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울고 넘는 박달재 |
- 여강 최재효 作 |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에 얽힌 사연을 중편 소설로 다루었습니다. 본 작품은 제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朴達)과 충청도 제천 처녀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비련(悲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고 넘는 박달재-28
운종가에 들어서니 눈을 뒤집어 쓴 보신각(普信閣)이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육의전은 사람들로 붐볐다. 가로변에 '명주전골', '조개전골', '갓전골', '바리전골', '소금전골', '종이전골', '벙거짓골' 등 한양의 유명상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상인들이 모두 나와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박달은 과거를 보러가는 것도 잊고 처음 보는 한양의 화려한 모습에 넋을 빼고 있었다. “이보우, 좀 더 빨리 갈 수 없겠수?” 박달보다 아지의 마음이 급한 듯 했다. "왜유? 늦었어유?” 마부가 아지를 돌아보았다. “오시(午時)에 과거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시(巳時)까지는 성균관 명륜당에 입장해야 해요.” “알았수. 주모 성질이 꽤나 급하시우.” 아지가 채근하자 마부는 두 사람 얼굴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 채찍을 들더니 말의 엉덩이를 향해 내리쳤다. 이랴 -. 말이 길게 울음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창경궁을 끼고 마차가 경쾌하게 달렸다. 잠이 덜 깬 창경궁 문지기들이 둘이 탄 마차를 바라보았다. 박달은 무복(武服)인 철릭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수문장의 늠름한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어 지붕에 눈이 소복이 쌓인 창경궁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자 박달의 마음은 착잡했 다. 그곳은 조선의 왕권을 상징하는 대궐이었다. 박달이 오매불망 그리던 대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높은 담장과 육중한 대문이 평민들에게는 절대로 출입이 허락될 것 같지 않았다. 담장 안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전각의 용마루가 근엄하면서도 거만하게 보였다. 대당사부(大唐師傅) 삼장법사, 하늘의 망나니 손행자(孫行者), 저돌적인 저팔계(猪八戒), 사화상, 이귀박, 이구룡, 마화상, 삼살보살, 천산갑, 나토두 등 희한한 형태의 어처구니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 역시 박달에게는 경이로웠다. ‘과연 대궐은 여러모로 굉장하구나. 내가 과거에 급제하면 대궐을 들락거리며 나랏일을 볼 수 있을 테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되면 대궐에서 나라님과 왕자와 공주들 그리고 궁녀들을 볼 수 있을 거야.’ 박달은 스쳐 지나가는 궁궐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상상을 하였다. 이랴 -. 마부의 채찍이 다시 한 번 허공에서 마찰음을 내자 말은 속도를 냈다. 마차가 대궐 담장을 벗어나니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쫓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대개가 괴나리봇짐을 메고 서책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과거를 보러가는 응시생들이 틀림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혼자였으나 장옷을 뒤집어 쓴 여인과 다정하게 걸어가는 사내들도 있었다. 여인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과거 응시생 부인이나 어머니 같았다. 또 어떤 어린 유생(儒生)은 나이가 지긋한 어른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보였다. 성균관 앞에 인파가 구름 같았다. 마차가 더 이상 비집고 들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응시생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과거를 잘 보라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응시생의 등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행가래를 치기도 하였다. 박달과 아지는 마차에서 내려 걷기로 하였다. 박달과 아지가 다 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따가운 시선들이 두 사람의 등에 꽂혔다. “서방님,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저기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뒤에 서 계세요. 저 줄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사람들 같아요.” “주모, 아니 아지, 고마워요. 그대 덕분에 시험장까지는 잘 왔소.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박달은 수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서방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해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셨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아지는 박달을 안심시켰다. 아지의 위로에 힘을 얻은 박달은 용기를 얻었다. "과거 응시생들은 줄을 서시오. 그리고 함께 온 가족이나 지인(知人)들은 열 발짝 이상 옆으로 물러서시오.” 과거 응시생들과 그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한데 뒤엉키자 관리가 나타나서 저리하였다. 그들은 과거 응시생들을 한 줄로 세우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리 저리 뛰어 다녔다.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호패를 꺼내 준비하시오. 서책과 지필묵 이외의 다른 물건은 반입이 절대로 안 되니 명심하시오.” 관리가 응시생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서방님, 부디, 과거에 급제하시어 가문을 빛내세요. 저는 여기서 서방님께서 과거 시험을 마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주모 아지는 박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여인의 온기와 정기(精氣)가 박달에게 전해졌다. 박달은 심신의 안정을 찾고 결의를 다짐하였다. “아지, 날씨도 쌀쌀하데 그만 돌아가요. 나는 대충 길을 알고 있으니 과거가 끝나는 대로 곧장 주막으로 달려가겠소.” “아닙니다. 차가운 데서 과거를 보시는 서방님도 계신데요. 이까짓 한나절 서있는 게 무에 그리 힘들다고요. 서방님, 너무 염려마셔요. 서방님은 밤낮으로 공맹(孔孟)을 만나고, 성현(聖賢)들 을 벗으로 두셨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거에요.” 아지는 박달을 보고 화사하게 웃으며, 한쪽 눈을 눈을 찡끗했다. “저 많은 경쟁자들을 보니 한숨만 나오는구려.” “이번 과거에 서방님은 따 놓은 당상이에요. 그리도 열심히 공부를 하셨는데요. 아무려면 하늘이 모른 체 하시겠어요?” ‘하늘이 나를 도울까? 지조 없는 사내를 과연 하늘이 도와줄까?’ 박달은 옆에 아지가 있었지만 밤낮으로 자신의 급제를 위하여 지성을 드리고 있을 금봉을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하늘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야.’ 박달이 중얼거리자 아지는 불안해하는 박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서방님, 오늘 저녁에는 서방님에게 지상 최고의 잔치를 열어드릴게요. 과거만 잘 보세요. 기대하셔요.” 아지가 박달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웃음을 살살 쳐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뇌쇄적인지 박달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 최고의 잔치가 뭔지 알 수 있소?” “아니 되어요. 그럼, 김빠진 잔치가 될 수 있다고요. ‘김빠진 잔치? 헐, 그 잔치가 무엇일까? 기대가 되네.’ 박달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좀처럼 무슨 잔치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서방님, 무조건 과거만 잘 보세요. 아니, 문제만 잘 보시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답지(答紙)를 잘 작성하셔요. 아셨죠?” 아지는 빨간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최선을 다하리다.” 박달은 아지에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서방님, 힘내세요.” 박달은 아지를 남겨 두고 성균관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눈이 그치고 햇살이 눈부셨다. 성균관 명륜당 앞뜰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유생(儒生)들로 가득 했다. 고시장 마당에 눈을 깨끗이 치워져 있고, 겨우 어른 한 사람이 앉아서 과거를 볼 수 있는 멍석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그것들은 앞뒤 좌우로 시험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른 키 한배 반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위에 지필묵(紙筆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과거는 정확히 오시(午時)에 시작하여 신시(申時)가 시작되기 전에 마쳐야 했다. 과거장 앞에는 큰 북이 마련되어 있고 예조(禮曹)에서 나온 수십 명의 관리들이 부지런히 고시장을 이리 저리 누비며 바삐 움직였다. 고시장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박달은 시험 감독을 담당하는 관리들로부터 가운데 앉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달의 전후좌우로 잔뜩 긴장한 응시자들이 앉아서 시제(詩題)가 빨리 내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북이 울리더니 시제가 내걸렸다. 응시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시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今人不見古時月] - 지금의 사람들은 옛 달을 보지 못한다 “자, 응시생들은 시제를 보고 각자 대책(對策), 표(表), 전(箋), 잠(箴), 송(頌), 제(制), 조(詔), 논(論), 부(賦), 명(銘) 중 한편(篇) 을 저술하여 제한 된 시간 내에 제출토록 하시오. 감독관이 중간 중간 시간을 알려주겠소. 또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될 시에는 바로 퇴장조치 시킬 것이며, 이후 과거에 응시할 수 없음을 고지하는 바이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시오.” 둥 -, 둥 -.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북이 울렸다. 시관(試官)들이 이리 저리 응시생들 사이를 누비면서 시제를 큰소리로 외쳐댔다. 응시생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시제를 받아 적느라 잠시 웅성거림이 있었으니 이내 잠잠하였다. 시제를 본 어떤 응시생들은 넋을 빼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응시생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응시생들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어떻게 답안지를 작성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박달은 시험지에 조부(祖父)와 아버지의 성함 그리고 본인의 이름 석자를 차례로 쓰고 잠시 눈을 감았다. '할아버님, 아버님 도와주세요. 박씨 가문을 일을킬 수 있도록 저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오랫동안 준비하였습니다.' 박달은 속으로 조상님들에게 비손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얼른 묘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예전에 출제 되었던 예상문제를 풀어보았지만 지금과 같은 아리송한 시제는 처음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나가는 응시생도 있었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남들은 어떻게 답안지를 작성하는지 궁금해 하는 응시생도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답안의 초안(草案) 조차 잡지 못한 박달은 조급증이 일기 시작하였다. ‘아아, 도대체 저 시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천지신명님이시어, 도와주소서.’ 박달은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기도를 올렸으나, 그래도 확실한 초안을 잡을 수 없었다. 과장(科場) 맨 뒤에서 부정행위를 하던 응시생 하나가 관리들에 의해 적발되었다. 그는 강제로 퇴장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하였다. 그러나 그 응시생은 곧 고시장 밖으로 쫓 겨나고 말았다. ‘고시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고시월, 고시월…….’ 박달은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달에 대한 그의 평소 지론으로 시국의 난제(難題)를 풀어갈 대책을 써내려갔다. 무릇 달이라하면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달을 연상하겠으나, 나는 허공의 달을 보면 단순히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먹여 살리는 영험한 신(神)으로 본다. 왜 그런고 하면 천하에 세상에 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보통 사람은 부모의 인연에 의하여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정확히 열 달 만에 출세한다. 해와 달은 우리 인간사에 있어서 잠시도 없어서는 안되는 공기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해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 세상은 암흑천지로 변할 것이며 곧 영원한 동토(凍土)의 땅이 되어 인간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해가 떠서 사해(四海)를 비추고 저녁이면 서천(西天)으로 들어간다. 해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별이나 달이 나타나 해를 대신하여 뭍 백성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준다. 한 하늘에 해가 둘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한 하늘에 해가 둘인 경우를 본다. 동절기의 경우 해가 서산(西山)에 들기도 전에 동산(東山)에서 또 하나의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 뿐만 아니라, 그믐의 경우는 어떠한가? 해가 뜨면 서산 마루에 석양같은 달이 기울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달의 역할은 정확히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달은 인간에게 위안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낮에 작렬하는 태양에 비해 달은 은은한 광휘(光輝)로 인간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동시에 안온함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달은 스스로의 모습으로 무언의 반면교사로 인간세에 가르치고 있다. 달은 억만년의 세월을 인내하며, 생사윤회를 반복하였다. 달은 지상의 모든 유정(有精)과 무정(無精)의 존재들에게 유한(有限)의 진리를 가르쳐왔다. 작금 사람들은 달의 가르침은 잊은 채 오 락이나 여흥을 위하여 달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여 왔다. 달은 깨달은 분이며, 창조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깨달은자란 눈을 뜬 사람, 완전한 인격자, 진리를 알고 스스로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양심이다. 인간의 자궁(子宮)에서 태어난 분 중에는 여래가 유일하다. 나는 어머니 자궁에서 열 달 만에 출세(出世)하였다. 달이 없다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태어날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세상에 무한(無限)한 것이 어디 있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옛달을 보지 못함은 등록망촉(得隴望蜀)의 고사처럼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에 나와 이성(理性)의 눈으로 최초로 달을 보았을 때의 환희, 즉 초심의 맑은 호수 같은 심성을 되찾아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대취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작금(昨今)의 달은 달이 아니라 세속에 찌는 욕망의 화신이다. 공자께서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선의인(鮮矣仁)이라 하였다. 즉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에는 어짐이 부족하다고 하였으니, 누구나 삿된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달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태조(太祖)께서 조선을 건국하였을 때도 공맹(孔孟)의 유지로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으니,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조정(朝廷)에서는 관리들의 눈에 낀 티를 없애 만백성이 청천(靑天)에 뜬 전지전능한 달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한 나라의 왕은 태양이요,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낮에는 당연히 해가 주인이 되어야 하고 밤에는 달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달처럼 제대로 빛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어찌 진정한 달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달은 밤에 떠서 은은한 빛으로 몽매한 사람들의 근심 걱정을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위로해줘야 한다. 감히 달에게 요청하노니, 세상의 오탁(五濁)을 정화시키고, 부조리한 세사(世事)를 살펴 파사현정(破邪顯正)하기를 기원한다.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 보면 제일 먼저 지금의 세제(稅制)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백성들은 배부르고 춥지 않으면 순화된다. 나머지 여력으로 부국강병에 힘쓰면 된다. 상술(詳述)하자면, 현재 시행되고 공납(貢納)의 폐해를 시급히 조사하여 현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 정책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 고장에서 출산되지 않는 공물(貢物)을 받치게 함으로써 작금에 백성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법제의 수정없이 이대로 그들의 원성(怨聲)을 외면한다면 국기(國基)가 흔들릴 수 있음은 물로 더 나아가 종사(宗社)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공납의 폐해(弊害)를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본인의 대안(代案)은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공물은 가호(家戶)를 대상으로 부과하여 공납케 하던 지역의 토산물(土産物)을 말하는데, 토산(土産)이 아닌 공물이나 농가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가공품 등을 공납해야 될 경우에 현물을 매입하여 바쳐야 한다. 따라서 이를 기회로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상인(商人) 혹은 하급 오리(汚吏)들이 나오게 되었다. 또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호민의 상납(上納)을 막 기까지 하였으므로 방납(防納)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지방에서 공납이 가능한 물품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수요(需要)와 공납이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먼 지방으로부터의 수송에도 불편이 많을 뿐더러, 각 궁방(宮房), 관청에서 수납(收納)할 때에도 그 규격을 검사하여 불합격품은 되돌려 다시 바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경주인(京主人) 등으로 하여금 필요한 물품을 대신 바치게 하고, 그 대가(代價)를 지방민에게 갑절로 받게 하였으므로 수요자와 방납자는 서로 결탁하여 지방의 납공자(納貢者)들을 괴롭히는 고질적인 병폐를 유발 시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호부(戶府)의 혁신적 조처가 있어야 한다. 즉, 각 지방에서 바치던 공물을 각 지방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쌀로 대신 내게 함으로써, 방납에 따르는 납공자들의 피해를 덜어 줘야 한다. 이럴 경우 국가 조세의 증가로 이어 질 것이고 백성들의 원성은 사라질 것이다. 달이 해야 할 바가 이렇다고 생각한다. 세제를 잘못 운영하여 멸망한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이연(李淵)이 건국한 당(唐) 제국의 몰락은 바로 세제의 잘못된 운용에서 비롯되었다. 당의 세제(稅制)는 태종 이세민(李世民) 치세때 기초가 수립되어 현종 이융기(李隆基)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세민의 치세(治世)를 정관(貞觀)의 치(治), 이융기의 치세를 개원(開元)의 치라고 한다. 이융기 통치시기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근간은 당 제국의 세제 정책인 조용조(租庸調), 균전제(均田制), 부병제(府兵制)를 들 수 있다. 조용조는 조세제도로 조는 전(田)에, 용은 인(人)에, 조는 가(家)에 부과하는 세금이었다. 조는 곡물(穀物)을, 용은 역(役)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고, 조는 지방의 특산물(特産物)을 납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균전제는 북위(北魏) 이래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당(隨唐) 까지 시행된 토지제도로 백성들에게 땅을 고르게 나누어주는 제도였다. 부병제는 균전제를 통해서 토지를 지급받은 백성들에게 병역(兵役)을 부과하여 농민을 교대로 부병(府兵)으로 징집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세 가지 제도가 당초(唐初)의 번영을 이끌었다. 당말(唐末)로 접어들면서 세제의 모순(矛盾)이 나타났고, 개원의 치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원인은 인구가 급속한 증가에 있었다. 국가의 수익이 증대되었지만 백성들에게 나눠 줄 토지가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당의 균전제의 붕괴는 곧 부병제와 조용조의 붕괴로 이어졌다. 부병의 경우는 토지를 받고 평시에는 농사를 짓고, 전시(戰時)에는 군사로 동원되는 것인데, 이 때 드는 비용은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하였기에 균전제의 붕괴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은 더 커지게 되었다. 이후 조용조는 양세법(兩稅法)으로, 부병제는 모병제(募兵制)로, 균전제는 장원(莊園)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6도호부(都護府) 체제를 10절도사(節度使) 체제로 바꾸게 된다. 이로써 용병의 모집과 훈련 등을 절도사에게 맡기게 되었다. 절도사들의 세력이 강화된 반면에 황제의 권한이 약화되었다. 절도사 제도의 모순은 당 제국이 무너지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 절도사 제도의 모순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이었다. 안록산이 죽고 사사명(史思明)과 황소(黃巢)가 그 계보를 이었다. 난이 진압된 후에도 절도사들이 각지에 힘을 발휘하는 등 당의 정권은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당 제국의 몰락은 능동적이고 가변적인 세제(稅制)를 고안해 내지 못한 관리들의 무능과 이극용(李克用)이나 주전충(朱全忠) 같은 강력한 사병을 가지고 있던 절도사에 대한 견제 세력이나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데 기인하였다. 당 제국이 망하고 조광윤(曺匡胤)에 의해 송나라가 건국할 때까지 50여년 동안 대륙은 혼란에 휩싸였다. 박달은 장문의 시권(試券)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박달이 과장을 둘러보았다. 이십 여명만이 남아 답안지인 시권 작성에 전념하고 있었다. 박달 은 평소의 지론을 시권으로 제출하고도 기분이 찜찜했다. 과연 자신이 작성한 시권이 조정에서 요구하는 답안인지, 아니면 동문서답(東問西答)을 지었는지, 혹은 채점관들의 심기를 건드린것은 아닌지 답답했다. 대륙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박달은 당나라의 세제를 조선의 제도와 비교하여 직접언급한 것이 채점을 하는 관리들이 어찌 판단할지 궁금하였다. 보통 과거를 보면 늦어도 당일 합격자를 발표하였으나, 이번 과거는 응시생이 많은 관계로 이틀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소시장을 나오자 아지가 알아보고 박달에게 달려왔다. “서방님, 욕보셨어요. 많이 힘드셨지요?” “아니, 그런대로 보긴 보았소만…….” 박달이 말끝을 흐렸다. “왜요?” 아지가 박달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안색이 썩 좋은 편도 나쁜편도 아니었다. “서방님, 이제 다 잊으세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하셨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어서가세요. 차암, 오늘은 주막으로 가지 말고 기루로 가요.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어요.” “기루? 아지의 주막이 어때서요?” “눈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오늘은 서방님의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답답했던 심사도 모두 풀어드리고 싶어서요. 그러니 아무 말씀하시지 말고 따라오세요.” ‘이 여자가 나를 데리고 여우소굴을 데리고 가려고 그러나? 하여튼 가보지 뭐. 과거도 끝났고 마음도 홀가분하니까.’ 한껏 멋을 낸 아지는 박달 옆에서 걸어가면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히죽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흘리기도 하였다. 비록 상민(常民)들을 대상으로 주막을 운영하는 아지였지만, 그녀의 생김새나 행동거지는 여염이나 사가(士家)의 여인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과거를 보다가 죽은 관계로 과거에 한이 맺힌 아지는 박달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었다. 아지는 동백기름을 발라 반지르르 하면서 윤기 있는 큰 머리로 한껏 멋을 냈다. 큰 머리에 옥잠(玉簪)과 다양한 장식을 꽂아 최근에 한양에서 유행하는 형태를 자랑하였다. 앞서 걷는 아지의 붉은 치마가 나풀거리며, 그 안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이 박달을 유혹하였다. 오던 길을 다시 걸으며, 박달은 아침에 올 때 미처 보지 못했던 한양의 또 다른 모습에 넋을 잃 었다. 창경궁을 바라보면서 박달은 다시 한 번 청운의 꿈을 꾸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