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 이정숙
목련꽃이 흔들린다. 몸을 가누지 못하다, 한 잎 툭 떨어진다. 겹겹이 닫힌 문 앞에서 누군가 몇 날을 서성인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살래살래 하얀 조막손 흔든다. 세상을 향해 조금씩 손을 내민다. 빗장을 푸는 소리 피식 들린다. 햇살 아래 드러난 순백의 속살 눈이 부셔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정숙아? 엄마 왔다.”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이 온통 창가로 모여 밖을 내다본다. 운동장을 향해 달리는 나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창피함과 분노로 금방이라도 울듯이 얼굴이 이지러진다. ‘확’ 바람을 가르며 지난다. 운동장을 서성이던 어머니가 날 보자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정오를 향하는 해를 머리에 이고 두 그림자 마주보며 서 있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어머니의 몸이 순간 흔들린다.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도시락을 전해준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막내딸의 뒷그림자를 향해 미소 짓는다.
겹겹이 싸여진 도시락,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살아난다. 또르르 기름기 도는 계란프라이, 멸치복음, 어묵조림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 따뜻한 점심 한 끼 먹이려는 모정은 오전을 서둘러 준비하고 도시락이 식을까 가슴에 품고 세 정거장을 걸어왔으리라. 그리고 생각했으리. 배고프다고 악을 쓰며 울어대는 자식을 위해 말라비틀어져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물렸던, 늦둥이가 병치레를 달고 사는 것을 당신의 죄로 여겼으리라. 먼 후일 부모 되면 내 맘 알 거라며 못된 딸년의 등을 한 대 치고 싶어도 참고 또 참았으리라.
오늘도 난 어제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빨간불이 요지부동이다. 신호기가 고장 났는지, 연신 핸드폰의 시계를 들여다본다. ‘종 쳤을 텐데’ 후문을 향해 서성이며 날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으로 마음을 졸인다. 삼분의 짧은 신호가 세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도시락 두 개를 들며 단거리 선수가 되어본다. 학교 후문에 먼저 와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이 풋사과와 익은 사과로 오락가락하며 원망의 빛이 역력하다.
철조망 사이로 내민 손에서 도시락을 낚아채 가는 아이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고 눈을 흘기며 돌아선다. ‘못된 것들 어디 시집가서 애 낳아 보라지.’ 어머니가 내게 수없이 했던 말을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뱉을 수도 그렇다고 삼킬 수도 없는, 죽을 때까지 항상 목에 달고 사는 가시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든다. 엄마 목에 걸린 가시가 내 가시가 될 줄을 왜 몰랐을까! 가시 하나 달고서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어둠을 향해 가는 하늘은 검푸르게 곰삭아 간다. 세월이 귀밑머리에 머문 그들이 하나, 둘 떠나간 게이트볼장에도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온다. 고요한 사위는 모두들 침묵 속에 빠졌다. 순간 하늘을 향해 오르는 모정이 눈에 들어온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유난히 깔끔한 아이라 긴장이 되었다. 무언가 해 주고 싶던 순간에 친정어머니를 생각했다.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뜨물 내 나지 않는 따뜻한 저녁밥 한 끼 먹이고 싶었다. 외부급식이 어디 엄마 손길만 할까 싶어 오후가 되면 반찬 서너 개를 준비한다. 설익은 엄마 흉내를 내며 기억의 능선에 서서 내 어머니로 돌아간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세상 밖으로 내보낸 아이들 가슴에 사랑이라는 작은 불씨 꼭꼭 심어 그 씨를 남기고 싶다.
한 해를 보내자 이젠 도시락이 두 개로 늘었다. 작은아이도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삼 년째로 접어든 이 길을 눈을 감고 걸어보았다. 신호등을 건너 마흔한 발자국을 가면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 너무 세게 돌면 쓰레기통과 받히고, 살살 돌면 빌라 화단에 심어 놓은 장미에 찔릴 수도 있다. 쌈지 공원을 오르는 길은 백목련과 자목련의 툭툭 떨어지는 눈물로 바닥이 흥건하다.
날을 세운 철조망 사이로 자식들을 기다리는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오늘도 모정은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도시락의 근기(根氣)로 몸을 추스르며 여학생 시절을 보냈던 나와는 사뭇 다른 기억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여인들만의 내밀한 굴레인 엄마가 되기는 쉬워도 어머니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나처럼 부모가 되어서야 아이들은 깨우쳐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