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7일 화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탈무드의 교훈
탈무드에 있는 인생에 관한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대로만 한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의 마음이 이러한 것입니다. 키가 작은 자캐오는 그 작은 키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돌무화과나무라도 올라가야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관장이라는 것이나 부자라는 체면을 구기고 돌무화과 나무라도 오르려는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합니다.
나는 어려서 심한 결핵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폐의 1/3이 석회질이 되었는데 약을 먹어서 아주 단단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석회질이 되어갈 때 의사선생님은 각혈을 하는 것을 조심하느라고 약을 계속 투여하고 폐를 넓혀주는 운동을 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네가 살이 찌면 자동적으로 나을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때 내 몸무게는 56kg정도 나갔고 병을 앓았지만 주치의 선생님께서 지성으로 치료해주셔서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내가 폐활량을 넓히는 재활운동을 하지 않아서 폐활량이 늘지 않아서 허파꽈리들이 막힌 곳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할 때 길게 빼서 노래를 하지 못하는데 노래를 하거나 성가를 부를 때 그렇게 숨이 막히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음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탈무드 중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
♧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
♧ 일생동안 울고 허송해서도 안 되고, 웃고만 보내서도 안 된다.
♧ 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 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
♧ 하느님은 밝은 사람을 축복해 준다.
♧ 낙관하는 마음은 자기뿐만 아니라 남들까지도 밝게 해 준다.
♧ 행복을 얻으려면 만족에서 멀어져야 한다.
♧ 어차피 같은 햄을 먹는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먹어라.(유태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탈무드의 말을 들으면서 혼자 생각해 봅니다. 오늘 자캐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오르는 작은 수고를 통해서 인생을 바꿉니다. 그러나 그 작은 수고는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전기가 됩니다. 무엇이 나를 바꾸는 전기(轉機)가 되어서 나는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입니다. 자캐오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을 절대로 잃지 않았습니다. 정말 허송하지도 않고 그냥 예수님을 보고 웃고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다음에야 손을 들고 뛰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회하기 보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후회의 나날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려고 하면서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과감하게 도전하기를 두려워한 것이 많습니다. 가슴의 통증이 조금 심했더라도 폐활량을 늘이는 일을 했다면 지금쯤 폐활량이 많이 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이 더 많았나 봅니다. ‘다시 폐가 찢어져서 각혈을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조심조심해야지’ 하는 소심함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과오를 과감하게 뉘우치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사람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탈무드에는 그런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마치 향수를 뿌리는 일과도 같다.
♧ 남의 강요에 의해 베푼 자선은 스스로 한 자선의 절반의 가치밖에 없다.
♧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천사에게 베푸는 친절과 같다.
♧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허함이다.
♧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나,
♧ 반대로 불행을 행복으로 가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 신은 바르게 사는 자를 시험해 본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은 요한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준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 독서의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 말씀을 새기며 삽니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3,1-6.14-22
나 요한은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오늘 축일을 맞는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에서 공주로 태어났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참회와 고행의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전쟁으로 사망하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가입하여 기도 생활과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1231년 스물넷의 이른 나이에 선종한 그녀는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엘리사벳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