪽 다리 전체에 통증이 나타났다. 특히 밤에 통증이 잘 나타난다고 하더니 밤새 통증으로 시달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간 몇 번의 통풍이 있긴 했어도 이리 아프지는 않았었다. 예전에 요석이 생겨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그 다음으로 아픈 병이다. 밤새 잠도 못 자고 계속 무심히 흐르는 시각만 보았다. 왠 밤은 이렇게 긴 것일까? 아픔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시, 2시, 3시, 5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며 입으로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아픈 사람들이 왜 신음소리를 내는지를 알 수 있었다. 소리를 뱉으며 그 소리가 아픔을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느꼈다. 옆에서 자는 아내를 깨울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이윽고 5시가 되었을 때, 이대로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서 아내를 깨웠다. 119를 불러 달라고 주문을 했다. 가서 입원이라도 해야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럼 오늘 딸네집에 가야 하는데 못가다고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기에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없으면 아내도 움직일 수가 없다.
기사인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아내에게 가서 차에 있는 비상약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였다. 아직도 어두운 바깥에 나가서 약을 가져 왔다. 복용을 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선 걸어서 차에만 갈 수 있다면 운전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다리의 통증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딸네는 갈 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새해! 밝은 희망과 못 피운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계획을 하는 새해 벽두부터 지독한 아픔으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었다. 어쩌면 본격적인 노년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하는 신고식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밤새 아픔의 고통 속에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래!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진 않아! 조용히 아픔을 혼자 삭이며 가족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내리는 눈처럼 사뿐이 허공을 걸어 저 세상으로 가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나의 떠나감을 슬퍼하는 사람을 과연 누구일까? 가족을 제외하고도 나의 영향력이 미친, 그래서 아쉬워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를 헤아려 보았다. 구두쇠 스쿠리지 영감처럼 뭇 사람들의 평판 속에 "그래, 참 잘 죽었어. 그렇게 이웃을 무시하더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밭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처럼 나의 떠남을 고소해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에게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한 평의 땅도 내겐 넓기만 한데 넓고 아늑한 집을 찾으며 살았던 날들이 참 후회스러웠다. 바로 어제 나의 친구의 아내가 소천하였다. 병원 입원 한 달도 안되었는데 소천의 길을 갔다. 오래 살
것처럼 팔팔 건강했는데 소천의 소식은
믿겨지지 않는 것이었다다. 친구는 의사를 나무랗지만 나는 속으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홀로 남는다는 것은 또다른 압박이요 외로움의 배가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인간에게 특징지어진 쉬 잊을 수 있다는 강점도 가지고 있기에 위안도 받을 수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앨범 속의 사진처럼 개관화되어질 것이다. 잠시의 별리는 있겠지만 살아야 하는 또다른 이유를 탐구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간 사느라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호강 한번 제대로 시켜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못으로 박혀 아내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갔다. 그 과정을 멈추거나, 지체시킬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러도 반항 못하고 따라 나서야만 하는 게 우리네다. 그 이별의 순간을 항상 상정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그 바램의 벽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열악한 존재인 것을.
아직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고픈 소망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다. 거의 모든 것이 나의 통제 밖에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하루가 참으로 내게 가치 있는 삶인가를, 행복한 삶인가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 보려 한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조삼모사의 인생이 아니라 초지일관의 인생을 살아 보려 한다.
다행히도 아내와 함께 딸과 손자를 볼 수가 있었다. 막상 만나면 그리 대단하지도 읺긴 하지만 이렇게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 사랑을 주고받으니 기쁘다. 크게 계획해서 좋은 여행도 다니고, 좋은 곳에 가서 멋진 구경도, 맛진 음식을 먹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만나면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니, 이 순간들이여 영원하라! 건강하기만 해도 너무 큰 행복인 게다.
나의 통증도 이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즐거운 상상의 날이 다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이 아픔의 과정을 이겨내려 한다.
앞으로의 일 년은 또 어떤 채색으로 물들 것인지 궁금하다. 열심히 해 봐야지! 아직도 오른 다리는 불편하여 절뚝거리지만 다시 정상 걸음으로 걸어서 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