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전 의원은 12월12일 충남 논산시 노블레스웨딩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이인제는 이날 “7년 전 선거에서 떨어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었지만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견뎌왔다”며 “기회가 허락된다면 열정과 경험, 역량을 불태워 미래를 열고 싶다”며 출마를 공식화 했다.
이인제는 22대 국회의원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12일 오전 총선 출마 지역구인 논산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날 오후에는 자신의 저서 ‘출발선에 다시 서서’출판기념회를 열고 출정식을 가졌다.
논산·계룡·금산 지역구에는 이날 이인제를 포함해 총 6명이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국민의힘 5명, 무소속 1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등록하지 않았다.
충남 논산, 계룡, 금산 총선 예비 후보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황명선 37,7%. 국민의힘 이인제 16.9%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힘에서 혁신위가 밝힌대로 경선을 해서 후보를 선출 한다면 이 지역에 출마를 고려 하고 있는 박찬주 대장이 움직이고 있어 경선 결과가 관심이 갈 뿐이다.
이인제는 당적을 여러 번 옮기며 6선에 성공하여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 정치인으로 손학규 이인제라는 오명도 함께 갖고 있다.
판사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88년 김영삼의 양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YS의 절대 지지로 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이를 시작으로 이 전의원은 제 14·16·17·18·19대 총선에서 모두 당선됐다. 1995년에는 초대 민선 경기 도지사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의원은 당적을 13번 바꿔 ‘피닉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거쳐간 당만 해도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국민신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이 있다.
이인제 전 의원은 판사 출신의 6선 국회의원, 노동인권변호사, 최연소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제16·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등 정치 여정과 이력은 화려 하지만 철새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인제는 YS에게 발탁되어 DJ에게 갔다 JP를 거쳐 이후 다시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되는 등 좌우 가리지 않는 당적 변경을 하고도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 정치인생을 존속한 인물이다. '정치 철새'를 넘어서 요즈음 흘러간 물에 불과하였던 이인제 전의원에 좋은 말로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가장 亂脈은 여기저기 난잡한 당적을 옮겨 다닌 것이 오점이다. 항상 양지쪽만 쫓아다녔다는 비난과 자기 자신을 위한 정치만 하였다는 원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보수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마저도 여러 번 넘나들었다. 7선을 바라보면서 단한번도 같은 정당에서 연달아 총선에 출마한 적이 없다.
또한 총선 이전에 당장 저 무수한 선거 이력 중 같은 정당명으로 출마한 것은 14대 총선과 1회 지선(경기지사 선거)뿐이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이인제는 1997년12월18일의 15대 대선이었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으나 경선결과 불복을 선언하며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 후보로 독자 출마해 3위에 그친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40.27%의 득표율로 38.74%를 얻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신승을 거뒀다. 표차는 39만557표, 득표율 차는 1.53%포인트였다.
이인제는 4,925,591표(19.20%)를 얻어 3위로 밀려났다. 이인제가 경선을 불복하지 않고 출마하지 않았다면 전라도 몰표를 받은 김 대중이 결국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얻은 이회창 후보에 패하였을 것이다.
이회창과 이인제는 같은 점이 너무 많다. 같은 전주 이씨이고 충청도이며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그런데 이인제가 낙선이 불보듯 뻔한데도 개인의 과욕이 넘쳐 억화심정으로 못먹는 감 찔러니 보자는 식으로 출마한 것이 결과적으로 좌파정권을 끌어들이게 되었고 지나친 과욕이 평생에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때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충청도 대망론도 성취하였을 것이고 좌파정권도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회창과 이인제의 분열이 없었으면 DJ로 정권교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인제 고향에서는 그래도 날라 가는 새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고 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이인제에 대해 싸가지없는 인간이라고 사람 대접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그에게 철새정치인이라는 비난은 험난한 당적변경사와 맞물려 지금까지도 그의 발목을 붙잡고 흔든 원죄로 남았다. ‘작은 거인’의 이미지가 퇴색했음은 물론이고, 이후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5공 청문회로 함께 주목받았던 노무현 후보의 ‘노풍’에 휩싸여 출마가 좌절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당적의 방황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정치판도 앗사리판 쓰레기 판이 되었다 같은 당 내에서도 계파가 다르면 인사도 나누지 않고 서로가 헐뜯고 외면하며 과거와 달리 거대 양당이 당의 리더가 지지분한 것들이다. 그래서 혼돈의 시대에 쓰레기꾼들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그래서 상식적인 사람들은 정치에 혐오감이 너무 심각하다.
이인제 전승기 당시는 우리 국민들은 현명했다. 적어도 선거 때만 되면 충동적으로 겉모습만을 보고 선택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냉철한 판단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젊은 세대를 위해서 더 나아가 이제 태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더욱 냉철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현명한가? 정말 생각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고 국가 백년대계 장래를 내다보는 헤안으로 사람을 보고 인물을 선택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막가파들을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 앞세우고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도 내지역 출신이고 우리끼리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묻지도 따져 보지도 않고 표를 주고 있으니 지금의 국회와 의정은 전과자들의 향연이고 막말과 입에 담지도 못할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 양아치들을 국회에 내보내고 있지 않는가?
무능한 군주를 잘못 선택을 하면 국가의 흥망성쇠는 물론 백성들의 삶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전근대적인 역사를 통해 고증하였고 패거리로 왔다가는 대한민국 정치로 증명을 하였다. 결국 나라 곳간만 축내고 빚만 산떠미 같이 남겨 놓고 떠난 놈도 터진 입이 있다고 아직 나불 그리고 있는 현실이 비참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외형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듯하였으나 빚투로 이루어진 허장성세와도 같으니 언제라도 조금의 충격에도 위태 위태하기는 마찬 가지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선거 때만 되면 어중이 때중이 들이 판을 치고 황소뒷걸음 치다가 왕근이를 건지는 요행이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天理이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 돌리지 못한다는 말을 만고 불변의 하늘의 이치이다.
소크라 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고 했고 常識적인 말로는 너 분수를 알라고 했다. 분수를 지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