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시
盛年不重來(성년불중래)-성년은 다시 오지 않고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하루에 새벽은 두 번 없으니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때를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라
歲月不待人(세월불대인)-세월은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역로학난성)-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잠깐의 시간인들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인가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연못가 방축의 풀은 아직 봄꿈을 깨지 못했는데
階前梧葉己秋聲(계전오엽기추성)-섬돌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
도연명(陶淵明)
영웅이든 독재자든 박정희는 한국을 부자로 바꾼 지도자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웅(英雄). 독재자(獨裁者)”중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오늘날 한국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34개국 회원국 중 12위 경제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을 박정희보다 더 잘살게 한 대통령이 있나?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한반도(조선 대한민국)를 세계에 알린 지도자가 있나?
국민을 위한 혁명적인 정치는 없고 박정희가 깔아 놓은 멍석자리에서 생색내는
정치만 있을 뿐이다.
오늘날 GDP 3만 달러도 박정희 정권이 구축(構築)한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바탕으로 이루진 것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조선 22대와 정조(正祖)의 이산어록(李祘語錄)에 아래의 내용이다
君非民. 孰與爲國. 故曰君人者以百姓爲天. 民非食. 罔以資生.
故曰民以食爲天. 苟能畏己之天而重民之天. 則荷百祿祈永命. 實基於此.
백성이 아니면 임금이 누구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래서 임금은 백성(百姓)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다.
진실로 나의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의 하늘을 중히 여긴다면
백록(百祿많은 복)을 떠맡고 하늘에 천명(天命)이 영원하기를 비는 것이
이에 기초할 것이다.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신은 굶어가며 품팔이를 하면서
아들을 서울대학에 보내었다.
아들은 부모의 척추가 굽으면서 보낸 돈으로 3학년이 되었다.
장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도 생겼다.
여자 친구는 남자친구의 시골집이 궁금하여 부모님을 뵈러 가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가난한 집과 볼품없는 부모를 여자 친구에 인사시킬수 없다고 생각하여 거절하였다. 그러나 집요한 여자 친구로 인해 여름방학때 시골로 같이 내려갔다.
부모님은 일을 나가고 집에 없었다.
해가 질 무렵에 한 노인에 풀을 한 짐지고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그때 여자친구가 “저 어른이 아버님이신가요?” 하고 물었다.
아들은 “아니 우리집 일을 도우러 온 이웃집 일꾼 노인”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여자 친구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즉시 남자친구와 절교(絶交)를 하였다.
(이 내용은 약 40년전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메모를 하여 두지 않아서 출처를 모름)
어려운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는 이런 이야기는 실감이 나지 않고 반대로
궁상스럽게 청승떠는 말로 들릴 것이다.
필자는 진보주의 보수주의자도, 좌파도 우파도 이념이나 사상을 따지는 사람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상류층이나 지식인 계층도 아니다.
아주 평범한 국민이고 서울시민의 한사람이다.
필자가 무슨 정치 골수분자가 되어 “정치인 박정희를 옹호”하기 위한 말도 아니다.
필자가 살면서 실제로 경험한 사실을 말할 뿐이다.
6.25 한국전쟁이후 필자의 집이 너무 가난하여 도둑질을 제외하고 별별일 을
다했다. 두부장사 떡장사 어머님의 생선 도부(到付)장사 막걸리 밀주(密酒)장사 등등~~
당시 막걸리는 쌀이 귀한 때라 법으로 민간인들은 술을 못 담그게 하였다.
허가난 양조장 술을 사먹어야 했다.
필자가 1966년에 서울에 왔으니 53년이 되었다.
해마다 명절에 고향 부모님을 뵈려 가는데 1973,4년경 설 때인가, 아버님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고 보릿고개말도 안하게 되었고 특히 쌀 막걸리를 마음대로 담아 먹게되니
이제는 살 것 같다”
아버님이 술을 좋아하셨다.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벼 품종 개량으로 식량이 해결되자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금지했던 민간인에게 쌀 막걸리 제조를 허용하자 아버지는 그 술을 마시며 감격하셨던 것이다.
통일벼로 쌀 식량이 해결된 것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통일벼로 쌀 식량 해결은 “천지개벽”과 맞먹는 변혁(變革)으로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루에 죽 한 그릇으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설음을 모른다.
지금은 먹는 것이 남아도니까 자유니 민주니 근로조건이니 독재니 적폐니 별별 소리를 다하지만 배가 고프면 눈에 상상 되는 것은 사발위로 수북이 올라온 밥그릇 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역이기전(酈食其傳)에
王者以民爲天-임금 노릇을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民以食爲天-백성은 밥(食)을 하늘로 삼는다고 쓰여 있다.
衣食足而後知榮辱-입고 먹는 것이 풍부한 후에 영광과 욕됨을 알고
衣食足而後知禮義-입고 먹는 것이 풍족한 후에야 예의를 안다 고 하였다
사랑없이 돈으로 꾸려가는 부부는 흔히 보이지만,
돈 없이 사랑으로 버텨가는 부부는 물질 만능인 사회에서는 보기 어렵다.
한국이 먹는 것이 남아돌고 음식쓰레기통에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받지 않겠다는 북한에 억지로 쌀을 떠다 맡기는 넉넉함이 백년 이백년 전 부터가
아니다
불과 15~20년 전부터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자유니 민주니 하는 정치 구호 가지고는 생명을 유지 못한다.
“민주화”도 밥을 먹고 생명을 유지한 후에 찾는 것이다.
노동자의 파업도 회사가 존재하는 동안에 가능한 것이다.
유신독재든 영웅이든 좋든 싫든 우리는 박정희의 유산(遺産) 아래 살고 있다.
박정희는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끈 지도자인 동시에 독재·부패 대한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정희보다 나은 대안 있냐는 질문에 “이것이다”란 답변을 내놓은 지도자는
보지 못했다.
오늘의 한국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아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문기사를 모은 것이다.
농월
***********************
▲1999.12.28. 매일경제
박정희 정권 경제 각료들
장기영 경제개발 주도
남덕우 72년 8.3조치로 기업부실 해결
김학열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본궤도에 올려놓다
서석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후반기 경제개발의 주인공이다
신현학 총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낸 인물
나웅배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장예준 상공부 장관
사공일 재무부 장관
강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양윤세 동력자원부 장관
나웅배 5,6공 거쳐 문민정부까지 장수
서석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대단한 인물들이다
요즘 경제계는 이런 고급인물들이 없다
박정희는 이런 경제 인물들을 정파를 떠나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모셨다.
▲2005.01.31. 조선일보
박정희 사주
정사(丁巳)년, 신해(辛亥)월, 경신(庚申)일, 무인(戊寅)시가 나온다.
전형적인 금체질의 무사(武士) 팔자이다.
야무지면서도 칼을 뽑으면 반드시 적을 가격하는 스타일이다.
도끼(庚)와 회칼(辛)을 들고 고수들과 싸워야 하는 험난한 팔자이다.
칼에 묻은 피를 냇물에 씻으면서 왜 나는 이렇게 피를 묻히며 살아야만 하는가!
하고 한탄한다.
인신사해는 역마살인데, 역마살이 4개나 들어 있으면 잠시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전쟁터나 또는 난세에 앞장서서 총대를 메야 하는 팔자 센 운명인 것이다.
조용헌 원광대 교수
▲2009.10.26. 조선일보
박정희는 "가난은 내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했다.
박정희는 1965년 이승만 영결식 조사(弔辭)에서
"실정(失政)이 박사의 애국정신을 말살하지 못한다.
박사의 민족을 위한 생애 중 일부분일망정 전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2011.3.5. 동아일보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호(雅號)는 중수(中樹)다
중수(中樹)는 손문선생의 아호 중산(中山)이나
장개석의 아호 중정(中正) 중에 앞 글짜 중(中)을 본뜬 것으로
세계 중심 빛나는 나라를 세우 겠다는 뜻이다
▲2012. 5. 6. 한국일보
박정희는 다른 개발도상국 군사독재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그의 리더십이야말로
경제발전의 견인차였다. 산업화의 결과로 형성된 중산층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으므로
결국 그의 치세(治世)가 국가발전의 기폭제이자 민주주의를 예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박정희 시대의 인권탄압과 사회 양극화도 동시대 개도국들과 비교할 때
심한 건 아니었으며 5·16은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꾼 혁명에 가깝다
▲2012.07.09. 조선일보
왜 종북세력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원수로 삼는가
▲2013.01.07.조선일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한산했다.
누군가 방명록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다카키 마사오, 기억한다 그의 만행.'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때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다니고 일본군 장교로 활동할 때 썼던 일본식 이름이다.
좌파 운동권에서는 박정희가 친일파였다고 주장할 때 그를 이렇게 부른다.
▲2013.04.26 동아일보
5·16은 '쿠데타'… 하지만 대한민국의 오늘 만들었다
5·16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대한민국 일으킨 것 또한 사실, 산업화·민주화 위해 힘썼던 그 시대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2013.08.05.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의 슬로건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2013.11.13 동아일보
안희정 “박정희 전대통령 잘한 것 70% 잘못한 것 30% 功七 過三평가해야”
▲2013.11.22. 조선일보
유신반대로 형(刑)살았지만 박정희 대통령 공(功) 인정"
▲2013.12.10. 동아일보
김종필 5년만에 국회 찾아 “박정희 떠올리면 눈물이…”
▲2014.01.10.조선일보
'8·3 조치'를 만든 김용환은 당시 팀을 다시 소집했다.
밤샘 작업 끝에 1974년 1월 초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와 관련 사항에 관한 보고'
계획안이 마련됐다. 이른바 '1·14 조치'다.
당시 김용환이 박대통령 앞에서 낭독을 마치고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순간 문교부 장관
민관식이 소리쳤다.
"각하, 틀린 글자가 하나 있습니다.
'심기일전(心氣一轉)'이 아니라 '심기일전(心機一轉)'입니다."
오탈자를 수십 번 확인했던 김용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통상 우리가 쓰는 한자는 민 장관 말이 맞소.
그러나 기(機)를 기(氣)로 바꿔 쓴 것도 괜찮지 않소?
마음과 기분을 한번 가다듬자는 뜻인데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것 같소!"
김용환은 2002년 펴낸 회고록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에서 당시 상황을 이같이 술회했다. "경제 관료들을 휘어잡는 박 대통령 특유의 용인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노고를 치하하고 사기를 꺾지 않으면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도록 격려하고자 한 것이다."
▲2014.01.16.조선일보
40년만에 제자리 찾은 박정희 휘호 표지석
1968년 여의도 윤중제 공사 후 화강암에 남긴 '漢江開發' 친필…
시민제보로 샛강공원서 되찾아여의도 샛강공원에 방치돼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표지석이 40여년 만인 작년 7월 제자리인 여의도 윤중제로 돌아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4.04.15. 조선일보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 경부고속도로 건설
“정 사장,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구가 난공사라고 하는데…”
고속도로 공사현장 상황을 들어보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당시 현대건설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얘기를 건네던 박정희 대통령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
앞에 앉아서 얘기를 듣던 현장 작업복 차림의 정 회장이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이 모자란 데다 겹친 피로로 몰려오는 수마에 대책 없이 깜빡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대로 조용히 정 회장을 넌지시 바라고만 있었다.
몇 십초가 지났을까.
“아이고 이런, 각하 정말 죄송합니다!”
정 회장이 소스라치게 놀라 깨서 당황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니요 정 사장, 내가 미안하오,
그렇게 고단한데 좀더 자다 깨었으면 좋았을 것을.
역사적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놓고 두 사람이 함께 쏟았던 열정과 집념,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잘 말해 주는 일화이다.
▲2014.05.12 조선일보
박정희·장면에게서 본받을 '초연한 국가관'
박정희와 장면 이후의 집권자들에게서는 그들과 같은 초연한 국가관을 발견하기 어렵다.
오늘의 많은 정치인에게는 국가관이란 말 자체가 생소할 정도이다.
▲2014.08.29. 조선일보
"좋든 싫든, 우리는 박정희의 遺産(유산) 아래 살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이끈 지도자… 동시에 독재·부패 대한 책임자
박정희보다 나은 대안 있냐는 질문 '그렇다' 란 답변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근대 국가 기반을 닦은 정치인이다.
오늘의 한국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2014.09.06. 조선일보
박정희는 경제성장 전략의 주도 세력 형성, 정책 결정과 집행의 신속성 등을 위해
최고 인재를 공무원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을 외국에서 공부시킨 뒤 민생 현장에
내보내 성과를 내도록 독려했다. 관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아졌다.
일만 터지면 정부와 공무원에게 해결책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시민 스스로가 해야 할 소비자보호운동마저 관청이 하는 나라,
시민단체 활동도 정부 보조금으로 이어가는 나라가 됐다.
▲2014.09.22 조선일보
"현장 리더십 강조한 박 대통령… 지도 들고 직접 지방시찰 다녀"
"차지철 경호실장은 집이든 사무실이든 인터폰을 안고 살다시피 했어요.
혹시라도 박정희 대통령의 연락을 놓칠까 봐."
▲2015.01.20. 매일경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울 신당동 가옥이 오는 3월 일반에 전격 공개된다.
서울 중구 다산로36가길 25(신당동 62-43)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 가옥은 5·16 군사
쿠데타를 계획했던 역사적 장소로, 2008년 서울시 문화재 제412호로 등록됐지만
일반인 관람은 불가능했다.
▲2015.02.13. 조선일보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인혁당 사건' 때 부친을 떠나보낸 친구는 개인적인 恨은 간직해도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1965년생인 정청래 의원은 이승만 정권 때는 세상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탄압받을 나이가 안 됐다.
그런 개인적 체험 없이도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니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에 비유하는 걸 보면 그의 능력은
한쪽으로 몹시 발달했다.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를 히틀러처럼 보는 시각은 그쪽에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최보식 선임기자
▲2015.05.27. 조선일보
박정희와 박태준이 약속한 ‘철강 2000만 톤 시대’를 완전히 실현한 때는
1992년 10월 2일,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 만이었다.
생전의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지막 선물로 안겨준 제2제철소를 연산 1200만 톤
체제의 광양제철소로 완공한 그날,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합쳐
연산 2100만 체제를 갖추었다. 장장 25년 인생을 바쳐 박정희와의 약속을 실현한 그날,
박태준의 영혼에는 희열과 회한, 영광과 고통이 뒤엉켜 뜨거운 응어리로 맺힌 가운데
박정희 사후의 숱한 곡절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2015.08.10. 조선일보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을 박정희가 꽃피웠다"
(김용삼·북앤피플-이승만과 기업가시대)
▲2015.08.14. 동아일보
광복 70년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다
동아일보가 설문조사를 한 우리 사회 리더 70명의 평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늘의 한국 기초 다져
“산업화를 통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이 형성됐다.
▲2015.08.17. 조선일보
"박정희가 다리를 꼬고 앉아 구두 밑창에 구멍이 보여…
그는 "시간이 안 틀린다"며 '시티즌' 시계를 차고 있어"
자택의 거실에는 '갈충보국(竭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를 돕는다)' 액자가 걸려 있었다.
▲2016.06.22. 조선일보
박정희 前대통령에 재혼 권하자 "근혜 때문에…"
故 김재순 회고록에
▲2016.11.04. 조선일보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 시민강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했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겸 편집장이
'왜 21세기에 다시 박정희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정치는 정쟁으로 날을 새우고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핵무기로 무장할 북한의 군사력이 우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오늘날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열정, 그리고 소신과 집념이 다시 절실해지고 있다"고 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동호 캠페인전략연구소장
▲2016.12.01. 조선일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화재 방화범
1일 오후 3시 15분께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나 박 전 대통령 영정이 있는 추모관이 모두 탔다.
경찰은 현장에서 방화 용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2016.12.10. 동아일보
박정희 시대의 종언(終焉)
박정희, 이젠 역사에 묻자
▲2016.12.11. 중앙일보
박정희 흉상 훼손한 30대 경찰에 입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을 훼손한 최모(32)씨를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 4일 영등포 문래근린공원에 있는 박 전 대통령 흉상에
페인트를 칠하고 망치로 쳐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7.05.29 조선일보
박정희 英雄 만든 김재규… 10·26 없었으면 朴의 말년 추했을 것"
박정희와 민주주의 회복은 아주 숙명적인 관계다,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야수(野獸) 심정으로 유신 심장 쏴"
▲2017.07.13. 조선일보
정권 바뀌자 취소된 '박정희 100주년 우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행할 예정이던 기념우표 발행이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12일 우표발행심의위원회를 열어 오는 9월로 예정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2017.11.13. 조선일보
"난 파독 광부 태운 전세기로 1974년 베를린에 갔다
25세에 고교 2년 편입해 베를린 공대 박사가 됐다"
"우리 국민이 살아가는 기술을 박정희 대통령이 가르쳐줬다
과거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에 우리의 현재적 삶은 빚진 셈"
▲2017.11.14. 조선일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인데… 기념도서관에도 못세운 동상
추진모임 기증 증서 전달식에 반대단체 몰려와 "청산 대상"
서울시 "심의 거쳐야 설치 가능"
▲2017.09.21.조선일보
12년간 박정희 시대 조명한 명지대 포럼 100회 맞아
"1960~8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박정희 모델'은 단순한 정부 주도형이 아니라
국제 환경과 한국의 전통에 조응한 정부·기업·민간의 상호 유인적 협력 체제였다.
1990년대 이후 감속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은 '박정희 모델'을
업그레이드해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2017.10.25.조선일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과 유사하다고 평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히틀러는 대공황으로 위기에 처한 독일 대기업 집단을 살리면서 한편으로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는 일반 대중의 요구에도 부응해야만 했다"며
"국가와 대기업 집단이 결탁하면서 일반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압제적
방법 동원이 불가피했다.
▲2017.11.13. 조선일보
세계 곳곳 군사 정변 있었지만 혁명으로 승화된 건 '5·16'뿐
한국 발전 사례 세계가 공부했고 韓·日 관계 정상화는 대담한 결정
박정희, 14일로 탄생 100주년… 그의 업적과 허물 함께 성찰해야
복거일 소설가
▲2017.11.14. 조선일보
박정희는 공(功)과 과(過) 한쪽만 보려는 당파성의 최대 피해자"
박정희가 집권한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9년 1647달러로 급증했다.
수출은 4100만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났다.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은 자유무역시장의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1961년 국민의 63%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업사회는
1979년 63.4%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산업사회로 탈바꿈했다.
▲2017.11.14. 조선일보
박정희 시대의 공(功)과 과(過)
오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탄생 100년을 맞는다.
박정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융성한 이 시대를 연 지도자다.
그러나 지금 사회 분위기는 그의 공(功)을 기리기는커녕 적대적 증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를 발행키로 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취소했다. 새마을운동은 명칭마저 사라질 위기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100주년 탄생일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한다.
▲2017.11.16. 조선일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동상은 세우면서 박정희 동상은 왜 세우면 안되나
삽교천에 세우려던 볏단 든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일부단체 반대로 거적 쓴채 방치
▲2017.11.20. 조선일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은 왜 초라하게 끝났나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 공연장 입구와 로비
어디에도 플래카드가 안 보였다. 기념 촬영을 위해 설치해 두는 박정희 모형의
포토존(photo zone)도 없었어요. 출입문에 세워 놓은 안내판 하나가 전부였다.
공연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박정희' 이름이 한 번도 언급 안 됐다.
기념 공연이면 무대 배경막에 박정희 영상(映像)을 비출 만한데 그것도 없었다.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건 알겠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2017.11.20. 조선일보
박정희 전 대통령 과(過)가 있으니 동상을 세울 수 없다고?
박정희 100주년 동상 막는 이들 "기념 대상 아니다" 주장하지만
새 시대 연 지도자를 둔 국가들 과(過)보다 공(功) 주목하는 것 아는가
▲2017.11.22.조선일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정희(1917 ~1979) 전 대통령의 저작을 모은 9권 분량의
'박정희 전집'(기파랑·사진)이 출간됐다.
▲2018.01.02. 조선일보
현충사 '박정희 현판' 철거 두고 싸움 난 이순신 가문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으로, 충청도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
1706년(숙종 32년)에 건립됐다.
1707년 숙종은 '현충사(顯忠祠)'란 현판을 내렸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숙종이 내린 현판 대신
친필 한글 현판을 새로 지은 본전(本殿)에 걸었다.
숙종의 사액(賜額·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 내림) 현판은 성역화 사업 이전 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에 걸려 있다.
▲2018.01.17. 조선일보
문 밖으로 쫓겨가는 도산서원 '박정희 금송(金松)'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12월 당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있던 금송을 도산서원으로
직접 옮겨 심었다. 2년 만에 관리 부실로 금송이 말라죽자 당시 안동군이 같은 수종을
구해 같은 자리에 다시 심었다. 안동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박정희 금송'으로 부르며 귀하게 여긴다. 2007년 이전 발행한 1000원권 지폐 뒷면에도 등장했다.
안동 시민 이모(46)씨는 "도산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의 산실이다.
현재 금송은 대통령이 심지 않은 가짜 나무다.
반성하고 역사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류모(64)씨는 "진실 공방을 떠나 수십년 전 대통령이 다녀가 만든 표식도 역사의 흔적"
이라며 "멀쩡한 나무를 해괴한 논리로 뽑아 이전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2018.02.20. 조선일보
"박정희 前 대통령이 노동자 착취? 그들을 육성해서 중산층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의 노동자들이 정말 '착취'를 당했다면,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난해졌어야 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광범위한 중산층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류석춘(63)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8.08.24. 조선일보
박정희 친필 “국토통일(國土統一)”
42년 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국토통일의 염원을 담아 남긴 휘호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공사 앞두고… 갈곳 잃은 '박정희 휘호'
▲2018.09.04. 조선일보
낙동강 오리알 된 박정희 사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에서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완공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8개월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신축 중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은 '박정희' 이름을 빼고 새 명칭으로 바꾸기로
결정됐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역사적 유산이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8.10.2 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 중요 업적
지하철1호선(1974),경부고속도로(1970),포항제철(1968),현대조선중공업(1973),
현대자동차(1967),새마을운동(1970),원자력발전소(1971),
농어촌근대화 경지정리(1970),농공업단지(1961), 녹화조림사업(1973)
삽교천 농업종합개발(1979)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reenbelt-1972)
대덕연구단지(1973) 한국과학기술원(KAIST-1971)
등등
▲2018.10.27. 조선일보
박정희가 나를 감옥에 넣었지만…
박정희 덕분에 배고픈 것이 해결되었다
보릿고개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2019.04.15.조선일보
"박정희, 경제성장으로 중산층 형성… 자신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선택"
"독재자가 장기 집권을 하려면 국민을 가난하고 무식하게 만드는 빈민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뤄 중산층이 형성됐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배반당할 선택을 한 한 것이다.
▲2008.7.28. 네이버
박정희대통령 업적 연표(1961.5.16 ~ 1979.10.26)
◎ 연대순
1961년06월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년06월11일 재건국민운동전개(국민의식개혁)
1961년06월14일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1961년07월03일 반공법 공포
1961년06월30일 능의선 개통
1961년07월14일 원자력개원
1961년07월22일 경제기획원신설
1961년08월03일 김포가도 포장 기공
1961년08월08일 황지지선 기공(1961.6.13~1962.12.10)
1961년08월19일 섬진강 수력발전소 건설
1961년09월21일 춘천수력발전소 기공
1961년09월23일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1961년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1962년01월01일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62년01월13일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62년01월20일 상법제정공포
1962년02월01일 국민은행 발족
1962년02월02일 기술진흥 5개년계획 발표
1962년02월03일 울산공업지구설정 및 기공
1962년02월10일 국토건설단 창단
1962년03월01일 공문서의 한글전용실시(70년1월1일 관계법 제정)
1962년03월19일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양주군 노해면
1962년04월02일 농촌진흥청 발족
1962년04월30일 해양경비대창설
1962년05월12일 반공센터창설
1962년06월01일 무역진흥공사발족
1962년06월18일 건설부 신설
1962년07월13일 국민 의무교육 실시
1962년07월19일 국립소년직업훈련소 낙성
1962년09월10일 남양송신소 준공
1962년10월20일 해운센터기공식
1962년10월23일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1962년11월04일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1962년11월06일 동해북부선(옥계-경포대간)개통
1962년11월18일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2년11월20일 제4시멘트공장건설
1962년11월25일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1962년11월28일 난민정착사업장 제방준공
1962년12월01일 마포아파트준공
1962년12월15일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1962년12월24일 생활보호법제정
1962년12월28일 호남 비료 나주 공장 준공
1963년01월01일 교육자치제 실시
1963년01월10일 외자도입 강력추진
1963년01월18일 원호센터 준공
1963년01월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3년02월01일 장충체육관 건립
1963년02월04일 지방문화재육성
1963년03월15일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1963년03월21일 감사원 개원
1963년03월30일 원자로 가동식
1963년04월02일 무제한송전실시
1963년04월10일 부녀회관 건립 기공
1963년05월14일 남대문중수공사 준공
1963년07월20일 제대군인 개간농장 입주
1963년08월08일 한국나이론 공장 건설(대구)
1963년08월08일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1963년09월01일 철도청 발족
1963년09월01일 노동청 발족
1963년09월06일 국토종합개발계획조사착수
1963년09월06일 동대문 개축준공
1963년0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
1963년09월17일 가족계획사업추진
1963년09월25일 직업재활원 개원
1963년09월26일 PVC 제조공장 기공
1963년10월10일 가정법원 개원
1963년12월22일 서독광부·간호원파견(1963.12.22~1966.1.30)
1964년01월01일 미터제 실시
1964년05월07일 울산 정유공장 건설
1964년05월07일 국립 중앙 의료원 설립
1964년07월01일 경주석굴암복원준공
1964년08월20일 감천화력발전소건설(부산)
1964년11월29일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1964년12월05일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년 10억불/77년 100억불/82년 200억불/85년 300억불/88년 500억불 달
1964년12월06일 서독방문(유럽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1965년01월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년02월24일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1965년03월19일 방공 포병대대 창설
1965년03월23일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 대회
1965년04월01일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1965년06월01일 김해간척공사 기공
1965년06월22일 한일협정 정식조인(동경), 8월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1965년08월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년09월15일 제2 영월 화력발전소 준공
1965년10월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
1965년11월13일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1965년11월23일 민방위법 제정(민방위대창설:1975.9.22)
1965년12월02일 식량증산 5개년계획 확정
1965년12월03일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1965년12월07일 진삼선 개통(사천~삼천포)
1965년12월16일 국내(텔레스)개통
1966년01월19일 정선선 개통(예미, 증산, 고한 간)
1966년01월27일 경북선 개통(점촌~예천 간)
1966년01월27일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1966년02월04일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발족
1966년03월03일 국세청 발족
1966년03월03일 수산청 발족
1966년04월09일 인천제철공장 기공
1966년04월29일 경인공업단지 건설
1966년05월03일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1966년06월08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1966년06월09일 팔당수력발전소 기공
1966년06월22일 한군군장비현대화계획발표
1966년08월03일 산림청 신설
1966년11월09일 김삼선 기공
1966년11월09일 충남선 기공
1966년11월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년11월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년11월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년12월0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년12월17일 아시아 개발은행 건설
1966년12월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년01월24일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1967년02월10일 대도시 그린벨트설정(서울, 부산 등)
1967년03월04일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1967년03월30일 원자력청 발족
1967년03월30일 과학기술처 신설
1967년04월01일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1967년04월13일 서해안 철도건설
1967년04월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년04월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년04월29일 천체과학관 준공
1967년05월01일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1967년09월19일 구미전자공업단지건설
1967년09월23일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건설
1967년10월0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1967년10월03일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기공(1973. 7. 3 완공)
1967년11월23일 한국수자원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01일 농어촌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20일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1968년00월 0일 포항항 건설(~1973)
1968년01월22일 대간첩작전본부발족
1968년02월07일 경전선개통
1968년02월11일 병기공장(M16소총)건설착수
1968년03월22일 석유화학계열공업 기공
1968년04월01일 예비군 창설
1968년04월13일 서울대학교 이전 건설
1968년06월13일 「레이다」기지 준공
1968년07월05일 방위산업육성3개년계획확정
1968년07월22일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1968년07월23일 동해안공업도시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1968년07월24일 해양주권선언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1968년07월29일 축산개발 4개년계획 확정
1968년08월30일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건설
1968년09월09일 제1회 한국 무역 박람회
1968년02월01일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간)기공식
1968년11월01일 제주도 포도당공장준공
1968년11월08일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준공
1968년12월0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년12월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12월07일 지리산 등 9개지역국립공원지정
1968년12월11일 광화문복원
1968년12월16일 한국 투자개발공사 설립
1968년12월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준공
1969년00월00일 교육제도개혁(중학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1969년02월05일 농업진흥공사 발족
1969년02월15일 지하수개발공사발족
1969년02월15일 한국도로공사발족
1969년02월22일 농업기계화 8개년계획확정
1969년03월01일 국토통일원 개원
1969년03월0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년04월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년04월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69년06월04일 부산 화력발전소 준공(21만Kw)
1969년06월17일 마산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조성
1969년07월03일 울산 알미늄 공장준공
1969년07월29일 서울신도시건설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1969년08월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69년10월07일 남강「댐」준공
1969년11월01일 농어촌근대화촉진법발표
1969년11월29일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69년12월26일 제3한강대교 건설
1970년02월29일 금산사대적광릉 해체 복원
1970년03월07일 비적성공산권에 문호개방
1970년03월22일 정부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마련-86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의무교육9년으로로연장,교육제신설,교원에게병역
1970년04월15일 남해고속도로기공(~1973.11.14)
1970년04월22일 새마을운동 제창
1970년05월16일 서울대교 건설
1970년05월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0년06월02일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07월01일 우편번호제 실시
1970년07월04일 배창 방직 기계 준공식 참석(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1970년07월05일 직기 공장 준공-유사시엔 총포 생산도
1970년07월07일 경부고속도로 전면 개통
1970년07월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1970년08월02일 낙동, 영산강 종합개발안 영구수해방지 위해 다목적댐 건설 수운 개설
1970년08월15일 8.15기념식에서 북한이 무력포기하면 남북간의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 선언
1970년09월16일 공군 전천후 해상소형공격기 S2A배치
1970년10월22일 수도권(경인,경수,경원)고속전철화(~1974.8.15)
1970년11월10일 행주산성 복원 준공
1970년11월19일 세종대왕기념관 준공
1970년12월08일 도산 서원 보수 정화 공사 준공
1970년12월17일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 확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1970년12월25일 화엄사 대웅전 보수
1970년12월31일 남원 광한루 보수
1971년01월31일 제주도 일주 도로 준공
1971년03월19일 원자력발전소 기공
1971년03월23일 금강·평택 지구 다목적 농업 개발 사업 기공
1971년04월08일 거제대교 건설
1971년04월12일 서울 지하철 기공
1971년04월13일 칠백의총 보수 정화 준공
1971년06월12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제의, 북한측 거부
1971년08월12일 한국적십자연맹, 남북가족찾기회담을 북측에 제의
1971년08월30일 속리산 법주사의 사천왕문 복원
1971년09월08일 국토종합개발계획 확정
1971년09월10일 서울 북악 터널 개통
1971년09월25일 태릉 국제사격장 준공
1971년09월29일 여의도 5·16광장 준공
1971년11월14일 각종 무기 생산 개시
1972년01월04일 전국 10대 관광권 개발 확정
1972년01월05일 군산항 개발 착수
1972년00월00일 제주관광개발사업추진(~1977년)
1972년02월09일 녹색혁명추진(통일벼 개발)
1972년03월10일 경주 고도개발 10개년획확정
1972년03월23일 현대 울산 조선소 기공
1972년04월05일 산림보호, 육성, 산지개발(입산,수렵금지)
1970년05월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2년04월21일 새마을 운동 노래 작사, 작곡
1972년06월07일 교육용 한자1,781자 선정 발표
1972년06월26일 전국702개섬 개발계획확정
1972년07월04일 한국 개발연구원 설립
1972년07월04일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1972년09월30일 영동화력발전소 건설
1972년10월31일 석유화학공장 합동 준공, 울산 석유화학8개공장 건설
1972년11월04일 육산리 고분군 정화
1972년11월13일 시외전화 자동화
1972년11월24일 부산항 대단위종합개발 추진(~1978.9.29)
1972년11월25일 소양강 다목적댐 담수
1972년12월11일 지리산,설악산,낙동강 하류철새보호지역 지정
1973년00월00일 이리 수출 자유 지역
1973년01월12일 공업진흥청 신설
1973년02월16일 제주도 종합개발 착수
1973년03월03일 한국방송공사 설립
1973년05월04일 8개 공업장려지구지정 공업개발(춘천,청주,원주,대전, 전주, 이리, 목포, 군산)
1973년05월05일 어린이대공원 개원
1973년05월11일 해운항만청 신설
1973년05월24일 중화학공업건설발표
1973년06월20일 중앙선(청량리-제천)전철 개통
1973년06월22일 남해대교 건설
1973년06월23일 평화통일외교정책 7개항 발표(6.23선언)
1973년06월26일 대덕연구단지 건설(10개연구소)
1973년07월03일 포항 종합 제철 준공
1973년07월05일 한일대륙붕 협상 완전 타결
1973년07월10일 전국91개 공업고등학교 신설, 확충계획발표
1973년07월20일 여천 석유화학 공업단지 건설
1973년08월15일 남북 UN 동시가입촉구
1973년10월11일 옥포 조선소 기공
1973년10월17일 국립극장 개관
1973년07월18일 정수직업훈련원 개관
1973년10월19일 문예중흥5개년계획추진
1973년06월06일 창원 기계 공업단지 조성
1973년11월07일 국민연금복지법 제정
1973년11월10일 죽도조선소 건설
1973년12월15일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 발표
1974년01월18일 남북한 불가침 협정체결 제의
1974년01월24일 최대임해공업벨트개발(제2제철-조력발전소 건설)
1974년03월28일 영동.동해고속도로기공
1974년05월22일 아산·남양방조제 준공
1974년06월10일 낙성대 정화 사업 준공
1974년01월18일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제의
1974년12월10일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
1974년12월27일 이경관문 해체 복원
1975년01월10일 구미대교 건설
1975년01월21일 농어촌지역의 상수도 시설5개년계획추진
1975년02월01일 대단위농업개발사업추진(금강,평택,광주, 삽교천,계화도)
1975년03월27일 대청 다목적댐 건설
1975년04월11일 중앙민속박물관 개관
1975년05월20일 학도호국단 창설
1975년09월01일 국회의사당 준공
1975년10월10일 서울 어린이회관 이전 개관
1975년10월28일 전국 성곽 보수 사업 추진
1975년10월30일 정립회관 건립(장애인보호육성)
1975년11월07일 함대함 미사일 개발
1976년01월20일 옥산서원보수
1976년01월20일 강화 지역 유적 개발
1976년01월20일 신안 해저 문화재 발굴
1976년03월17일 모산 저마 공장 준공-충남 아산군 배방면 공순리
1976년04월10일 밀양 포충사 정화사업
1976년04월10일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1976년04월17일 국어 정화, 순화 운동 전개
1976년05월10일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1976년05월18일 한국 인력 검정공단 법안 확정(기술인력관리,자격,검정의 일원화)
1976년06월24일 유적지전적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제정
1976년06월24일 구마고속도로 착공
1976년07월16일 잠수교 개통식 참석
1976년10월02일 반월공업도시 건설
1976년10월12일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
1976년10월14일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 제1단계사업준공
1976년10월30일 한산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 참석
1977년01월12일 대북식량원조 제의,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힘
1977년01월28일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음을 천명
1977년00월00일 남서울대공원 건설
1977년02월15일 산업체부설학교 및 특별학급설치
1977년02월17일 증권감독원 개원
1977년00월00일 전국 도서관 확충
1977년04월30일 초고압송변전시설 완공
1977년05월25일 미군철수 정책 저지(선보완, 후저지)
1977년06월15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설(1977.6.15 ~1982.3.10)
1978년07월01일 부가가치세, 의료보험 실시
1977년07월10일 자동차공업 육성책 발표
1977년07월30일 경주통일전조성
1976년11월03일 안동 다목적댐 건설
1977년09월22일 소비자보호기본법제정
1977년10월07일 육림의 날 선포
1977년10월09일 여주 영육 성역화 사업
1977년10월09일 부석사 정화 작업(1977~1979)
1977년10월25일 군산화력발전소
1977년10월25일 부평화력발전소
1977년11월04일 아산화력발전소건설
1977년12월07일 전주권 광역도시개발 및 공업단지 조성
1977년12월22일 1백억불 수출달성 기념
1978년01월01일 동력자원부 신설
1978년01월09일 충주 다목적댐 건설
1978년01월18일 군수산업의 육성(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
1978년02월20일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확정
1978년03월30일 호남선 복선 개통
1978년04월01일 국민체조보급
1978년0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1978년05월03일 월정사복원
1978년05월10일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광주)
1978년05월10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충주)
1978년05월22일 부마고속도로건설(1978.5.22 ~ 1980.10.5)
1978년06월05일 태양에너지 연구소 발족
1978년06월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8년06월23일 남북간의 교역, 기술, 자본 협력 위한 민간 경협기구 구성을 북한에 제의
1978년06월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1978년08월15일 해남 표충사 보수
1978년09월26일 국산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중거리 유도탄, 다연발 로케트, 대전차 로케트 시험발사에 성공, 세계 7번쨰 개발 보유국됨.
1978년10월0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1978년10월20일 서해안 일부지역 국립 해안 공원 지정
1978년10월30일 직지사 정화사업
1978년11월08일 관광산업진흥책 발표
1978년11월30일 곽재우장군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1978년12월06일 광주박물관 개관
1978년12월30일 장거리 자동 공중전화 시대 개막
1979년03월27일 토지개발공사 설립
1979년04월06일 경주 보문 관광단지 개장
1979년04월18일 잠실체육관 건립
1979년05월30일 상주 정기룡장군 유적지 정화 사업
1979년06월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9년06월13일 수도권 광역수도사업 추진(팔당)
1979년07월05일 천호대로 준공
1979년10월02일 환경청 신설
1979년10월12일 국제 올림픽대회 서울 유치 언명
1979년10월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
첫댓글 위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