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에 목말라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쾌락에 미쳐있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끊임없는 연예와 오락, 여가생활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강도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오락 정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현대인들을 정신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까?
어떤 면에서 오락은 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수천 수백만의 사람들이 열중해 있으니까요.
오락이라는 단어자체의 기원을 살펴 봅시다. 영어로 오락(Amusement)의 기원은 프랑스에서 왔습니다. 그 의미는 "생각하거나 묵상에 빠지지 못할 정도로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다"라는 것입니다. 여가시간(pastime)도 그 단어 자체가 잘 설명해 줍니다. 그 말은 시간을 죽이면서 하찮게 소비해 버린다 라는 것입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 버릴 수 있도록. 또한 여흥(Entertainment)이라는 단어의 근원은 집중을 분산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일상적이며 현실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여흥, 오락, 여가시간들은 우리를 정신없이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안에서 세워져있는 진리와 삶의 진실들로부터 멀리 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만일 여흥이 그 처음 목적 즉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그 두 번째 목적, 사람들을 행복으로 분주하게 만드는 것에 실패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의 오락에 도취되어 있지만 오늘날처럼 불안하고, 만족이 없고, 특히 불행한 시대는 없습니다. 가난에서는 해방되었고 인생의 모든 직종에서 수많은 기회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오락들에 도취되어 있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행복하지 못한 시대가 있었을까요?
오락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늘 공허한 마음을 남깁니다. 오락에 의존하면 할수록 그 공허감은 더 심해집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불행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 시스템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먼저 쾌락에 굶주림부터 시작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는 쾌락의 마니아로, 그 다음에는 쾌락에 지친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더 나쁜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오락을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여 죄와 재난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오락에 미끄러져 간 것입니다.
사단은 자유주의 교회에서 끝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가운데 진리가 여전히 선포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라는 말씀이 있음을 알고 또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도 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락과 쾌락이라는 우상의 희생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차례차례로 교회 일원중 하나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교회 안과 밖에서)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즐겁게 만들고자 합니다. 한 단계 넘어가서 오래되고 진부한 복음의 메시지는 그 강조점이 회심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점차적으로 기도시간이 가정에서 사라지고, 아이들과 경건서적을 함께 읽는 일이 줄어들며, 영적인 문제로 대화하는 가정들이 없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진지함과 심판과 영원에 대해 경험하는 것에 싫증이 났습니까? 우리는 걱정 없이 웃고 즐기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이 인생을 가볍게 다루신 적을 본적이 있습니까? 반대로 늘 깨어 있으라, 다시 말하노니 깨어 있으라고 말하십니다.
천성적으로 우리는 깨어서 주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가도 죄를 안 지을 수 있을 것인가?"이지 결코 "얼마만큼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모든 악의 모습에서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특히 현대의 오락의 중심부에는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97%의 미국인들 집에 설치되어 있고 91%의 프로그램이 순수하게 오락을 위해 제작되고 있습니다. 오락에 중독되고 텔레비전에 중독된 것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시각적인 것에 홀려 있습니다. 저녁시간에 아내가 집을 떠나 있지 않으면 100명중 95명이 TV를 보며 시간을 씁니다. 그리고 85%의 남편도 같이 본다고 합니다.
10대 청소년 중에는 80%가 부모님들의 본을 따르며 75%의 아이들은 TV에 정신없이 빠져든다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에서 텔레비전의 위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세가지 관점에서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 중독된다고 봅니다. 첫째는 시간, 둘째 죄악, 셋째 절제입니다.
첫째로 시간입니다. 평균적으로 TV를 보는 사람들은 하루에 5시간 정도 본다고 합니다. 미국의 청소년이 65세가 될 때까지 계산해보면 총 14년의 시간을 TV보는데 소비한다고 합니다.(통계에 의하면 교회와 주일학교, 소요리 문답 시간 모두 열심히 참석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년 정도 걸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에서 3세-5세 되는 아이들은 매주 54시간을 TV를 보며 지낸다고 합니다.
이는 이 아이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64%에 해당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는 17세까지 11,000시간을 학교에서 소비합니다. 하지만 22,000시간을 TV를 보는데 허비합니다. 어른들은 한번 TV를 시청할 때마다 평균 그 자리에서 3시간정도를 연속하여 시청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2시간정도를 마치 자리에 붙여 놓은 것처럼 연속으로 시청한다고 합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평균 미국사람들은 인생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TV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심지어는 직장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귀한 시간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보내는 사회가 되진 않았습니까?
두 번째로 TV는 죄악의 홍수입니다. TV는 십계명 모두에 대해 시청자들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1계명: 하나님 보다 우선시 되는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현대인들은 TV에 중독되어 하나님보다 우선시 합니다.
2계명: 현실적이지는 않으나 실제적인 의미에서 TV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우상의 이미지를 새겨 놓습니다.
3계명: TV는 그 시청자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남발하는 것을 듣게 합니다. 신성모독적인 언사가 남발하여 결국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이 됩니다. TV 시청자 어느 누구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말들을 듣고 볼 때, 그들을 향해 죄목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4계명: 안식일조차도 TV를 끄기에 충분히 거룩하지 않습니다. 만일 적은 수가 그래도 양심상 절제한다 해도, TV를 향한 그들의 욕망과 정욕은 주일에도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5계명: TV는 부모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점차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반항적인 아이들에 대해 멋지고 훌륭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가정생활, 권위에 대한 존경, 정부에 대한 순종 등은 모든 프로그램마다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6계명: 살인하지 말지라는 계명대신 한 통계에 의하면 아이가 14살이 되기까지 그 눈앞에서는 적어도 18,000번의 잔혹한 살인과 폭력행위가 비춰진다고 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5세부터 13세 어린아이들은 매년 1,300번의 살인행위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살인, 미움, 폭력적 행위와 언어들은 이제 일상적인 행동양식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아이들의 프로그램에는 38건의 폭력적 표현이 시간마다 연출됩니다.(성인 프로그램은 20건) 뉴욕시의 판사는 평생 십대소년들의 비행과 범죄를 판결했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TV에서 범죄의 동기를 찾았다고 합니다. 다른 판사는 말하기를 "부모님들께 말씀드립니다. 한 시간의 TV시청은 어린 아이들에게 당신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범죄와 반항, 섹스, 스마트한 속임수를 가르칩니다."
TV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문제는 실상 그 폭력의 대가에 대해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인자의 영혼에 자리 잡게 되는 죄의식과 파탄에 빠진 가정, 고아가 된 아이들, 만원이 되는 병원들 그리고 고요한 저 무덤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나타나는 폭력은 순전히 비현실적입니다. 그들의 영웅들은 부서져서 산산조각이 되었다가도 조금 있으면 다시 나타납니다. TV는 조작되고 미화된 폭력을 보여줌으로써 실제 폭력의 댓가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하며 오랜 기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TV를 재현하며 놀다가 발생된 수천 건의 비극적인 예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7계명: 미혼남녀들의 성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TV를 시청하면서도 이 7계명에 대해 순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 시간에 3번 이상의 미혼 성관계가 나타나는 TV를 보면서 순결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상황과 대화 속에서, 그리고 노출이 심한 의상들과 제스처 행동들은 7계명에 대항하여 짓는 죄악의 즐거움과 수용성을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8계명: TV 연예인들이 시청자들 앞에서 훔치는 장면은 매 시간마다 나타납니다. 수천 건의 절도와 도난사건들이 TV에서 방영된 히어로들의 계략을 본떠서 행해집니다.
9계명: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를 하는 것은 일상적이며, 대수롭지 않고 텔레비전 쇼의 평범한 광경입니다.
10계명:'탐냄'은 TV시청자들의 즐거운 단어입니다. 계속적으로 시청자들은 연속된 광고를 통해 끊이지 않는 사치와 허영의 홍수 속에서 그것을 손에 넣어야 행복해 진다는 무언의 암시를 받습니다. 그들은 늘 자신들이 갖지 못한 무엇인가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됩니다. 프로그램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내는 것은(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 드라마의 대표적인 주제입니다.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TV는 죄를 영화롭게 합니다. TV에서 유일하게 죄로 다루는 것은 윤리입니다. TV는 죄를 찬양하고, TV를 정당화하고 수만 번의 반복에 의해 시청자들의 죄에 대한 감각을 최소화 시켜버립니다. 반복적으로 전통적 가정의 삶은 구닥다리로 치부됩니다. 아버지상은 죄악에 의해 히어로이즘(영웅주의)로 둔갑해 버립니다. 어머니상은 저급한 것으로 버려집니다. 순종은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기에 핀잔을 사고 맙니다.
TV는 죄악의 카탈로그가 되었으며 모든 연구결과들이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TV는 악마의 교실이 되었습니다. 악마는 간교하기에 양심과 타협하기 위해 약간의 종교성과 윤리성을 가미시킵니다. TV는 욕망을 부추기고, 윤리를 왜곡시키고, 살인을 스릴있는 쾌감으로, 불륜을 사랑으로, 나체와 노출을 미인의 기준으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죄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합법화 시키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절제, 이 부분에 와서는 중독이 더 심해집니다. 수천의 집안싸움이 어떤 프로를 볼까에 대해 일치되지 않기에 일어납니다. 미국가정에서는 35%의 식사시간이 TV앞에서 이루어집니다. 밤에는 수천의 부모님들이 곧 방영될 프로가 아이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죄악에 굶주려 있기에 종종 아이들이 함께 보게 보도록 놔둡니다. 결국 절제력을 잃는 것입니다.
TV 시청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종종 이상적으로 얘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1) 우리의 천성은 죄악을 사랑하며 귀는 죄를 듣고 싶어하며 눈은 죄를 보고 싶어합니다. 바로 이것이 TV의 문제입니다. 결코 TV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지요. TV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가를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사지 않아도 우리 마음속에 이미 충분한 "TV"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TV 위에 설 수 없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아주 저속한 것들을 원하기에 이러한 TV에 대해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2)누가 프로나 광고를 보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3) TV를 일정기간 소유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죄에 의해 담대해 지면서도 절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TV에 대해 절제할 수 없습니다. TV가 사람을 조종합니다. 많은 연구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4년 전 온타리오의 신문 첫머리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TV를 버리면 500달러를 줍니다." 이 기사는 디트로이트 시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TV를 절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실었습니다.
250가정이 과학적으로 인종과 사회계층에 따라 선별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TV를 보지 않으면 500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30일이 지난 후 에는 TV를 다시 꺼내서 500달러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250가정 중에서 50가정만이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이 중 몇 가정이 30일의 시험기간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8가정입니다. 나머지 42가정은 500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한 가정은 29일째 되는 날 TV를 꺼내 틀고 말았습니다. 성공한 8가정은 인터뷰결과 가족간에 돈독한 유대관계가 TV를 없앤 결과 생겨났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섯 명의 아버지들은 말하기를 처음으로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한 아버지는 말하기를 "제가 TV를 없앤 첫날은 바로 25년 만에 우리 거실에서 살인사건이나 사이렌소리, 총소리, 웃음소리효과가 들리지 않은 첫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8가정 중 7가정이 TV가 없어지자 더 큰 혜택이 생겨났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8가정 모두 TV를 다시 꺼내왔습니다"
시청각 중독. TV에 대해 많이 알수록 해는 더 많습니다. 이는 노예생활입니다.
(1)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됩니다. 시편 119편에 주님은 우리의 눈을 허영으로부터 돌이키라고 말합니다. 성경 전체가 텔레비전의 끝없는 죄 목록에 대해 정죄합니다.
(2) 텔레비전의 죄악 됨은 우리의 영혼을 손상시킵니다. 모든 세속적이며 종교적인 연구는 TV의 모든 효과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한 자손들입니다. 우리는 죄악에 미끄러지기 쉬운데 왜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TV를 통해 필요없는 죄악들을 더 공급하는 것입니까?
(3)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TV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된 가정생활과 교제를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TV를 당장 처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4) 텔레비전을 봄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양심과 다투게 됩니다.
(5)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읽거나 좋은 책들을 읽고 설교 테이프들을 듣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영혼과 당신의 가정을 위해, 당신의 양심을 위해 오늘 텔레비전을 처분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삶이 노예가 되기 전에 영구히 그렇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다윗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 눈에 어떠한 악도 두지 않기로 했으니, 네 눈을 모든 허영으로 부터 돌이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