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방인 선교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바울은 선교사였습니다. 선교사 바울의 생애에 중요한 순간들(Critical Momentum)이 있습니다. 개괄적으로 정리해보면 회심과 소명(행9장), 피택과 파송(행13장), 선교 현장의 사역(행13, 14, 16, 17, 18, 19장)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이방선교 공인(행15장) 등입니다. 모든 순간이 다 중요하지만 이방인 선교사로 일하게 된 바울에게 예루살렘 회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복음전파의 과정을 중요한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예컨대, 오순절 성령강림, 교회의 갈등과 집사 선출,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마리아 선교역사, 사울의 회심, 고넬료로부터 시작되는 이방인 회심, 예루살렘 사도회의, 선교여행, 바울의 로마압송 그리고 로마에서 복음전파 등입니다.
이런 사도행전의 전체 구조에서 예루살렘 회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몇몇 신학자들은 누가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 등에서 잃은 자를 향하신 하나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주장합니다.
테넌트(Timothy C. Tennent) 박사나 스트롱(David K. Strong) 박사는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회의가 갖는 선교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예루살렘 회의 결정 내용은 현대 선교 현장에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보여주는 문제해결 접근법과 원칙은 오고 오는 세대의 선교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할 기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와 사역의 모델입니다. 사도행전은 ‘사역행전’, ‘말씀행전’, ‘교회행전’이고 ‘선교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행전은 ‘회의행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다양한 장면에서 회의를 갖고 건강한 토의를 하고 생산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사도행전은 1장에서 회의를 보여줍니다. 사도 보궐회의(선거)로 시작합니다. 6장에서 집사 선출회의, 사마리아 교회대표 파송(행8:14), 회심사 사울 허입(행9:27), 고넬료 회심 후(행11:1-18), 안디옥교회 선교사 선출, 예루살렘 회의 등등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많은 회의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회의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연구가 많았습니다. 이방인들을 수용하려는 회의가 다섯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회의는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F.F. 브루스(Bruce), 리차드 보캄(Richard Bauckham) 그리고 윌리암 파머(William Farmer) 등과 같은 신약신학자들은 예루살렘 회의가 5번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행15장과 갈라디아서를 비교하며 그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표현한 회의로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선교지향적 열심 드러나
이 다섯 차례의 예루살렘회의는 독일 신학자 바우어 주장대로 유대인 기독교인들(Petrine Christians)과 이방인 기독교인들(Pauline Christians) 사이 갈등을 조정하는 회의입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서 개최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제1차(행11장1-18), 제2차(갈18-19), 제3차(갈2:1-10), 제4차(행15:1-2, 갈2:11-21), 제5차(행15:6-29) 등입니다.
다섯 차례 회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수용하려고 고민했던 초대교회 리더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회의가 내린 결정은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선교 지향적인 열심히 녹아 있습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이방인들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계속 이방인들을 수용적으로 언급합니다(행2: 행6: 행8: 행11: 행13). 인종초월(Trans-ethnic) 문제는 사도행전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들 네 가지 사항을 금합니다. 이 네 가지는 사도행전에서 세 번 언급됩니다. 야고보의 언급(15:20), 회의결정(15:29),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의 언급(행21:25)입니다. 우상제물, 목을 맨 짐승, 피를 먹을 것을 금하고 음행을 금합니다. 이것은 주로 우상숭배의 문제입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를 먹는 것을 금하고, 행음에 관한 것을 금했습니다.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디오니소스(로마신화, 바카스)를 숭배하는 종교는 산 짐승과 가축을 뜯어 먹는 제례(祭禮)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피가 있는 고기를 먹으면 초인적 힘을 얻는다는 미신이 유행했습니다. 음행도 사교의 여사제(女司祭)들의 행음제례(行淫祭禮)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네 가지 금지 사항의 출처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옥스포드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박뮤얼(Markus Bockmuehl) 박사는 노아계약에서 나온 것이라 하고, 보캄(Bauckham)은 레위기언약(17장-18장)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학자들은 랍비문서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에 등장하는 필수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회의에는 예루살렘 지도자들, 바리새파 신앙인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 같은 선교사들이 참석했습니다. 회의를 간단히 스케치하면 바리새파 그리스도인 발언(5절), 베드로연설(7-11절), 바나바와 바울의 설명(12절), 좌장 야고보의 정리(14-21절)입니다.
예루살렘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과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현상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마음으로 서로를 용납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방인 입장에서 결정을 합니다. 그 결정은 ‘이방인들에게 어떤 멍에도 지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이 바울에게 큰 힘이 되어 2차 3차 그리고 로마 선교여행에서 크게 승리합니다.
사도바울의 생애를 살피면 꼭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부모, 스승 가말리엘, 바나바 등등이 그런 인물입니다. 바울의 삶을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아울러 바울이 전도하고 양육하여 동역자로 세웠던 믿음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바울 혼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동역자들의 협력과 헌신 까닭에 바울의 사역이 열매 맺습니다. 예컨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나, 에바브라디도, 오네시모 등입니다.
이런 점에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가장 탁월한 제자 디모데도 바울의 제자요 동역자로 나아가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요, 에베소 교회 후임 목회자였습니다. 디모데는 그리스어로 티모데오스(Τιμόθεος)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 혹은 “하나님께서 높이신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 듯합니다. 디모데의 일생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이방인(헬라인) 아버지에 사이에서 소아시아 갈라디아 지역 루스드라(Lystra)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친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는 경건한 신자로 디모데를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잘 가르쳐(딤후3:15)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모범 청년으로 양육했습니다(행16장).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만난 디모데는 실라(Silas)와 함께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그리스, 마게도냐, 로마 등지에서 전도하였고 에베소교회에서는 담임목회자로 사역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양육하여 신실한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도움으로 적어도 다섯 교회(데살로니가;살전3:1-2, 고린도;고전4:17, 빌립보;빌2:19-22, 에베소;딤전1:3, 베뢰아;행17:14)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을 때 목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에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합니다. 디모데는 1차 선교여행 목격자로, 2차 선교여행부터는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물론 3차 여행도 함께 하면서 에베소교회 개척을 같이 합니다.
디모데 이름이 신약에 26회 등장합니다. 또 그에게 보내진 바울의 편지가 두 권이나 있습니다. 13개 바울 서신들 가운데 8권의 서두에 바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할례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안수(딤전4:14)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주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고전4:17),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딤후1:2)로 표현하면서 특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디모데는 AD 17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디모데를 만날 때 주후 50년경이었고 바울은 48세, 디모데는 33세경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구약을 배웠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 유대인들을 위하여 바울이 할례 받을 것을 권하자 순종하여 할례를 받습니다. 이미 할례 부담을 없애자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이 있었지만 디모데는 할례를 받습니다.
바울은 서신서 곳곳에서 디모데를 높이 평가(Highly value)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역 현장에서 디모데를 중용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동역하며 희로애락을 같이합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길에도 디모데가 동행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을 보면 로마 감옥생활에서는 디모데와 함께 지냅니다. 선교여행 중에 개척된 교회에서 디모데활약은 눈부십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아름다운 동역관계는 한국교회에 큰 도전
아들로 수차례 표현...초대 교회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추앙
천주교 전통은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80세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폭스는 그의 저서 폭스의 순교사(Foxe's Book of Martyrs, 원제는 Actses and Monuments 이지만 순교사로 더 많이 알려짐)에 따르면 디모데는 주후 97년(디모데 80세) 에베소에서 우상숭배 축제를 준비하는 불신자들에게 헛된 짓을 버리라고 설득하다가 몽둥이에 맞고 앓다가 이틀 후에 죽습니다.
초대교회사는 빛나는 디모데를 보여줍니다. 큰 지도자였던 속사도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는 디모데서신을 인용하면서 교회 밖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도 디모데서신을 수차례 인용하면서 당시 강력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반박합니다. 터툴리안도 이단을 반박하면서 디모데서신을 수차례 인용했습니다. 특히 마르시온과 진짜 성경책이 어떤 것인가를 다투는 정경(Canon)논쟁에서 디모데서신을 부정하는 마르시온을 공격하면서 디모데의 사역과 삶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18살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던 오리겐은 탁월한 영성과 학문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리겐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다는 이유로 ‘제2의 디모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리겐이 디모데를 따랐기 때문에 존경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디모데를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추앙하였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그리고 교회사에서 디모데는 신실하고 헌신된 신앙인입니다. 디모데의 헌신과 열정이 신약 교회가 세워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순종하는 겸손한 제자였습니다. 반면 바울도 디모데를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관계는 동역하기 어렵다고 하는 한국 교회에 큰 도전이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바울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 다음으로 유명하고 중요한 제자가 디도(Titus)입니다. 디도는 목회서신 디도서 수신자입니다. 바울은 디도를 소개하면서 디도가 중요하고 귀한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디도서 1:4에는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로 씁니다. 또 고후 8:23에서 바울은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라고 소개합니다. 디도는 바울이 사랑하고 귀히 여겼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디도는 헬라인이며 안디옥교회 출신입니다. 젊은 나이에 그리스 철학과 시학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또한 바울에 의해 회심했고, 바울의 동역자로 활동했습니다. 디도는 바울과 바나바와 더불어 예루살렘 공회(행15장)에 참석했습니다(갈2:1-3). 바울이 비록 유대인에 대한 사역을 위해 디모데를 할례 받게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방인 개종자에게 할례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디도에게 할례를 억지로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갈2:3-5).
바울은 디도를 신뢰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떠날 때 디도를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보냅니다. 당시 디도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디모데의 고린도전서 전달(고전16:10-11)과정과 바울의 방문(고후2:1,5-11)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부탁으로 디도는 중요한 편지(Severe Letter)를 전달하였고(고후7:8), 이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반응들을 듣기 위해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고후2:12-13).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이후 디도는 북쪽으로 가서 마케도니아에 있는 바울을 만납니다. 거기서 바울의 디도의 성공적 사역(고후7:6-15)을 매우 기뻐하며 고린도후서를 씁니다. 디도는 이번에는 여러 동행자와 함께 고린도후서를 전달합니다. 바울은 후에 고린도에 있는 디도와 합류한 뒤, 디도를 통해 예루살렘에 성금을 전달하게 합니다. 디도는 갈등 중재, 위기관리 그리고 신실함에 바울이 인정했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그의 첫 번째 로마 투옥에서 풀려난 뒤 그레데 섬에 들려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들이 바울의 방문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섬 감독으로 임명(딛1:5)하고 자신이 못다한 사역들을 감당하도록 한 뒤 그레데 섬을 떠납니다. ‘황금의 입’이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것이 바울이 디도를 크게 신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디도는 신뢰받는 바울의 제자였던 것 같습니다.
갈등중재, 위기관리, 신실함에 바울이 인정했던 하나님의 사람
돈을 사랑한 그레데 섬에서 주교로 사역하다 그레데에서 사망
바울에게 디도는 믿음의 아들(딛1:4), 믿음의 형제(고후2:13)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한 사람이나 하나님 위로의 사람으로 인정합니다(고후7:6;13;14). 디도는 이후에 그레데 섬에서 주교로 활동합니다. 그레데에서 사역하는 디도에게 아데마나 혹은 두기고를 보내어 니고볼리로 오라고 합니다(딛3:12). 이후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나게 되는데(딤후4:10), 이후 디도는 나타나지 않는데, 디도의 무덤이 그레데에 있고 디도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디도는 그레데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디도가 사역했던 그레데 섬은 헬라 문화권에서 유명한 섬입니다. 그레데 섬은 지중해에서 시실리아, 사르디니아, 구브로 다음으로 네 번째(혹, 다섯 번째)로 큰 섬입니다. 그레데는 크레타 문명(미노스 문명 혹은 미노아스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한동안 미노아스 문명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크노소스 궁전이 발굴되면서 전설이 아닌 그레데(미노아스) 문명의 실재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아울러 그레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출생지로, 제우스의 무덤의 소재지로 유명합니다.
그레데 섬은 신약에만 나타나고, 신약 중에서도 디도서와 사도행전에만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참석한 사람들 명단에 그레데 사람들(Cretans)이 나옵니다. 그리고 27장에 로마로 압송되는 바울의 일행이 폭풍을 피하여 그레데 해안선에 미항과 리시아 등의 항구를 지납니다. 이 외에는 그레데가 성경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구약 외경인 마카비 1서(천주교와 동방정교는 정경으로 인정)에서 그레데 사람들이 유대인을 핍박했다고 전합니다. 당시 그레데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로 알려졌습니다. 바울도 디도서1장 12절에서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고 그레데 사람들을 악평합니다.
이는 그레데 출신 철학자, 시인, 예언자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그는 바울이 아덴설교에서 인용했던 “우리는 그의 소생(Offspring)이라”(행17:28)라는 시의 원저자이기도 합니다. 에피메니데스는 방자했던 그레데 사람들을 풍자한 시를 남긴 것입니다.
그레데 사람들에 대해서는 폴리비우스(Polybius)도 동일하게 평가합니다. BC 2세기 역사가(歷史家) 폴리비우스는 ‘그레데인들은 돈을 천성적으로 사랑했고, 돈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전합니다. 이는 디도서 1장 12절 이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사람들을 엄히 책망하여 바른 믿음을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