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은 거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1. 백성들이 제사 드릴 때, 모두를 태우지 않고, 일부는 제사장의 몫으로 남겨두게 하셨습니다. 그 드린 예물 중에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지성물이라고 합니다. 이 지성물은 속죄 제물, 속건 제물, 소제물, 진설병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 때 드린 예물 중에서 제사장과 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성물이라고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물 중에 일부를 제사장에게 주어서, 기업이 없는 제사장들이 먹고 사는 것에 부족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많으면,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풍족하게 살 수 있지만, 죄에 대해 무뎌지면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3.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거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 제물의 제사장의 몫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부정하게 된 제사장은 적절한 정결의 절차를 거쳐서 정하게 될 때까지 제사장 사역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물도 먹을 수 없습니다.
4. 예로, 화목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언약의 주님과 즐거운 영적인 교통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부정하게 된 제사장이 화목제물을 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과의 복되고 영광스러운 교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정결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정함은 언약의 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언약은 영원한 효력이 있지만, 언약의 복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의 영적인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5. 옛 언약 시대의 제사장은 새 언약 시대의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백성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복 받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성만찬에 죄 없는 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잘 드러납니다(고전 11:23-34).
6.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범하면(실제적인 죄,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온갖 죄에 물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며 영생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계속적으로 죄를 고백하여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요일 1:9).
7.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얼마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지도 보여줍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이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우리의 ‘흠이 없는 수고’의 열매를 열납하도록 드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정한 소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8. 부정하지 않아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백성의 연결 고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제사장은 말할 것이 없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도 거룩해야 합니다.
9.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헌금을 교회의 지도자들과 담당자들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도 보여줍니다.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는 자들은 분명하고 투명하고 건전하게 이 재정을 사용하고 공개하여 흠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의 필요와 생활이 어떠한지를 잘 살펴서, 목회자가 영적인 수고를 하는데,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부족함이 없도록, 그 경제적인 생활을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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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은 18장부터 시작된 ‘거룩한 삶에 대한 요구’의 결론부입니다. 18-20장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대한 요구였고, 21-22장은 제사장에 대한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거룩한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들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반영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물을 먹는 규례’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친 후 자기 몫으로 주어진 성물을 먹을 때에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성물을 먹는 규례(1-9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물건의 주인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성물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됐습니다. 성물을 다루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구별하여 점검해야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주 봉헌찬송을 부르며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드리나이다’라며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새벽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고, 지금 숨 쉬고 있는 공기도 하나님의 것이고,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맑은 정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빌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것인 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인 환경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삶의 시간을 정욕과 야망을 위해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 삶에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3)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몸이 부정한 채로 성물에 가까이 하는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규례 때문에 성물을 먹기 전에 반드시 ‘내가 정결한가?’라고 물으며 자신을 살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제사를 드리는 예배 시간만 자신의 정결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제사 후 성물을 먹는 식사 시간에도 즉, 예배 후 일상까지도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식사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식사 시간까지도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를 9절이 밝힙니다.
(9) 그들은 내 명령을 지킬 것이니라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그 가운데에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식사시간에 하나님의 거룩을 내려놓은 채 속되게 하면, 죄가 발생하고, 그 죄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원하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즉, 하나님 안에만 생명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며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음에도 그들이 택함 받고 거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신명기 7:7-8). 우리가 택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거룩해진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쇄도하는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추구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혼자 살지 않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 열심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나열하십니다.
(4-8) 아론의 자손 중 나병 환자나 유출병자는 그가 정결하기 전에는 그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나 설정한 자나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모든 사람과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것에게 접촉된 자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야 그 성물을 먹을 것이니라 이는 자기의 음식이 됨이니라 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열거된 부정들에는 나병과 유출병처럼 지속적으로 부정결한 것과 각종 부정한 상태 곧 시체, 설정, 벌레 등에 접촉하여 일시적으로 부정결한 것들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있어 이런 규례들은 자기 목숨과 직결되었기에 그들은 매 식사마다 ‘내가 정결한가?’를 되물으며 거룩의 연단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연사한 짐승의 시체나 들짐승에게 물려 찢겨 죽은 것은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영유아를 둔 부모가 “에이, 찌찌. 먹지 마세요.”라며 분별없이 입에 가져다 대는 영유아를 말리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들이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 식사 메뉴에까지 관심을 가지실 정도로 그들을 섬세하게 돌보셨습니다. 위생적 측면에서 볼 때 죽은 짐승이 어떤 병에 걸려 죽었는지, 사체가 부패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이를 금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식사 전 제사장의 정결을 요구하신 것 또한 제사장의 위생을 생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피부질환을 가진 백성들의 정결 여부, 곰팡이가 핀 가정집 점검 등 위생과 관련하여 더욱 철저히 자신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집에 돌아온 자식에게 간식을 챙겨주면서 “손 씻고 와서 먹으렴.” 자상하게 말하듯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건강도 챙기셨던 것입니다.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10-16절)
곧 이어 성결이 요구되는 제사장의 식탁에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증거합니다.
(10-13) 일반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도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샀으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것이며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거제의 성물을 먹지 못하되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일반인은 성물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모르고 성물을 먹었을 경우, 하나님은 속죄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14) 만일 누가 부지중에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지니라
일반인이 성물을 먹는 것은 성물침해죄에 해당했기에 속건제가 요구됐습니다. 우리는 범죄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일반인 중 성물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이 돈 주고 산 종이었습니다. 이로 보아 종은 제사장의 소유가 됨과 동시에 제사장 가문의 권속이 되어 하나님의 음식인 성물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포로 되어 갇힌 자요 억눌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자 권속이 되었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먹고 누리게 됐습니다. 이러한 감동을 시편 84편의 기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시편 84편 10절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기자는 아무리 세속적 가치관의 꼭대기에 앉더라도 그곳이 악인의 장막이라면 가장 낮은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음은 우리 인생의 지복(至福)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고백합니다. 12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 복된 고백은 무엇이 복인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일반인 중 종만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제사장의 가족은 제사장과 함께 그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본래 제사장의 가족이었다가 출가한 딸의 경우도 하나님은 세세하게 다루셨습니다. 딸이 출가할 경우 남편 가문의 소속이 되기에 남편이 일반인이면 딸은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별, 이혼 등의 이유로 홀몸이 되어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에는 다시 제사장의 식탁에 딸로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약해져 돌봄이 필요할 그 때에 끝까지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우리가 가장 약해져있을 그 때에 세상은 우리를 적자생존의 원리로 냉대할지 모르나 하나님은 덮으시는 은혜로 끝까지 우리를 돌보십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제사장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15-1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그들은 속되게 하지 말지니 그들이 성물을 먹으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니라 나는 그 음식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제사장들은 일반인들이 성물을 먹어 범죄치 못하도록 잘 가르치고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백성을 지도하기는커녕 자신들이 앞서 범죄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 개역개정과 새번역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우리도 본래 주님을 알지 못하여 주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젓이 살아계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에도 우리는 눈과 귀가 멀어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많은 것들을 은혜로 주셨음에도, 그래서 우리는 빌려 쓰는 입장이었음에도 우리는 왜 이것밖에 없냐며 적반하장격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택하셨고, 지금도 자신의 열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비범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선택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들을 비범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불러 아들 피로 하나님의 제사장 되게 하사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향해 눈을 드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성물인 우리의 전 삶을 마땅히 존중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존경을 표하십시다. 그리하여 예배만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국한하고, 이외 시간은 하나님을 내려놓으며 살았던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키십시다. 이제는 예배와 더불어 예배 후 일상까지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가꾸어가며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어가십시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우리 삶에 이루어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촉진자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해 그 백성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정결해야 하는데, 그 제물에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제물만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물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 역시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이는 마음의 정결함 못지않게 몸의 정결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1장과 22장에는 제사장과 그의 가정, 그리고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성물 등에 관한 규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에 관한 규례입니다.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17-25)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규례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 중에 거류하는 자’입니다. ‘거류하는 자’는 ‘이스라엘 자손’과 대조되는 무리로서 나그네 또는 타국인을 뜻합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는 거룩은 이스라엘의 특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가정 또는 신앙공동체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구약의 정결법과 같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누가 동의한다면, 그 사람이 신앙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선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어떤 예물이든 그 예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물이 되려면 그것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의미는 ‘온전하다’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흠이 없는 온전한 예물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흠이 없는 온전한 예물이어야 한다면,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 역시 흠이 없이 온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정결하게 되어 흠이 없이 온전하게 되어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21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1절은 화목제물을 드리는 목적을 풀어서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서원한 것을 갚으려고 예물을 드리는 것은 서원제를 뜻하고, 자의로 예물을 드리는 것은 자원제를 뜻합니다. 화목제물이 흠이 없는 온전한 제물이어야 함을 다음 구절에서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22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상한 것’은 다리가 부러진 것을 뜻하며, ‘종기가 있는 것’은 곪은 부위가 있는 것을 뜻하며, ‘비루먹은 것’은 피부병이 있는 것을 뜻합니다.
23 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자원제물로는 쓰려니와 서원제물로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리라
23절은 자원제물과 서원제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서원제물로 불가능한 것을 자원제물로는 가능한 제물이 있습니다. 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입니다. 더하거나 덜하다는 뜻은 발육상태가 평균보다 지나치게 크거나 부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나 양의 머리가 아주 크거나 다리가 아주 짧은 것입니다. 만약에 22절의 ‘베임을 당한 것’이 사고로 인해 다리가 베임을 당해 다리가 짧아진 것이라면, 그 짐승과 23절에서의 ‘덜한 것’과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베임을 당해 다리가 짧아진 소나 양은 22절의 규례에 따라 하나님께 자원제물이나 서원제물이나 어떤 것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23절의 규례는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더하거나 덜한 소나 양에 관한 것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경우에는, 22절의 경우와 달리 제물로 드릴 수 있는데, 서원제물로는 되지 않고 자원제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원제가 서원제와 달리 서원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의 범위를 넓혀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24 너희는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이란 가축의 육질을 높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거세한 것을 뜻합니다. 만약에 가축의 고환이 우연한 사고로 상하였거나 치였거나 터졌거나 한 것을 언급하신 것이라면, 22절 규례의 범주 안에 포함되기에 굳이 따로 말씀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24절에서 이 규례를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이방 풍습을 따라 가축을 인위적으로 키운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헌물이나 헌금을 할 때 세속적 방법으로 획득한 것을 드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25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이는 외국인들과 교역을 통해 획득한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지 말라는 규례입니다. ‘이런 것’이란 24절에서 언급하신 성장 촉진을 위해 거세한 가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제물을 바칠 시점에 흠이 없어야 하지만, 제물로 바치기까지의 과정도 정성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헌금을 봉투에 담아 하나님께 드릴 때, 깨끗한 신권을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권이 없다면 다림질을 해서라도 구김이 없도록 해서 드리기도 합니다. 짐승이든 돈이든 그 자체가 흠이 없으면 좋겠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26-30)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28 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났을 때, 그 가축을 하나님께 드리려면 최소 생후 8일이 지나서 드리라는 규례입니다. 왜 8일째 이후에 드려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시기에,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서 8일째 할례를 받는 것과 비교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 받는 의식입니다. 할례는 언약 백성이 구원의 표징으로서 받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가축 역시, 언약 백성이 드리는 가축입니다. 가축을 최소 생후 8일이 지나서 드려야 함은, 그 예물은 언약 백성이 드리는 예물의 상징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나 양의 새끼를 제물로 드릴 때 그 새끼의 어미와 함께 잡지 말라는 규례는 예물 드린다는 구실로, 잔인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잡으면, 가축의 번성에 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28절의 ‘암소나 암양, 어미’로 번역한 원문의 원뜻은 ‘성장한 소나 양’입니다. 어미가 아닌 아비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의 핵심은 새끼와 더불어 그 부모 가축을 같이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분별하게 가축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원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29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30 그 제물은 그 날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감사제물의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제사자는 기름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고기를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까지 두지 말라는 규례는, 제사자가 그 고기를 아껴 저장해 두어 오랫동안 먹지 못하도록 한 규례입니다. 즉 당일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나눠 먹으라는 규례입니다. 감사제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제사자를 통해 제물의 고기가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질 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감사제물의 고기로 인해 기쁨을 얻게 됩니다. 제사자는 제물의 고기를 나눔으로 더 풍성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가 넘치고, 그 감사가 나눔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기쁨은 배가될 것입니다.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31-33)
31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2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33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행함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속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3계명을 범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행할 때 하나님을 이름을 거룩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이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지키게 하시어, 거룩하게 함을 받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만 하나님을 거룩하게 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에 의해 지켜집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우리로 하여금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규례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흑암의 세계에서 나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의 결과이지만,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 어디서든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주님의 도구가 되며 영적 촉진자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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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구별하여
오늘 본문은 성물을 먹는 규례에 대해서, 그리고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의 조건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물을 먹는 규례입니다. 성물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거룩한 음식입니다. 성물은 크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지성물’과 제사장들의
가족들까지도 먹을 수 있는‘성물’로 구분됩니다(레위기21장22절). 본 장 11절과 13절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2절에서 나오는 이 ‘성물’이 제사장과 제사장의 가족들까지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바친 거룩한 음식을 제사장과 그 가족들이 먹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구별하여 먹습니다. 4절부터 16절은 스스로를 구별해야 할 규례들입니다.
여호와께서,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병환자, 유출병자,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 설정한 자(4절),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모든 사람과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것에게 접촉된 자(5절), 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어 부정한 자(8절), 일반인, 제사장의 객, 품꾼(10절), 일반인에게 출가한 제사장의 딸(12절)은 성물을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규례를 가지고 제사장과 그 가족들은 명확하게 자신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부정하여 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할 때까지 기다렸을 것입니다. 부정한 상태로 그 성물을 먹었을 때에는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상태로 여호와의 성물을 먹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기에(2절),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한 죄로 형벌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정한 자들, 정한 제사장과 그 가족들은 여호와의 성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구별하여 자신을 잘 살핀 후에 여호와의 성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17절에서 30절은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이나, 감사제물을 드릴 때에는 흠이 없는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읽은 본문의 내용들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확하게 흠 있는 제물과 흠 없는 제물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의 흠 있고 없음을 확인한 후에, 여호와께 제물을 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제물을 구별하여, 흠 없는 제물을 드림으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짧지 않으신 여호와의 손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의 여호와를 향한 마땅한 태도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구별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물을 먹기 전에 자기 자신을 점검합니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그 제물을 점검합니다. 그것이 곧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하려 함이며, 거룩하신 여호와의 자녀들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여호와는 그분의 자녀들이 바로 이렇게 스스로 구별함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점검하지 않음으로, 부정과 죄악에 자기 자신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끊임없는 선지자들의 외침에도, 부정과 죄악을 끊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죄악의 굴레를 벗기시려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약속대로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약속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이제는 그 죄악의 굴레를 끊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악의 굴레를 끊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뜻, 규례, 명령을 분별하는 일은 아주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나의 삶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그 가족들은 여호와의 성물을 먹을 때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스스로 구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한 상태일 때, 그 음식을 취했습니다.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을 가지고 가기 전에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그 제물을 스스로 구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이 흠 없는 제물일 때,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짧지 않은 손으로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신 여호와를 향한 마땅한 태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자가 바로 나, 그리스도인입니다. 나,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스스로 구별하고 점검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구별하며, 점검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부정한 세속의 질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일상이 아니라, 멈춤이 없는 일상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속의 질서를 분별하며, 점검하고, 정하고 거룩한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있기 원하시는 그곳에 내가 있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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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2장 말씀은 21장에서 시작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 대한 거룩의 요구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스스로 구별하여'라고 하심으로 제사장 자신의 거룩에 대하여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깨끗하고 거룩한 것만을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도 역시 동일하게 거룩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인 중에서 자기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 즉 제물에 대해 손을 대거나 취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겠다고 합니다. 그 자세한 내용 즉 몸의 부정에 대한 내용이 4-9절까지 자세하게 이어집니다. 이걸 보시면 레위인이라고 하여 전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1장에서 말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거룩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몸의 부정, 몸의 문제까지도 하나님은 철저히 걸러내길 원하십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성물에 손을 대거나 먹거나 취하면 철저히 끊어내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의 약점, 핸디캡이 있는 자들, 즉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를 가차없이 끊어내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매정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는 약하고 불쌍한 자를 마치 시험에서 낙방시키듯 떨어 내고 완전한 자들만 이뻐하고 자기 편을 삼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점 일획의 죄나 털끝만큼의 더러운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완전하고 무서운 거룩을 지니신 분입니다. 사람처럼 그냥 넘어가 주거나 그걸 양보하거나 없던 것으로 해 주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신 분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한계라고 하지만 이것이 곧 하나님이 가지신 성품의 불변성이며 성실성이며 인간과 다른 절대유일의 위대함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비록 제사장이지만, 레위인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고 죄악된 존재이기에 그 연약함을 아시고 사전에 보호하시고자 이렇게 투철하게 그 기준과 조건을 내걸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흠 없고 결격사유가 없는 자를 세우라고 하고 계십니다. 9절입니다.
9 그들은 내 명령을 지킬 것이니라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그 가운데에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철저히 거룩한 자가 제사장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문제가 업고 철저히 흠이 없고 철저히 깨끗하고 철저히 정결한 자가 성물에 손을 대고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입는 에봇에는 딸랑이 방울이 달려 있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거나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의식을 행하다가 하나라도 부정하거나 거룩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제사장이 움직일 때는 딸랑이가 움직이다가 그 자리에서 급사하면 딸랑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럼 죽은 겁니다.
그러면 긴 작대기를 가져다가 천막 안으로 넣어서 제사장을 갈고리에 걸어 꺼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거룩한 분입니다. 제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철저히 규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스운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쉽사리 대할 수 있거나 마치 내가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옆 집 친구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무서운 분입니다. 천사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는 거룩하신 분이며 모세도 하나님을 보고 죽을까봐 바위틈에 숨겨주시고 지나가신 후의 흔적만을 보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있는 가벼운 분이 아니며 대충, 아무렇게나 해도 우리를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이름과 그 경이로움, 그리고 그 찬란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성호가 무참히 밟히고 더럽혀지며 가볍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두려워 하지 않고 무슨 악세사리처럼 곁에 두고 필요할 때 치장하는, 말씀 한 구절 집에 걸어놓는 수호신 정도로 치부되는 시대입니다.
자기재산을 관리해 주는 회계사 정도로, 스케줄을 조정해 주는 비서 정도로, 자식들 맡기는 집사 정도로 취급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7-25절을 보면 아무 것이나 제물로 바치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들로부터 그렇게 하찮게 취급을 당할 내가 아니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 나는 인간과 다른 수준의, 다른 차원의, 인간들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나의 이름에 합당한 예를 갖추며 나의 이름에 걸맞는 태도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 가운데 뒹굴며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 인생들과 차원이 다른지, 그 경이로움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 영광과 거룩, 위대하심과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존귀와 능력 가운데 거하시는 분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냥,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분? 날 위해 죽으신 분?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당할 분이 아닙니다.
2절 마지막에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2절에는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줄곧 내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애굽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냈다고 하십니까? 자랑하려고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큰 존재라고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며 역사를 주관하고 애굽보다 크고 제국보다 크며 내가 너희를 다스리는 수준은 단지 개인적인 소원을 들어주고 가정의 수호신 정도로 복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역사 가운데 그들을 이끄시고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를 대동하시면서 이 구원역사를 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그토록 크신 분이며 역사를 주관하시며 민족과 나라의 운명을 쥐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이 부정하거나 정결하지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거룩을 우습게 보는 행위입니다. 그 하나님께 더럽고 상한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것, 가장 귀한 것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우리의 것을 빼앗아 배를 불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우시며 스스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가장 최고로 온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것을 요구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시는 이유는 그 분이 그런 것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들에게 그런 대우와 존경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하나도 부족함이 업고 그에 합당한 일을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토록 세세토록 무궁토록 찬송을 받으셔도 될 가치를 지니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의 하나님이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시고 거기다가 자기 자신이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불완전한 제사를 자신이 단번에 끝내 모든 제한과 절망과 한계와 율법으로 말미암은 정죄와 속박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내 생애 최고의 경외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드려도 넘침이 없고 아무리 송축하고 경배를 드려도 과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며 구원받은 자로서의 본분에 걸맞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는 그 권리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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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2장은 성물과 희생제물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고 있다. 제사장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1-9절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일곱 개의 율법들이 주어진다. 그리고 10-15절에서는 거룩한 제물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것도 일곱 개의 율법이 주어진다. 그리고 17-25절에서는 온전한 제물에 대해서 언급하는 일곱 개의 율법이 나온다. 그리고 26-33절에서는 제물을 드리는 시간과 관련해서 일곱 개의 율법이 언급되어 있다.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자들의 신체적인 조건(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에 그 몸이 부정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성물에 대해서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부정한 자가 성물에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론의 자손 중 문둥 환자나 유출병이 있는 자는 정하기 전에는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나 설정한 자나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자나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만한 자에게 접촉된 자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성물을 먹지 못할찌며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 성물을 먹을 것이라 이는 자기의 응식이 됨이니라 절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들은 나의 명을 지킬 것이라 그것을 욕되게 하면 그로 인하여 죄를 짓고 그 가운데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3-9절).
제사장을 더럽게 하는자의 일곱 개의 항목은 전염성 피부병, 유출병, 시체에 더러워진 물건을 만지는 것, 설정, 부정한 것에 접촉, 죽은채 발견된 것을 먹는 것, 들짐승에게 찢겨진 것을 먹는 것등이다.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자들의 조건(10-16절)
“외국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군은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돈으로 사람을 샀으면 그 자는 그것을 먹을 것이고 그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러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식물을 먹을 것이며 제사장의 딸은 외국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거제의 성물을 먹지 못하되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친정에 돌아와서 어릴 때와 같으면 그는 그 아비의 응식을 먹을 것이나 외국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찌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그들은 더럽히지 말찌니 그들이 성물을 먹으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니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거룩한 성물을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목록이다. 제사장의 가족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성물을 먹을 수 엇다. 예를 들어 제사장의 객, 제사장이 고용한 일군, 돈으로 산 제사장의 종, 집에서 태어난 제사장의 종, 제사장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 제사장의 딸, 아이가 없이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 제사장의 딸, 아이가 없이 이혼해서 집으로 돌아온 제사장의 딸은 성물을 먹을 수 없다.
온전한 희생제물에 대한 규례(17-3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우거하는 자가 서원제나 낙헌제로 번제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찌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 너희는 불알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치도 말찌며
25.너희는 외방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식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17-33절).
온전한 희생제물을 다루는 일곱 개의 율법에 관한 부분이다. 번제로 드릴 제물을 수컷이어야 하고, 흠있는 동물은 열납되지 않는다. 화목제를 위한 제물을 흠이 없어야 하고,눈먼 것, 상한 것,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 종기 있는 것, 괴혈병이 있는, 비루 먹은 것은 안된다. 흠있는 소는 낙헌제(자원제물)로 드릴 수는 있지만 서원한 것을 같는 것으로는 드릴 수 없다. 불알이 상하서나 치었거나 터진 짐승은 드릴 수 없다. 외국에서 온 동물은 제물로 열납 될 수 없다.
불완전한 짐승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로 하여금 정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물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거룩하게 나아가는 것과 교제하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함부로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맞게 하나님과 나아가고 교제하도록 하신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 시간(26-3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칠일 동안 그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제 팔일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열납되리라 암소나 암양을 무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동일에 잡지 말찌니라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찌며 그 제물은 당일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26-30절).
새로 태어난 수소, 양, 염소는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도록 함, 암소와 그 새끼가 같은 날 제물로 드려져서는 안되고 암양과 그 새끼가 같은 날 제물로 드려져서는 안된다. 감사의 제물은 하나님께 열납될 방식으로 드려야 하고, 감사의 제물은 하루 동안 먹어야 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희생제물을 드리는 방법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나 있다. 새로 태어난 동물을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도록 한 것은 어미와 새끼 사이의 정을 고려한 긍휼, 칠일 동안의 부정의 기간을 지난 정결의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어미와 새끼를 동일난 날 제물로 드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이유(31-33절)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선언하시고, “너희는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목적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시고 택하시고 언약과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으려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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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은 계속해서 제사장의 성결에 대한 규례를 다룬다(1~16). 제사장은 백성들이 제물로 드리는 성물을 거룩하게 다루어야 한다(1~9). 제사장이 부정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성물을 피해야 한다(2~3). 가령 나병 환자나 유출병 환자는 정할 때까지 성물을 먹지 말고 여러 사유로 부정하게 된 자들도 정결의식을 갖기 전에는 성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4~8). 만일 이것을 어기면 죽을 것이다(9). 또 제사장 외에 누가 제사의 음식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의 문제가 다루어진다(10~16). 외국인이나 제사장의 객이나 품군-일용직과 같은-은 성물을 먹지 못한다(10). 하지만 제사장이 돈으로 산 종과 그 가족은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11). 이들은 가족으로 간주되었으므로 할례를 받고 음식에도 참여하였다(출 12:44). 제사장의 딸이 외국인에게 출가하면 먹지 못하나,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자식이 없이 친정에 돌아와 산다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은 먹지 못한다(12~13). 만일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부지중에 성물을 먹으면 1/5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속건제 규정에 따름).
2. 열납되지 않는 제물에 대한 규례가 이어진다(17~25). 서원제나 낙헌제로서 드려지는 번제(18~20)의 경우에는 소, 양,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되 흠 있는 것은 열납되지 못한다. 서원한 것을 갚거나(서원제)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낙헌제) 화목제(21~25)는 소나 양으로 흠이 없는 온전한 것을 드려야 하지만 단,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것은 낙헌 예물로는 가하나, 서원제로는 열납될 수 없다(23).
3. 이어지는 것은 기타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제물 규정을 포함하는), 여기서는 가나안 백성들 안에서 행해지는 잔인한 태도를 금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나면 7일간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8일 이후에나 예물로 드릴 수 있다. 갓난 새끼는 예물로 드릴 수 없다. 그리고 어미와 새끼를 한 날에 잡아서는 안 된다(28). 감사제사 희생은 당일에 먹고 이튿날까지 남기지 말아야 한다(29~30).
4.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유념해야 한다. 본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어구들을 보라. “나는 여호와니라(1,3,8,9,16,30,31,32,33).”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9,16,32).”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다. 또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얼마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이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우리의 ‘흠없는 수고’의 열매를 열납하도록 드리는 것은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헌금을 교회의 지도자들과 담당자들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도 보여준다. 얼마나 주의를 해야 할 것인가? 교회는 헌금의 사용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을 가지며 결정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이 일에서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