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상구 유부우음주무구 유기수 유부실시 상왈 음주유수 역부지절야)
상구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거니와 머리를 적시면 믿음을 두는 데 옳음을 잃을 것이다. 상전에 이르기를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이다.【周易(역경, 주역), 未濟卦第六十四(未濟卦第六十四), 未濟卦14~15(미제괘14~15)】
※ 해설 : 미제괘 상효는 주역 64괘 384효를 총 매듭짓는 의미가 있다. 상효는 특히 '믿음'과 '술'로 끝맺는다.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술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술은 하루에 한 잔 마시면 양약이지만, 석 잔 이상 마시면 독술 있는 곳에는 항상 사람이 옆에 있기 마련이다. 술 예찬론자들은 술이 들어가면 근심이 사라진다고 하여 '술을 보면 안 마시고 못 배긴다'는 속담을 들먹이는 버릇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술이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독약이다"라고 했고, 劉向(유향, BCE 77~ BCE 6)은 『設苑(설원)』에서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오고, 혀가 나오면 말을 실수하고, 말을 실수하면 몸을 버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태백을 비롯한 시인들은 자신보다 오히려 술을 더 사랑했다. 믿음과 술의 관계는 사람과 술의 관계로 환원할 수 있다.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셔서는 곤란하다. 술 때문에 믿음을 망각하고 신뢰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 믿음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면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은 잠시 접어두고 술독에 빠지면 신의를 잃어버리는 사태를 가져온다. 적당한 음주문화는 웰빙사회를 선도할 수 있지만, 폭탄주를 들이마신 다음 술잔을 머리 위에 털어내는 음주문화는 퇴폐적인 사회를 조장한다. 술 권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술이 나쁜 것이 아니라 폭음이 항상 불상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술이 지나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주지육림에 빠졌던 은나라 衬王(주왕)의 말로는 인류에게 수많은 정신적 교훈을 남겼다. 깔끔한 '飲酒(음주)' 매너는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폭음은 믿음과 올바른 판단을 마비시킨다. 술은 믿음과 정성의 마음으로 천천히 마셔야 한다. 미제의 끝자락을 지나 기제의 문턱을 바라보면서 폭음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미제에서 기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이므로 음란한 술문화에 빠지면 신성한 믿음과 정도를 일어버리기 때문이다. 「상전」은 주역 64괘 384효의 총결론을 '절제'로 매듭짓는다 절제는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타율적 규범이 아니라, 주체성에 입각한 자율적인 조절력에서 비롯 된다. 그런데도 이성을 잃을 정도로 술 마시는 행위는 불행이다. '술에는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으니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명심보감』의 말처럼,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치고 일을 그르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파음을 경계했던 文王(문왕)의 말이 『서경』에 실려 있다. "덕을 잃음이 또한 술마시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음이 없으며, 작고 큰 나라가 망함이 또한 술의 허물이 아님이 없도다. 술은 늘 마시지 말고, 여러 나라가 술을 마시되 오직 제사 때만 마실 것이며, 마시더라도 덕으로 이어가 취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말라." 사람 사귐에 꼭 필요한 것이 술이다. 곤드레만드레 만취하여 이성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禁酒(금주)를 강권하는 사회 또한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술을 마시되 절제력을 잃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중용’에 있다. 술이라는 말자체가 '물과 '불의 합성어에서 비롯되었다. 술은 물불의 정당한 조화가 이루져야만 몸에 좋다 불의 비중이 높을수록 보드카 같은 毒酒(독주)가 빚어지고, 반대로 물의 비중이 많을수록 도수는 낮아진다. 대략 15°에서 20° 정도로 걸러낸 술이야말로 보약같은 藥酒(약주)일 것이다. 기제괘의 '머리를 적심[濡其首(유기수)]'은 물로 적시는 일이라면, 미제괘의 '머리를 적심'은 술로 적시는 것이다. 술과 연관되기 때문에 더더욱 진실한 믿음[有孚(유부)]과 정성스런 마음에서 비롯된 절제[節(절)]가 요구되는 것이다. '절'은 절도와 '철'을 뜻한다. 날마다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신다'는 말은 철부지 인간들이 사회를 가득 메워 믿음이 붕괴되는 세상을 지적한 발언이다. 술로 지새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미제괘의 비유가 아주 돋보인다. “旣濟(기제) 上六(상육)은 머리가 물 속에 들어가 영영 죽고 마니 萬事休矣(만사휴의)어니와 未濟(미제) 上九(상구)는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신 술에 빠진 것이니, 彼岸(피안)에만 넘어 서지 못하였을 뿐 아직 죽지는 않았다. 어서 바삐 정신차려 철이 들어 믿음을 회복하고 理性(이성)을 되찾으면 구제의 길은 남아 있다. 최후의 희망, 종말의 기대는 아직도 있다. 주역의 未濟(미제)는 절대절명은 아니다. 그러나 어서 서둘러서 믿음을 회복해야만 할 것이다." 기제괘가 완성과 성공을 뜻한다면, 미제괘는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미성숙의 단계를 상징한다. 완성과 미완성은 맞물려 존재한다. 완성은 미완성의 끝인 동시에 또다른 미완성의 시작이라는 것이 주역을 읽는 전통적 방법이었다. 그러나 『정역』을 지은 김일부는 과거의 학설을 무너뜨리고, 미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새료운 세상이 다가오는 이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