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과 의미
레위기 1-10장은 제사에 대해 다루고, 11-15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정함에 빠지지 않고 정결하게 살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것의 결론이 16장 대속죄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장부터는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하게 사는가에 대한 거룩에 대해 다룹니다. 주로 성이나 음식에 관한 것들이 많습니다. 17장은 음식에 대한 것을 다룹니다. “고기를 먹을 때 피째 먹지 말라.” 고기를 먹으려면 회막에서 화목 제물을 드리고 먹으라고 합니다. 21장과 22장도 먹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 중간 18장과 20장은 음행을 행하지 말라는 거룩한 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운데 있는 19장은 이웃 사랑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장 가운데에서 이웃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바깥에는 성에 대해, 그 바깥에서는 음식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음식과 성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거룩함을 이루라고 말하고 가장 중심에서는 이웃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는 제사에 관한 것들(1-10장)내용이고, 두번째는 어떻게 이웃사랑을 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웃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하나님 사랑도 동시에 말합니다.
19장을 읽어보면 많이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표현이 후렴처럼 반복됩니다. 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명령하는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 너를 지키시는 하나님이고 여호와라는 것은 언약의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오래전에 조상에게 나타나서 특별한 민족을 삼겠다고 약속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시며 자기 약속을 굳게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이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구원한 하나님이니 이제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써 이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구원하신 하나님과 백성 사이는 일종의 언약적 의무가 있습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이 있듯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하나님 백성은 이 의무를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라”하고 말씀 하십니다.
1. 하나님 사랑(1-10절)
19장은 주로 이웃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하나님 사랑에 대해 먼저 말합니다.
1) 거룩하라(2절)
서론에서 그것을 강조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2절).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거룩”이라는 뜻은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잘못(악)과 분리된 것입니다. 또 거룩이라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광스럽고 좋은 것을 말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영광과 비슷하고 또 세상과 구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 다움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라고 하십니다.
2) 부모 경외와 안식일 준수(3절)
3절부터, 십계명의 중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왜냐하면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당연한 말씀입니다.
3) 우상숭배 금지(4절)
4절, “헛된 것을 향하지 말고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말씀하십니다. 헛된 것이라는 것은 우상의 다른 말입니다. 우상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입니다.
5) 화목제 야식과 추수에 대해(5-10절)
5절부터는 화목제 제물에 대해서 말합니다. 화목제 희생 제물을 드릴 때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도록 드립니다. 중요한 제사 세 개중에 화목제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합니다. 제물을 드린 사람과 이웃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납드리려면 기름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피를 먹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이틀만에 다 먹어 치우라고 합니다. 제삼일까지 두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주 가증한 것이라고 합니다(7절). 왜 그렇습니까? 화목제물은 고기를 나누어 먹기 위한 것인데 인색하여 나누어 먹지 않고 계속 보관하게 될까봐 그렇습니다. 화목제 제물을 잡으면 함께 제사장, 이웃들, 레위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어서 나누어 먹으라고 정한 것입니다. “제 삼 일째에 먹는 자는 성물을 더럽힘으로 인하여 벌 받을 것이다”(8절). 성물이라는 것은 거룩한 물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성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바친 다음에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하는데도 그것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성물에 대해서 잘못을 했기 때문에 심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을 강조합니다.
화목제 제물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면서도 이웃과 나누어 먹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의 기초가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9절부터는 경제적인 면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합니다. 땅을 추수할 때 바닥에 떨어진 것이 보이더라도 일부러 줍지 말라고 합니다. 포도 수확할 때도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들을 위하여 조금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 때 그들을 구원하신 분입니다.
2. 이웃사랑에 관한 가르침(13-18절)
1) 도둑질, 속임, 거짓말, 거짓 맹세 금지(11-12절)
11절, “도둑질하지 말고 속이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 특히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가진 백성이기 때문에 도둑질하거나 거짓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웃사랑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2) 약한 자를 억압하지 않고 보보(13-14절)
13절부터는 어떤 사람을 고용하면 그 삯을 그날 바로 주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 먹은자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그 앞에서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또 소경(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앞에 장애물을 놓아 괴롭혀서는 안됩니다. 약한 사람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장애와 가난함이 있지만 존중하라고 합니다.
14절,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 보지못하고 듣지못하는 사람, 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 존중하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3) 공정한 재판(15-16절)
15절은 재판할 때 의롭게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편을 들어 잘못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힘있는 사람이라고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공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소문을 퍼뜨려 나쁜 소문이 나게 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이웃을 적대하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웃을 죽을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나쁜 소문을 내어 말로써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일은 죽을 지경까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4) 형제를 꾸짖고 몸처럼 사랑하라(17-18절)
17-18절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두 구절을 이야기한다면 내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한 구절은 17-18절입니다.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더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 속으로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못 했으면 말로써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의 죄를 자신이 담당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그대로 보고 내버려 두면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합니다. 우리는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말해주지 않고 속에 계속 품고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원수도 갚지 말아야 하고 미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나 이상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합니다. 19장은 전체 37절입니다. 그 가운데 18절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18장의 중간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17장에서 22장까지 전체의 중간이 19장이고 19장의 중간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나오는 모든 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3. 그밖의 율법: 성의 순결, 미신 금지, 인간차별 금지 , 정직(19-37절)
1) 섞지 말것, 여종의 성적 문제(19-22절)
19절, 가장 중요한 말을 했기 때문에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 것이니라” 이 말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19절은 이상해 보입니다. “가축을 두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고 밭에 두 종자를 뿌리지 말고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며” 두 개를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하기도 하고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된 것(거짓)과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내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라는 단어가 고린도후서6:14절에서 나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은 가축을 다른 종과 교미시키 말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함께 침실을 하지 말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불신자와 하나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다른 가축끼리 교미하듯이 사람끼리 결혼할 때 믿지 않는 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불신자들도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과 문화와 가치관을 함께해서는 안되고 결혼해서도 안됩니다.
20절, 어떤 사람에게 여종이 있는데 그 여종이 아직 해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남자와 두사람이 음행을 행한다면 이 여종을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종이 아닌 보통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음행을 행하면 죽입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어떤 남자와 음행을 했으면 죽이지 않습니다. 자지가 합의에서 음행을 행한 것이 아니라 신분이 종이기 때문에 강제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도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그 당시에 종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고려해줍니다. 대신 하나님께 속건 제물을 드립니다. 속건 제물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이 여성 종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해를 끼쳤다는 표시로써 속건 제물을 드립니다. 이 여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강제로 성폭행 당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여성을 해방시켜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자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해방되지 않은 노예 상태이기 때문에 죽이지는 않습니다.
2) 가나안 땅에서 난 열매는 5년 째에 먹을 것(23-25절)
23절,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과일을 심으면 그 열매가 할례 받지 못한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3년동안은 먹지말라고 합니다.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은 부정한 것이고 부정한 것은 먹지말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4년째에는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는 먹으라. 그러면 풍성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가르침을 위한 것입니다. 열매가 맺히면 바로 먹어도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부정하고, 아직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아니라고 정해서 먹지 않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친 다음에 먹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유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도를 통해서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3) 점보는 것과 미신 금지(26-28절)
26절부터는 우상 숭배와 관련한 이방인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피 째 먹는 것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바친 다음에 피째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을 보거나 술법을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머리 주위를 둥글게 깎는 것과 수염 끝을 자르는 것, 죽은 사람을 위해서 살을 베는 것, 이것들은 모두 미신 적인 것들입니다. 몸에 무늬(문신)를 넣는 것, 그것도 미신적인 것입니다. 물론 요즘 문신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때는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답게 우상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4) 음행을 멈추고 안식을 지키라(29-30절)
29절, 이 나라에는 기생(창녀)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생이 있으면 음행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성소를 공경하라고 합니다(30절). 두 개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음란하지 않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성소를 연결시킵니다. 음란하지 않는 것은 몸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날은 거룩하게 지키고 장소 중에 어떤 장소는 거룩하게 해서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백성 답게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5) 미신 금지(31절)
31절, 무당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무당을 믿으면 너희 스스로 더럽히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면서 무당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6) 노인 공경(32절)
32절, 나이든 노인을 여호와를 공경하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공경하라 합니다. 나이든 노인중 제일 중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모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고 나이든 노인과 국가의 공직자들, 회사의 상관들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질서가운데 두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7) 외국인 거주자 차별 금지(33,34절)
33-34절, 외국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 합니다. 네가 낳은 자들 같이 사랑하고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해방시켰으니까 이 은혜를 받았으니 너희도 외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잘 돌보라고 합니다.
8) 정직과 공정(35-36절)
35-36절, 무엇이든지 정직해야 한다고 합니다. 재판을 할 때, 저울이나 자, 곡식을 재는 되 같은 것을 공정하게 사용하고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한 여호와니라” 그 애굽 땅은 거짓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없는 거룩한 나라를 만들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9) 결론: 내 법도를 행하라(37절)
37절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9장에서 말하는 규례는 사람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나의 규례와 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규례,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4. 우리의 불순종과 죄 그리스도의 속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거룩함에 도달하게 하시려고 이런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그 율법을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13:12).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 2:11-12) 하셨습니다. 성자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도록 하려 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큰 사랑 받아서 사랑의 빚진자가 되었으니 빛갚는 심정으로 형제 자매를 사랑합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우리가 타고난 본성을 죽입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랑의 명령을 따르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함에 부족하여 좌절할 때 다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로마서 8:12-16).
우리는 내 생각대로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 주위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여기 있는 정신을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약한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거짓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품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인도 그렇게 공동체, 교회나 가정도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형상이 이뤄진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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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라!
1. 19장은 레위기의 핵심 주제로 시작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지엄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벧전 1:15~16). 공동체에 여러 명령을 말씀하시면서,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명령 때마다 반복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명령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강조하십니다. 이 명령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계명에 온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2. 19장에서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의 특징을 개인의 영성이 아니라, 이웃 사랑으로 대표되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참으로 거룩한 사람입니다. 개인의 영성은 좋다고 하는데, 이웃과의 관계와 배려와 용납과 사랑이 없다면 그는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3. 먼저 3~10절은 십계명을 대표하는 몇 가지 종교적 의무를 말함으로써 언약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십계명의 세 가지가 나오는데, 부모를 경외함(5계명), 안식일을 지킴(4계명), 그리고 첫 두 계명인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입니다. 이 세 가지는 중요합니다. 만일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지 않고, 가정에서 책임을 감당치 않으며 언약의 증거(안식일)를 지키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머지 율법 조항들이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두 번째 부분은 다른 이스라엘 동족에 대한 규정이자, 언약 백성의 공동체에 대한 규정입니다(11~18). 여기에는 이웃, 형제, 백성, 동포, 친구, 사람 등의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은 서로를 향해서 정직해야 합니다(11~12). 도둑질, 거짓말, 혹은 사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하나님은 진리의(참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언약 백성은 착취하면 안 됩니다(13~14). 귀먹은 자는 듣지 못하고 눈먼 자는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보고 들으십니다. 그래서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라고 명하십니다(14).
5. 언약 백성은 또한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15~16). 재판에서의 공정함이 요구되었고(가난하거나 부자의 편을 들면 안 된다), 험담을 해서도 안 되며(16a) 거짓 증거 하면 안 됩니다(16b). 또한 언약 백성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잘못에 대해서는 경고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17). 이것들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정리됩니다(18).
6. 세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합당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가나안의 관행에서 구별됨으로 거룩해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19~31).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합당한 구별을 하셨습니다. 빛과 어둠, 땅과 바다, 밤과 낮, 동물과 사람 등의 구별입니다. 섞지 말아야 한다는 규례들은 음식과 정결 규례처럼 신약 시대에는 종결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영원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영적 구별은 여전히 새 언약 아래서도 요구됩니다.
7. 마지막으로 32~37절에서는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듯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사람을 향한 친절과 호의가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연약한 대상이 나오는데 노인과 그들 중에 거하는 외국인들(나그네)입니다. 노인을 공경하고, 외국인을 사랑으로 동족과 차별이 없이 대해야 합니다.
8.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반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는 삶입니다. 이 구약의 말씀들은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게 중요하고 유효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신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말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 행위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좋은데 이웃과의 관계가 안 좋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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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의 거룩(1-8절)
레위기 18-20장은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적 기준, 즉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8장의 마지막 절의 마지막 부분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입니다. 그리고 19장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또는 “나는 여호와이니라”가 15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18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윤리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19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에서도 거룩한(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학생다워라”, “의사다워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이미 학생이고,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아닌 사람에게 학생다우라고 말할 수 없고,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의사다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미 거룩한(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 중, 제5계명과 4계명에 상응하는 명령입니다.
십계명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경외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공경하다’는 ‘무겁게 여기다’의 의미인데, 그 무거움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부모를 경외를 경외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신의 모든 삶과 모든 시간이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진다는 것(구별된다는 것)은 일상의 삶에 신실한 것입니다.
(4)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2계명에 상응하는 명령입니다.
고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사람들이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이유는 모두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자신이나 가족이든, 부귀영화든, 건강이든, 입신양명이든, 인간관계든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우상으로 삼는 것은 오직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신상(우상)들을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희를 위하여_우리를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라는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상’을 만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5-8)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셋째 날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리니 그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화목제물을 먹는 문제는 7:15-18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화목제는 일종의 잔치 제사입니다. 잔치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물 드림을 통해서 드렸습니다. 제물 중에서 번제물은 모두 태워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태워서 드리는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물은 기름과 피는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앞 가슴살, 오른쪽 뒷다릿살을 주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화목제에는 그냥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제’, 어떤 서원이 있어서 드리는 ‘서원제’, 자원해서 드리는 ‘자원제(낙헌제)’ 등이 있었습니다. ‘감사제’로 드리는 제물은 당일에 다 먹어야 했고, ‘서원제’와 ‘자원제(낙헌제)’는 그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셋째 날에도 먹으면 드린 화목제는 무효가 되었습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흠 없는 소나, 양이었습니다. 만약 화목제물을 소로 드렸다면, 제사장분을 빼고도 약 300kg(500근) 정도 남는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양이면, 최소한 1,0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틀 만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해가 떨어지고 나면 다음 날이 됩니다. 만약 오후 2시쯤에 제사를 드렸다면, 해가 떨어지기 직전일 것입니다. 그러면 만 하루 만에 다 먹어야 합니다.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과도 나누어 먹고, 잘 모르는 사람과도 나누어 먹고, 심지어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과도 나누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어 먹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회생활 속의 거룩(9-18절)
9-18절에서는 사회생활 속의 거룩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추수할 때 땅에 떨어진 알갱이는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추수하는 사람이 최대한 조심해서 땅에 알갱이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할까 봐 아예 밭모퉁이는 추수하지 않고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추수하는 일꾼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고아와 과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과 이방인(거류민, 나그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와서 보아스의 밭에서 곡식을 주웠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구별되게) 사는 것은 자신의 수입 중에는 이웃을 위한 몫도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포도 농사에서 수확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달 첫째 주일을 ‘나눔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나눔주일의 의미는 내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웃을 돕기 위해서 여분의 새 물품을 가져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이 가져오는 쌀 한 봉지, 라면 한 봉지, 기름 한 병, 통조림 한 통 등은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전체의 필요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먹거리를 구입한다는 것은 내 마음과 삶에 이웃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구입한 먹거리가 집 안 한쪽이나 자동차 안에 있는 것을 자녀나 가족이 보는 것은, 삶에 이웃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수백 마디의 말로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나눔주일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가져온 물건을 받는 사람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풍성한 의미를 줍니다.
(11-12)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상대가 가진 것을 자신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갖게 되는 것을 바른 절차,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것이고, 틀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것을 누리지 못하기도 하고, 그 비용을 대신 감당하기도 합니다. ‘속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땅히 정직해야 할 상황에서 거짓되게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말하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약속을 깨뜨리거나 상대를 속이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맹세하는 자신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존재의 이름으로 맹세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 상대를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멸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속이거나 거짓을 위한 맹세로 인하여 결코 더럽게 사용될 수 없는 이름인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이 말씀은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으로 이웃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품꾼에게 주어야 할 삯을 주인이 아침까지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품꾼은 삯을 받지 못하면 밤새 그 가족들이 굶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거룩한(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장애나 선천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해 상대를 경멸하거나 헐뜯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거룩한 백성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법은 유전무죄나 무전유죄도 아니고, 유전유죄나 무전무죄도 아니며, 공평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법이 법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돌아다니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바르지 않는 일이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더 바르지 않은 일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일 때도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라고 증거합니다. 이미 그 마음에서 극도의 증오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은 ‘심(心)보를 바르게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의 삶도 바르게 인도한다고 하십니다.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를 스스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바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분노는 100%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르게 정리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맡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또한 원수갚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러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 본받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심, 무소부재하심, 영원하심 등은 우리가 본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심, 의로우심, 거룩하심 등은 본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사랑하라’, ‘의를 행하라’,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오늘 하루도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것이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진리의 통로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19-25절)
레위기는 크게 제의적 규례와 일상 생활에서의 규례로 나뉩니다. 그 중에서도 생활 규례는 그것이 보건적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 그 규례를 반복적으로 지켜냄으로써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 규례들은 대체로 당시 고대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었던 풍습이나 악습등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 두가지의 것을 교미하거나 파종하거나 섞지 말 것을 명령하십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분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땅과 물이 분리되면서 점차 혼돈과 무질서가 조화와 질서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할 거룩 역시 구별과 분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9절의 규례를 삶 속에서 지키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날마다 새롭게 기억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20-22)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혼한 여종 곧 아직 속량되거나 해방되지 못한 여인과 동침하여 설정하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일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는 아니하리니 그 여인이 해방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숫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가 범한 죄를 사함 받으리라
하나님의 규례는 당시 신분사회 속에서 살아갔던 여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여종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로 한 여자인데 아직 그 주인이 값을 받지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다른 이방 나라들에서 여종은 사람이 아닌 소유물에 불과했기에 주인이 마음대로 범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달라야 했습니다. 아무리 주인의 소유된 여종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함부로 다뤄서는 안되었습니다.
여자가 자유인인 경우, 남자의 위력으로 겁탈할 때 남자를 강력한 형벌로 처벌함으로써 여자가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주인에게 저항할 수 없는 여종의 경우에는 보호받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정혼한 여종을 범한 주인에게 속건제를 드려 하나님께 속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 여종은 주인의 소유이기 전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귀한 인격체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규례야말로 사람을 도구로, 혹은 거대한 조직의 부품으로 인식하려는 현대사회에, 사람을 귀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큰 울림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23-25)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과일 나무를 심을 것이라는 말씀은 큰 설레임으로 다가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과일 나무가 3년이 지나야 거룩하게되어 그 열매를 먹을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또 4년째의 열매는 거룩하게 되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첫 열매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 되는 열매부터 그들이 먹을 수 있다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12장 2절에서는 가나안 토착민들이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는 예식을 했었다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들어가게 될 환경 속에서도 항상 그들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 될 수 있도록 점검해보아햐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첫 소산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을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가나안의 문물과 완전히 이별하게 함으로써 거룩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26-37절)
(26-28)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 세구절에서 등장하는 행위들은 모두 당시 이방인의 이교적 풍습들을 의미합니다.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은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이며, 점을 치거나 술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머리를 둥글게 깍거나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라는 것은 당시 이방의 문화와 종교를 반영하는 외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해 문신을 하거나 피부를 상하게 하는 행위는 자신이 특정한 우상에게 속하였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였습니다.
(29-30) 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딸이 창녀가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있을 수 있겠으나 문맥상으로는 이방 신전에서 일하는 창녀가 되는 것을 금기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신전에 소속된 창녀와 음란한 성관계를 맺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러한 음란한 문화는 온 사회에 퍼져 죄악이 일상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행위에 빠지기보다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함으로써 죄악을 향한 시선이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하셨습니다.
(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6절의 점치는 행위는 생활 가운데서 습관적으로 행해진 행위였다면 31절의 그것은 죽은 자의 영들을 접하는 의지적인 의식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자들에게서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만 시선을 둘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자신의 미래 역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대용품이 넘쳐나는 이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님 만이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며 그분께 구별되어 속한 자임을 잘 드러내며 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앞의 말씀들이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되는 규례였다면 32절부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지켜야할 규례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노인을 공경하라는 규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규례와 함께 붙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앞서 산 자에 대한 공경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인간 질서에 대한 순종을 의미했습니다. 즉, 노인은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드러나야할 하나님의 성품임을 기억해야 하고 젊은이들은 노인을 보며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입니다.
(33-34)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당시 타국인들은 오늘날의 국제법상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었기에 33절의 규례는 고대중동사회에서는 독특한 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약자일 수 밖에 없는 타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같은 민족의 사람처럼 의지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규례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이 아니면 애굽을 탈출하여 자유인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겸손과 긍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 입니다.
(35-37)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재판은 공의로워야하며 정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재판을 우리는 불의한 재판이라고 부릅니다. 불의는 하나님의 성품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길이, 무게, 양을 재는 것, 그리고 공평한 저울과 추와 에바와 힌을 사용하는 것. 매우 구체적이고 실생활에 밀접한 도구들을 인용하여 공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방식과 지식으로 재단하여 대충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에 담긴 정신과 행간을 잘 파악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적합하도록 맞춰 지키는 것이 우리의 바른 신앙 일 것입니다.
이 시간 눈을 들어, 늘 선하고 바르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늘도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손해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고 가장 복된 길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든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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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청하시는 거룩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십니다. 그에 따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의 책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그에 부합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규례를 전하게 하십니다.
관련하여 오늘 본문은 크게 3가지 종류의 규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1절부터 8절까지는 ‘부모님과 하나님을 대하는 규례’이며, 9절부터 18절까지는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의 규례’이고, 19절부터 36절까지는 ‘개인 규례’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3절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요청하신 거룩한 백성의 첫 번째 책무는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이와 유사한 내용이 십계명중 제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두 규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 ‘경외하라’라는 동사가 쓰인 반면 십계명에서는 ‘공경하라’는 동사가 쓰였다는 점입니다. ‘경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례’는 주로 ‘하나님’을 목적어로 하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부모’가 목적어입니다. 곧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며 공경의 차원을 넘어 부모를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거룩한 백성의 첫 번째 책무가 ‘부모를 경외하는 가정내 규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진정한 거룩’은 가정으로부터, 부모자녀간의 바른 관계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예배당 안에서의 거룩한 모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밖에서의 거룩, 곧 가정 내에 진정 거룩한 모습이 있는지 여부는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의 첫째 요건으로 ‘부모를 경외하는 것’, 곧 ‘신앙 안에서 부모와 자녀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첫 번째로 요청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거룩한 백성의 두 번째 책무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3절)’, ‘우상 숭배하지 않는 것(4절)’, ‘화목제를 잘 이행하는 것(5-6절)’ 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가리켜 ‘우리의 안식일’이 아니라 ‘나의 안식일’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곧 안식일이라는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일은 단순히 ‘휴일’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을 경배하며 주님께 예배드림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신 날’입니다. 거룩한 백성임을 인지하며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을 절대 경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거룩한 백성임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올려놓고 숭상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화목제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종이 요구되는 영역에서까지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합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탈피하여 삶의 아주 작은 영역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실천해 나갑니다.
이제 9절부터 18절까지는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의 규례’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윤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9절에서 10절입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실천해야할 기본적인 ‘사회윤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내에는 가난한 사람 뿐 만 아니라 나그네와 같은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다 수확하지도 말고 땅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 열매를 다 따거나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탐욕적인 삶’이나 ‘인색한 삶’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도둑질이나 거짓말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11절), 이웃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약자의 것을 착취하지도 않아야합니다(13절). 공의로 재판하며(15절), 이웃에 대해 험담하거나 이웃의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취해서도 안 됩니다(16절).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서도 안 되며, 이웃이 잘못을 하면 반드시 타일러야만 합니다(17절). 서로 앙심을 품거나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18절 전반절). 결국 이 모든 사회윤리의 근간은 한 문장으로 요약 될 수 있는데 바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18절 하반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과 이웃을 동일시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동시에 ‘내 이웃’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이웃’ 으로 규정하지 않는 ‘낯선 타인’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임을 인식하며 존중하려 애를 씁니다. 사랑하려 노력합니다.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원수’까지 사랑하며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합니다(마 5:44). ‘죄인이었던 나’를 사랑으로 품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나처럼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품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 원하는 아니 닮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청되는 모습입니다.
이제 19절부터 36절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실천해 나가야 할 ‘신앙윤리’입니다. 19절입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종이 다른 가축을 교미시키거나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씨앗을 함께 재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두 재료를 섞어 짠 옷감으로 만든 옷도 착용하지 말라 하십니다. ‘거룩’은 ‘구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분’해 놓은 것을 ‘지키는 것’ 또한 ‘거룩’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종간(種間)의 혼합을 금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또한 일상의 삶에서 ‘거룩을 실천해나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20절부터 22절까지는 다른 남자와 정혼한 여종과 동침했을 경우 속건제를 드리는 규정이며, 23절부터 25절까지는 과목을 먹는 규정에 관한 내용, 26절부터 36절까지는 점이나 술법, 머리가를 둥글게 미는 것, 문신 등에 대한 금지 규례이며, 노인을 공경하며 거류민들을 사랑할 것과 공평한 저울과 추의 사용에 대한 규정이 계속해서 언급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구분’해 놓으신 규례들을 준수하라는 내용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분해 놓으신 것을 존중하며 그 규정들을 일상의 삶에서 준행합니다. 마지막 절인 37절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끝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지식적 앎으로 생각하며 축적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삶속에서 행동으로 구체화시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한 날을 또 허락하셨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증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임을 직시하며 오늘도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준행해 나아간다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선순환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구분된 명령을 삶속에서 실행해 나가심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 모두에게는 큰 기쁨이 넘치는 복된 하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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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제사에 관한 책입니다. 제사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방법을 기록한 책이라 했습니다.
그 기록이 얼마나 자세하고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철저하게 써 있는지 어떤 면으로는 지겹기도 하고 어떤 면으로는 하나님이 너무 조잡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우리 인간이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지를 감히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며 우리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인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둘 간의 도저히 합치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며 건널 수 업는 간극입니다.
이 간극을 하나님이 길을 내시사 인간에게 살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이며 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고 자유를 얻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속제물(죄를 대신 지고 제사를 위해 죽는 동물)의 죽음, 피를 통해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을 살려내시는 그 부분이 하나님의 거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레위기는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이란 '나는 거룩하다, 나는 깨끗하다'고 하는 인간의 잘남을 증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은 늘 누구와 비교해서만 더 깨끗하고 더 의롭다만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거룩이란 비교대상이 없는 거룩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거룩은 인간의 것처럼 상대는 더럽고 상대는 좀 모자른 것에 비해 내가 더 낫다는 비교우위의 거룩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는 거룩이 아니라 자기도 의롭고 상대도 의롭게 만드시는 의라고 합니다.
롬3:23-26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란 예수그리스도를 속제물로 죽여 인간을 살려내시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그 거룩을 증명하셨고 또한 자기만 의롭다고 자랑하는 의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즉 거룩하게 만드는 거룩함이라고 하십니다. 즉 거룩이란 자기를 부인하여 상대를 살리고 상대까지도 의롭게 하는 혜택을 주는 거룩이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란 바로 이런 거룩입니다.
여기서 오늘의 레19장을 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바로 거룩입니다. 목적지가 거룩함입니다. 성경의 거룩에 대한 예를 찾아보면 그 의미가 구별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별은 바로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련되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궁극적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과 같아지며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이며 구별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같아진다, 하나님처럼 되어 구별된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 거룩에 대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며, 구별된다는 의미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고 정확한 개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4절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언뜻 보면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왜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 때에야 우리는 참으로 통합되고 일관성이 있는 신앙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가장 상식적인 것부터 시작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배이며 본질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거룩이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득도의 개념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부모를 경외하고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란 장소나 예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며 태도이며 중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거룩이란 자신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과 신앙고백과의 일관성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늘 그 백성의 내면과 중심을 원하신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말미에 등장하는 말씀이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가 붙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를 살려낸, 너를 죽음에서 일으킨, 너를 낳은,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말씀합니다. 자녀와 아버지되심을 늘,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의무조항이나 책무로서 숙제하듯이, 군대를 가야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 혈연관계로, 중심으로, 마음으로, 하나님과 부자지간을 맺은 본질과 성품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혈연관계가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서운 것은 힘이 세서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혈연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모든 명령들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니가 내 자식이라면, 니가 내 아들이기에 날 닮아야 하지 않겠냐, 말로만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가 아니라 너의 태생과 본질이 나를 닮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
9-10절은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해 좀 덜 거두고 일부러 남겨놓고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여지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나 포기하고 나의 이익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상대까지 살려내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11-14절에도 보면 도둑질이나 거짓 맹세나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해 이웃을 해하는 것입니다. 품꾼의 삯을 제 때 주지 않는 것도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를 착취하는 것이며 귀먹은 자와 맹인 즉 도움이 없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15-18절도 마찬가집니다. 재판할 때 가난하다는 것으로 손해를 입거나 부유한 자라고 하여 편을 들지 말고 즉 가진 것으로 기준을 삼아 판결하지 말고 이웃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여 즉 사기를 치거나 부당하게 빼앗아 상대의 희생으로 이익을 보지 말라,. 그리고 18절 마지막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은 사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거룩이 위대하며 높은 것입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사랑으로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의 권위와 명성을 포기하고 자기를 나누어주어 사람을 구원해내신, 절망적이고 소망이 없고 영적으로 가난하며 기갈하고 목마른 인생들에게 먹을 주고 마실 것을 주어 살도록 하시며, 도움이 필요한 자를 억압하지 않고 모른다 하지 않으시고, 조건으로 가진 것으로 소유한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시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해 낼 수 없는 인생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신 그 사랑의 아버지인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곧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나그네, 거류민을 내 자녀같이 여기고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너희들이 애굽땅에서 나그네요 종이요 노예로 있었기 때문이라, 그걸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의 처지도 동일하게 불쌍하고 의지할 데가 없고 소망이 없고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누구의 자기 권리 포기가 없으면 너도 결코 회생할 수 없었던 자다. 그런 너를 너의 아버지, 너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듯 너를 이웃으로 사랑한 것처럼 우월감이나 비교우위에 서는 태도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을 대하듯, 너의 자식을 대하듯 대우하고 받아주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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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잘 알려진 주제(벧전 1:15~16) 그리고 레위기 전체의 주제라 할 수 있는 명령으로 시작한다(2). 여기 열거된 내용들은 무작위로 나열된 것이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드러내고 살도록 마치 급행 관광처럼 보여주는 명령들이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본문은 거룩함과 사랑의 관계를 가르쳐준다.
2. 먼저 3~10절은 십계명을 대표하는 몇 가지 종교적 의무를 말함으로써 언약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 십계명의 세 가지 계명이 나오는데, 부모를 경외함(제오계명), 안식일을 지킴(제사계명), 그리고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다. 이 세 가지는 중요하다. 만일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지 않고, 가정에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며 언약의 증거(안식일)를 지키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머지 율법 조항들이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5절 이하에 화목제사가 나오는 이유는 화목제가 모든 제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것, 자신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 이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가 들어있는 제사다. 만일 이것이 믿음과 순종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셈이다. 마치 신약시대에 성만찬처럼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가난한 사람이 언약의 삶에 참여하도록 배려해야 한다(9~10). 밭의 모서리 부분을 수확하지 않음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배려해야 하는데, 이 모서리 부분을 얼만큼으로 정할지는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에 달려있었다. 화목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사람이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의 제사는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3. 두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 동족들에 대한 규정이자 언약 백성의 공동체에 대한 규정이다(11~18). 여기에는 이웃, 형제, 백성, 동포, 친구, 사람 등의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된다. 언약 백성은 서로를 향해서 정직해야 한다(11~12). 도적질, 거짓말, 사기를 치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진리의(참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 언약 백성은 착취하면 안 된다(13~14). 귀먹은 자는 듣지 못하고 눈먼 자는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들으신다. 그래서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하신다(14). 언약 백성은 또한 정의를 지켜야 한다(15~16). 재판에서의 공정함이 요구되고 험담을 해서도 안 되며(16a) 거짓 증거를 하면 안 된다(16b). 또한 언약 백성은 서로 미워하지 않으면서 잘못에 대해서 경고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17). 이것들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정리된다(18).
4. 세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합당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교도의 관행에서 구별됨으로써 거룩해져야 한다는 내용이다(19~31).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 합당한 구별을 행하셨다. 빛과 어둠, 땅과 바다, 밤과 낮, 동물과 사람 등의 구별이다. 섞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들은 음식과 정결 규례처럼 신약 시대에는 종결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영원한 진리를 보여준다. 영적 구별은 여전히 새언약 아래서도 요구된다. 동물, 식물, 옷감을 섞는 문제나 정혼한 여종과의 성적 관계, 가장 좋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규정들이 나온다. 하나님께 거룩하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노력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과실수를 심으면 삼 년 동안의 열매를 부정하게 여겨 먹지 말고, 사년차의 열매는 하나님께 드린 후에 오년차부터 그 열매를 먹으라고 하신다. 26~31절은 이교도들의 관행에서 구별되라는 명령들이다. 피채 고기를 먹는 일, 점을 보거나 예언을 하고 듣는 행위, 이교도 의식에서처럼 머리나 수염을 깎는 행위, 죽은 사람을 위해서 신체를 베어 죽은 사람에게 피를 주거나 자기 몸을 훼손하는 행위(몸은 하나님의 것이다), 딸을 신전 매춘부로 주는 행위, 귀신이나 무당에게 묻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모두 금지되었다. 오직 언약 백성은 안식일과 성소를 거룩히 지킴으로써 구별되어야 했다.
5. 마지막으로 32~37절은 모든 내용을 정리하듯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사람을 향한 친절과 공의가 드러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라는 명령이다. 여기에는 두 연약한 대상이 나오는데 노인과 그들 중에 거하는 외국인들(나그네)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외국인을 동족과 차별 없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끝으로 언약 백성은 공정하게 사업을 해야 한다(35~36).
6.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반영하고 살아야 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는 삶이다. 이 구약의 말씀들은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게 중요하고 유효하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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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9장은 성경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우리가 그리스도인 된 다음에 받게 되는 중요한 명령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복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18절에도 이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셨던 말씀입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또 하나의 명령은 거룩하라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2절 보십시오. ‘너희는 거룩하라’ ‘나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으면 우리도 거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것도 상당히 거룩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사랑하며, 거룩할 때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분부하신 거룩함의 법이고, 교과서입니다. 사랑하기가 힘들고, 거룩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지만 작은 것 부터라도 실천해 가면서 거룩한 삶을 사는것이 우리가 취할 자세입니다.
하나 분명히 기억해 두실 게 있습니다. 거룩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때 들어간다(마7:21)고 하셨는데, 거룩도 거룩한 폼만 잡고, 거룩한 말과 기도를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거룩은 내 삶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살 때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러지를 못했던 모양입니다. 아내를 학대하고, 얘들에게도 폭군이었습니다. 그러자 참다 못한 사모님이 이불 보따리를 들고 이사를 했는데 강대상 옆으로 이사를 한 겁니다. 당황한 목사님이 ‘당신 왜 그러냐!’ 물을 때 사모님이 왈(曰) ‘나는 여기 서 있는 당신하고 살고 싶다’
거룩은 철저히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고 행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레위기 19장에 보시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가 한번 보십시오.
3절 보십시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4절.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마라. 18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게 거룩한 삶인지 아시겠지요? 부모 공경하고, 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상 같은 거 만들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9절 부터 보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웃사랑은 다른게 아닙니다. ① 이웃을 배려하고, 도와 주는 게 이웃사랑입니다. 자세한 예가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들 와서 따 갈 수 있게 추수 할 때 좀 남겨두고 떨어진 낱알은 줍지 말라는 겁니다.
② 이웃 사랑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에게 피해주고, 힘들게 하면 거룩한 게 아닙니다.
11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3절. 네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말며. 16절.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일체 하지 말라는 겁니다. 힘은 들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한다면 피해 주는 일은 많이 줄어 들겁니다. 사람을 존중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함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거룩하기가 참 힘든 적자생존. 약육강식 사회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눈치 채지도 못하게 내 몸 안에 베어있는 거룩하지 못한 구습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생각 날 때 마다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야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 삶의 현장에서 잊지 말고 살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