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출 15:22-27)
얼마 전 조선일보의 유홍준 명지대교수가 쓰는 국보순례에 실린 글입니다.
2005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달항아리’전에는 국보, 보물로 지정된 7점과 함께 대영박물관과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소장품도 찬조 출품되었습니다. 동양도자미술관의 달항아리는 본래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관음원(觀音院)의 주지였던 가이운(海雲)이라는 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 스님은 항아리를 좋아하여 '항아리 법사(壺法師)'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관음원 응접실 가장 좋은 자리를 항상 조선백자 달항아리로 장식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소설가인 시가 나오야(志賀直哉)가 2차세계대전 직후 이 절에 와서 잠시 신세를 지고 돌아간 다음 스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보내 준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가의 항아리’고 불려 왔습니다. 스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관음원의 응접실에는 언제나 이 달항아리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5년 7월 4일 대낮에 한 남자가 침입하여 이 항아리를 들고 도주했습니다. 이때 경비원들이 뒤쫓아가자 그는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났습니다. 그 바람에 이 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셀 수 있는 파편만 300여 조각이었습니다. 경찰 조사 후 관음원은 고고학자의 도움을 받아 깨진 파편을 작은 가루까지 쓸어 담아 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하였습니다. 미술관 측은 2년간 파편 조각을 맞춰 본 다음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도자기 복원기술자에게 맡겼습니다. 6개월 뒤 복원기술자는 일차 작업을 마친 것이라며 박물관 관계자들에게 조각조각 이어붙인 항아리를 보여 주었는데 거짓말처럼 완벽한 복원에 모두들 놀랐다고 합니다. 손때가 묻었던 자국까지 원모습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앞으로 미세하게 남아 있는 이음 자국마저 말끔히 없애는 작업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이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기로 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항아리의 역사를 위해서 남겨 두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전설적인 조선백자 달항아리로 되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고 하는 사람은 평생 소원이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흥분해 있던 피터 구르퍼가 스트라디벨리우스의 바이올린을 안고서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악기를 손질하는 한 기사가, ‘내가 그 악기를 고쳐보겠다’고 해서 보냈더니, 그 기사가 다시 악기를 잘 만져서 감쪽같이 고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친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깨졌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투성이인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쓸모없던 우리들, 깨졌던 우리들을, 그 사랑의 손길로 붙잡아 주셔서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 좋고, 더 귀한 존재로 온전히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리가 변화되어 마태가 되고, 사마리아 여인이 변화되어 주님을 전하는 자가 되고,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복음의 일꾼이 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가 이런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상처투성이의 우리들을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사, 새 사람이 되게 하신 인생 라이프스토리가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세파를 살아가면서, 또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상처를 입고, 상하여 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치유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촛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고쳐주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16세기 프랑스에 암브로스 파레라고 하는 유명한 외과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한평생 많은 환자를 돌아보았는데, 그때마다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이 말을 묘비에 새겨놓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묘비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묘비명은 이렇습니다.
“나는 상처를 싸매어줄 뿐이다. 상처를 고쳐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38:16절을 보면,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후에 처음으로 광야에서 겪은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더 걸어 작은 오아시스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우물이 있어서 마시려고 했더니, 물이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곳 이름을 “쓰다”라는 뜻으로 “마라”라고 불렀습니다.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에 던지라고 명하셨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물에 쓴 맛이 사라지고, 달아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건 이후에, 아주 중요한 제안을 한 가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것처럼, 앞으로 너희들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주 비밀스런 자신의 이름 하나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곧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러분! 홍해를 건너며 구원의 하나님을 만났던 이스라엘, 이제 마라에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 여러분,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라파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치료의 은혜, 회복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라와 같은 쓴물 인생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아멘.
우리 인생을 맛으로 비유한다면, 과연 어떤 맛일까요? 어떤 분은 초콜릿처럼 달콤하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꽃처럼 향기롭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라의 쓴물처럼, 쓰디 쓴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로 인하여, 우리 인생이 고난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흔히 광야는 고통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두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원래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고통과 수고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죄를 범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심판하시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 심판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결국 아담과 하와는 그 아름답고 멋진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그 저주의 핵심 내용이 바로 고통입니다.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아담은 땀을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노동을 해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이 아닙니다.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저주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그 고통은 계속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인생에는 항상 하나님의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감격스러운 기적을 체험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직도 이런 기적의 감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 기쁨의 찬양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도착한 곳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주신 은혜에 크게 감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삼일 길을 걸었는데도 마실 물을 찾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겨우 이곳에 도착해서 물을 찾기는 했지만, 이 물마저도 너무 써서 마실 수 없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5절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렇지 않아도 광야의 길이 힘겨워 죽겠는데, 겨우 찾은 물마저도 써서 마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기대감 다음에 찾아오는 실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대감보다 실망감이 더 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큰 시험을 주셨을까요? 왜 마라의 물을 쓰게 해서 마시지 못하게 했을까요? 신명기 8:2-3절에서 우리는 그 답을 분명하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 마디로 어떤 상황이 닥친다하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려고, 이런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야고보서 1:2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은 우리를 연단하여, 더 성숙한 자리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약이 입에 쓰지만, 우리 자신의 몸을 위해서 먹는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험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항상 기쁘게 여기면서, 그 시험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길이 원래 다 광야길입니다. 이런 광야에서 마라와 같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기쁨으로 시험을 극복해나갈 때, 우리가 더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간섭하셔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병든 육신, 병든 심령을 치유하시기를 원합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와 주신 하나님은 바로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라파’라고 하는 말은 ‘고친다,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옷이 찢어지거나 해어졌을 때, 고치고 수선하는 것이 바로 ‘라파’입니다. 집이 낡고, 비바람에 파손되었을 때에 손을 보는 것이 ‘라파’입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해서 낫게 하는 것이 바로 ‘라파’입니다. 그러므로 ‘라파’라고 하는 것은, 고쳐서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라파 하나님께서 무엇을 치료해 주십니까?
먼저 여호와 라파 하나님께서 병들어 있는 우리의 삶의 환경을 치료해 주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마실 수 없는 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달게 해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하시겠다는 비전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11장, 35장, 43장, 65장 등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강이 흐르게 되고, 광야에 길이 나게 되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뛰놀게 되는 아주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허락하여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아름답고 멋진 에덴동산을 우리에게 다시 허락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병들어 있는 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여호와 라파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든 육체를 치료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병을 고쳐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기 전, 애굽의 강퍅한 바로와 그 백성들을 무서운 질병으로 벌하셨는데, 이런 질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내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질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다 고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말라기 4: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지금도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치유하여 주십니다. 낫게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병든 심령도 고쳐주십니다. 지친 심령도 강건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도 고쳐주셨습니다. 저들이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끝까지 참으시고, 받아주시고, 사랑으로 불평거리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들에게 은혜 주셔서, 원망과 불평의 자리에서, 오히려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엘림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열두 개의 우물과 종려나무 칠십 그루가 있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평안, 참된 안식은 오직 주님 안에만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안에서 참된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여러분이 있는 이 곳이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물샘 열두과 종려나무 칠십 그루가 있는 참된 평안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교회에 와서 쉼을 얻고, 평안을 맛보고, 안식함으로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복음 24:36절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병든 심령을 고쳐주시고, 참된 평안을 그들의 심령에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병든 심령을 고쳐주십니다.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앞에 준비되어진 많은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 라파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켜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병든 육신을 치료하시기 원하시는데, 우리의 병든 심령을 치유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기에 무조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채워 주시지는 않습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치료하심도 무조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준비해주시고, 무조건 치료해주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할 때, 준비한 것을 누리게 하시고,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기도할 때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라의 쓴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모습을 보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라고 하는 말의 뜻은 “내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다 쏟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모든 곤경에서 구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가 부르짖었을 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그것을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했더니, 쓴물이 달아졌습니다.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샘물이 치유된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고통이 치유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오늘 말씀에 의하면,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부르짖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은 새벽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밤을 지새우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근신하여 깨어 함께 기도할 때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해결 방법보다도 우리의 기도가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계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고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고통이 있습니까? 그것도 기도하십시오. 여호와 라파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치셔서, 여러분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기도와 함께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 말씀에 순종할 때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치유의 은혜는 조건적인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병 고침을 받고, 기도응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일,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어떤 것도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실 때, 즉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건강함을 찾을 수 있고, 믿음과 순종함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프다고, 누구나 다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고, 누구나 다 문제의 해결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여자와 남자, 어른과 어린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구원도 받지 못했고, 고침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부르짖은 사람들만이 고침을 받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주옵소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나를 고쳐 주옵소서. 보기를 원합니다.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걷기를 원합니다. 나를 만져 주옵소서. 내가 주님을 만집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일어설 수 없지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서겠습니다. 나는 고기를 많이 잡지 못했지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여 주옵소서.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군을 이끌고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장군 한 사람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포위망을 좁히며, 총공세를 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펠드리히 시에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항복할 것인가, 더 버틸 것인가를 논의하였는데 대다수 시의원들의 의견은, 미리 항복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대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의 지도자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의 힘만을 믿는다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다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무서워 떨고만 있지 말고 교회의 종을 힘껏 치고 부활절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 뒷일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드디어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찬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종소리와 찬송소리가 프랑스군 진영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밤사이에 오스트리아 군대가 도착했기 때문에 울리는 기쁨의 종소리와 노래 소리일 것이라고 판단해서, 공격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말았습니다. 펠드리히 시는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절망할 수도 있고, 희망을 가질 자유도 있습니다. 말씀을 믿을 자유도 있고, 믿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주님께 맡길 자유도 있고, 내가 움켜쥐고 있을 자유도 있습니다. 영원히 살 자유도, 영원히 멸망할 자유도 있습니다. 주님께 기도할 자유도 있고, 기도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자유도 있고, 불순종할 자유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자기 뜻대로 고를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기도하며, 순종할 때, 놀라운 치료의 역사, 회복의 역사,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다 나음을 입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붙들고 불행과 고통을 계속 하겠습니까?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나음을 입습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치유됩니다. 우리의 쓴물 인생이 변하여 단물 인생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반드시 다 나음을 입게 될 것입니다. 치료받게 될 것입니다.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의 약한 몸, 지친 심령, 어려운 가정의 문제, 근심거리, 걱정거리, 이것저것 고침 받아야 될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주님께 맡겨 나음을 입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며 순종함으로 어두웠던 환경이 변화되고, 아픈 몸이 치료되고, 지치고 병든 심령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치료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고쳐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심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병든 몸을 치료하십니다. 병든 마음도 치료하십니다. 병든 환경도 치유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의 직장이나 사업장도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십니다. 그러한 놀라운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남으로 인하여 날마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여호와 라파이신 하나님, 우리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과거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지친 심령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감정과 정서와 인격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과 감정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병든 인격과 습관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병든 환경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치유하여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 교회를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셔서,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 박종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