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의 기술 2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려면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이에 따라 그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상대방의 힘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 내가 이것을 알고 깨닫고 이해하고 나면, 마치 공을 잡듯이 상대의 힘을 잡아챌 수 있고, 받아낼 수도 있다. 이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손과 발이 너무 빨리 오는데. 어떻게 잡고 제어할 수 있는가? 이 괴상한 아이디어를 보는 사람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한 가지 측면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엄청 이완되었기 때문이다. 이완되고 매우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엄청난 힘과 속도로 나를 공격 하려고 해도 그가 나를 때리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상대가 움직일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그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이 부드럽지 않으면 이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이완되지 않으면 결코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것은 태극권은 이완되고 부드럽게 되는 것이다.
추수에서 "상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다"는 단순히 상대의 신체적 움직임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가 움직일 때 나타나는 기운을 느끼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음양, 앞으로 또는 뒤로, 공격 또는 후퇴 등의 기운은 항상 동작에 선행한다. 선생님이 "임박함"이라고 부르는, 즉 동작의 선행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 있다.
태극권에서는 추수는 싸움이 아니고 싸움은 자기 방어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태극권에는 많은 무술에서 사랑받는 싸움의 자세가 없다. 동작에서 오직 상대의 기운에 대응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에 따르면, 싸우는 자세를 하는 것은 싸우는 계약에 서명했다는 뜻이며 어리석은 행동으로 "맞아도 싸다" 라고 했다. 싸움의 자세는 몸과 마음의 깨지기 쉬운 딱딱함이며, 부드러움과 중도로 나타나는 태극권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다.
잠재적인 싸움에 임한 전략은 전략이 없는 것이다. 몸은 편안해야 하고 마음은 중도적으로 즉 우주처럼 넓어야 한다. 폭력적인 의도나 폭력적인 본능을 투사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이 피하고 싶은 것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나의 기가 강하면 상대의 분노와 두려움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더 큰 기회가 있다. 강한 기의 위대함은 강도 같은 -강력한 자에게는 덤비지 못하고 약자와 장애인에게 끌리는 포식자의 본능을 가진- 놈들에 대한 최상의 보험이 된다는 점이다.
태극권 권가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마무리에 있다. 권가를 마친 후 다음 단계가 호신에 매우 중요하다. 다음 단계에도 태극권이 계속되는가? 아니면 균형 이 흐트려지고, 음양이 없어지는 쌍중이 되며, 마음이 흐트려지고, 기를 인식 하지 못하게 되는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미친 사람이 당신의 팔을 움켜쥔다. 두려움에 얼어붙고, 분노에 굳어지는가? 아니면 태극권사처럼 행동하는가? 마무리 후의 버릇이 여기에 답을 줄 것이다. 고양이처럼 걸어라, 체중을 밑으로 떨어뜨려라. 눈을 편안히 하고 머리를 어깨위에 편안히 놓아 신령한 기운이 백회에 이르도록 하라. 서 있을 때, 이완되지만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어 항상 준비되어 있게 하라. 체중이 양다리에 걸리면 쌍중으로 정체된 자세다. 앉을 때 털썩 주저앉지 말라. 선생님은 "의자 등받이는 외투를 거는 것이다. 쉬고 싶으면 누워라"고 말했다. 등을 곧게 펴고 발은 바닥에 대고 앉으라. 진짜 쿵푸는 의자 없이 앉아 있는 것이지만,
태극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초월적인 호신 능력에도 불구하고 손해보는 것, 나아가 항복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 있다. 어느 날 밤, 길가에서 한 고참 수련생이 칼을 든 강도를 당했는데, 강도를 만난 그녀는 지갑을 건네주며 신체적 상해를 피했다. 선생님은 그녀의 무저항을 칭찬하면서 “진정한 태극권사로서 행동했습니다, 나도 그 상황을 당했다면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돈은 결코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았다. 며칠 후 그는 조교에게 어떤 스타일의 칼을 시내에서 찾아보라 요청했다. 조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였는데 얼마 후 이겟이 구해졌다.
수업이 끝난 늦은 밤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에 갔고 몇 명의 고참들이 선생님이 무기를 살펴보는 동안 모여들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길고 가늘고 총검보다 약간 작은 사악해 보이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그것을 쓰기 시작했다. " 당신은 어두운 거리에 있고 누군가가 당신의 오른쪽 어깨 뒤로 접근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그의 진격선 상으로 들어가지 말고, 당신의 왼쪽으로 몸을 돌아 그와 마주 하세요" 그가 살짝 칼을 뻗으며 말했다. ”그가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가 깃털로 만든 총채를 들었구나 여기세요.“ 그가 우리에게 손등과 팔뚝으로 완전히 가려져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칼을 들고 서 있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는 당신이 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어디를 찌를지도 모릅니다.” 밑에서 쑤시고 위에서 내리치는 칼 잡는 법의 재빠른 변환을 시범했다. 이어서 귀에 가까이 단검을 들어 올리며 재빨리 뒤로 도약하면서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는 킬러같이 침착하게 서 있었다. "당신이 이것을 보여준 후에도 그가 여전히 싸우려 하면, 그는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죽어 마땅합니다."라고 살기를 띠며 말했다. 그것은 마치 쿵푸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지나갔다. 선생님은 칼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칼 쓰는 법 수업이 법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마도 선생님은 자신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더구나 여성을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다루기 어려운 문제라고 여겼을 것이다.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공격하는 상대를 한번의 손짓으로 멀리 던지는 것보다 호신에 있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려운 사건이 끝없이 나타나고 이상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생활속에서 직면하는 여러 종류의 공격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문제로 귀결된다. 태극권을 잘한다는 것은, 평소 직장이나 가족, 삶에서 초라해지고 버려지면서도, 십년에 한 번 누군가가 실제로 당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것에 대한 대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모험 영화와 쿵푸 영화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불균형과과 상대의 불균형의 상호 관계와 그 결과로 어려움을 겪는다. 당신의 힘센 주먹은 내가 저항하며 딱딱해지지 않는 한 내 가슴을 강타할 수 없다. 내 아내의 비난도 내가 깊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한 나를 화나게 할 수 없다.
자기 방어의 가장 효과적인 자세는 매일 수많은 "공격자"가 나의 균형을 깨뜨리기 위해 누르는 버튼을 제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두려움과 죄의식에서 이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십대들이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서, 핵무기가 모든 국가와 모든 민족과 종교, 하위 집단, 그리고 결국에는 이웃 블록 협회까지 소유하게 될 세상에서 태극권사를 양성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일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투사된 자신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방법을 연습하고 가르칠 것이며, 자기 방어의 진정한 비밀을 아는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