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장은 예수님께서 10가지 기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10장은 이어서 제자들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을 계속 진행해 나가도록 보냄을 받습니다.
이 마태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주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내시는 분으로(주이심), 제자들은 보냄을 받은 일꾼으로(이것이 바뀌면 안 됨. 주님을 마치 자신의 일꾼 부리듯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열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관계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제 열둘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대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보냄 받은 일꾼들
1절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처음으로 불렀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인데 특별한 목적, 사명을 위하여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명을 위임하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말씀도 듣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도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특별히 부르시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1절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명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입니다. 악한 영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의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고 말씀하시고 그 열두 사도의 이름을 죽 말씀합니다.(2-4절) 둘씩 묶어서 여섯 쌍으로 말씀합니다. 9장 37-38절에 추수할 일꾼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추수할 일꾼들과 관계있음을 의미합니다.
‘제자’(1절)를 ‘사도’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유일하게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냄을 받았다.’ 이런 의미입니다. 제자를 ‘사도’라고 하심으로 참된 제자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일하는 삶이 참된 제자의 삶임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1절) 보내기 위함(2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도 그러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또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로 서 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가 맨 앞에 나와 있지요. 언제나 그러합니다.(막 3장 16절. 눅 6장 14절) 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바돌로매는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일 것이고, 다대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눅 6장 16절)와 동일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셨는데 이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배경이나 삶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부였고 어떤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응답을 했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교육하시고 훈련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일하도록 보내십니다.
교회도 주님께서 보여주신 방법을 따라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는 억지로, 강제로 끌어다가 하고 싶지도 않은데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하고 순종을 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분명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파해야 할 내용
5-6절에 예수님께서 열둘을 보내시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씀해주십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이방인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28장 19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장 43절) 이미 2장 1-12절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옴을 의미합니다.
현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단기적으로 보내십니다. 현재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이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뜻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때는 효과적인 전략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무모하게 자신의 열심으로 행하지 말고 주님의 계획을 따라서 일을 해야 합니다.
7절에 가서 전파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예수님께서 12명을 구별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복음 선포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옴”은 주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통치와 그에 따른 하나님 나라의 복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이 하나님 나라의 전파자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왜 보내셨는지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도 압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왜 존재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증시하고 구현하는 공동체로 서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세상을 위해서 일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존재 의미를 알아야 교회는 바른 전파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8절에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고치는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관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들은 복음을 확증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천국이 도래했음을 의미하고 천국 복음이 사실임을 확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제자들에게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며’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하신 말씀인지,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인지 얘기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6-43절과 20장 7절을 보면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제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과 관련을 짓는다면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행할 때 어떤 자세로 행하라고 하십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자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권능을 받은 모든 것이 거저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슨 운동을 하고, 자신들의 무엇인가를 내놓고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지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거저 받았습니다. 은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은혜에 근거해서 일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할 때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 추구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런 일을 행함으로 무슨 이익을 챙기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적을 행하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오용을 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과시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무슨 능력의 사자다, 이런 내용을 신문에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 것을 헌금 걷는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은혜의 성격이 드러나지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으면 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계산적으로 거래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은혜의 성격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성격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증시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