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우시는 성령님
영국의 버비안 목사는 국왕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격과 신앙을 존경하는 감옥 안의 많은 사람은 늘 은혜를 받았고, 심지어 그들을 지키는 교도관, 소장 등 간수들도 항상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간수장이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저녁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시지요. 제가 모든 일은 수습하겠습니다.”
그때 버비안 목사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한편 버비안 목사가 눈엣가시였던 국왕은 그를 감옥에 보냈지만 그 미움과 분노를 삭일 수가 없어 직접 감옥에 있는 버비안 목사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때 너무놀란 것은 간수장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국왕이 간 뒤 간수장이 버비안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만 산 것이 아니라 저도 살렸습니다. 목사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습니까? 앞으로는 목사님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시고, 오고 싶으면 오십시오.”
이 세상을 후회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잘살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감동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면서 이 세상의 지식이나 이 세상의 어떤 통계, 예를 들어 ‘이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잘될 일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확실하다.’ 등의 결정들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게 되고, 피해로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까? 사람의 결정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모든 우주를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지혜, 성령님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지혜, 지식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영원히 후회함이 없고,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영원히 후회되지 아니하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안전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의 스승이 되고, 성령님이 우리의 부모가 되고, 성령님이 우리를 늘 도와주는 친구가 되고, 나와 함께하시는 목자가 되어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코린토1서 2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이 세상에 비밀이 한없이 많고, 알 수 없는 인간의 길이 무한대이지만, 성령님이 모르시는 일은 없습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인생이든, 어떤 자연, 우주에 있는 어느 세계이든 그것을 만드신 하느님이 모르실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인도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코린토1서 2장 13-14절 말씀을 들읍시다.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의 육적인 지혜와 지식은 영적인 세계를 모릅니다. 육의 총명함과 능력으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신령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을 아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식, 성령님이 주시는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도 알 뿐만 아니라 육의 세계도 압니다. 영의 세계도 잘살 뿐만 아니라 육의 삶도 평생 아픔, 불행, 실패가 없도록 영육을 모두 잘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늘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이요, 사도행전의 삶입니다. 사도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늘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고, 하라는 말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됐지 성령은 또 뭐냐?”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그것은 자기가 믿는다고 할는지 몰라도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아닐뿐더러 그 믿음은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식에 신부가 아무리 아름답게 준비하고 있어도 신랑이 오지 않으면 그 결혼식은 아무 의미가 없듯이 성령님이 내게 오시지 아니하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반드시 같이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성령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믿는 곳에 성령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배는 하느님께 올라가는 경배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에테오피아의 여왕 칸다케의 재정 관리를 하는 내시가 예루살렘에 와서 경배를 드리고 갔지만 성령님의 감동을 못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필리포스를 통해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필리포스야, 저 사람에게 가서 성경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쳐 주는데 내시의 눈이 열리고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에테오피아로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은 성령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그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자 성경을 받는 사건이 사도행전에 8장에 나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도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전달되는 봉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성령님이 오시게 되어 있고, 함께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성령님이 오시므로, 우리의 능력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므로 임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그것은 자기가 믿는다고 할는지 몰라도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아닐뿐더러 그 믿음은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1코린2,10)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