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치 있는, 사랑 받는 존재
눈물과 가치는 상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눈물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으로 인해 불쌍히 여기는 감정으로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라자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특별하고 보배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통계를 보면,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인해 죽는 사람보다 많다고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할까요?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고 의미 있는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야 하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라자로의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우신 것입니다. 절대 권능자의 눈물이요, 인류의 구원자의 눈물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의미 있고 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동물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게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은 각종 동물들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 소띠, 말띠, 개띠 등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동물의 형상으로 비유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폄하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유전 인자를 가진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소중한 까닭은 하느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탄의 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오묘하고 신비한 영적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귀한 존재입니다. 베드로1서 2장 9절 말씀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엄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11,36-37)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유다인들은 두 가지로 말합니다. 먼저 한 무리의 유다인들은 두 가지로 말합니다. 먼저 한 무리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라자로를 “정말 사랑하셨구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프면 예수님도 아파하시고, 우리가 슬퍼하면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보십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라며 감탄합니다. 다른 한 무리의 유다인들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분이라면 라자로의 병도 낫게 하고 죽음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라자로의 죽음을 두고 예수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질문과 의문을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11,38)
예수님은 라자로의 죽음으로 인해 두 번째로 북받치십니다. 여기서 북받친다는 것은 거룩한 분노의 감정을 말합니다. 33절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온 유다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습니다. 그리고 38절에서 라자로의 무덤에서 다시 북받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친구 라자로를 죽음으로 몰아간 질병, 고통, 저주 등에 대해 정면으로 분통을 터뜨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들에게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죄, 죽음, 사탄에게 분통을 터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만 볼 게 아니라, 부조리 안에 있는 구조적인 죄악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악의 본질에 대해 분노하고 대면하는 영적 통찰력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의 현상만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북받치셨다”라는 것은 질병, 저주, 죽음 등에 대해 분노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각종 악한 세력들에 대해 마음이 북받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에 대해 분노하시며 무덤 앞에서 대결하십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