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방문 / 송진권 - 대구일보 (idaegu.com)
모교 방문 / 송진권
신상조(문학평론가) 문향만리
이제는 폐교된 내 모교에 갈 때는/아내랑 같이 아들내미 딸내미 앞세우고/이쁜 도랑물 데리고/도랑물에 어룽대는 물빛이며/강아지풀 토끼풀꽃도 데리고/앵두에 피잉 도는 붉은빛까지 데리고 가야 하지/질경이에게도 따라오라고 하고//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얼굴을 한 사람과/추자나무 선 노미네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먹고/너무 일찍 온 사람은/너무 늦게 올 사람을 지탄역에서 기다렸다가/측백나무 울타리 뚫고 플라타너스 그늘을 지나/들기름 먹인 복도를 걸어/드르륵 문을 열고/교실 한쪽에 놓인 풍금을 힐끗 보고/가린여울 사시는 유병욱 선생님께/ㄱㄴㄷ을 다시 배워야 하지//우리가 저기 먼지 앉은 자그마한 걸상에 앉아서/작은 입을 벌리며 처음 노래와 글을 배우던/그토록 작았던/얕은 물에 놀던 어린 물고기 같았던 때처럼/아직 강이란 이름도 못 얻은/작은 도랑이었던 때처럼
「원근법 배우는 시간」(2022, 창비) 전문
시골 초등학교 교정에 울려 퍼지는 풍금 소리가 아득하다. 미처 교생 태를 벗지 못한 처녀 선생이 자기가 치는 풍금 소리에 취해 나직나직 노래를 부르고, 창문 너머로 그 여선생님을 훔쳐보며 키득키득, 눈빛을 반짝이는 개구쟁이들이 대여섯, 또 그런 녀석들 뒤에는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자꾸만 얼굴이 붉어지는 총각 선생이 숨은 듯 귀를 기울이며 서 있는 방과 후의 교정이 떠오르는 시다.
화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오늘은 “가린여울 사시는 유병욱 선생님께/ㄱㄴㄷ을” 배운 동창들이 식구들을 동반하고 모이는 날이다. 초등학교 동창들 만나러 내려가는 귀향길, 4기통 자가용 타고 흙먼지 일으킨다면 오히려 모양새가 이상하다. 모름지기 이런 때는 소박한 기차 여행이 제격이다. 화자는 “아내랑 같이 아들내미 딸내미 앞세”우고 “지탄역”에 내린다. 한 손에는 아들 손 반대편 손에는 딸의 손을 잡고, 토끼 같은 자식들 끼고 양쪽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손에 손을 잡고 얕은 도랑물 건너 강아지풀 토끼풀 질경이도 지천인 시골길을 따라 걷노라면, 이제 막 붉은빛 도는 앵두나무도 만날 테다. 마침내 추자나무가 마당 한쪽에 우뚝한 노미네 밥집에 들어설 테지. 훌쩍 자란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고, 안부를 묻는 소리로 한동안 마당이 왁자할 테고. 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앉아 집밥 같은 식당 밥을 먹는다. 늙고 힘에 부쳐 이제는 부엌일을 손 놓은 노미네 대신, 그 시절의 젊은 엄마를 빼다 박은 딸 노미가 밥상을 차려내 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얼굴을 한 사람”이여, 우리가 “그토록 작았던” 때, “얕은 물에 놀던 어린 물고기 같았던” 때, “아직 강이란 이름도 못 얻은/작은 도랑이었던” 때를 떠올리다 돌아와, 다시 이 삭막한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야 할 애틋한 사람, 사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