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톡으로 보내준 사진. 어디냐고 물었더니 전주 전동성당이라고 한다. 어려서 그 앞을 지나칠 때도 많았으련만 전혀 기억이 없다. 뜻밖에 향수 비슷한 감정이 습기처럼 번져온다.
풍류를 즐기던 이윤기의 전주사랑
이복희
이 윤기님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 박학다식하고 유연한 사고에 호방한 인품이 글마다 진하게 여운을 남긴다. 문장의 멋을 부리거나 현학적이지 않고 사물이나 사건에서 진수만 쏙 뽑아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책을 읽는 묘미와 즐거움이 더했다.
그렇게 감탄하며 빠져 있다가 어느 대목에서 색다른 놀라움을 만났다. 자신이 대구 출신이면서 유난히 전주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반가웠다. 어려서 전주를 떠났지만 전주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그냥 흘려듣지 못한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난 정작 제목조차 잊고 있던 '전주의 노래' 가사가 거기 있었다.
그대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풍남문 종소리로 나를 깨워주고
남고산성 달빛 아래 나를 재워주
실은 며칠 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노래 몇 소절이 불쑥 떠올랐다. 기억이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먼 과거로 생생하게 역주행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가물거리며 애만 태우다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가사도 분명치 않았지만 곡조만 겨우 기억난 옛 노래, 생각이 안 나 답답했는데 며칠 만에 이 노랫말을 만날 줄이야. 이 책을 만난 일이 우연이 아닌 듯 가슴이 가볍게 출렁였다.
우리 집엔 어쩐 일인지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도시로 유학 온 먼 촌 친척도 있고 그들의 친구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젊은이들이 많아서인지 묘하게 들뜨고 뭔가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한 긴장감이 어린 내게도 느껴졌다. 그때 ‘전주의 노래’가 만들어졌고 시민 모두의 애창곡이 되었다. 그 노래는 내 고향에 대한 사랑은 물론 사람들 가슴에 애틋하고 낭만적인 감성으로 스며들었다.
당시 노래를 부르며 꿈을 꾸던 언니, 오빠들은 모두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어중간한 십대의 어린 소녀에게도 보일만큼…. 노래의 힘은 컸다. 지금처럼 매체도 흔하지 않을 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주의 노래'는 전주 젊은이들의 세레나데며 연가였다.
이제 그 노래를 부르며 가슴 설레던 푸른 젊은이들은 언니처럼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세월의 바람에 물기 다 말라버린 노년의 시간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 언저리가 묵직해졌다.
걸출한 인물, 이 윤기 씨는 왜 그리 빨리 떠나갔을까 아쉬워하며 읽다가 발견한 하나의 불씨가 나의 빈약한 추억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당장에라도 아는 체를 하고 싶을 만큼 반가웠고 한편 슬펐다. 하필이면 삶이 힘들어 책과도 담 쌓고 지냈던 긴 세월의 어간에 작가는 저서를 많이 발표했던 것 같다. 살면서 놓쳤던 금쪽이 많지만 그의 책들을 모르고 살았다는 일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의 취미는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잘 부르든 말든, 어느 자리에서도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자신의 삶이라 여겨 내 삶을 살 뿐이라고 고백한다. 작가가 아니었으면 가수가 되었으리라. 어쨌든 지성과 풍류를 아우르는 멋을 알고 그 길을 따라 살았던 생애, 어찌 보면 복된 삶이다.
명창 안숙선 씨 앞에서도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던 그는 전주에서 열리는 행사 때 정말 안숙선 씨 앞에서 '전주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전주를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되었을 때 그는 당연히 멤버가 되었다.
왜 고향도 아닌 전주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묻고 싶지만 굳이 몰라도 좋을 것이다.
전주에 대한 내 기억은 그곳을 떠났던 열네 살에 멈춰 있다. 고향이라는 개념도 그리움도 사라졌다고 믿었다. 나의 일생에서 전주에서의 세월은 겨우 십 몇 년에 불과하다. 그분의 글로 잊은 줄만 알았던 고향에 대한 추억이 그렇게 깨어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전주를 사랑하고 노래를 좋아해 글로 남았고 덕분에 잊었던 노래 하나가 내게 살아온 셈이다.
취미를 넘어서 노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인간 이 윤기. 제도권 밖에서 그러나 사회와 불화하지 않고 가진 재능을 다 쏟아내며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살다 간 소설가이며 번역가 이 윤기 씨를 나는 때늦게 그리워한다.
심근경색이라고…. 하긴 그리도 술을 좋아하고 많은 일을 하며 남김없이 자신을 불살랐으니 어쩌랴. 남은 자에게는 아깝고 아깝지만 이생에서 할 일을 너무 빨리 해버렸던 것 같다.
그의 글에는 '자다가 숨을 멈추는' 죽음의 복에 대한 것도 있다. 저서 중에는 신화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남다른 예지가 생겼을 법도 하다. 어쩌면 자신의 의지대로 살다가 또 그렇게 다른 세상으로 간 이 윤기 작가. 언젠가 나 또한 다른 세상으로 떠났을 때 그곳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중, 그가 있다.
‘나 전주사람이오’ 하면 반가워할까? 하지만 워낙 유명인이라 그곳에서도 그럴 터, 나설 자신은 없다.
졸저 《바람둥이 까치》 수록
첫댓글 전주(全州) / 김사인
자전거를 끌고
여름 저녁 천변 길을 슬슬 걷는 것은
다소 상쾌한 일
둑방 끝 화순집 앞에 닿으면
찌부둥한 생각들 다 내려놓고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쯤은 해야 하리
그러나 슬쩍 피해가고 싶다 오늘은
물가에 내려가 버들치나 찾아보다가
취한 척 부러 비틀거리며 돌아간다
썩 좋다
저녁 빛에 자글거리는 버드나무 잎새들
풀어헤친 앞자락으로 다가드는 매끄러운 바람
(이런 호사를!)
발바닥은 땅에 차악 붙는다
어깨도 허리도 기분이 좋은지 건들거린다
배도 든든하고 편하다
뒷골목 그늘 너머로 오종종한 나날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여기는 전주천변
늦여름, 바람도 물도 말갛고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버드나무 길
이런 저녁
북극성에 사는 친구 하나쯤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 타고 놀러 오지 않을라
그러면 나는 국일집 지나 황금슈퍼 앞쯤에서 그이를 마중하는 거지
그는 나귀를 타고 나는 바퀴가 자글자글 소리내며 구르는 자전거를 끌고
껄껄껄껄껄걸 웃으며 교동 언덕 대청 넓은 내 집으로 함께 오르는 거지
바람 좋은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