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12절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좀'이나 '썩어질 것' 같다고 하셨는데, 14절에서는 그것과 완전히 대조적으로 '사자'와 '젊은 사자'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자'라는 히브리어 '솨헬'(שָׁחַל) 은 그냥 사자가 아니라 먹이감을 보고 달려드는 사나운 사자(fierce lion)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였습니다.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the fierce lion, שָׁחַל)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욥 4:10)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a fierce lion, שָׁחַל)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욥 10:16)
"위엄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the fierce lion, שָׁחַל)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욥 28:8)
그리고 '젊은 사자' 라는 '케피르'(כְּפִיר)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כְּפִיר)같으니이다"(시 17:12)
"젊은 사자(כְּפִיר)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시 104:21)
"왕의 노함은 사자(כְּפִיר)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잠 19:12)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כְּפִיר)같이 담대하니라"(잠 28:1)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고,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와 같이 되셔서 그들을 사자가 먹이를 움켜서 놓지 않는 것처럼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자의 손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건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사자에 비유한 것은 사자란 결코 먹이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공격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쪽 유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자의 모습으로 멸망시키는 지를 이사야서 5장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 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차 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כְּפִיר)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사 5:24-30).
사자가 그 먹이를 움켰을 때, 아무도 사자로부터 그것을 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여 호세아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고(왕하 17:3-6),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여 시드기야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왕하 25:1-12). 그런데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 "나 곧 내가 움켜갈찌라"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하신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그들을 멸망시키신 것이며, 앗수르와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인본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심판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으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즉 이제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과 은혜를 거두신다는 말입니다.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시는 이유는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이키신다는 것은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얼굴을 숨기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와 싸우거나 서먹한 관계가 되었을 때에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말을 걸어와도 얼굴을 돌려버리고 상대를 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숨기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신 32:2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패역함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인해 얼굴을 돌리신 후에 인간들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찾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고멜처럼 끊임없이 배반하고 잘못하고 실수하는데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양심상 미안해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하시겠습니까? 그 양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그 사랑을 마다하겠다는 것입니까? 오히려 그러한 사랑을 외면하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양심이 있다면, 우리는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사랑에 미안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분이 참고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켜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시 27:8-9)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7)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시 89:15)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시 105:4)
여러분의 현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사자나 젊은 사자가 먹이감을 노리며 움켜잡으려고 하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이미 모두 빼앗겼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회개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회개의 내용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회개하는 행동은 칭찬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찾아와 회개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사 1: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와서 고백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기에 감히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므로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기도보다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7, 10)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 한가지만 말하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잠언 기자는 2가지 일을 구하겠다고 합니다.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7-8)
여러분의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앙망하며 그분만을 바라보며 살고 싶으십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시간이 날 때에 성경과 인터넷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9)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계 5:5)
유다지파를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사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사자이신 그리스도처럼 가장해서 다가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또한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도 가장하며, 사단의 일군들은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기도 합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욕심에 이끌려 소원을 들어달라고 구하려고 합니까?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일꾼과 사단의 일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만, 사단의 일꾼은 사단의 나라와 사단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즉 인간의 정욕을 이루기 위한 기도와 다른 이들을 파괴하는 기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모양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의 내용은 다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합니다.
여러분의 안팎은 똑같습니까? 아니면 조금 또는 많이 다릅니까? 경건한 모습은 갖추어서 의의 일꾼처럼 주일과 교회의 공적인 예배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는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며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면, 이스라엘과 유다지파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우상숭배를 했던 것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나운 사자와 젊은 사자처럼 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회개하는 생활을 기쁘게 실천하고 있는지,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 일은 매일 점검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점검해 보았을 때에 관계에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그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벌거벗고 엄마 앞에서 전혀 창피한 줄 모르고 오히려 엄마가 있기에 두려움이 없이 평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있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사자처럼 다가오실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며, 우리가 회개하여 다시금 주님의 얼굴을 구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스라엘과 유다처럼 저도 혹시 주님 앞에서 심히 교만히 행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그 동안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깨닫게 하여 주셔서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들을 다 가르쳐주옵소서. 바삐 살아가다보니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은 인생길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저의 삶을 바르게 조명하여 주시고 항상 회개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참빛이신 주님께서 이땅에 오셨으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선택하여주시고 믿음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은 너무나 어순선합니다. 그래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진짜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자처럼 가장한 마귀를 확실히 구별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참빛이신 예수님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을 매순간 깨달아 알고 참된 빛 가운데에 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온전히 이끌어주옵소서.
제가 잘못할 때마다 깨우쳐주셔서 어린 아이가 엄마 앞에서 벌거벗고 있어도 창피한 줄 모르고 오히려 엄마가 있기에 좋아서 뛰어다니는 것처럼,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죄짐을 모두 주님께 맡긴 채 자유함을 누리며 찬송하며 살아가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매순간 깨닫는대로 회개하며 살게 하시며, 회개하는 그 순간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회개를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제가 잘못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어긋났을 지라도 제가 돌아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내를 높이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인내를 저도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잘 참지 못할 때가 자주(가끔) 있습니다.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셔서 절제의 열매를 잘 맺게하여 주셔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가짜 사자인 마귀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시고 진짜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린 양과 같은 제가 함께 뒹굴며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주님의 얼굴빛을 숨기지 마시고 제게로 향하여 비추어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얼굴을 대함으로 제 얼굴에서도 사나운 것이 사라지고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빛이 환하게 비쳐지게 하옵소서.
주께서 제 안에 온전히 거하심으로 저에게서도 사자와 같은 당당함이 풍겨나와 세상이 감당할 수 없게 하시며, 세상을 주님의 말씀으로 이기며 어떠한 물결 속에서도 승리하도록 지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