象曰 澤中有火革 君子以治歷明時(상왈 택중유화혁 군자이치력명시)
상전에 이르기를 연못 속에 불이 있는 것이 혁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책력을 다스리고 때[시간질서]를 밝혀야 한다.【周易(역경, 주역), 革卦第四十九(혁괘제사십구), 革卦03(혁괘03)】
※ 해설 : 서양의 역사는 ‘부활절을 계산한 캘린더 작성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문명은 캘린더 제작의 경험을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합당한 캘린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학(대수학과 기하학), 천문학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해와 달은 무정한 천체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소재였으며, 보통 사람에게는 삶의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은혜로운 존재였다. ‘歷(역)’은 역사를 배후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시간[曆(력)]과 동일한 의미다. 과거에는 ‘曆(력)’을 책력, 달력을 구성하는 법칙으로 인식했다. 歷(역)은 곧 曆(력)이다. ”군자는 책력을 바르게 제정하여 춘하추동 4시의 변혁을 명백히 한다. 4시의 변혁에 따르는 것은 천도에 따라 人事(인사)를 다스리는 근본이다. 낮과 밤은 하루의 변혁이고, 그믐과 초하루는 한 달의 변혁이며, 춘분 · 하지 · 추분 · 동지는 계절의 변혁이다. 옛날의 왕들은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일하면 반드시 책력을 고쳤다.“ 자연의 변화와 역사의 진행은 모두 시간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필연법칙이기 때문에 易學(역학)은 곧 曆學(역학)인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易(역) = 歷(역) = 曆(역)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漢代(한대)에는 괘의 이론과 자연현상을 일치시켜 주역을 해석하는 학문이 발달하였다. 이것이 곧 卦氣說(괘기설)[=卦氣易學(괘기역학)]로서 주역[易(역)]과 캘린더[曆(역)]가 결합된 세계관이다. 괘기역학은 상수로 우주원리와 그 변화를 節氣(절기)의 변화, 즉 陰陽消息(음양소식)으로 설명하는 체계인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1년 12달을 순환하는 24절기와 배합하여 우주의 합법칙성을 설명한다. 천지일월과 성신의 운행으로 인해 생명체가 태어나서 자라나고 늙는다.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는 행위는 인간 스스로가 시간적 존재임을 깨닫도록 한다. 만일 천지일월과 성신이 없다면 생노병사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만물을 마구 먹어치우는 시간의 이빨에 속수무책이다. 유형무형의 모든 사물은 시간의 먹잇감인 셈이다. 시간의 법칙인 생노병사를 비껴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은 사물형성의 근거이자 내용이며 형식이면서 힘이다. 시간과 공간은 자연과 사회와 인류역사의 근원적 터전이므로 천체의 운행은 인간 삶의 시간적 리듬인 것이다. 결국 天文(천문)의 인간화가 人文世界(인문세계)라고 할 수 있다. 정역사상은 자연과 문명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상극에서 상생으로’라는 우주사와 ‘閏曆(윤역)에서 正曆(정역)으로’의 시간사를 일관되게 설명한다. 이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사유이다. 동서양 철학에서 시간론을 하나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나. 시간의 꼬리가 떨어져나간다는 시간의 질적 전환[1년 365¼의 閏曆(윤역)에서 1년 360일의 正曆(정역)]으로 인한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논의하지는 못했다. 정역사상의 핵심은 시간론에 있다. 정역사상은 도덕 형이상학 중심의 중국역학과의 차별화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철학의 독창성을 드높였다. 그것은 선천과 후천의 캘린더 시스템[선천의 ‘甲己(갑기)’질서에서 후천의 ‘己甲(기갑)’질서로의 전환]이 바뀐다는 파천황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를 정역은 度數(도수)로써 추론하였다. 들뢰즈의 표현처럼, ‘시간의 주름’을 헤집고 ‘이념의 속살’을 벗겨냈던 것이다. 『정역』은 우주관과 시간관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다. 이를 하나의 도표로 융합한 하도낙서는 하늘이 계시한 진리의 표현체이며,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의 극한까지 들여다본 종교성의 신비를 나타낸다. 하도낙서의 시간적 표현체가 십간십이지로 이루어진 60갑자이다. 하도낙서와 60갑자는 조직론의 극치이다. 도수의 조직으로 디자인된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뜻이다. 서양의 기독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했다면, 동양에서는 이미 갑자, 을축으로 시작해서 계해로 끝나는 합리적 조직론이 존재했다. 이렇게 정치한 조직론을 바탕으로 시간의 구조와 선후천변화를 소통시킨 것이 바로 정역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