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전도에 실패하고 고린도에 와서는 아덴에서 실패한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큰 핍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박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어떤 저항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약해집니다. 아주 심약해져서 복음 전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간간이 복음을 전하는 나약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동안에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로마서 16장 3, 4절에 보면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아굴라와 브리스가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일평생을 수고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로마로 간다고 할 때에 벌써 로마로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로마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을 다 추방할 때에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와 있다가 나중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로 갈 때에 에베소로 따라갔다가, 앞으로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간다고 하니까 벌써 로마에 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바울을 뒤에서 물심 양면으로 도와준 평신도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아굴라, 브리스가를 고린도에서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이들을 만나 사역하게 될 대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포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말씀합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화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병이 재발을 했는지, 아니면 심적으로 겪을 수 없는 아품을 겪은 것인지……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이면 자기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아니면 벌써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를 입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누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아니하면 저주받을 것이라고 한다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안 한다고 벌을 내리시는 그렇게 나쁜 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좋은 마음입니다. 적어도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니까,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었으니까 그 일을 위해서 나는 사는 것이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야 할 가치가 없고,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 마음만은 중요한 것입니다. 저주하시는 하나님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의 삶의 의미를 전적으로 여기에 두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고, 또 부득불 전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결국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복음전파 하는 데는 결과에 대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전하는 것뿐입니다. '전해서 효과가 있을까 이 사람이 믿을까 안 믿을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씨를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올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 전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손해를 입게 되나, 핍박을 받게 되나, 성경을 펼쳐놓고 읽고 있으면 직원들이 흉보지나 않을까, 이런 저런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결과도 두려워하지 말고, 대상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오는 피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하심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코가 석자인데 무슨 예수를 전하노, 조용히 예수 믿는 사람의 본을 보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아예 벙어리 그리스도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아서' 내 행위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긴단 말입니까? 그것은 교만입니다. 마땅히 행위로도 본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내 행위가 거룩하고 깨끗해서 내 행위를 보고 모든 사람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나도 허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면 "너나 잘 믿어라"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 들어도 좋습니다. 그런 말 들으면서도 복음은 전해야 합니다. "그래요. 나도 지금 애쓰는 중입니다. 좌우간 예수믿어야 합니다"해야지 "날 따르라"한다면 나를 전하는 것이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까? 내가 거룩해진 다음에 입을 열겠다고 생각한다면 죽을 때까지 입 못 열고 말 것입니다. 전도 한 번도 못해볼 것입니다. "당신처럼 믿을 바에야 그만두겠어" "당신이나 제대로 믿어"―이런 말을 듣는 한이 있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말씀 잊지 말아야 됩니다. 벙어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다음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직은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백성이 여기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잠잠하면 구원을 받겠느냐' 예정론과 관계됩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다 정해져 있다면 다 믿게 될 건데 뭘 전도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뱅의 대답은 "당신이 전도해서 믿도록"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전도한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만이 전도를 듣게 되어 있고, 또 하나님 백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는 중요한 사명이 수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백성이 많다" 그러므로 전도하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도성에 많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면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도성에 내 백성이 많다. 너는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말씀하십니다.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의 마지막 부분으로 고린도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의 긴 귀로 여행을 불과 몇 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큰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령님의 은혜로 일 년 육개월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 교인들과 형제의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갈리오 총독의 옹호까지 받게 된 상황이라 바울로서는 가장 편하게 사역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당시 상황을 볼 때, 바울은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편하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형제처럼 지냈던 교인들을 떠나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18b)
이 구절로 미루어보아 바울이 고린도 선교 사역과 관련해서 어떤 목적을 두고 일정 기간의 나실인 서원을 했고,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로 서원하고 포도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을 먹지 않고, 어떠한 시체도 만지지 아니하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민 6:1). 서원은 일평생일 수도 있고, 최소 30일 이상의 특정기간을 정할 수 있었는데, 특정기간이 끝날 때 율법에 정한대로 서원기간동안 자란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민6:13-20). 따라서 18절 말씀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삶의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과 함께, 바울은 눈앞에 보이는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며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고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신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본문의 바울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기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지혜나 생각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고린도 사역을 위해 바울이 전심을 따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 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이 나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임에 감사하며 이 사역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의 옷을 덧입혀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상황과 사람의 뜻에 민감했다면 그는 고린도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좀 더 있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을 들어주셨음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고린도 형제들을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또한 안디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렸던 에베소 교인들의 더 머물러달라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하고 에베소를 떠난 바울의 모습에서도 그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역사가 평탄치 않았던 것은 위정자들이 국민의 뜻에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에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인지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서 동쪽으로는 예루살렘과 수리아 안디옥으로, 서쪽으로는 헬라와 로마로 나아가는 산업의 중심도시이며, 당시 고대 근동의 풍요의 신인 아데미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에베소에 바울이 떠나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왔습니다. 성경은 아볼로의 고향을 알렉산드리아라고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애굽을 정복한 후에 애굽 북쪽 지중해 연안에 건설한 도시로, 상업의 중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리겐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는 당시 수사학에도 능통하여 언변이 좋고, 학문적인 배경도 좋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도 능통한 자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즉석에서 본문을 인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하였는가 까지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에 능통한 자'였고, 그는 성경 본문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의 사용법과 적용법을 알고 있었으며, 성경을 근거로 강력한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대인인 그가 어려서부터 주의 도를 배웠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상당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곧 회개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회개만으로는 신앙의 뿌리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뿌리는 회개를 거쳐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까지 내려져야 합니다. 회개의 세례만 알아가지고는 하나님의 성령이 아볼로의 사역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교육을 잘 받았으며,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다방면에 학식이 풍부하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볼로를 복음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 고린도에서부터 함께 했다가 에베소에 남겨두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한 사람입니다.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아굴라 부부는 그가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볼로를 집으로 초대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도(복음의 본질)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주었고, 이후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습니다”(28).
아볼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깨달았다고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신앙이 가장 침체되었던 때는 아이러닉하게도 신학교에 입학한 1학기 때 라고 합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지식적으로 과거에 비하면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었지만, 레포트와 시험에 밀려 지식습득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있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떠난 열심을 봅니다. 지식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볼로의 한계 속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은 머리로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언변이 유창하고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가 천막을 만드는 아굴라 부부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에서 아볼로는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만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습니다. 정상에 올라갔다 추락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겸허하게 배울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핵심을 통해서만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핵심을 깨달은 그는 이후 형제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함께 고린도로 가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서 고린도교회가 아볼로파와 바울파로 나뉘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이자 이는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산업화에 따른 탈기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이슬람이나 동양 종교가 창궐하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복음의 핵심인 “예수는 그리스도”를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속에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핵심을 증언하며 세상의 권세를 물리침으로 우리가 디디고 있는 곳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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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테네 사역을 마친 바울은 고린도로 내려갔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1절)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이어주는 지협(地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고린도는 남북과 동서를 동시에 이어주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번영하는 무역도시였기에, 고린도는 막대한 부를 누렸고 거기에 걸맞은 문화적 사치도 함께 누렸습니다. 그러나 고린도는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사치 속에서 극단적인 타락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 고린도는 ‘성적 타락’을 의미하는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두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바울에게 고린도교회는 눈물과 고통으로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성적 문란과 타락의 대명사와도 같은 도시였지만 바울은 그러한 도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고,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가리켜 바울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고전 1:2)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미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거룩’은 ‘성도’가 되는 조건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거룩은 모든 성도가 바라봐야 할 지향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거룩하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부르심을 위해 타락의 대명사인 도시 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또한 복음으로 고린도교회를 낳았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세상을 따라가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세상 문명을 앞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이나 문화에서 세상을 앞서는 것이 교회의 자랑일 수 없습니다. 교회의 자랑, 교회의 능력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 이것이 곧 교회입니다.
2.
바울은 27권의 신약성경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13권의 성경을 남겼고, 바울의 전도로 인해 유럽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바울 뒤에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발걸음을 옮긴 바울을 위해 주님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동역자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들에 대해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2절에 언급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의 집에 함께 살면서 주중에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 부부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는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합류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5절)
17장에 보면 바울은 베뢰아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황급히 아테네로 내려왔던 터라,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 실라와 디모데를 기꺼이 보내주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지역의 형제들을 돌아보고 다시 이들이 바울과 합류했을 때 바울은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들의 합류로 인해 바울은 더욱 더 말씀을 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성경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포츠 종목 중의 하나는 축구입니다. 축구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있습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선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 선수를 받쳐주는 조직력이 없다면 그 선수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위대한 교회는 위대한 동역자들의 모임이기도 합니다.
3.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잡아 다시 법정에 세웠고, 아가야 지방의 총독으로 있던 갈리오가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악의에 찬 고소를 다 들은 갈리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당신들의 율법에 관한 일은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이런 일에 상관하지 않겠소.”
세상의 권력은 바울의 편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울을 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권력도 때로는 이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권력 또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만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배웠듯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를 항상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전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쫓아다녔지만 하나님은 끝내 그 둘 사이에 ‘갈림의 바위’가 되어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서 당신의 교회를 친히 인도하시며 지키고 계십니다. 교회를,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오늘도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 드립니다.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던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문에서 나오듯 작별과 떠남의 여정으로 기록됩니다. 그는 1년 6개월 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작별하였고,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납니다. 그는 가이사랴에서 안부를 묻고 안디옥으로 내려가고,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닙니다. 바울이 각 지역에서 작별하고 떠나는 모든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 본문 21절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작별할 때 남긴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났으니,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한 평생 길 위에서 작별과 떠남의 여정을 살았던 바울의 걸음 근저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사로잡았던 한 가지, 그가 온 생을 던져 따랐던 한 가지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한편 본문은 하나님의 뜻이 바울에게 얼만큼이나 드러났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나지만 먼 훗날 다시 돌아올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떠나라는 한걸음 앞의 뜻은 보이셨지만, 이후의 걸음을 어떻게 인도하실지는 바울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작별과 떠남의 여정 곧 제자들을 굳게했던 삶의 흔적은 모두 한 걸음만큼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온 결과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생의 한 걸음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다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전까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들 부부는 바울과 같이 고린도에 머물렀고, 수리아로 떠났고 에베소에 이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아볼로라하는 유대인을 만납니다.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그가 주의 도를 배워 전하는 것을 가만히 듣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가 비록 성경에는 능통하나 예수님에 관해서는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 정확한 하나님의 도를 알게된 아볼로는 이후 아가야에서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고, 공중 앞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아볼로를 통해 아가야의 믿는자들이 유익을 누리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걸음 내딛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나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한걸음씩 따를 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현장을 보며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 집니다.
우리의 믿음은 한걸음 만큼 보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견고해집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길이에 비례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 삶에 비례해 견고해집니다. 믿음이 자라는 토양과 같은 하나님의 뜻은 추상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도 자명한 것들이었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은 1년 6개월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회당에서 유대인과 변론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청을 등지고 다시 에베소를 떠나는 것이었고, 교회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하나님의 뜻은 바울의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었고, 에베소에서 머무는 것이었고, 아볼로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풀어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걸음 만큼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추상적이거나 거창하기보다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선택의 귀로에서 주어지는 결단이 아니라 일상적인 선택의 배경이며 동기였기에 바울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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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에 관한 행적이 사도행전 15장 말미부터 사도행전 18장 22절까지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동역자 실라와 함께 안디옥 교회가 속한 수리아 지역을 시작으로 북쪽으로 바울의 고향이 속한 길리기아 지역을 거쳐 바울의 1차 전도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의 열매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확인하며 전도를 하였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지역은 오늘날 터키 중남부 지역입니다.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오늘날 터키 북부, 흑해와 인접한 지역으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님의 인도로 오늘날 터키 북서부 드로아 항구를 통해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 지역 중 유럽의 발칸반도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 영토인데, 북부는 당시 ‘마게도냐’라고 불렸고 남부는 ‘아가야’로 불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팀은 발칸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의 작은 도시와 마을, 큰 도시 빌립보,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 이후 베뢰아를 거쳐 발칸반도의 남부 아가야의 큰 도시,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 아덴에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아가야의 수도이자 대형 항구도시 고린도에서의 사도 바울의 전도사역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사람을 만나니(1-4절)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의 전도 사역 이후 당시 인구 75만명의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인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의 발칸반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1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최소한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고린도는 주님의 도를 유럽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로 확장할 수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유대인 아굴라를 만났습니다. 아굴라는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후세였습니다. 아굴라 부부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계기는 로마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의 로마 추방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아굴라 부부가 로마에서 추방된 것은 큰 어려움이었지만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은 인생의 전환점,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의 도를 더 깊이 깨닫게 되었고 고린도에서 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9절을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자신이 사용하던 집을 교회 모임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우리는 직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직면한 현실을 당장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응하면 나중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천막을 제조하며 판매하는 사업가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천막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굴라 부부와 바울이 생업이 같았기에 서로 인연이 되어 함께 살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님의 도를 전하는 동역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천막을 만들며 생업을 유지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전9:12, 고후11:9). 물론 사도 바울은 교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빌4:16). 사도로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고전9:6). 하지만 다양한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에서 목회함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성도들에게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5-11절)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인해 베뢰아로 이동했고, 베뢰아에서 전도할 때에도 역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찾아와서 소동을 일으키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를 대동하지 않고 어떤 인도자를 따라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내려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와 실라가 없는 동안에 사도 바울에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동역자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밀하게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을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면 주님께서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자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는데 결과는 유대인들의 대적과 비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굳은 마음의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 전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회당에서 유대인 전도가 어려워지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의 집에서 머물며 주님의 도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디도 유스도는 로마식 이름이기에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민 사상에 빠진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장소가 회당에서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들었던 유대인들은 복음으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고, 그 거부로 인해 전도 장소가 회당 옆집, 디도 유스도 집으로 옮겨졌고, 디도 유스도는 전도 장소를 제공함으로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온전히 수용하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회당에서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거부했지만 회당장 그리스보는 유대인이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을 믿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자신의 집을 복음 전파의 집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신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지만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도록 주님의 귀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도를 깨달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사람은 자기 인생의 변화에만 머물지 말고 디도 유스도처럼 다른 사람들이 주님으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도록 주님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가운데 주님께서 환상 중 바울에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유럽 발칸반도의 대도시에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대도시 유대인과 이방인이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빌립보에서는 투옥이 되고, 데살로니가에서는 무리가 떼를 지어 도시를 소동하고, 심지어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베뢰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사도 바울이 주님의 도를 전하는 것을 방해했으니, 상업적 기반으로 쾌락과 방탕의 대도시 고린도에서도 일련의 소동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 주님께서는 고린도에서 복음이 확장되도록 바울을 1년 6개월 고린도에 머물며 말씀을 가르치도록 바울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셨습니다. 발칸반도에서 더 머물러야 할 지역, 빨리 피신해야 할 순간 등 모든 여정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갈리오가,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12-17절)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그리스에 있는 델피(Delphi) 비문에 주후 51-52년에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새롭게 부임한 총독에게 여론을 몰아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고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환상 중 하신 말씀처럼 해롭게 할 대적자를 없도록 해 주신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총독 갈리오 앞에 서게 된 바울은 고소에 대한 변론을 하려고 하는 순간, 총독 갈리오는 바울의 변론을 막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변론권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고소를 기각해 버린 것입니다.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고소를 재판할 가치조차 없는 고소건으로 본 것입니다. 갈리오는 유대인 종교에 관해서 재판을 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새로 부임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지만 재판조차 열리지 못하고 고소가 기각되었고 또한 법정에서 쫓겨났기에 유대인들의 자존심이 매우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고소가 기각됨으로 고린도의 전도가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전도의 위기를 디딤돌로 바꾸시는 터닝포인트가 되게 하셨습니다.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모든 사람은 고소가 기각되는 과정을 본 헬라인들을 가리킵니다. 초기 어떤 사본에는 사람 뒤에 헬라인이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평소에 유대인들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헬라인들이 고소가 기각되자 무고죄에 대한 일종의 심판의 성격으로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회당장 소스데네를 법정 앞에서 때린 것으로 보입니다. 대도시 고린도에는 회당이 여러 개가 있었을 것입니다. 소스데네는 디도 유스도 집 옆에 있는 회당과 다른 회당의 장이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의 전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전의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도시들과는 달리 큰 박해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고린도를 중심으로 한 복음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로부터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의 협력을 통해 생업을 유지하며 전도하였습니다. 또한 교회의 모임 장소로 그 부부의 집을 제공 받았습니다. 아굴라 부부의 집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는 디도 유스도가 자신의 집을 제공함으로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최소 1년 6개월 이상 고린도에 머물면서 주님의 도를 전할 때 교회가 성장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때 목회를 기억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린도전후서를 쓸 정도로 고린도에서의 전도와 목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도록 하시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으로 인도하게 하심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과정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대로 순응하며 살다 보면 나중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응하면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님의 증인으로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이 터닝포인트가 되게 하는 주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의 몸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디도 유스도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회당장 그리스보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안디옥으로 내려간 바울(18-22절)
본문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부분과 3차 전도여행의 첫 부분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8-22절이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부분인데,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전해줍니다.
본문은 이렇게 막이 올라갑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사도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에 당시 최고의 지적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아덴(아테네)’에서 사역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복음을 열심히 전했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다른 곳에서보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로 왔는데, 거기에서 자신과 ‘생업_천막 만드는 일’이 같았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를 만남은 하나님의 격려와도 같았습니다.
본문의 ‘여러(히카노스, hikanos)’의 문자적인 의미는 ‘충분한’ 또는 ‘충분하게 많은’입니다. 그래서 ‘여러 날’을 일주일 미만, 또는 일주일을 상회하는 정도의 기간이 아니라, ‘충분하게 긴 기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이 편안하고, 뭔가 누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는 당시 가장 타락했던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곳에 충분한 기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a)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1년 6개월, 충분한 기간이 지난 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도한 고린도 교인들과 작별하고 자신을 파송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도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 부부 중에서 ‘브리스길라’가 아내입니다. 보통은 남편의 이름을 먼저 쓰지만, 본문에는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성경에 이 부부의 이름이 5번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남편 아굴라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1번이고, 나머지 4번은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순서는 서열과도 같습니다. 또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였음에도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브리스길라가 주님을 섬기는데 훨씬 더 헌신적이었고, 믿음이 깊었음을 의미합니다.
(18b)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과 그 일행은 안디옥의 수리아로 가기 위해서 고린도의 외항(外港)인 겐그레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이전에 서원한 것이 있어서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머리를 깎는 것은 결심의 표현입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그 시험 준비에 몰두하기 위하여 머리를 깎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결심을 푸는 행위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 ‘서원’은 ‘나실인 서약’을 가리킵니다. 이 서약은 남자든 여자든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을 구별하고, 그 기간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약 기간은 일반적으로는 30일, 60일, 100일이 있었고, 길게는 7년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삼손, 사무엘, 세례자 요한처럼 평생을 드려 ‘종신 나실인’으로 살기도 했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6장에는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준수사항은 3가지가 있었는데,
①독주와 포도주를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금주(禁酒)하라는 명령만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의 물은 대부분이 석회수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물의 대용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식탁에 빵과 함께 올려진 포도주는 우리나라의 반주(飯酒) 개념이 아니라, 물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이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②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실인으로 사는 기간에는 가족을 비롯한 그 어떤 시체와도 접촉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③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머리로 대표되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남자든 여자든 머리가 장발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서약 기간이 끝난 다음에야 칼로 머리를 자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아 바울은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로부터와 이방인들로부터, 그리고 강과 바다에서, 광야에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을 나실인으로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고린도에 체류하면서 ‘나실인’으로 1년 6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는 사역자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 중에서 1-2년을 선교지에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달 중에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시설이나 기관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 중에서 일정한 부분을 일정한 기간 동안 나누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그 기간을 나실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한 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일정한 기간을 구별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린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유익하여 자신의 영적 수준을 성숙하게 만들어줍니다.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겐그레아에서 오늘날 터키의 동남쪽에 위치한 수리아의 안디옥까지는 1,000km가 넘습니다. 고대에는 아교를 발라 나무를 붙여서 배를 건조했기 때문에, 그 먼 거리를 직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바닷물과 습한 기후로 인해 아교가 풀어져 배가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시내버스만 갈아타면서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처럼, 구간 구간을 운행하는 배를 갈아타면서 항해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겐그레아에서 동쪽으로 출항하는 배 가운데 가장 먼저 승선할 수 있었던 배는 에베소로 향하는 배였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제국의 행정구역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 크기가 로마제국에서 수도 로마, 알렉산드리아, 수리아 안디옥과 함께 4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에베소의 수호신이 아르테미스 여신인데, 그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2,000년 전에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도시들 중에도 대도시였습니다. 바울인 이 도시 회당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20-21)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에베소에 좀 더 오래도록 머물면서 계속하여 복음을 전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환하기로 한 바울은 “만약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당신들에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서, 그들과 작별하였습니다. 바울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다시는 에베소에 들리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게 해주실 것입니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본래의 계획대로 수리아의 안디옥을 향해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로 하여금 에베소에 그대로 남아 있게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되돌아올 때까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로부터 받은 복음을 에베소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 교회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21b-22)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마침내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입니다. 그리고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라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 사도들과 교인들에게 자신의 2차 전도여행에 대해 보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으로 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도 교우들과 2차 전도여행에서 확인했던 하나님의 역사와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전도(23-28절)
23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이것이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출발입니다.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이 모두 안디옥에서 출발했지만, 이 이후로 사도 바울은 다시는 안디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끝낸 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로마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3차 전도여행을 출발하는 사도 바울에게 잘 다녀오시라고, 또 돌아오시면 다시 반갑게 뵙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마지막으로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품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는 우리나라의 강원도, 경기도와 같은 ‘도(道)’의 개념입니다. 이곳에 1-2차 전도여행에서 방문했던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돌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의 삶과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었습니다.
(24-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에베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던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70인역성경’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는 성경(구약)에 능통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경이 한 권으로 묶여 있지 않았고, 엄청난 양의 양피지 두루마리 파피루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1권 분량의 양피지와 파피루스만으로도 박물관을 만들고도 남았습니다. 아볼로는 그 방대한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가 세례자 요한의 세례 이상은 몰랐습니다. 즉 오실 예수님은 알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알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열정적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아볼로의 증언을 유심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로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도(말씀)를 더 정확하게 풀어주었습니다. 만약 회당에서 알려주려고 했다면, 아볼로가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참 지혜롭게 행한 것이고, 그 가르침을 받은 아볼로도 참 성숙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려고 했는데, 그곳은 고린도입니다. 아볼로가 전하는 말씀을 고린도에서 온 사람들이 듣고, 아볼로를 초청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볼로는 아가야, 고린도에서 힘있게 말씀을 전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고, 그다음 순번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이 아볼로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끝자락과 3차 전도여행의 첫 자락인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터닝 포인트로 가득합니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신 터닝 포인트였고, 그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함으로 거기에서 아볼로를 만나서 말씀을 더 정확하게 가르치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였고, 아볼로가 고린도로 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목적 삼음으로, 우리의 24시간이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