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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미해결 실종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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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리 스크랩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사건 피해용의자 차겸훈씨
그리워 보구싶따 추천 1 조회 202 07.03.25 17: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억울한 피해자 많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9번째 사건 후 경찰조사 받았던 차겸훈씨 기차에 목숨 던져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 화성사건 9번째 희생자 김미정양(당시 14세)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본부에 끌려가 조사받고 풀려났던 차겸훈씨(당시 38세)가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 열차에 뛰어들어 숨졌다. 그러나 그가 왜 목숨을 끊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사진은 차씨가 기거했던 월셋방. 현재 보증금 없이 월 12만원)

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코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이다.
이 영화는 개봉 3일만에 45만명을, 열흘 만에 1백50만명을 손쉽게 돌파했다. 이처럼 폭발적인 관객반응이 입증하듯, <살인의 추억>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대박전선을 달리고 있다. 감독과 배우가 영화를 워낙 잘 만들었고,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이 관객의 호기심을 사로잡았다는 게 충무로가 전하는 흥행이유다. 특히 범인이 비록 잡히지 않아 미완의 결말을 보이나 한국사회 최초의 연쇄강간살인사건이라는 점이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때문일까. 영화 속 장면 중 실제사건과 관련해 어느 게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다. 특히 고문 후유증으로 선로에서 기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동네 바보 백광호(박노식 분)의 존재 여부가 그렇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그려진 박현규(박해일 분). 만일 그가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는 자백을 강요당하며 엄청나게 맞았다. 그러나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던 탓에 자유의 몸이 됐다. 어찌 보면 그 역시 죽은 백광호와 마찬가지로 경찰 강압수사의 최대 피해자다.
당시 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화성 일대에선 20대 청년에서부터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되는 인물들은 한두 번 경찰조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만8천여명의 용의자가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중엔 선량한 피해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반드시 잡아야한다’는 강박관념 탓인지 강압적 수사의 폐해가 많았던 것이다.

젊잖고 온순했는데…

결국 가짜 범인이 숱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중 경찰의 용의자 선상에 올랐던 일부가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기차에 치여 죽은 차겸훈씨(당시 목공·38세·태안읍 능2리 655)가 이에 해당된다.
때는 지난 1990년 12월 18일. 장소는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 병점역에서 1백여m 떨어진 역구내 철길.
화성사건 9번째 희생자 김미정양(당시 14세)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본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났던 차씨가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열차에 뛰어들어 숨졌다.
왜 목숨을 끊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기자는 당시 차씨가 기거했던 집을 찾았다.
주변 일대는 90년대 재개발 붐을 타고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공장이 들어선 상태였지만 유독 차씨가 월세로 살았던 그 집과 주변은 원형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차씨가 자주 애용했다는 송곡 슈퍼마켓 주인이 다행히 바뀌지 않았다.
차씨를 선뜻 기억하지 못했던 이곳 마을주민들도 화성 연쇄강간살인사건을 얘기하자 그의 존재를 선명하게 떠올렸다.
송곡 슈퍼마켓 주인이 전하는 말은 이렇다.
“차씨가 괜히 죽을 이유가 없었거든. 얼마나 억울했으면 목숨을 끊었을까. 술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그날도 아마 술을 잔뜩 마시고 그랬다고 하던데 불쌍한 사람이야(혀를 차면서). 그런데 이런 얘기 더 이상 안 했으면 해. 이제 사람들 모두 잊었는데 새삼스럽게 그 얘기는 왜 끄집어내곤 난리야.”
그는 장안의 화제작 영화 <살인의 추억>을 모르는 듯했다. 만일 알았다면 난리를 쳤을 듯 싶었다.
차씨가 월세를 살았던 주인집 아주머니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차씨가 하루아침에 용의자 대상에 올라 수사본부에 끌려갔다고 그는 전했다. 특히 2~3번의 경찰조사를 받고 난 직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왜 범인으로 지목받았을까.
주인집 아주머니는 “당시엔 그 나이(38세) 먹도록 결혼하지 않았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평소 방안에 틀어박혀 통 나오지 않았어. 아마도 이 때문에 범인으로 오해를 받았던 것 같애”라며 죽은 차씨를 위해 명복을 빌었다. 그는 이어 “처음엔 범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집에 사는 것도, 쳐다보기도 무서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씨는 도저히 범인이 될 위인이 아니었어. 점잖고 온순했는데…. (쯧쯧) 괜히 사건에 휘말려 아까운 목숨만 뺏은 셈이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경찰의 용의자 선상에 올라 수사를 받았던 인물이 열차에 치여 죽은 것은 사실이다.

주무대 태안읍 개발의 설렘 넘실

이 뿐만이 아니다.
7번째 희생자 안기순씨(54)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던 사람이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10차 사건 때도 30대가 투신자살의 길을 걸었다.
또한 주요 용의자로 언론에 알려졌던 이들도 굳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지병 등으로 죽었다. 한 심령술사의 제보로 화성 연쇄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을 산 김모씨가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졌다.
한편 차씨가 목숨을 끊은 병점역 부근은 애당초 인적이 드물었으나 2003년 요즘은 신도시 개발에 이은 전철역 개통으로 곳곳이 활기가 넘쳐 보였고, 상가분양 전단지를 돌리는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개발의 설렘과 흥분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
이 때문일까. 십 수년 전 살인마가 활개쳤던 무대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일대 주민들 대다수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다시금 화제로 오른 게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시 연쇄살인사건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치는 화성 주민들과는 달리 또 많은 사람들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그때 그 사건의 기억에 열광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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