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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배 생각
-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 <문학과경계> 2005년 여름호 / 시집 『아배 생각』(애지, 2008)
*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한영대역 시선집 『안상학 시선』 등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인물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서화집 『시의 꽃말을 읽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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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밥상머리에서 발고랑내를 풀풀 풍기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툭 던지는 질문은 예사롭지 않다. 혈기왕성한 아들이 대꾸도 못하고 잠자코 아욱국에 밥 말아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콧바람 든 아들 앞에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세우고 툭 던지는 질문도 고수의 풍모가 엿보이지 않는가. 실망감을 포장한 당위의 불호령 한 마디 없이 두 마디 문답법으로 ‘나 자신을 알자!’ 돌아보게 하니, 저이는 동양의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저기 가신 뒤로 감감무소식인데도 거듭 가르침을 생각토록 하니 아배의 모습으로 온 참스승이 아닌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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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출신인 안상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아배 생각>에 실린 표제작은 시인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에 얽힌 추억을 정겨운 고향말에 얹어 노래한다.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하루는 시인이 모처럼 집에서 아버지와 겸상을 해 저녁밥을 먹게 되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말을 건네신다.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라고 아들이 말을 받자 아버지가 회심의 일격(?)을 날리시니,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아버지의 그 말씀 뒤로도 집을 비우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던 시인이 어느 날 저녁 역시 집을 나서다가 퇴근길 아배와 마주쳤다.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 방 먹이시니,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이기지 못한다.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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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 수박 서리도 하고 닭서리도 했던, 아직도 남겨진 추억들이 우리들의 가슴 한켠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음을 <아배생각>이 깨우쳐 주고 있다. 참말로 따뜻해서 좋다. 아득하게 헝클어져 있던 그 시절을 한 편의 흑백영화로 호명해 내고 있다는 것, 그지없이 좋다. 아버지와 아들이 밥상머리에 앉아 나누는 대화가 헐렁하면서 얼마나 평화스럽고 정겨운가. 퇴근길에 마주친 부자지간의 짧은 대화는 큰 울림으로 부정(父情)이 깊게 묻어 있다. 뭉클해진다. 하지만 아배는 지금 부재하다. 시의 끝행에서 배어나오는 시인의 아배에 대한 그리움이 두텁게 배어난다. 이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우리들도 잊고 있던 어린 날들의 추억들이 독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지 않을까. 아배의 따뜻한 말의 회초리가 그리워진다.
김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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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출신인 시인이 아배생각을 하면서 시를 쓰는 동안 제주출신인 나는 우리 아방생각을 하면서 시를 읽었다. 젊은 날은 일도 많고 핑계도 많으니 집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집이 된다. 시인은 시집을 내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곁에 없다고 썼다. 아배처럼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헤어진 사람들이거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썼다. 그래 맞다. 나도 그렇다 집에 있건 밖에 있건 아방소식은 어디에도 없다. 오래전에 집을 나가서 감감무소식이다.
오승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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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아버지 생각이 나게 하는, 웃음과 눈물이 묻어나는 시다. 아버지의 안동 사투리 속에 숨어 있는 해학이 시인 자신은 물론이고 이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연민과 그리움을 느끼게 해준다. 한데 읽을 땐 재미있는데, 다 읽고 나면 왠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반성과 회한과 그리움을 이렇듯 시 한 편에 고스란히 옮겨놓을 줄 아는 안상학 시인의 재치가 돋보인다.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바람 쐬러 나간다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건네주는 말씀은 그 자체로 시다. 그 어떤 시적 기교나 화려한 수사(修辭)보다 더 절절한 시구(詩句)다.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웃음이 나면서도 그런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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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한 때, 바람을 달고 산 경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마음속엔 언제나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도저히 집구석에 있을 수 없는 그 답답함. 하여 이 곳 저 곳에서 장차의 삶을 고민하고 또래들끼리 밤을 지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청춘을 바라보는 ‘아배’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외박’을 일삼는 아들을 이해한다. 시니컬한 부자(父子)의 대화 속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 있고 또한 무한한 사랑이 숨어 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면서 ‘감감 무소식’의 의미를 묻는다.
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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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이 말했지요. 하늘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라고, 시가 되는 세상은 가난하여 풍요롭고, 외로워서 온기가 있고, 높고 쓸쓸한 만큼 한없는 여백을 가진 세상일 것입니다.
저 밑바닥부터 아련하고 뭉근하게 가슴을 덥혀 오는 사람살이가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젊은 날의 집은 집 밖에 있습니다. 터질 듯 기운이 충천하여 발바닥이 닳도록 쏘다니다가 잠깐 눈 붙이는 곳이 집이었습니다. 방황은 젊음의 대가로 치러야 할 부채 같은 것입니다. 늙은 아버지는 넌지시, 아들의 잦은 외박에 대해 한마디 던질 뿐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온 세상을 집으로 삼던 아들은 아마 그 세상 한 귀퉁이에 제 조그만 집을 마련했을 것 같네요. 거꾸로 아배는 영원한 외박 중입니다. 낡음, 떠남, 부재(不在), 잊혀져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시간이 주는 선물들, 이것을 부정한다면 시인이 아니겠지요. 그러므로 시인의 세상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며 또한 사랑과 슬픔이 넘치는 복된 장소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 저절로 머금어지는 웃음이 좋았습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다정다감하진 않으나 아들에 대한 아배의 속 깊은 사랑과 신뢰, 곰살궂진 않으나 아배에 대한 아들의 묵묵한 그리움이 만드는 깊은 여백이 좋았습니다.
최은숙 청양 정산중학교 교사 / 김영호ㆍ이응인ㆍ최은숙 엮음 『선생님 시 읽어 주세요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제2권』(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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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듯이 젊은 날은 할 일도 많고 핑계도 많아 집에 있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이 더 많으니 집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집이다. 아들 얼굴보기가 하늘에 별보기보다 더 어렵다고 자식 그리는 아배의 무한한 사랑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뚝뚝한 우수개소리 속에 물큰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화룡점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배가 오히려 오래 전에 집 나가서 감감 무소식이라고 아배의 빈자리에서 무한한 그리움이 농담과 해학으로 버무려져 있어 남이 귀하고 잘나고 배부르다고 자랑하는 거 보다는 가난 속의 풍요로움이나 외로움에서 우러나는 정에 감동하고 훈훈해지는 오묘함이 이 시의 매력인가 싶다.
김광희 경북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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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을 밥 먹듯 하던 시인과 아배가 밥상 둘레에 함께 앉았습니다. 바람을 쐰다며 툭하면 집을 나서던 시인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배와 모퉁이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시인의 방황을 아배는 나무라거나 말리지는 않습니다. 다소 경상도식으로 무뚝뚝할 뿐. 다정다감하지는 않지만 아배의 익살스런 말투에는 시인의 방황을 돌려세우려는 그 애틋함과 깊은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의 곁에는 아배가 없습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이 시의 뒤편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울고 있는 시인이 보입니다. 그 아배의 살아생전 사투리를 우리도 다시 듣고 싶습니다. 회초리처럼 귓가에 착착 감기는 사투리 꾸중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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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발고랑내보다 더 고약한 것은 아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투박한 화법이다. 살갑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시비조인 아버지는 아들 하는 짓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다.
그런데 퉁명스럽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한 아버지와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아들의 대화가 어딘지 구수하게 다가온다. 안동고등어 굽는 냄새처럼 알맞게 익힌 안동 방언들이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바람처럼 살아온 아들에 대한 원망과 강한 애정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데면데면한 부자간에 오가는 말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말해 무엇하랴. 부전자전 곰살맞은데 없는 아들이긴 해도 아들 역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긴 매한가지다. 아무래도 시인은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 허구헌 날 외박만 하시는 아버지 고약한 발고랑내가 사무치는가보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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