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b><font color=red size=5>루 브룩 (Lou Brock. Louis Clark Brock)</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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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yagooclub.hihome.com/maxmlb/hallfame/photo/loubrock.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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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출생 : 1939년 6월 18일. El Dorado. Arkan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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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 타 : 좌 -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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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연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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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 : 79.75% (총 395표중 315표 획득)</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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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blue>세기의 도루왕 !</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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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도루'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선수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MLB 팬들은 리키 헨더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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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 헨더슨은 2001년 9월 현재까지 통산 1395개의 도루로 ML 역사상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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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년 전에 MLB 팬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 답변은 어떻게 될까? 20년 전이라면? 아마도 당시의 MLB 팬들은 헨더슨이 아닌 다른 선수의 이름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답변한 선수의 이름은 바로 루 브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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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브룩은 헨더슨에 의해 기록이 깨어질 때까지 ML 최다도루 기록의 보유자였다. 그가 기록한 938개의 도루는 1991년까지 ML 최다도루 기록이었으며. 아직도 NL에서는 그보다 많은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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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윌스에 의해 도루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후. 1960년대와 1970년대 등장한 수많은 발빠른 선수들 가운데서도 브룩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베이스 위에서 어느 누구보다 빠른 선수였으며. 현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의 감독인 래리 보와가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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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브룩이 루상에 나가면 뛴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팀들은 그를 막는데는 항상 실패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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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브룩이 단순히 발만 빠른 선수였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투고타저가 극에 달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동했으면서도 8번이나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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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3023개의 안타를 기록해 당당히 3000안타 클럽에 그 이름을 올려놓은 뛰어난 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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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3번의 월드시리즈에서 0.391의 타율과 4개의 홈런. 15타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큰 경기에 강한 클러치 히터이기도 했다. 그가 월드시리즈에서 기록한 0.391의 통산타율은 70타석 이상 타석에 들어선 선수의 기록으로서는 ML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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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서 그리고 베이스 위에서 브룩은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는 공격 시에는 상대팀의 골칫거리였지만 수비 시에는 오히려 자기 팀의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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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의 수비는 거의 19세기나 20세기 초반의 선수들이 보여준 수준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그는 7시즌 연속으로 NL 외야수부문 최다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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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수비 실력이 그의 눈부신 공격력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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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blue>뛰는 야구의 부활 !</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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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yagooclub.hihome.com/maxmlb/hallfame/photo/brock_cub32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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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클락 브룩은 1939년 6월 18일 아칸사스 주의 엘도라도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황금의 도시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태어났음에도 그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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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 곧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고. 그는 루이지애나 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당시의 대부분의 흑인들처럼 브룩도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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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에게는 빠른 발과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었다. 고교시절 그는 야구와 농구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줬고. 그 덕분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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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 2학년 때이던 1958년. 브룩은 대학리그에서 무려 0.645의 타율을 기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시카고에서 벌어진 팬암 대회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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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대학을 졸업한 브룩은 시카고 컵스 팀과 '3만달러' 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그해 마이너리그의 세인트크라우드 팀에서 그는 0.361의 타율과 181안타. 117득점을 기록해 자신이 마이너리그에 있을 수준의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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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해 9월에 컵스 팀은 브룩을 ML로 불러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2년 시즌부터 그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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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시즌은 브룩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뜻깊은 해였지만. ML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시즌이었다. 1920년대 이전에는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이 가장 뛰어난 야구선수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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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야구는 발빠른 1번타자의 출루에 이은 2루 도루. 그 이후에 번트나 안타. 희생타 등으로 득점하는 패턴이었다. 그러나 베이브 루스의 등장 이후 감독과 팬들은 위험부담이 높은 도루보다는 파워있는 타자들의 한방을 더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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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으로 쉽게 득점할 수 있다면. 굳이 위험부담이 큰 도루를 시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때문에 도루의 중요성은 감소해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도루는 야구의 중요한 공격수단의 하나라는 위치를 거의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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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자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높아진 마운드로 인해 예전처럼 한방에 의해 대량득점을 노리는 야구는 더 이상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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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와중에 막강한 마운드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반면에 타력은 빈약했던 LA 다저스 팀에 모리 윌스라는 선수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그다지 위협적인 타자는 아니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빠른 발과 순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962년 시즌. 윌스는 타이 캅이 1915년에 기록했던 영원히 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96개의 도루 기록을 뛰어넘어 무려 104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NL MVP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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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스가 기록한 104개의 도루라는 기록은 사람들에게 바로 전년도에 로저 매리스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깬 것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다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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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해를 분기점으로 해서 도루는 다시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기술 중의 하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뛰는 야구의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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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blue>도루의 대명사 !</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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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yagooclub.hihome.com/maxmlb/hallfame/photo/bROCK_PASSES_WILL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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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은 1964년 시즌까지 컵스 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컵스에서의 브룩의 성적은 평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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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스의 등장으로 뛰는 야구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도 도루는 많은 감독들이 선호하는 공격방식은 아니었고. 때문에 컵스에서 브룩은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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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4년 6월 15일 각각 2명의 투수와 1명의 외야수로 이루어진 3대 3 트레이드에 의해 브룩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 유니폼을 입은 이후. 그가 가진 잠재력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카디널즈 팀의 감독이었던 존 킨과 킨의 뒤를 이은 레드 쇤딘스트 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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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이 가진 능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당시의 카디널즈 팀이 타력보다는 투수력에 강점을 가진 팀이라는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어쨌든 카디널즈에서 브룩은 마음껏 달릴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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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의 현란한 주루플레이는 NL 팀들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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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카디널즈에서 103경기에 출전한 브룩은 0.348의 타율과 33도루. 8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그는 7차전에서 3점홈런을 터뜨린 것을 비롯 3할의 타율로 맹활약해. 카디널즈가 양키즈를 꺾고 18년만에 월드시리즈를 차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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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듬해 카디널즈 팀은 투수진의 붕괴로 7위에 그치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지만 브룩의 활약은 여전했다. 그는 182개의 안타와 107득점을 기록했고. 도루는 63개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해 무려 94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윌스의 벽에 가로막혀 도루왕 타이틀을 따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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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실패했다. 1966년 시즌에도 카디널즈의 부진은 계속되었지만 브룩은 이해 74개의 도루로 윌스를 제치고 처음으로 NL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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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1974년까지 그가 도루왕 타이틀을 빼았겼던 것은 1970년 단 한번밖에 없었고. 이 기간동안 평균적으로 100득점 이상. 19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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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시즌. 레드 쇤딘스트 감독이 이끄는 카디널즈 팀은 지난 2년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NL 우승을 차지했다. 에이스 밥 깁슨의 여전한 활약과 떠오르는 신성 스티브 칼튼 등 마운드의 힘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에서 이적해온 거포 올란도 세페다의 활약에 힘입은 바 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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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카디널즈 우승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도 브룩이었다. 그는 자신의 최고기록인 21홈런과 206안타를 기록했으며. 113득점으로 NL 득점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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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2개의 도루는 당연히 NL 1위의 기록이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그는 0.414의 타율과 7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팀이 3년만에 월드시리즈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이듬해 브룩은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NL 도루왕을 3연패하는데 성공했으며. 92득점과 184안타를 기록해 팀이 NL를 2연패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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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도 무려 0.464의 타율과 2개의 홈런. 7도루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카디널즈 팀은 결국 3승 4패로 패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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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브룩의 나이는 이제 30살이 넘었지만 그의 실력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타격은 더욱 더 정교해졌다. 1969년까지 브룩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던 것은 단 1번밖에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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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의 좋지 않은 선구안 때문이었다. 브룩은 당시 NL 최고의 1번타자이기는 했지만. 선구안에 있어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선수여서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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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30대에 접어들자 삼진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지만 반면에 볼넷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 덕분에 그는 1970년에서 1976년까지 0.297에 그친 197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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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시즌 보통 선수들이라면 체력의 한계를 느낄만한 35살의 나이였지만. 브룩의 실력은 이해에 절정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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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부터 "나가면 뛴다." 라고 할만큼 그의 도루페이스는 절정에 다다랐고. 결국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른 9월 10일. 모리 윌스가 1962년에 기록한 104개의 ML 최다도루 기록을 경신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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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록한 105번째의 도루는 46년만에 깨진 NL 통산최다 도루기록이기도 했는데. 1910년대와 1920년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전설적인 도루왕이었던 맥스 캐리가 1928년까지 기록했던 738개의 NL기록을 경신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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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는 모두 118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이것은 1982년 리키 헨더슨에 의해 깨어지기 전까지 ML 단일시즌 최다도루 기록이었으며 (19세기에 NL가 아닌 다른 리그에서 기록한 기록은 제외 !) 아직까지도 NL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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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브룩은 NL MVP에 강력하게 도전했으나 21홈런과 111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끈 LA 다저스의 스티브 가비에게 아깝게 밀려 MVP투표에서 2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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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시즌에도 브룩은 56개의 도루를 기록했으나 다저스의 데이비 로페즈. 신시내티 레즈의 조 모건 등 신예들에게 밀려 11년만에 NL 도루부문에서 2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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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해 8월 24일에 800번째 도루를 성공시킴으로써 타이 캅 이후 최초로 8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이듬해에도 그는 56개의 도루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37살의 나이로 인한 체력저하로 더 이상 도루왕 타이틀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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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시즌 브룩은 38살의 노장이었지만 여전히 빠른 발과 노련한 베이스러닝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까지 그가 기록한 도루 숫자는 865개로 타이 캅의 ML 기록에 불과 27개 차이로 접근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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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고. 예상대로 그해 8월 29일 통산 893개째의 도루를 기록함으로써 49년만에 새로운 ML 통산도루 기록을 경신했다. 드디어 루 브룩이 ML 역사상 최고의 도루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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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blue>그 이후.....</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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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도루기록을 경신하고 난 이듬해인 1978년.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진 브룩은 데뷔 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타율은 0.221에 그쳤고 트레이드마크인 도루도 17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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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에게 은퇴를 종용했으나 브룩은 떠밀리듯 은퇴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은퇴를 보류했다. 그리고 맞이한 1979년 시즌 브룩의 나이는 40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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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년시즌 최악의 부진을 맛본 브룩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해 그는 0.304의 타율을 기록했고. 그해 8월 13일에는 시카고 컵스의 데니스 램프를 상대로 3000번째 안타를 기록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스탠 뮤지얼과 같은 3000안타 클럽의 멤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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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즌을 마칠 때까지 23개의 안타를 더 기록한 후. 그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19년의 ML 경력을 마감했다. 이때까지 그가 기록한 도루 숫자는 938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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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은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미 1965년부터 세인트루이스에 '루 브룩 소년클럽 (Lou Brock Boys' Club)' 을 조직해 청소년 선도에 힘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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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로로 1975년에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룩이 은퇴한 후 카디널즈 팀은 그의 등번호 20번을 영구결번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브룩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격을 얻은 첫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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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9.75%의 지지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후 그는 'Broc - World Products International' 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며. ML와 청소년 선도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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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red>주요수상경력</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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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NL 올스타 6회 (1967. 1971. 1972. 1974. 1975.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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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도루왕 8회 (1966 - 1969. 1971 -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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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득점 1위 2회 (1967.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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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red>통산기록</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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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통산타율 0.293. 3023안타. 149홈런. 900타점. 1610득점. 938도루</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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