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태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습니까?(마 9장 9절)
답]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레위로 나옵니다. 레위는 유대인 이름이고 마태는 로마인 이름입니다. 그는 세관에 앉아서 일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세리로 일을 했다는 것은 헤롯 안디바와 로마를 위하여 일을 하는 유대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세리들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면서 과도하게 부과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증오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보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일했고(유대인은 로마의 식민지 백성이었다) 그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육로로 운송되는 상품들에도 세금을 부과했을 것입니다(막 2장 13-14절). 마태는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거두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찾아가십니다.
[2] 주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마 9장 9절)
답]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행하셨는데, 그것을 마태는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가 앉아 있는 세관을 향하여 가십니다. 제자로 부르고자 하는 의도성을 가지고 갔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명령을 하십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같이 걸으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에 제자로 부르실 때 하시는 말씀으로 여러 번 나옵니다.(4장 19절. 8장 22절. 9장 9절. 10장 38절. 16장 24절. 19장 21절) 그러자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단지 한번 만나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행한 일도 모두 그만두고, 지금까지 누리던 것도 모두 그만두고, 예수님의 제자로 길을 걸으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는 일인데 분명한 뜻이 없으면 따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인 응답을 합니다. 순종하여 주님을 따릅니다.
[3]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마태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마 9장 10절)
답]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태는 자신과 같은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을 불러왔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로 알려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의식을 잘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회당에는 세리들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세리들이 회당에 들어가면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 함께 하시어 식사를 하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에 의해서 자신이 변화된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 식사 자리는 단순히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입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천국이 현재적으로 도래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사람은 현재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천국의 말씀을. 그 잔치는 말씀의 잔치이기도 하고, 친밀한 교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4] 바리새인들이 불만을 품은 이유는 무엇일까요?(마 9장 11절)
답]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하고 있는 식사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그들의 선생이 아님)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지 묻습니다. 그것은 비판의 질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리와 죄인들과 접촉을 가면 그 사람은 부정해집니다. 그런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것은 용납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하셨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파괴하신 분으로 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분노를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잔치에 함께 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잔치를 비판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5] 바리새인들의 비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마 9장 12-13절)
답] 예수님께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사람에게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시면서 호세아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13절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의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그들은 자기 의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자기 의 때문에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겼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잃어버린 자로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고 예수님께서 그 긍휼을 실제로 나타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으로 법을 지킨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인 긍휼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긍휼을 구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말씀을 읽었지만 그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구약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대한 의사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위대한 의사 앞에 나와 자신을 올바르게 진단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