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시집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미학사, 1992)
* 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여대 대학원 박사.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저서로 『문정희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지금 장미를 따라』(시선집) 『사랑의 기쁨』(시선집)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작가의 사랑』 외에 장시집 『아우내의 새』등이 있다.
추석선물 같은 아름다운 시입니다.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그런 ‘한가윗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올해는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온갖 가시덤불”보다 더 참혹한 코로나 열병으로 우리들은 참 많이 아팠고 참 많이 슬펐습니다. 지금도 그 아픔과 슬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우리 어머니의 마음 같은 보름달은 떠오릅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겠지요! 추석 달, 그 달 속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봅니다.” 정한수 같이 맑은 신神이 빚어 놓으신 추석달입니다. “솔 향내 푸르게 베인” 우리 어머니의 사랑 같은 달입니다.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참으로 옥양목 같이 희고 맑은” 어머니의 둥근 사랑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은” 추석달입니다. “북쪽의 달, 남쪽의 달/이제는 제발/크고 둥근 달 하나로 띄워 놓고” 온 민족이 한 마음으로 추석 달을 맞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올해는 그런 소망은 더욱 아득해지고, 내 가족 내 부모님 만나는 것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고 있으니 참 애석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같은 ‘추석 달’은 어김없이 둥그렇게 떠오를 것입니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나마 신이 빚어놓으신 달에게 서로의 소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웃에 혹시 부모 없는 아이들, 얼마 전에 어린 두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가 화재로 인해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는 그런 아이들은 없는지? 혹或,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환과고독(鰥寡孤獨)한 어르신들은 없는지? 둥그런 달처럼 둥그런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참 어렵고도 어려운 올 추석이지만 “나의 추석 달은/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는” 그런 달 하나씩을 가슴속 등불로 달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영춘 시인 / MS투데이 2020.09.30
중추절이나 한가위 보다 추석(秋夕)이 더 정겨운 것은 왜 일까? 우리 지난날 그저 추석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다. 배고픈 아이들에겐 풍성한 배부름이었고 어른들에겐 아낌없이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이었다.
문정희 시인의 <추석달을 보며>는 그리움과 화해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리움은 어머니의 ‘정한수’(기원)와 ‘송편’(고난의 승화) ‘옥양목’(순수)을 통해 구체화 된다. 이어서 ‘달’에 와서는 민족 분단의 아픔으로 확대된다. 결미에 와서 달은 다시 ‘백동전‘으로 환한 그리움의 실체가 되어 모든 이의 그리움, 그 불변의 본성을 가슴마다에 빛나게 해준다.
나이가 들면서 해마다 추석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젊은 날에는 가족 친지들이 고향집에서 만나는 설렘으로 기다려졌다. 그런데 그런 설렘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씩 유명(幽明)을 달리하면서 허전함, 그리움이 그 자리를 메워준다. 올해 여름 끝 자략 큰형님이 가시고 그런 허전함은 더욱 사무쳐온다. 고향 집 뒷산에 누워 계시던 부모님마저 낯선 공원묘원으로 함께 이사 가시고 이젠 영락없는 ‘심정적 실향민‘이 되었다.
계절의 순환은 곧 생명의 순환이다. 눈보라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면 푸른 새싹들의 봄이 온다.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유년(幼年)을 지나 폭풍이 몰아치는 여름의 번뇌도 청춘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어느 듯 사과나무에 붉은 홍옥이 하늘을 물들이는 계절, 오동통 살이 오른 보름달이 담장 너머로 갸우뚱 얼굴을 내미는 팔월 한가위, 추석은 그렇게 변함없이 우리 곁에 찾아온다. 계절이 언제나 우리를 품듯, 자연이 아낌없이 내어주듯, 우리도 넉넉한 마음으로 가족을 이웃을 사회를 품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부디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존귀함을 기뻐하는 따뜻한 명절이 되기를
기청(정재승) 시인
추석날에 모여서 다음날 헤어지는 이 거대한 이동이 개개인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하나의 의문으로 다가옵니다. 즉 여초시대를 맞아 친정을 먼저 방문하는 당돌한 며느리, 친정식구들과의 여행계획을 시댁에 알리고 다음 명절은 시댁으로 먼저 라든가, ‘그래라’ 는 시어머니의 쿨한 반응을 보면 이제 변화의 기로에서 들어섰으며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렇더라도 지금껏 변함없는 한 가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보내는 염원의 상징으로서 달의 존재는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반달 송편을 빚으면서 둥근달이 되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기 때문이지요. 각자의 주어진 장소에서 세파에 시달려도 제 할 일을 다 해내는 우리들이 있어 보름달은 둥그렇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박정옥 시인 / 경상일보 2015.09.29
한가윗날 밤에 달을 봤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가시덤불 속에서도’ 푸르게 살아 남아, 기울어지던 몸에 날마다 밤마다 살을 붙여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오른 달. 저 달은 그리운 가족들, 헤어졌던 부모 형제 친척들과 함께 바라보라고 저 높은 하늘에 저리 푸르게 떠올라 있다. 그 달 안에는 어머니가 새벽마다 집 떠난 자식을 위해 장독대에 정화수 떠 놓고 손이 닳도록, 허리가 휘어지도록 절하며 빌고 빌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다. 헤어져서 그리던 그 얼굴들 곁으로 가서 함께 행복한 눈으로 올려다보라고 저리 휘영청 맑은 하늘에 떠올라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저 달은 ‘녹슨 양철처럼’ 구겨진 달이다. 그 누가 저 달을 ‘북쪽의 달, 남쪽의 달’로 나누어 반쪽으로 갈라놓았을까? 언제면 저 반쪽의 달을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우리 모두 둘러앉아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 나눌 수 있을까?
‘남쪽의 달, 북쪽의 달’이 손잡고 더 크게 떠올라 환히 웃을 그날을 그려본다.
이혜선 시인ㆍ문학평론가 / 세계일보 2014-09-18
첫댓글 추석 보름달을 생각하면
옛날 고향집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찐송편과 부친개 등을
시원한 장독대위에 올려 놓은것을 몰래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요...
권일송 시인 생각
79년? 신탄리 역에서 한가위 날 보름달 -
나는 내가 왜 ?
이런 밤엔
장흥 한승원 님 갯뻘밭에 가서 - 안주감이나 . . . .
경자놈 없는 경자년 한가위 달 보고싶지 않아서 ~
날 원망했나 ?
한참 지났나 ? 삐쩍 말라 반쪼가리 되었더니
어 허 !
그리 限이 되었나 ?
평생 안하던 짓
엇그제는 아침 여덟시 반
내가 아침 낮달 첨 본기라 우애댄둥
니가 그 경주 가시나 맞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