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약의 일곱 절기.
1. 본문은 절기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안식일과 7대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규례가 나옵니다.
2. 먼저 안식일을 보면(3),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완전하심 안에서,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와 안식을 누릴 것을 요구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킴으로 성도는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게 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완성을 바라보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안식일은 이 믿음으로 충성되게 지킵니다.
3.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 저녁 출애굽하던 날,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인데, 안식의 근거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5). 오직 구속하신 어린양의 피가 우리의 안식의 근거입니다.
4. 무교절은 유월절에 이어 1월 15일부터 7일간 이어지는 절기로 첫날과 마지막 날은 안식일로 지켰습니다(6~8). 여기서는 유월절로 말미암아 얻어진 구속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표현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모든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구원함을 받은 거룩한 성도의 삶을 보여줍니다.
5. 초실절은 무교절 안식일 다음날에 지켜졌으므로(1월 16일) 보통 무교절 안에 존재했습니다(9~14).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의 첫 이삭을 한 단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첫 이삭을 바치기까지는 추수에 손을 대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추수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미래의 소망을 바라는 것이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종말론적으로 모든 신자의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게 합니다.
6.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안식일 다음 날 즉 초실절에 부활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셨습니다.
7. 이어서 오순절(칠칠절/맥추절)이 이어서 나옵니다(15~22). 이것은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를 기리는 절기로, 종교적으로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유월절)과 부활(초실절)이 있은 후에, 오순절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영적 추수 곧 교회의 탄생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수확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8. 오순절에는 누룩이 있는 떡을 드릴 뿐 아니라 속죄제와 화목제 그리고 번제가 함께 드려졌습니다. 22절에 곡식을 벨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시며 이는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장차 오순절에 이방인들이 이 수확에 들어오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보릿단을 바치는 날인 니산월 16일부터 50일째 되는 날(오순절이란 “오십 번째 [날]”이라는 의미)에 기념하였습니다. (레 23:15, 16) 이때는 보리 수확 이후, 밀 수확이 시작되는 때였습니다. 밀은 보리보다 늦게 익었습니다.—출 9:31, 32.)
9. 나팔절은 오랜 침묵을 깨고 7월 1일이 되어서 나팔을 불어 기쁨과 승리를 축하하는 절기입니다(23~25).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영광을 회복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일을 기념합니다. 이것은 9일 후의 속죄일로 연결되며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10. 속죄일은 7월 10일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모든 백성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죄를 속하는 날입니다(26~32).
11. 초막절(장막절/수장절)은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지켰습니다(33~4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구원)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공급하여 주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장막을 치고 거함으로써 광야의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끝난 것을 기념한다는 것은(수장절) 창고가 가득 차고 이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2. 하지만 매우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 때부터 느헤미야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때에 옛 율법을 기억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남은 자들이 솔로몬의 밝은 날에도 행치 않던 일을 행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 8:17~18).”
13. 여기서 본 것처럼 구약의 모든 절기는 모두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모든 것을 다 풍성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다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약의 절기들을 읽고 공부할 때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절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절기를 통하여 1년 전체를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영광 가운데 살았고,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원과 은혜와 영광 안에서 매일을 살아갑니다. 모든 절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두 완전하게 성취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일을 통하여 이 모든 은혜를 오늘도 변함없이 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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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에 대한 설명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등장하는 민수기 28장과 29장은 절기에 드려야 하는 제사의 종류와 구체적인 제물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사장들에게 필요한 규례입니다. 하지만 레위기 23장은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명령입니다. 즉 레위기 23장의 절기 내용은 누구나 알아야 하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레위기 23장에서 절기에 대해 다루면서 제일 먼저 안식일에 대해 다룹니다. 그리고 4-8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해 언급합니다. 9-14절은 무교절 기간 중의 안식일 다음 날은 밭에서 거둔 곡물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초실절(맥추절)로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안식일과 유월절, 무교절, 그리고 첫 곡식을 거두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우리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안식일 규례(1-3절)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절기’라는 단어는 ‘지정하다’, ‘소집하다’, ‘고정시키다’라는 원어에서 나왔으며, 여호와께서 백성들과 만나기 위해 지정한 장소인 회막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인 회막 뿐만 아니라, 성회로 삼을 절기도 직접 지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안식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대다수의 절기들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연례적인 절기이지만 안식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가운데 가장 자주 돌아오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절기의 기본은 안식일 정신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성회, 즉 거룩한 모임의 날입니다. 이 모임은 하나님 앞에 모두가 나아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뿐 아니라, 애굽의 종노릇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절기는 안식일을 확장시킨 것이므로 매 절기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쉬는 이유도 몸과 마음을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의미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지금의 일요일을 우리들은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일은 7일마다 늘 돌아오다 보니 소홀히 여기기 쉽고 주일의 중요한 의미를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정하신 절기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마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옷을 입고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예배 했습니다.
안식일 혹은 주일을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것은 구원의 감격이 그만큼 식었음을 의미합니다. 육체는 쉼을 얻고, 영혼은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고 주일임을 우리가 늘 기억하고 안식일을 더욱 거룩하게 지킬 수 있어야겠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4-8절)
(4-5)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포로로 있을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모두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피해 갔습니다. 바로 이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세한 설명 없이 날짜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장과 13장에서 이미 소개된 유월절의 기원과 규례에 관한 설명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2장과 13장은 유월절에 대해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8)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유월절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정월 14일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지키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이 기간에는 누룩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빵은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 불렀습니다.
무교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빵에 누룩을 넣어 부풀릴 시간도 없이 급하게 떠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게 합니다. 누룩을 넣은 떡을 구울 시간조차 없었던 첫 유월절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것을 결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오면 일상의 모든 일들을 멈추고 성회로 모인 것처럼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에도 모든 일들을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킬 때마다 구원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지막은 이렇게 급박하게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깨어 있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도 세상의 누룩이 없는 순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초실절(9-14절)
(9-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 추수한 곡식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곡식 첫 이삭의 단을 흔들어 요제로 드렸습니다. 밀보다 보리를 한 달 먼저 추수하기 때문에 이 때의 예물은 보리였으며, 보리 한 단과 함께 흠 없는 어린 숫양을 번제와 소제, 전제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절기를 초실절, 맥추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곡물 제사로 드리는 소제는 평상시보다 갑절로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곡식을 추수한 후 첫 단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수확한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것은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첫 수확물을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을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받으실 만한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가장 좋은 것, 처음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며, 가장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눈을 들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예배의 사람, 나눔의 사람, 섬김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를 증거하는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거룩한 삶을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까지는 거룩한 사람에 대해서, 거룩한 물건들에 대해서, 그리고 거룩한 장소와 연결하여 거룩한 삶을 논했다면, 이제는 거룩한 절기 혹은 거룩한 시간을 통해 거룩한 삶을 정의합니다. 시간과 절기는 거룩한 백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백성의 연합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십일을 계수하여(15-16절)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가나안 땅에는 7대 소산물이 있었습니다. 2개의 곡식과 5개의 여름 과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2개의 곡식은 밀과 보리이고, 5개의 여름 과실은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그리고 대추야자입니다. 2개의 곡식(밀, 보리)은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켜야 하는 절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이란 앞서 살펴본 초실절을 의미합니다. 초실절에는 하나님께 흔들어 바칠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했습니다. 이 곡물은 '보리'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초실절에서부터 '일곱 안식일'이 지난 절기, 즉 추수한 '밀'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인 칠칠절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초실절에 성전에 바친 첫 보릿단을 히브리어로 '오메르'라고 합니다. 이날부터 7주 후에 있는 칠칠절의 절기까지 매일 카운 다운에 들어가는 '운명의 7주간'이 시작됩니다. 가나안 땅의 농부들에게 '초실절부터 칠칠절 사이'의 7주간은 오늘날 대입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D-day를 향해 하루하루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7주간은 가나안 땅의 농부들에게 '오메르 계수(Omer Count)'로 불렸습니다.
초실절부터 칠칠절까지 노심초사하며 '오메르 계수'에 들어가는 7주 동안 이스라엘에서는 비구름을 동반한 '북서풍'과 사막의 '남동풍'이 교대로 불었습니다. 이맘때쯤 올리브 나무에 막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기에 북성풍이 불면 그야말로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시기엔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남동풍이 불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리브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주변에 있는 암술과 만나 꽃을 활짝 피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포도, 석류, 대추야자 등 가나안 땅의 여름 과실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맘때 쯤에는 밀이 3분의 1 정도 익은 때 입니다. 이 기간에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야 전분이 가득한 밀 이삭으로 영글게 됩니다. 이때 만약 뜨거운 남동풍이 불면 밀 수확이 격감하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가나안 농부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날씨는 오메르 계수의 첫 주간에는 북서풍이 불고 나머지 6주간에는 남동풍이 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밀과 여름과실의 수확이 모두 풍년이 됩니다. 오메르 계수가 끝나는 칠칠절 즈음은 이스라엘에서 밀 추수기에 속합니다. 만약 밀 수확기인 칠칠절 즈음에 비구름이 동반한 북서풍이 분다면 한 해의 밀 농사는 완전히 망치게 되고, 그 해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게 될 것입니다. 이 7주 동안 가나안 땅의 농부들은 비구름의 북서풍과 사막의 남동풍의 오묘한 조화를 바라며 기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하루하루 오메르 계수를 하여 49일째인 7주가 끝나면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봄절기의 끝마침’이라고 하여 이를 히브리어로 '아쩨레트'(마침)라고 합니다. 초실절 후 50일째 되는 날에 치른다고 하여 이 절기를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절기는 밀 수확의 마무리를 상징하며, 보리 추수를 시작하여 밀 추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확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축복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가나안 땅에 발을 내딛지도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아직 농사를 시작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칠칠절(오순절)의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가나안 땅의 농작물은 7주간 부는 북서풍과 남동풍의 오묘한 조화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나안 원주민은 풍요를 기리는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눈을 들어 이 땅에서 손에 쥐는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오묘한 조화 안에서 이룬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칠칠절(오순절)을 거룩한 절기로 지킬 것을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면서 우리의 삶에 순풍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역풍도 맞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더 힘겨운 걸음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순풍과 역풍이 하나님의 오묘하신 조화 속에서 우리의 삶에 믿음의 선한 열매를 맺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실절부터 50일이 지난 칠칠절까지 하나님의 오묘한 조화를 바라며, 삶의 열매를 기대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 오묘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눈을 들어 바라보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것(17-20절)
(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의 처소에서'라고 한 것을 보면 이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처소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릴 곡식을 각자의 처소에서 성소로 가져와야 했습니다. 수확한 곡식 단을 흔들어 드렸던 초실절과는 다르게 칠칠절(오순절)에는 수확한 밀가루 10분의 2에바(약 4.4리터)로 만든 빵 두 개를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룩을 넣은 빵을 만드는 것은 칠칠절이 유일한 때입니다.
(18-20)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칠칠절 역시 앞서 초실절처럼 추수한 곡식 뿐만 아니라 다른 제물들도 드렸습니다. 번제로는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 숫양 두 마리입니다. 속죄제로는 숫염소 한 마리이며, 화목제물로는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입니다. 화목제물로 드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는 앞서 추수한 밀가루로 만든 빵과 함께 흔들어 바쳐야 합니다. 이처럼 한 해의 가장 풍성한 추수를 기념하는 칠칠절은 뒤에 나오는 초막절을 제외하고는 가장 풍성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누리는 풍성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풍성하신 분이심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셨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풍성함을 허락해 주셨다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도 중요합니다.
남겨두라(21-22절)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성회'란 거룩한 집회, 혹은 거룩한 외침, 거룩한 선포라는 의미입니다. '성회'는 23장에만 11번 사용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정해진 날, 즉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칠칠절은 동시에 안식일이었기에 어떤 노동도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추수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가장 확실한 표지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추수를 마친 후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날을 구별하여 감사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으로 펼쳐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진정한 감사의 표현은 너그러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 밭 모퉁이에 맺힌 곡식까지 다 거두지 말고 남겨두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다른 사람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반영됩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경건의 표지는 우리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칠칠절, 즉 진정으로 하나님의 풍성함에 감사하는 절기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받은 은혜를 나누는 섬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본문의 칠칠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적인 풍요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섬길 것을 명령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순절(성령강림절)을 기념하며 물질적인 복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적인 복, 성령의 모든 은사와 영적인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눈을 들어 주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부르심에 신실하게 그리고 합당하게 살아가십시다.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섬김의 삶을 살아감으로 거룩한 감사의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
23절에서 부터는 가을의 절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모든 문화권에 나타나며, 특정한 날을 정해서 지킴으로 단순히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양식으로 체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치 식목일에 산림의 소중함을 되새길 뿐만 아니라, 그날 실제로 나무 심기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절기를 지키도록 명하시는 것은, 그 절기의 의미가 그들의 실제 삶이 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원하시는 삶이 나타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부터는 가을에 지키는 절기로, 일 년 중 절정에 이르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라(23-25)
(23-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곱째 달 첫 날을 절기로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달은 애굽에서 나오던 날을 기준으로 일곱 째 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원어로 ‘샤밧’이라고 하여 안식일과 같은 용어를 썼지만, 안식일과 다른 의미의 휴일입니다. 일곱째 달의 첫 번째 날은 그 달 전체를 대표하는 날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쉬고 어떤 노동도 하지 않으며, 나팔을 불어 기념해야 합니다. 민수기 29장에서는 이날을 ‘욤 테루아’라고 하여 ‘나팔소리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절기에 다 나팔을 불지 않고 이 일곱 째 달 첫 날만 나팔을 불어 기념합니다. 이 날 부는 나팔은 연주용 나팔이 아니라, 신호를 위한 나팔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념하다의 원어는 ‘생각나게 하거나 기억하고 회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그 사건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노래나 멜로디를 들으면, 과거에 연관된 사건이 회상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족속은 그들의 역사 중에 나팔 소리와 연관된 사건을 회상하게 됩니다.
‘나팔을 분다’의 원어 ‘테루아’는 앞서 언급했듯이, 연주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급함이나 기쁨 등 알리는 경보나 신호 소리’를 의미합니다. 이 나팔 소리가 이스라엘 족속의 뇌리에 강렬하게 심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족속은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전에 강림하셨 습니다. 그때 사람이 불지 않은 나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옷을 빨고 성결하게 하여 시내산에 모였고,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때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불 가운데 여호와께서 강림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19). 그 날 그 나팔 소리에 이스라엘 족속은 떨면서 산 기슭에 서서, 불 가운데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온 산을 진동하며 울렸던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족속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이 그 사건인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이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직 나팔 소리가 울렸던 시내산에 있는 중입니다. 아직 그 언약식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맥락으로 보면, 나팔을 부는 것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있는 이 자체를 기념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1세대들은 크게 울리는 나팔 소리를 들으면,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들렸던 그 나팔 소리가 떠오를 것입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사람들이 아침 기상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 다시 입대해서 군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뇌리에 심긴 감각적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달 첫날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나팔 소리를 울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떠올리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 후손들은 시내산에서의 나팔 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매년 일곱째 달 첫날마다 나팔 소리로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므로 대대로 보전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들린 나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이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 택하신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은다고 한 날에 우리도 그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 나팔 소리가 은유적 표현 일 수도 있고, 실제 나팔 소리 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불러 언약을 맺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함께 눈을 들어 그 날에 울리는 소리를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팔절의 열흘 후에는 속죄일이 이어집니다.
그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26-32)
(26-3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속죄일은 일곱째 달의 열흘날입니다. 곧 나팔절이 있은 후 10일 후에 바로 속죄일로 지키게 됩니다. 속죄일은 매년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날로 절기 중 가장 거룩한 날입니다. 이날 일 년에 한 번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제물인 염소의 피를 궤에 바릅니다. 오늘 분문에서는 속죄일에 드려지는 제사는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만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고 일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나팔절과 같이 속죄일에도 다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취지는, 그 절기를 지키는데 마음과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다른 일을 하거나 또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이 절기가 단순히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실제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날 동안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라는 말의 원어는 ‘영혼’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로 사람의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면과 외면을 포함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괴롭게 한다는 원어는 ‘겸손하게 하다, 굴복시키다’란 뜻입니다. 이는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고, 마음으로도 슬퍼하고 굴복함을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식과 회개 기도와 같은 참회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년 속죄일을 이스라엘 족속이 실제로 범하는 죄와 상관없이 연례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삶에 회개와 금식과 같은 참회가 항상 있어야 할 것이지만, 이렇게 정례적인 절기로 지키도록 하는 속죄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범한 실제의 죄와 관계없이 절기로서 매년 속죄일을 정해 금식과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백성 삼은 사람들은 그 이전에도 죄인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을 괴롭게 하며 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참회를 하며 그 외의 364일은 의인의 신분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죄에 대한 심판과 그에 따른 용서와 해방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속죄일에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자복이 요구되지만, 대신 나머지 364일은 죄에 대한 자유와 해방이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속죄일이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우리의 속죄로 믿습니다. 그의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는 죄없다하심과 의롭다하심을 동시에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매일 자신을 괴롭히며 죄책감 속에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의는 우리가 더 보충해야하는 불완전한 의가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의입니다. 우리는 참된 회개와 참된 의인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달 15일부터 22일까지는 초막절입니다.
초막을 짓고 그 곳에 지내라(33-41)
(33-3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이 일 년 중 마지막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 지내기 때문입니다. 이 초막절도 다른 절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며 성막에 모여 화제를 드립니다.
(39-44)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은 일곱째 달에 토지의 소산을 모두 거두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레 동안 초막에서 지내는 이유는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지내던 것을 기억하기 위합니다. 이 초막절에 온 가족이 초막에서 지냈습니다. 이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기념되고 자녀들과도 공유되어 전해지게 됩니다.
이 초막절은 또한 추수를 모두 마치고 감사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초막을 짓는 나무 가지는 아름다운 실과가 있는 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들로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토지의 소산을 모두 거두고 나서 지키는 절기이기에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의 다른 이름은 수확을 의미하는 수장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 년의 절기 중 절정인 초막절은 추수의 풍성함에 대한 감사와 애굽에서의 구출을 기념하는 의미가 결합돼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지키라하신 절기들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일곱 절기는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구출돼 나오는 과정과 곡식의 수확 과정이 결합돼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에는 창조 질서에 따른 절기와 하나님의 구원에 따른 절기가 결합돼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이스라엘 족속의 삶이 되게 됩니다. 이는 시간과 우주를 무의미한 우연의 조합으로 보는 현대의 과학주의적 세계관과 다릅니다. 시간은 목적 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순간의 연속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가는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율법의 절기들을 기념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에게 절기를 주셔서 기념하도록 하셨으며, 그 이후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나를 기념하라’ 곧 희생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율법의 일곱 절기를 더 이상 지키지 않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그 말씀을 주일마다 또 각자의 삶에서 믿음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무의미한 순간의 연속이 아닌,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절기를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 눈을 들어 온전히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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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본장은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이스라엘은 성회로 지켜야 할 여호와의 절기들이 있었습니다. ‘성회’는히브리어로 “미크라에 코데쉬”라고 하는데, 거룩이라는 뜻의 ‘코데쉬’와 부름이라는 뜻의 ‘미크라’가 함께 붙여진 것으로 곧‘거룩한 부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회는 거룩한 자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땅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정한 성회의 절기마다 모여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포’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나오는 “공포할” 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티크레우’입니다. 이것은 ‘크게 외치다’라는 뜻의 ‘카라’의 복수형이자, 미완료 시제로 지속적으로 외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절기마다, 부름을 받은 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함께 모여 크게 외칩니다. 바로 짧지 않으신 강한 여호와의 구원의 손,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절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아데’는 ‘정해진 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와의 절기들이기에, 그것은 곧 인간 스스로가 정한 시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적 기원을 가진 절기들이며, 각 절기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3절에서는 성회의 대전제를 선포하셨습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 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성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향하여, ‘여호와의 뜻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이 대전제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각 절기를 선포하셨습니다.
4-8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입니다. 절기 유월절에는 유월절의 의미가 후손들에게 전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손들에게 출애굽기 12장 26절과 27절 말씀에 따라 그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유월절 다음 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무교절입니다. 이 기간에는 출애굽의 급박했던 역사를 회상하며 누룩이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렸으며, 첫째날과 마지막날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함께 모여 거룩하신 여호와를 크게 외쳤습니다.
9절에서 14절은 초실절입니다. 보리 추수가 시작될 즈음 첫 이삭 한 단을 여호와께 드리는 것으로 무교절의 첫 안식일 다음날(11절) 행해졌습니다. 초칠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열매를 누구에게 먼저 드리는가입니다. 하나님께 첫 예물을 가져가는 그날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리를 먼저 먹어서는 안됩니다(14절). 이것은 곧 그들의 삶의 터전인 땅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 삶의 터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고백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5절에서 22절은 칠칠절입니다. 보리의 첫 수확이 있은지 50일 정도 후에 밀의 첫 수확이 있습니다. 이 날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며, 여호와께 향기로운 첫 제물을 드리고 안식하였습니다.
23절에서 44절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팔절은 한 해 농사의 끝을 기념하며 나팔을 불었는데, 이와 더불어 일곱째 달의 주요 성일인 대속죄일과 초막절이 도래했음을 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대속죄일과 초막절은 중요한 성회였습니다. 대속죄일은 오직 백성의 속죄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절기의 시기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한 해 농사가 끝나는 시점에 행해진 데 있습니다. 모든 추수의 끝에는 그 수확물을 셈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심판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모든 백성들의 속죄의 절기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 속죄의 자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죄일 5일 후부터 일주일 동안은 초막절로 보냈습니다. 이 절기에는 광야시절, 가나안 땅을 취하기 전에 임시로 살았던 거처를 회상하기 위해 작은 오두막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 안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그 장막에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속죄를 행하신 여호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짧지 않은 손으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분이십니다. 장막에서 바로 이 여호와를 생각함을 통해 나에게 참된 자유를 주는, 참된 안식을 주는 분이 여호와임을 다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볼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참된 안식이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정한 절기에, 노동을 멈추고, 바로 이것을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참된 자유, 참된 평안, 참된 기쁨을 주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생각하였고, 나를 애굽, 노예의 땅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나에게 생명의 소산을 주신 여호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여호와께, 기쁨의 제사를 드렸고, 즐거워하였습니다.
레위기 기자는 23장 3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마태복음 기자는 마태복음 12장 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안의 주인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안의 주인이신 분이십니다. 매년 드려져야 하는 속죄제가 아니라, 단번에 드리신 그 한번의 제사로 우리 죄를 영원토록 사하시며, 영원토록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대속죄일 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구원의 손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광야에 “장막”을 치고 지냈습니다. 영원한 속죄와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어디에 장막을 치고, 어디에 거해야 할까요? 셈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의 때가 도둑같이 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있기 원하시는 자리를 찾고, 그 자리에서 주님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삶,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평안한 한 자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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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거룩할 것에 대한 내용에 이어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절기에 대한 기록입니다. 안식과 경배와 찬양과 감사와 관련된 실제적인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안식일입니다(3절). 엿새 동안 일하고 칠 일째 쉬도록 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창세 때부터 시작되었으며(창2:3절) 모세를 통해 율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출31:14-16절). 그리고 안식일은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주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유월절입니다(5절). 유월절은 ‘넘어가다’, ‘뛰어넘다’라는 뜻입니다.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 곧 장자 죽음 재앙이 있을 때 이스라엘 집은 뛰어 넘어간 사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세 번째는 무교절입니다(6절). 무교절은 ‘발효되지 않은 빵’,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빵’이란 의미입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한 주간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7일간 쓴 나물과 함께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애굽에서 겪은 종살이의 고통과 누룩을 부풀릴 시간조차 없었던 출애굽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상기하기 위함입니다.
네 번째는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봉헌하는 절기입니다.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실시되었습니다. 수확된 곡물의 첫 단을 제사장에게 드려 요제로 바치는 동시에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아울러 드리는 초실절 행사를 치르기 전에는 누구도 보리 수확의 열매를 먼저 먹을 수 없었습니다(14절).
다섯 번째는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농경제인 오순절은 초실절 이후 50일 째 되는 날이란 의미에서 나온 말입니다. 오순절은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절기에는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배려하도록 하셨습니다(22절). 오순절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에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키다가 오순절 성령 대 강림 사건 이후에는 성령 강림절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나팔절입니다(24절). 나팔절을 신년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안식의 날로 특별히 전국 각지에서 나팔을 불어 기념하였고, 중앙 성소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날 나팔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루 종일 반복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고 또한 기쁨으로 새 날을 맞이할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곱 번째는 속죄일입니다(27절). 매년 일곱째 달 열흘에 지키도록 하셨는데 이 날은 대제사장의 죄와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를 성결케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음식을 요리하고, 불을 지피는 것과 같은 매우 사소한 일조차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여덟 번째는 초막절입니다(34절). 7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킨 초막절기는 한해의 수확을 끝내고 그것들을 저장한 후, 출애굽 직후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고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뜻으로 제사 드리던 일종의 감사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 등으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 동안 지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특별한 성회로 모였습니다.
이 모든 절기들은 여호와께서 친히 지정해 주신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집중하는 기간으로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어려웠던 광야생활을 기념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끝마친 추수의 기쁨을 감사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순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과 경배와 회개를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절기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한된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매 순간 순간의 삶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을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정결한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며 주님을 대망하는 대림절기가 더 큰 은혜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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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은 여호와의 절기에 대한 부분이다. 여호와의 절기는 7대 절기가 있다. 여호와의 절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축제의 날이다. 여호와의 절기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여 성회를 삼으라고 말씀하시고(1-2절) 모세가 이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한 것이다(44절).
여호와의 7대 절기는 안식일과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이다. 여호와의 절기는 성회로 모이고 이것은 정한 날, 정한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는 성회이다.
안식일(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안식일 절기에 대한 규례이다. 안식일은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다. 그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시에 노동과 결혼과 안식의 제도를 정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열심히 노동을 하고 쉼으로 하나님의 창조 후의 안식을 기념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후 안식하시고 거룩하고 하시고 복을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장차 새하늘과 새 땅에서의 안식을 내다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고 말씀하셨다.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선포하신 자기선언이다. 죄 아래 있는 이 땅에 진정한 안식은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든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선포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안식을 읽어버린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죄의 종된 인류를 구원하시는 인애를 베푸신다.
오늘날에도 안식일은 단순히 쉼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증거와 병자들을 돌보며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막 2:27), 이것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인 율법 순종에 대한 지적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의미를 모르면 하나님의 뜻의 고귀한 가치를 상실하고 껍데기적인 형식만을 지키게 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하신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고, 노예적인 순종에 그치게 될 것이다.
유월절(4-8절)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큰 3대 절기 중 첫번째 절기로 다른 모든 절기의 기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하기 전날 밤에 심판의 사자가 어린양의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집을 넘어가서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을 넘어가는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규레다. 이 유월절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고 실질적인 출애굽이 가능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있는 유월절과 칠질절과 초막절이다. 정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는 날이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띄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을 것이다.
무교절은 출애굽 전날 밤에 무교병을 먹었는데, 이것도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였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월절 다음날 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로서 무교병을 먹는다. 무교절은 정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지키는 절기이다. 이때 죄를 상징하는 집안의 누룩을 모두 제거하고 7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첫날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7일 동아 매일 화제로 하나님께 드리고, 제 7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 첫날과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지킨다. 아무일도 하지 않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춘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규례다. 이레 동안 유교병을 먹는자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진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서 어린양의 피를 바른 것은 한 가족을 위해서 흠없는 양은 예수님의 대속사역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서 대속함을 받는 것은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함으로서 유월절의 어린양과 예수님의 대속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킨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성회는 무교절 첫날과 마지막 날, 즉 제 칠일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로 지키고 노동을 하지 않았다.
초실절(첫 이삭을 바치는 날, 9-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초실절은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첫 이삭을 단에 드림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보리 추수의 첫소산을 바치고 봉헌함으로 모든 수확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활의 첫 열매 되실 예수님을 예표하고, 모든 믿는 자들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보증이다(고전 15:22-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추수한 곡식을 제사장에게 가져오고, 제사장은 요제를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린다. 이때 제사장은 번제와 소제, 전제(잔에 담은 포도주나 독주 부음)를 함께 드린다.
칠칠절(맥추절, 오순절, 15-22절)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은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다(출23:16). 이 날은 추수한 열매를 드리는 것인데 전체 삶을 드리는 것이다. 이 날은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유월절이 지난 후 7주째에 행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유월절 중 누룩없는 떡, 무교병을 먹는 둘째 날에서 계산해서 제 50일에 지켜 졌으므로 그렇게 명명한다. 오순절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다.
밀 추수의 첫 열매를 드리는 칠칠절은 번제와 속죄제, 화목제, 소제를 드렸다.
신약에서는 오순절로 지켰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통해서 성령님을 파송하신 사건을 기념한다. 성령님의 오심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으로 인해 성령님의 내주가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는 성령님 내주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장막을 치시고, 사람 안에 거하신다.
나팔절(23-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나팔절은 안식의 달인 일곱째 달을 맞아 봉헌하는 날로서, 이 날에 나팔을 불고 성회로 모이고 거룩한 안식일로 삼았다. 나팔절은 새해 첫 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로 새해를 알리는 나팔 소리를 듣고 하나님 앞에 성회로 모였다. 이 날에는 노동을 하지 않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린다.
속죄일(26-3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23장 26-32절에는 속죄일이 나온다. 이 날은 7월 10일로서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는 날이다. 노동이 금지되고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않는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진다. 이 날은 안식일이다.
속죄일에 행할 일들이 언급되어 있다. 속죄일은 영원한 규례이고, 칠월 십일에 지켜졌다. 속죄일은 나팔절(칠월 일일)과 장막절(칠월 십오일) 사이에 지켜졌다. 속죄일에는 금식하고 회개하여 자신들을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고,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 그 날은 그들을 위해서 속죄하여 정결케 하는 날이고, 그러면 모든 죄에서 정결하게 된다. 이 날은 “큰 안식일”이다. 이것은 속죄일을 안식일처럼 지키고, 더 엄숙하고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행하는 임무에 해당한다.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였다(34절). 하나님께서 속죄일에 대한 규례에 대한 아론의 절대순종이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하나님의 속죄의 방법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두 성취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피흘림이 없이는 속죄 할 방법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져 없애는 어린양으로서 죽으셨고, 믿는자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속하게 하신다.
히브리서 8, 9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말씀하고 있는데,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레 9:11). 예수님은 영원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드리신 피였고,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첫 언약 때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셔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히9:15). 구약의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 차례씩 매년 반복되는 것이나 예수님은 영 단번에 영원한 속죄와 대속의 제사를 드리셨다. 그리고 그것은 손으로 만든 성소가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셨다. 구약의 성소는 하나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고 그림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율법을 좇아서는 모든 것이 피로서 정결케 된다. 이것은 하늘의 있는 것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제물로 자신을 드리시고, 자신의 피를 흘려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을 당하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죄인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대속의 죽음과 제사를 드리시고 새 언약의 제사를 드리심으로 믿는 자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당한 일들을 기쁨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약속을 받기 위해서 인내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장막절(초막절, 33-4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찌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은 7월 15일 부터 7일 동안 지키고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한다. 절기를 마감하는 제 팔일에는 대 성회로 모였다. 이레동안 초막에 거하는데, 온 가족이 초막에 거주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것을 기념하는 것(장막절)이다. 그리고 토지 소산의 수확을 마치고 곡간에 들인 후에 지키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한다.
초막절은 수장절, 성막절, 장막절로도 부른다. 이것은 디스리월 15일에 시작되어 7일간 지키는 절기이다. 절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7일간 먹고 초막을 준비하고 예루살렘 주위에서 버드나무, 종려나무의 잔가지를 모아 장식과 건축으로 사용한다. 이 날에는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 와 제단에 붓고 밤이 되면 성전 전지역을 촛불로 밝히고 참석자들이 즐겁게 춤을 추는 날이다.
칠월에 성회로 모여서 안식일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나파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다.
이 절기들은 절기들과 안식이라는 것이 감싸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라는 것과 또한 하나님 안에서 안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창조때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은 거룩하고 복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반역함으로 타락하고 참된 안식을 상실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이미 얻었고, 영원한 완성과 안식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예순미과 함께 부활에 이르게 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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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절기들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안식일과 7대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규례가 나온다. 7대 절기의 시작인 유월절은 구속을, 마지막인 초막절은 천년왕국의 영광을 상징한다.
2. 먼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완전하므로 인간이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릴 것을 요구한다(3).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또한 안식일을 지킴으로 성도는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게 된다는 점에서 안식일 준수는 종말론적인 완성을 바라보는 믿음의 행위다.
3.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 저녁 출애굽하던 날,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인데, 안식의 근거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준다(5). 구속 곧 어린양의 피가 우리의 안식의 근거다.
4. 무교절은 유월절에 이어 1월 15일부터 7일간 이어지는 절기로 첫날과 마지막 날은 안식일로 지켰다(6~8). 여기서는 유월절로 말미암아 얻어진 구속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표현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속을 받은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준다.
5. 초실절은 무교절 안식일 다음날에 지켜졌으므로(1월 16일) 보통 무교절 안에 존재했다(9~14).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의 첫 이삭을 한 단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한다. 첫 이삭을 바치기까지는 추수에 손을 대서는 안 되었다. 이는 모든 추수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미래의 소망을 바라는 것이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는 믿음의 행위였다. 이것은 또한 종말론적으로 모든 신자의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본다.
6. 오순절/칠칠절/맥추절이 이어서 나온다(15~22). 이것은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를 기리는 절기로, 종교적으로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유월절)과 부활(초실절)이 있은 후에, 오순절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영적 추수 곧 교회의 탄생과 관계가 있다.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17)는 특이한 표현인데, 이것은 곧 교회가 죄가 있는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해졌다. 오순절에는 누룩이 있는 떡을 드릴 뿐 아니라 속죄제와 화목제 그리고 번제가 함께 드려졌다. 22절에 곡식을 벨 때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시며 이는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함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오순절 절기의 말씀에 따라 나오는 것은 이방인들이 이 수확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7. 나팔절은 오랜 침묵을 깨고 7월 1일이 되어서 나팔을 불어 기쁨과 승리를 축하하는 절기다(23~25).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영광을 회복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일을 기념한다. 이것은 9일 후의 속죄일로 연결되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8. 속죄일은 7월 10일 1년 1차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모든 백성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죄를 속하는 유일한 날이다(26~32).
9. 초막절/장막절/수장절은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지켰다(33~4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구원)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공급하여 주심을 기념하는 절기다.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장막을 치고 거함으로써 광야의 은혜를 기억해야 했다.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끝난 것을 기념한다는 것은(수장절) 창고가 가득 차고 이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 때부터 느헤미야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연약한 남은 자들이 솔로몬의 밝은 날에도 행치 않던 일을 행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 8:17~18).”
10. 이 절기들을 그리스도의 성취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래 도표를 참조할 수 있다.
절기(레23) 그리스도의 성취
유월절(3/4월) 그리스도의 죽으심(고전 5:7)
무교절(3/4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고전 5:8)
초실절(3/4월) 그리스도의 부활(고전 15:23)
오순절(5/6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어주심(행 1:5; 2:4)
나팔절(9/10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소집하심(마 24:31)
속죄일(9/10월)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롬 11:26)
초막절(9/10월)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과 연합(슥 14:16~19)
11. 여기서 본 것처럼 구약의 모든 절기는 모두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신앙의 시초부터 결말까지 모든 것을 다 풍성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다 성취하셨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약의 절기들을 읽고 공부할 때마다 감사할 수 있다. 절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