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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불국사 吐含山 佛國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 김대성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주요건물들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복구된 것이다. 。 불국사에서는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뉜 불국토를 만나게 된다. 불교적인 해석을 하면, 。 대웅전 영역은 법화경을 근거로 석가여래의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을,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경에 근거해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極樂世界)의 불국을, 비로전 영역은 화엄경에 근거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진리의 빛을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불국을 나타낸다고 한다. 가장 낮은 백성, 가장 고통 받는 자를 돌보는 관세음 보살은 가장 높은 관음전에 머문다. 。 이들 네 영역은 각각 그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극락전이 있는 아미타 영역이 가장 낮으며 이곳에서 건물 하나 높이로 석가모니의 세계인 대웅전이 있고,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 불국은 대웅전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있는 관음전은 사바불국인 대웅전에서 낙가교라고 하는 계단을 올라 불국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구품연지요람'에는 극락전이 대웅전보다 낮은 곳에 지어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월산스님 부도탑 。 ' 크게 죽지 않으면 결코 크게 살 수 없다.' 。 일생을 돌고 돌았으나 한걸음도 옮긴 바 없나니 본래 그 자리는 하늘 땅보다 먼저이니라 廻廻一生 未移一步 本來其位 天地以前 - 월산스님 임종게 - 。 월산이 입적하자 그와 막역했던 당시 조계종 종정 월하(月下) 화상은 곡배(哭拜)하고, 그 영전에 열반을 <축하>하는 법어를 설했다. 。。 오호라! 월산 대종사이여! 산 위의 달이신가, 달밑에 산이신가. 본래 산과 달이 둘이 아니니 어찌 분별이 있으시겠습니까. 거래가 없고 생멸(生滅)이 끊어진 자리로 돌아가시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 일월(日月)도 곡혈(曲穴)에 불시광(不施光)하고 청풍(靑風)도 해저(海底)에 불양파(不揚波)라 생(生)도 이러하고 사(死)도 이러하다. 농인야창호가곡(聾人也唱胡家曲)하니 호오고저(好惡高低)를 총불문(總不聞)이라. 토함산 위에 달 밝으니 불국정토에 만인이 춤을 추도다. 청운교, 백운교 차안에서 피안(수미산)으로 바로 오르는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는 길고 높아 힘이드는 자력신앙을 의미하며, 타력신앙으로 불국정토(극락세계)에 들어가는 안양, 칠보교는 자력신앙보다는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청운 백운교보다 낮고 짧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안양교,칠보교 。 안양 칠보교를 건너서 오른 아미타불 극락정토에서 사바세계인 대웅전 영역으로 오르려면 또 다른 수행을 의미하는 다리를 건너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다리(계단)가 48대원교이다
극락정토에서 정진수행을 하면 부처님이 되는 긍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불국사의 창건 。 한편, 불국사 사적기(事蹟記)에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刱)되었다고 한다. 。 이 기록들로 미루어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건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여지나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 그동안 불국사 사적이나 불국사고금창기는 기록의 오류가 많이 발견되어 신빙성이 떨어지므로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김대성이 창건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웅전 앞 석등 신라석등의 양식발달사상에서 전형양식(典型樣式)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전하는 대표적인 석등이다. 전체적으로 8각형의 평면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8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불국사 극락전 앞 석등과 더불어 현 위치에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석등이다.
다보탑, 석가탑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고 가운데에 석등이 있어 대칭 속에서 비대칭을 형성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고 쌍탑식 가람배치로는 특이하게 탑 모양이 다른 것은 경전에 충실히 따맀음을 보여준다. 즉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의 세계를, 다보탑은 법화경에 따른 과거불인 다보여래의 상주처를 각각 상징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 석가탑 [국보 21호] 석가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석가모니불을 탑의 양식으로 상징하여 불국사에 세워졌다고 한다. 석가탑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무영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가탑에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이 있습니다. 다보탑 [국보20호]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과는 매우 다른 이형 석탑이다. 불국사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2개 탑이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 중 동쪽 탑이다. 불국사 다보탑은 조형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통일신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다보탑은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의 만남을 현실공간에 탑으로 나타내었다, 。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사리함의 유물들은 모두 일본으로 몰래 밀반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보탑의 사자상 기단부의 네 마리 사자상 가운데 세 마리가 사라졌으며, 하나의 사자상은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나머지 두 사자상은 행적을 알 수가 없다. 무설전(無說殿) 무설전은 대웅전의 바로 뒤에 있는데 불국사 고금창기의 기록을 빌면 불국사의 여러 건물 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신라 문무왕10년에 왕명으로 세우고 법화경을 강의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한 751년보다 약 백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고 할 수가 있다. 무설이란 법을 설하는 도량이지만 곧 설해지는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절대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은 우리 나라 최대의 맛배지붕으로 건물이 재현되어 서있다. 。 능가경에 '손가락으로 허공에 떠 있는 달을 가켰으면 달을 쳐다 보아야지 왜 손가락만 보느냐?'라는 구절이 있는데, 눈에서 달까지가 공부의 전 과정 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까지의 과정이 유설이고 손가락 끝에서부터 달까지의 과정을 무설의 과정으로, 설명이 없고 실체가 보이지 않아 깨달음으로 깨쳐야하는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공부가 바로 무설이기 때문에 무설전이라고 한다고 한다. 관음전 。 관음전은 그 사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통례이며 불국사 관음전도 불국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관음전을 높은 곳에 짓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머물렀던 곳이 남쪽 바다에 솟아있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으로 바위 절벽으로 된 높은 산이었기 때문에 사찰내에서 가장 높은 곳을 선택하여 전각을 지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다만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배치일 뿐이다. 。 볼관(觀) 소리음(音)자를 써서 관음이라고 한 것은 어머니가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서도 배가 고픈지 오줌을 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이 고뇌를 당할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만 듣고서도 그 음성을 관하고 고뇌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하여 관음(觀音)이라 한 것이다. 비로자나불 [국보26호] 비로자나불은 화엄신앙의 주불이며, 모든 부처와 보살 가운데 최고의 부처이며, 석가모니불조차 비로자나의 현신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래서 대웅전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배치된 것으로 보여진다. 。 두 손은 가슴 쪽으로 올려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우견편단으로 법의를 입고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다. 지권인은 본래 밀교에서 금강계만다라의 주존인 대일여래, 즉 마하비로자나가 취하는 수인으로 이때 대일여래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영락으로 장식한 보살의 형태로 표현되는데, 이 불상처럼 나발이 있는 육계에 부처의 형상으로 지권인을 한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지권인과 달리 오른손은 아래로, 왼손은 위로 올라가 극락전의 아미타상처럼 두 손의 위치가 바뀐 것도 특이한 점이다. 。 이 사리탑의 높이는 2.06m로 외형은 석등과 비슷하다. 독특한 형태의 이 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05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33년 환수하여 이곳에 세웠다. 극락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국보 제27호) 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의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은 가사를 양 어깨에 걸치는 통견이 보통이나 극락전의 아미타불은 편단우견을 하고 있으며 대좌가 없다. 。 아미타불은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모시지만 불국사 극락전의 아미타불은 협시불을 모시지 않고 독불로 좌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위방초제경 爲訪招提境 송간자취중 松間紫翠重 청산반변우 靑山半邊雨 락일상방종 落日上方鍾 어여거승연 語與居僧軟 배수고의농 杯隨古意濃 퇴연일탑상 頹然一榻上 상대빈봉송 相對鬢髼鬆
그대 위해 초제(절) 경계 찾아드나니 솔 사이에 붉고 푸른 빛 겹겹하여라. 푸른 산 반 쯤 하여 비가 뿌리고 해 지는 윗절에는 종소리 나네. 스님과 나누는 이야기 부드러운데 술잔은 옛 정 따라 무르녹나니 술에 취해 한 자리에 주저앉아서 서로 마주보니 귀밑털이 희끔희끔하네 김종직 月圓不逾望 。
월산선사 법어 불국사의 ‘불국’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 중생들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차안(此岸)이라고 한다면, 부처님의 나라 불국토는 피안(彼岸)으로 부른다. 온갖 번뇌와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차안의 세계에 비해 피안의 세계는 정토(淨土) 그 자체다. 。 그래서 사바세계의 불자들은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더 나아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차안의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불국사는 이러한 신라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반영된 사찰이다. 이곳이 곧 불국토라는 정토사상의 실현을 간절히 표현하고자 했으며 절의 이름도 부처님의 나라 곧 '불국(佛國)'이라고 지었던것이다. 이러한 신라인들의 염원은 불국사의 전체적 가람 배치를 통해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불국사는 차안과 피안의 세계를 한 공간 속에 표현해 놓고 있으면서도 석축과 다리(청운교,백운교), 연못(구품연지) 등을 통해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두 세계를 명확히 구분해 놓고 있으며 사바세계에서 불국토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는 의미로 거기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계단(다리)이나 연못 등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다. [다음백과, 한국석불문화연구회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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