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과 속마음]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8AD355E01EE0E15)
한문(漢文)에 외선(外善)이란 겉으로는 착하지만 속은 악(惡)한 것을 말합니다. 말은 바르되 행동(行動)이 그에 따르지 못하고, 행동은 따르되 일이 미덥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겉치레 선(善)은 속에 악의 씨를 잔뜩 품고 있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악이라도 반드시 하늘의 화(火)를 받는 것이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 악을 베풀어 쓰기 때문이지요. 악한 마음을 먹고 행하면 남이 알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하늘은 ‘소소영령’(疎疎靈靈: 마음이 깨어 있고 밝고 신령스러운 것을 묘사하는 용어)하기가 태양처럼 밝은 것과 같이 사람은 밝은 양심(良心)이 있어 스스로 비춰보게 합니다.
그러나 계속 양심을 외면하면 어두워져 나 자신을 망(亡)치고 남을 해(害)치게되는 것이지요. 이 겉모습과 속마음이 서로 다른 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고 합니다.
‘표리부동’은 마음이 음흉(陰凶)하여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표(表)’는 거친 흰 무명의 겉감이고, ‘리(裏)’는 거친 흰 무명의 안감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표리’는 원래 설날에 왕(王)과 조정관리(朝廷管理)들이 모인 자리에서 검소(儉素)한 생활을 하고 가난한 백성(百姓)들의 어려움을 되새기자는 뜻으로 올리는 무명 옷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이 표리로 옷을 해입는 사람이 없이 단지 행사용으로 그치고 마는 데서 ‘표리부동하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표’가 겉을, ‘리’는 안을 나타내므로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말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사람을 표리부동한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성격(性格)이 간사(奸詐)하고 교활(狡猾)한 사람은 표리부동하여 대개 위선자(僞善者)들일 것입니다.
겉으론 잘해주는 척하면서 속에는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한테 하는 말이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行爲)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텅 빈 정신(精神)에서 마음과 생각과 감정(感情)이 일어나고,
그 생각과 감정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특징(特徵)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속마음과 겉모습이 일치(一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마음은 울면서 겉으로 웃고, 속마음은 싫어하는 데 겉으로 좋다는 말을 내뱉을수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이지요.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기 뜻을 관철(貫徹)하기 위해 따듯한 말과 부드러운 웃음을 짓거나,
자신의 이득(利得)을 위해 얼마든지 사실(事實)을 부풀리고 왜곡(歪曲)할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속성(屬性)인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품고 있는 저의(底意)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바른 안목(眼目)을 갖추어야만
올바른 인간관계(人間關係)는 물론이고, 일을 추진(推進)하는데도 낭패(狼狽)를 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공자’(孔子)님께서는 소인배(小人輩)의 전형인 ‘교언영색(巧言令色)’, 즉 교묘한 말과 거짓 웃음을 띠면서 표정(表情)을 일부러 부드럽게 하는 짓을 특히 경계(警戒)하셨을 것입니다.
부드럽고 온화(溫和)한 것처럼 들리는 말투와 환하게 웃음 짓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으로 짐짓 상대를 배려(配慮)하는 듯 행동하는 것은 자기자신의 만족(滿足)을 위한 가식(假飾)일 뿐,
예절(禮節)도 그 무엇도 아닌 까닭에 공자님께서는 교언영색을 소인배의 전형으로 못 박으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군자(君子)는 겉만 뻔지르르한 화려(華麗)한 말에 속지 않고,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그 사람의 속생각과 속마음을 정확(正確)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람의 겉모습과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봄으로써, 화려한 말에도 속지않고, 남루(襤樓)한 겉모습에 흔들려 옳은 말을 놓치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참된 본성(本性)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대답(對答)하십니다. “참된 본성이란 정성(精誠)이 지극(至極)한 것이다. 정성이 없으면 남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억지로 곡(哭)을 하는 사람은 비록 슬픈 체한다 해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고, 억지로 화난 척하는 사람은 비록 엄(嚴)하게 군다고 하더라도
위압(威壓)을 주지 못하며, 억지로 친한 체하는 사람은 비록 웃는다 해도 친근하게 느끼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진실(眞實)로 슬픈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진정 슬퍼 보이고, 진실로 노한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압을 느끼게 하며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더라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참된 본성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 정신이 밖으로 발하여 움직이는 것이니,그런 까닭에 참된 본성이 귀중(貴重)한 것이 되는 것이다.”
겉모습과 속마음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 그것이 곧 완전한 자유(自由)와 지극히 행복(至福)한 삶이고,
그것을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도(道) 또는 진리(眞理)와의 합일(合一)이라 하지 않을까요?<덕산 김덕권 著>
[노년기(老年期) 백수(白手)로 산다는 것]
노년기는 누구나 ‘백수’라는 단계를 거친다. 늙었으니 아무것도 할 수없는‘잉여인간’으로 간주되기 쉽다.
게다가 백수로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실제로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면 내 삶이 불쌍해지는 것이다.
늙어서 술집 대신 ‘집술’로 한잔을 기울인다 한들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빈번한 다툼, 갈등을 모두 내려놓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때가 많아진다.
하루에 한 번도 웃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이 하루같이 길게 느껴지고,
누군가에는 하루가 한 시간같이 짧게 느껴지는 것인데 이런 감정 모두는 자기생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1.백수(白手)란 누구인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지만 6070세대가 되면 대부분 노인대열에 끼어든 백수(白手)가 된다. 백수건달(乾達)이라는 말이 있듯이 백수는 특별한 생활조건에서 벗어난 상태다.
젊어서는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며 살아가는 삶이었지만 노년기 백수에게는 시간이 남아돈다.
젊어서는 비행기 타고 하늘을 날았겠지만 늙어서는 땅으로 내려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 하향 길이다.
젊어서는 직장이라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은퇴 후는 한 칸의 방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백수는 시작 된다. 그러나 늙어서도 백수라는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할필요는 없다.
백수는 자유인이다. 늙어서는 자유롭다. 백수는 누구나 거치는 단계다. 노년기를살아가면서 방황하는 것도 나뿐 것이 아니다.
방황할 때 새로운 방향도 잡을 수 있으니 그렇다. 은퇴와 더불어 이제는 즐겁게 여유로운 시간을 추구할 때이다.
백수라는 지위가 단순히 세월을 무심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 할 수있는 자유다.
생물학적 생존이 아닌 ‘진짜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 말이다.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J, Attali)’는 ‘자기 자신이 돼라’고 외친다.
외부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의 무한한 힘을 찾아내는 진짜 삶을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시간의 풍요함을 소유할 때 행복한 감정은 높아진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시간을 잘 사용하면 즐거움, 좋은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지혜로운 백수는 어떤 다른 자유, 지식에 접근 할 수있다. 백수는 두려울 정도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E6B0F4B13176170)
2.백수(白手)의 일상적 감정(日常的 感情)
물론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다. 시간도 내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삶이 시계추에 맞춰서 시간을 타고 지나가는 삶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가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또 미래에 대해 초조해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더구나 백수로 지내다 보면 자칫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나머지 ‘신은 어디 있느냐’며 세상을 원망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한탄하다. “살아가는 게 힘들어”하고 말이다.
그러나 노년기에 백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도 좌절은 금물이다. 이와 관련해 백수로 살아가는 감정과 그 대처 방향을 몇 가지 찾아보며 일상생활을 챙겨보자.
1)시간이 많아 지루하다고?
마누라 눈치 보며 밥먹고 나가서 공원에서 서성거리고, 카페에서 차 한 잔 하고, 저녁이면 들어와 TV뉴스 좀 보다가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가 끝낸다.
사실 늙어가면서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방바닥에서 뒹굴이로 하루 보내기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노년기에 찾아오는 창조적 자신감(creative confidence)을 잃게 된다. 하루가 무력해 진다.
2)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늙으면 새벽 3,4시경에 눈이 떠지는 불편한 진실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다가 10, 11시까지 늘어지게 자는 습관이 생긴다.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 해진다. 그러나 노년기 백수는 가능한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게을러지는 습관을 막아야 한다.
3) 백수에게 아침식사란 없다고?
출근할 일이 없으니 자연히 아침에 꼭 식사를 할 필요성도 없어진다. 어떤 이는 아침 겸 점심을 하고 저녁 한 끼로 즉 하루에 두 끼로 때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식사를 거르는 것이 아닌 시간을 조절해 다이어트를 겸한 식사 즉 딘치(Dinch, 저녁식사의 dinner와 점신 lunch의 합성어)로 시간을 조절해 먹는 한 끼도 있다.
그러나 늙어서는 아침 식사는 제대로 적당히 먹어야 한다. 흔한 말로 늙으면 밥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성인에게 하루 필요한 2200cal-2400cal는 섭취해야 한다.
4)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하루라고?
빈둥빈둥 백수의 하루는 길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방황하다가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다고 나이트클럽 가서 새로운 여자를 보고 ‘작업’ 할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하품이 나오게된다. 하품도 일종의 아픔이다. 무중력의 일상이 계속된다.
당신의 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같다면 홍길동의 하루와 무엇이 다른 가 헤아려보라. 내 삶이 무엇인가 절실하게 고민해 볼 때 그 답이 보일 것이다.
3.노년기 백수(老年期 白手)에서 벗어나기
백수지만 하루를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백수는 그야말로 시간이 많은 부자다. 하지만 누구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마땅치 않다.
확실히 노년기는 건강의 문제, 경제력, 가족과의 관계 등 정상적인 삶을 살수는 없더라도 어떻든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이다. 다만 아직 내 인생을 관리할 방법을 모르거나 잠시 방황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그 답은 누구나 자신의 누적적 경험과 비전, 건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참고로 백수생활에서 벗어나는 방법 몇 가지만 찾아보자.
1)문밖에서 놀아라.
인간은 이동하는 동물이다. 가장 즐거운 추억은 문밖에서 만들어진다. 당신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잘 차려 입고 당당하게 나가라.
힘들지만 땀방울을 흘리며 산을 오르고 여행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 밖에서 만나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 맺기로 소셜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자기의 사회적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때때로 캐쥬얼스타일로 봄철 가랑비도 가볍게 털 어 낼 수 있는 옷들로 챙겨 있고 걸어보자.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거나 숲길을 걸을때 머릿속을 괴롭히는 ‘불편한 감정’들이 날아갈 것이다.
2)건강을 늘 챙겨라.
진정한 건강은 무엇인가? 나이테가 넓어졌지만 속으로 병들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백수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늘 운동을 하는 일이다. 등산으로, 걷기로, 스트레칭도하면서 건강을 만들어가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주로 앉아있거나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매일 10시간이상을 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수명이 늘어가지만 건강이 비상인 시대다.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웰에이징(well-aging)시대에서 인간답게 자연스럽게 나이 먹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야 말로 100세 노인의 장수비결은 100가지 건강 비결이 있을 것이다.
3)백수로서 아내일, 가사일, 자식일 도우며 노후를 하며 보내는 일이다.
백수가 되었다는 것은 가정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아내를 돕는 일이다.
부인을 돕는 의미의 ‘외조’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능한 밖에 나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아내를 돕는 일이다.
가능한 밥도 자기가 차려먹거나 집안일도 알아서 하는 것이다. 매끼 집에서 식사를 하는‘삼식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집안을 정리할 때 감사 한 마음도 들 것이다. 현대사회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이니 그렇다.
4)취미생활 찾기다.
나만의 남다른 취미생활은 일상적 삶보다 고양된 삶의 차원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생활 태도다.
60대 중반 혹은 70세 이상을 살아갈지라도 재충전의 시간으로 낚시하기, 정원 가꾸기, 그림그리기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몰입하는 생활이다.
값비싼 취미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활의 목표다. 손익계산이 아니라 내 ‘역량의 최대화’로 살아가는 것, 자기 생활정체성(self-life identity)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취미생활의 요체다.
5)일거리를 찾아라.
남자들은 한 평생 집한 채 구하고 처자식 부양하고 보호하는 피투성이 싸움터에서 한평생을 보낸다.
늙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정한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물론 노인으로서 일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현실, 파트타임, 풀타임의일거리를 찾아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임금 노동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일이아름다운 삶이다. 노인은 사회적 위치에서 상향적 적응이 아니라 하향적 적응의 태도가 필요할 뿐이다.
6)지식 시장인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는 일이다.
노인이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을것이다. 도서관,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실시하는 인문학 강좌, 서예 등도 참여해 볼만 하다. 인터넷 접속을 통해 넓은 세상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배우는 것은 축복이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다. 86세에 초등학교를졸업하는 할아버지도 있지 않은가?
7)하루 일상을 늘 기록하고 메모하는 일이다.
좋은 영화나 책에서 삶의 양식이 되는 내용을 찾아 기록하는 것은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고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무언가 기록 할 때 일상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사유와 힐링의 시간이 된다. 작은 수첩의 다이어리에 하루, 일주일,
한 달의 계획을 세워 실천 해 보자. 그리고 그것들이 잘 이뤄졌는지 다시 점검하는 일도 젊게 사는 비결이다.
8)자기만의 공간, 골방이 필요하다.
혼자 보낼 수 있는 나만의 골방은 나를 대접하고 보살피기 위한 것이다. 어느 정도 건강하고 연금, 저축해 놓은 돈으로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면 노년기는 가끔 혼자 있는 것도 괜찮다.
당신만의 골방에서 세상과 단절하는 의미에서 자신만의 다른 의미를 깨닫기위해서다. 혼자 있는 것도 힐링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늙어서는 침묵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
결론적(結論的)으로 백수로서 이제는 과거의 모든 아픔을 멀리하고 시간을 소비할 수 있으나
이것은 절망인 동시에 해방이고 자유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버티며 일어나는 미생(未生)의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백수생활이 오래계속되면 세상에 대한 불신, 불만, 불안이라는 3불(不)시험에 빠지기 쉽다.
노년기에 미래가 불안하고 비관적인 정신 상태에 빠지게되면 극단적이며 파괴적인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백수는 자기 스스로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하는 자기조절이 필요한 때다. 백수로써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기쁨을 발견하고 삶에 다시 원기를 얻는것은 지루함을 극복하는 길이다.
이제 늙어 가는 백수로서 작은 쉼표가 더 어울린다. 그게 늙음의 삶이고 실존적 존재양식이 아닐까 싶다!!<우정 著>
- 좋은 글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