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 小亨 旅貞吉(여 소형 여정길)
여는 조금 형통하고, 나그네는 올바르게 해야 길하다.【周易(역경, 주역), 旅卦第五十六(여괘제오십육), 旅卦01(여괘01)】
※ 해설 : 산에 불이 나면 등산객은 살 길을 찾느라 분주하듯이, 집 떠난 길손은 고생이 몸에 뱄다. 길 닿는 대로 걷는 나그네의 삶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주변의 낯선 환경과 씨름해야 하는 고달픈 인생사다. 여괘는 나그네의 삶에 비유하여 인간사를 얘기하고 있다. 오죽하면 “인생은 니그네길”이라는 노래가 가슴에 와 닿겠는가. 일본의 마쓰오 바쇼松尾芭焦(송미파초, 1644~1697)는 삶과 죽음, 의미와 무의미는 생명의 공존 차원으로 엮여 있다고 인식한 시인 나그네였다. 그는 여행길인 오사카에서 숨을 거뒀다. 아예 죽기를 각오하고 집을 나선 러시아의 톨스토이나 미국의 에드거 엘런 포, 여행을 居處(거처)로 삼던 김삿갓과 바쇼, 또한 중국의 시인 이백, 그리고 오갈 데 없는 두보는 눈 내리는 겨울, 배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말 그대로 旅卽人生(여즉인생)이다. 나그네는 홈 팬들의 응원 없이 시합하는 야구선수와 같다. 어웨이 게임하는 선수는 외롭고 고독하다. 어웨이 시합에서 무승부면 본전인 것처럼, 나그네는 단지 숙식만 보장되면 무난하여 조금은 형통한다[旅(여), 小亨(소형)]. 나그네는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크게 형통할 수 없다. 배고프고 춥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과 옷을 훔친다면 도둑이다. 세상을 조롱했던 김삿갓이 쉰 밥을 얻어먹고 얼마나 곤욕치렀던가를 보더라도 나그네 신세는 늘 처량하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나그네는 서글프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 날에는 처자식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붙박이 삶이 사무치게 그립다. 유랑하는 나그네의 타향살이는 날마다 끼니 걱정과 잠자리 타령이 끊이지 않는다. 빌어 먹는 처지에 음식타령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일삼거나 함부로 몸을 굴려서도 안된다. 인생은 니그네 길이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벌거숭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무덤으로 향하는 게 인생살이다. 객지에 나서면 행동 하나하나가 서툴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이국적 풍경에 푹 빠져 정신이 해이해질 수도 있으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늘 걱정이다. 그렇다고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옳다. 보금자리를 떠나 걷고 걷는 여로는 매우 고달프고 힘겹다. 튼튼한 다리 하나가 전 재산이다. 정든 집과 가족을 떠나 남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늘 일정하지 않다. 향수병에 젖어도 돌아가 쉴 곳이 없어 막막하다. 불규칙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원칙은 불편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도덕의식이 마비되기 쉽다. 괘사는 여행자에게 올바른 행위가 필요하듯이, 일반인 역시 올곧은[貞(정)]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