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훈련일기
〈9월 9일〉
모처럼 토요 휴무일,
나들이 하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돈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봉하 마라톤(하프 출전)은 8일 앞으로 다가왔고,
해서 08시 59분부터 봉하 리허셜 실시했는데,
선선한 가을 날씨 속에,
가곡 ‘내 맘의 강물’(이수인 곡)을 떠올리며,
농산물시장 앞에서 경남과기대 앞 다리(진양교)까지 뚝방길 따라,
왕복 약 18km를 쭈욱쭈욱 내달림.
하늘은 높고 달리기 참 좋은 계절,
힘들게 달렸으면 잘 먹어야 할 텐데,
돈이 없어 국수로 때움.
〈9월 15일〉
봉하 마라톤 앞으로 –2일.
05시 12분부터 가벼웁게 한 시간 달음박질.
아침 먹고 정촌 아울렛 매장 가서 아디다스 신발 샀는데,
봉하 대회에서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려고 함.
원래 마라톤화 구입은 대회 출전 15일쯤 전에 해서
몇 번 달려보고 신발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게을러서 마라톤화 사러 가는 것을 미루다가 시합 이틀 전에 부랴부랴 가서 사왔음.
새 신발 신고 뛰다 분명 발바닥 물집 잡힐 것임.
물집 잡힐 각오는 하고 있는 바,
그래도 풀코스가 아니고 하프코스 달리는 것이니까 감당할 수 있을 것임.
그건 그렇고,
아, 전어 먹고 싶다!
창원 가신 정계장님은 마산 어시장에서 벌써 전어를 몇 번은 잡쉈을 것으로 사료되건만 ....
〈9월 18일〉
어제 봉하 마라톤 뛰고 맛있는 것 먹고 집에 와서 쉴 겨를도 없이
저녁에는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고자 마누라 꼬드겨
경남문화예술회관에 가서 ‘KNN 방송교향악단’ 공연 구경함.
내가 올 초 진주에 내려올 때, 진주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여러 사람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진주 와서 ‘진주시립교향악단’ 공연부터 알아봤더니,
진주시립교향악단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진주는 문화예술이 형편없는 도시구나’ 하고 투덜거렸는데,
어제 경남문화예술회관에 게시된 공연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라자빠지고 말았음.
내 시선을 사로잡는 훌륭한 공연들이 많았음.
예를 들어,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9월 22일~23일)
최백호&정미조 ‘가을콘서트’(10월 20일)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카르멘’ 공연(11월 1일)
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공연(11월 21일) 등의 공연이 줄줄이 예정돼 있음.
이 중에서 특히 11월의 모스크바필하모닉 공연은 기필코, 꼭, 반드시 가보려고 함.
멀리 모스크바에서 오시는 데다가 이번 공연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을 연주한다고 하는데, 내가 평소 즐겨 듣는 곡들이기도 해서 벌써부터 내 가슴은 뛰고 있음.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알려져 있는 명곡으로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음악임.
진주는 문화예술의 향기가 진동하는 품격있고 멋진 도시임에 분명함.
어제 하프코스 달렸지만 오늘 아침 기상하니 몸이 가뿐해서
05시 25분부터 30분간 가벼웁게 달음박질함.
나에게 마라톤은 세상에 어떤 보약보다 더 좋은 보약이라고 할 수 있겠음.
이러니 내가 매일 안 달리고 배길 수가 있겠느냐구.
〈9월 22일〉
요즘은 내가 훈련 방식을 바꿔서 언덕 훈련(힐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는 바,
오늘은 05시 23분부터,
설매삼거리에서 진주교도소 외부정문까지 300m 남짓한 오르막길을 시계불알처럼 열 번 (달려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함.
오르막 끝인 교도소 외부정문까지 뛰어 올라가면 하늘이 노래지고 입에 거품이 일고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임.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심장이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도 터지지는 않고 있음.
문제는. 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달려도 나의 똥배는 잘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아무튼 나의 성실한 훈련 자세는 국가대표 못지않음.
〈9월 23일〉
어젯밤 경남문화예술회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감상하면서 우아하고 현란한 발레 춤에 넋을 잃고 말았음.
내가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꼭 발레리나로 태어나고 싶음(비웃지 마시길!)
그건 그렇고,
오늘은 교도소 외부정문을 출발하여,
10시 10분부터,
설매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널방재’라는 고개를 넘어 70분간 도로 주행함.
오늘 레이스 마지막 구간(설매삼거리~교도소 외부정문)을 달려 올라갈 때는 심장이 파열될 뻔함.
〈9월 25일〉
어젯밤 진주시 평거동 남강 둔치.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KBS 가요무대’ 녹화방송 공연에 엄청난 인파 운집함.
논산 강경 젓갈축제 때 가수 공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음.
그렇지 않아도 내 평생 가요무대 공연 한 번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결국 진주에 와서 소원 풀었음.
내년에는 부모님도 진주에 오시게 해서 ‘KBS 가요무대’ 공연 구경시켜드리려고 함.
나는 진주 와서 출세했고, 친구 정계장님은 창원 가서 출세했음.
〈9월 27일〉
새벽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뛰러 나갈까 말까 고민을 열 번쯤 하다가,
결국 문을 박차고 나가 빗방울을 맞으며 05시 30분부터,
입에 거품 물고,
심장파열의 언덕(설매삽거리~진주교도소 외부정문) 인터벌 10세트 훈련함.
달려서 남 주나?
달리면 자기 건강에 플러스 되는 것임.
달리기 끝나고 은행나무 열매 한 보따리 주웠음.
빗방울 떨어지는 날씨에 달렸으니
아침 먹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감상하며 한숨 자려고 함.
〈9월 30일〉
마라톤 동지 여러분!
추석에 송편 많이 잡숫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앙망하며,
05시 27분부터,
심장파열의 언덕 구간에서,
입에 거품 물고,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이겨내며,
10세트 훈련 실시함.
심장이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고 있는데,
언젠가는 터질 것임.
어제 점심 때 생각지도 않았던 김밥이 나오는 바람에,
불현듯 ‘가을소풍’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음.
〈10월 9일〉
‘추석 특집 달리기’
다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셨으리라 믿으며,
05시 23분부터,
‘추석특집달리기’ 피날레를 ‘heart-break hill’ 10세트 훈련으로 화려하게 장식함.
‘심장파열의 언덕’이 보스턴 마라톤에만 있는 것이 아님.
진주에도 있음.
달리기에 연휴란 없는 것임.
매일 달려야 하는 것임. 죽기 전날까지는 .....
작곡가는 매일 곡을 쓰고,
작가는 매일 글을 쓰듯,
주자는 매일 달려야 하는 것임.
거제 마라톤 앞으로 –12일.
〈10월 13일〉
05시 20분부터,
심장파열의 언덕 인터벌 훈련 10세트 실시.
며칠 전 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음.
조진호 감독 말고도 작년에는 이광종 축구 감독이 별세했는데,
프로야구 감독.코치를 지낸 서영무 임신근 심재원 조성옥 김명성 최동원 장효조 등이 4,50대의 젊은 나이에 암.심장마비 등 질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팬들을 슬프게 했는데,
최동원 투수하고 장효조 선수는 야구 투타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한, 말 그대로 우리나라 야구의 전설들인데 프로야구 1군 감독을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음.
선수로 뛸 때는 강철 체력을 자랑했을 그들은 왜 병마에 쓰러졌을까.
술.담배.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그 원인일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현역에서 물러난 뒤 아마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서일 것임.
선수생활을 접더라도 매일 꾸준히 살살 조깅이라도 하면서 건강 관리를 했어야 하는 것임.
박철순 투수하고 프로농구 감독을 지낸 최인선 씨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최인선 씨는 대장암 수술 후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30분 이상 달리기를 하고 철봉에 매달려 배치기를 한다고 함.
나는 심장파열의 언덕에서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뜀박질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달리는 이유는, 미쳤기 때문임.
거제 마라톤 앞으로 –8일.
〈10월 19일〉
거제 마라톤 앞으로 –2일.
05시 18분부터,
입에 거품 물고,
심장 파열될 각오를 하고,
심장파열의 언덕 인터벌 훈련 10세트 실시함.
다행히 심장이 파열되지는 않음.
나는 분명 훈련은 국가대표급인데,
기록은 어찌하여 최하위급이란 말인고. ㅠㅠ
훈련과 기록의 극심한 엇박자. ㅠㅠ
지난주 창원 마라톤에서 10km 참가자 한 명 골인 직후 사망했다고 하는데, ㅠㅠ
그 참가자 기록이 1시간 20분이라 하여 추정컨대 마라톤 초보자로 보이는데,
쓰러지기 전에 분명 몸에 이상 신호가 왔을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달렸거나 감지하지 못하고 달리다가 변을 당한 것임. ㅠㅠ
마라톤 사망 사고는, 하프코스도 아니고 풀코스도 아닌,
10km 종목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함.
10km가 코스가 짧다고 만만히 여기고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 없이 냅다 달리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는 것임.
10km를 우습게 여기고 무리한 레이스 했다가는 황천길로 갈 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임.
모레 거제도에서 다들 안전하게 달리고, 즐겁게 달리고,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먹고 오길 바라며 .....
거제도 섬꽃 마라톤 후기
지난 9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김해 봉하마을에서, 이번에는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거제도에서 마라톤을 했으니 나는 도합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 두 곳에서 마라톤을 한 것이란 말씀이다.
대통령들을 배출한 상서로운 기운이 넘쳐나는 곳에서 마라톤을 했으니 대통령들의 기운을 받아 내 인생에도 상서로운 일이 펼쳐지기를 염원한다.
아, 참, 포항에서도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그래서 언젠가는 포항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도 참가하여 그분의 기운도 받으려고 한다.
‘포항이 배출한 대통령,’ 하니까 입을 비죽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 양반의 나쁜 기운은 받지 않고 좋은 기운만 받겠다는 것이다.
대회 출발 전에 사회자가 “오늘 코스는 높낮이가 심해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달려야 하므로 힘든 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섬에서 달리는 대회이다보니 구간 대부분이 해안선을 따라 달리게 되어 있어서 바다 구경은 원없이 하면서 달릴 수 있다.
나는 오늘도 하프 배번을 달고 출발은 풀코스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일행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덜 끼치려고 하는 것이다.
3km쯤 가니 첫 번째 긴 오르막 구간이 나온다.
내가 한여름 뚝방 훈련을 많이 해서 지난 9월 뚝방이 많은 봉하 마라톤을 무난하게 달렸는데,
이번에는 언덕 훈련을 많이 하고 언덕 구간이 많은 거제 마라톤을 달리게 되니 나는 이 정도면 선견지명이 꽤 있다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언덕 훈련 덕분인지 무난하게 첫 번째 오르막 구간을 넘었다.
4km쯤 지날 무렵 나하고 페이스가 거의 똑같은 몸매 좋은 아줌마하고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얼핏 곁눈질로 보니 나이도 나하고 비슷해 보여서 내가 수작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뜻밖에 이 아줌마가 먼저 나에게 수작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와 함께 한참을 심심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이하 아줌마를 ‘아’ 라고 표기하고 나를 ‘나’ 라고 표기한다.
‘아‘ : “풀코스 몇 번째여요?.” (아줌마는 시방 내가 풀코스 뛰는 줄로 알고 있다)
‘나’ : “아, 예. 서른 번 조금 넘었습니다. 아줌마는요?.”
‘아’ : "저는 풀코스 100회 돌파했고 울트라마라톤은 20회 했어요. 200km 뛴 적도 있구요.
울트라에서 여자부 1위 입상한 적도 있어요. 저에게는 울트라처럼 장거리 뛰는 것이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자랑질까지 하며 나의 기를 꺾는다).
‘나’ : “대단하십니다. 풀코스 기록은 어떻게 돼요?.”
‘아’ : “예. 3시간 48분이요. 어디서 오셨어요?.”
‘나’ : “충청도에서 왔슈. 아줌마는요?.”
‘아’ : “저는 고향은 합천이고 지금 사는 데는 부산이고 거제가 시댁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 떻게 돼요?.“
‘나’ : “아줌마하고 비슷할 것 같은데요.”
‘아’ : “저는 58개띠예요.“
‘나’ : “네에? 젊어보이시네요. 저하고 비슷한 줄 알았는데. 저는 63토끼여요. 저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한테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마라톤을 하니까 혈액순환이 잘돼서 그런 것 같아요.”
‘아‘ : “그렇지요? 햇볕에 그을리기는 해도.”
‘나’ : “오늘 기록 목표는요?.”
‘아’ : “4시간 20분이요.“
‘나’ : “그런데 남편분은 마라톤 하시나요?.”
‘아’ : “오늘 같이 뛰러 왔어요. 지금 저기 저 앞에서 뛰어가고 있겠네요.”
이 대목에서(남편이 같이 뛰고 있다는) 산통이 깨지는 기분이 들었고, 이후 몇 마디 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작별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헤어졌다.
6km 지점에서도 긴 오르막 구간을 넘었고, 9km 지점에서도 또 긴 오르막 구간을 넘었으니 거의 3km 지점마다 오르막 구간이 있는 셈이다.
평지를 달릴 때는 나하고 나란히 달리던 아줌마가 오르막을 달릴 때는 나한테 한참 뒤쳐진다.
역시 내가 최근 언덕 훈련을 많이 한 효과를 본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면 4시간 30분쯤 걸릴 것인데, 지금 4시간 20분 페이스로 달리는 아줌마하고 나란히 달리고 있으니 거듭 언덕 훈련의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하프코스 반환점을 돌아 다시 긴 오르막 구간 세 군데를 넘어가니 멀리 마라톤 행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긴 오르막 구간 도합 여섯 번을 넘은 후유증이 있었는지 골인 지점 1~2km를 남겨놓고는 걷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큼 힘들었지만 결승선 100m 앞에서는 마치 사바나 초원에서 사자가 먹잇감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듯 놀라운 스피드로 힘차게 달려 골인했다.
마라톤 결승선 100m 앞에서의 스피드는 전국 마라토너 중에서 내가 최고일 것이다.
나는 서울 동아마라톤이나 서울 중앙마라톤처럼 잠실스타디움으로 골인하는 마라톤 대회에서 잠실스타디움에 들어서기만 하면 내 앞에 얼씬거리는 주자들을 모조리 제쳐버리고 골인한다.
기진맥진하여 반쯤 죽어서 골인하는 것보다는 씩씩하고 팔팔한 모습으로 골인하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오늘 거제 마라톤에도 흠잡을 데가 있다.
입상자들 시상식을 신속하게 진행하면 좋으련만 시상식이 무한정 지체되고 있다.
행사 진행의 칼자루(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회자는 시상식 진행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골인하는 주자들 응원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시상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인질처럼 붙잡혀 있는 입상자들은 차마 자신들이 항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 일행 중에도 입상자가 있는데, 시상식을 안 하고 있으니 일행 전체가 행사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내가 씩씩거리며 진행요원에게 따졌더니 그 요원은 “알았다” 라고 대답만 해놓고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다.
거제 마라톤이 이런 점을 보완해서 내년에는 좀 더 발전하는 대회가 되길 바란다.
조진호 감독 별세 소식 며칠 후인 10월 17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중에 피아노 연주자가 연주 끝나고 청중의 박수세례에 일어서서 답례하다가 그대로 쓰러졌는데, 다행히 청중 중에 의사하고 간호사가 뛰어올라가서 심폐소생술로 연주자를 소생시켜 119에 인계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 중 사고가 이번만이 아니고 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2015년에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불가리아인 지휘자가 지휘 중 쓰러졌는데 이때도 청중 중 한 명이 응급처치로 소생시켜 병원으로 후송한 적이 있었고,
2002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러시아인 지휘자가 악단과 리허셜을 마친 직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다음날 사망한 일이 있었고,
2008년에는 천안시립교향악단 지휘자가 지휘 중 쓰러져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연주도 중요하고 지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 아닌가.
심장마비 사망. 심정지 사망. 돌연사 등이 왜 빈발하는가.
나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마라톤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마라톤을 열심히 하면 이런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라토너도 심장마비로 사망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듣고 나는 ‘멘붕’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사고 당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교도관이었다니! ㅠㅠㅠㅠ
사연인즉, 2010년에 부산구치소 직원이 아침 출근 전에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인데, 그 직원이 평소 마라톤을 엄청 열심히 했을뿐만 아니라 술도 엄청 즐겨 마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라톤을 열심히 하신 양반이 어째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까.
내가 곰곰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그 양반 마라톤 기운이 술 기운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국의 마라토너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발 술은 술 기운을 이길 수 있을 만큼만 드시라고.
마라토너의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라톤 클럽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즉 마라톤 고수가 많은 클럽이 있고 하수가 많은 클럽이 있다는 것이다.
고수가 많은 클럽은 술을 적게 마시고 하수가 많은 클럽은 술을 많이 마신다.
다시 말해 고수들은 항상 기록을 의식하고 훈련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술 마시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반해 나같은 하수들은 달리기는 적당히 하고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술 마시고 친목 다지는데 신경 쓰기 때문이다.
또 다시 말하면 고수들은 만나기만 하면 기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기록을 향상시킬까 궁리하는데 반해 하수들은 틈만 나면 어울려 술 마실 궁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고수가 많은 클럽은 기록. 훈련에 신경 쓰느라 긴장감이 있는 반면 하수가 많은 클럽은 분위기가 느슨하고 먹자판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래서 당연히 고수가 많은 클럽 사람들은 몸매가 날렵한데 반해 하수가 많은 클럽 사람들 중에는 똥배 나온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쯤에서 고(故) 안병욱 교수의 저서 『철학의 즐거움』 이라는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감히 철학 책을 언급했는데, 나도 학창시절에는 ‘철학자’ 소리를 들었다고 ‘2011년 서울 동아마라톤 후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물론 개똥철학자라고 .....
안 교수는 이 책에서 국내외 수많은 위인들의 말(또는 글)을 인용했는데, 그중에서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럼 이 책 『철학의 즐거움』 322 페이지에 실려 있는 도산 선생의 중국 상해에서의 1919년 강연 내용을 인용해보겠다. 도산 사상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는 사람을 가리키어 개조하는 동물이라고 하오.”
“우리 사람이 일생에 힘써 할 일은 개조하는 일입니다.”
만일 너도 한국을 사랑하고 나도 한국을 사랑할 것 같으면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합하여 한국을 개조합시다.“
“우리는 한국을 문명한 한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개조의 사업에 노력하여야 하겠소. 무엇을 개조해야 합니까? 우리 한국의 모든 것을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의 교육과 종교도 개조해야 하겠소. 우리의 농업도 상업도 토목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의 풍속과 습관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의 음식, 의복, 거처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의 도시와 농촌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심지어 우리의 강과 산까지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이제 우리나라의 저 문명스럽지 못한 강과 산을 개조하여 산에는 나무가 가득히 서 있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만 한 행복이 되겠소.
만일 산과 물을 개조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자연에 맡겨둔다면 산에는 나무가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릅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큰비가 오면 산에는 사태가 나고, 강에는 홍수가 넘쳐서 그 강산은 헐고 파괴됩니다. 강산이 황폐함에 따라 그 민족은 약해집니다.
“이 능력 없는 우리 민족을 개조하여 능력 있는 민족으로 만들어야 하겠소.어떻게 하여야 우리 민족을 개조할 수 있소?”
한국 민족이 개조되었다 하는 말은 한국 민족이 모든 분자 각 개인이 개조되었다 하는 말이오.“
“우리는 각각 자기 자신을 개조합시다. 너는 너를 개조하고 나는 나를 개조합시다. 곁에 있는 김이나 이군이 아니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가 나를 개조 못하는 것을 아프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압시다. 내가 나를 개조하는 것이 즉 우리 민족을 개조하는 첫걸음이 아니오? 이에서 비로소 우리 전체를 개조할 희망이 생길 것이요.
그러면 내 자신에서 무엇을 개조할까? 나는 대답하기를 ‘습관을 개조하라’ 하오. 그러므로 여러분의 악한 습관을 각 개조하여 선(善)한 습관을 만듭시다. 거짓말을 잘하는 습관을 가진 그 입을 개조하여 참된 말만 하도록 개조합시다. 책 보기 싫어하는 그 눈을 개조하여 책 보기 즐겨하도록 합시다. 게으른 습관을 가진 그 사지(四肢)를 개조하여 활발하고 부지런한 사지를 만듭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까짓 습관이야 .... ,’ 하고 아주 쉽게 압니다만 그렇지 않소. 저 천병(千兵)과 만마(萬馬)를 쳐서 이기기는 오히려 쉬우나 내 습관을 개조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이 일에 일생을 노력해야 하오.“ --------
무려 100년 전의 말씀인데도, 부처님 말씀보다도 공자님 말씀보다도 예수님 말씀보다도 더 절절하게 울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안병욱 교수가 인용한 도산 선생의 말씀을 내가 왜 재차 인용했느냐?
나도 개조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개조하겠다는 것이냐?
마라톤 훈련 방식을 개조하겠다는 말씀이다.
즉, 지금까지는 내가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서 훈련을 하수답게 느슨한 방식으로 해왔는데, 앞으로는 고수들 못지않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개조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들어 평지훈련 횟수를 줄이고 언덕 인터벌 훈련 위주로 훈련을 하고 있다.
물론 언덕 인터벌 훈련은 평지훈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올겨울 이런 혹독한 언덕 인터벌 훈련을 견뎌내면 내년 봄에는 살도 빠지고 잃어버린 나의 서브4 기록도 탈환할지 모른다.
나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은 3시간 45분인데, 첫 풀코스 도전에서 낸 기록이니 나의 첫 풀코스 기록이 그대로 나의 최고 기록이 되고 만 것이다.
내가 12년 전인 2005년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곧바로 마라톤에 풍덩 빠져 그해 10월 경주 동아마라톤 풀코스 첫 출전 3시간 45분을 목표로 거의 국가대표급으로 맹훈련을 하였는데, 내가 첫 풀코스를 3시간 45분에 뛰겠다고 하니까 마라톤 선배 한 명이 “뭐? 자네가 첫 풀코스를 3시간 45분에 뛰겠다고? 푸하하하. 만약 자네가 3시간 45분에 뛰면 내 손으로 장을 지지겠네.” 라며 비아냥거리는 것 아닌가.
나는 선배의 이런 기분 나쁜 말에 이빨을 뿌드득 갈며 더욱 훈련에 정진해서 기필코 3시간 45분 목표 달성하여 선배 손으로 장을 지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내가 첫 풀코스 목표를 3시간 45분으로 잡은 것은 나름 그만한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첫 풀코스 뛰기 전에 몇 번에 걸친 하프코스 출전 기록과 그 당시 나의 컨디션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내린 결론이 첫 풀코스 3시간 45분이었던 것이다.
과연 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배는 손으로 장을 지질 것인가.
드디어 2005년 10월 경주 동아마라톤 출전하는 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새벽에 눈을 뜨면 화장실부터 가서 대변을 보는 습관을 들여왔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화장실에 갔는데도 대변이 나오지를 않아서 경주까지 그 상태로 버스로 이동했고 레이스 출발 전까지도 대변을 해결 못해 애를 태웠다. 그래서 화장지를 한 움큼 쥐고 달리기로 했다. 레이스 도중에 아무데서라도 급하면 대변을 해결할 작정이었다.
아마 첫 풀코스 도전이라 긴장해서 대변도 안 나온 것 같았다.
마라토너들은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첫 풀코스 도전할 때 불안해서 대회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경험 ....
드디어 경주에서 나의 역사적인 첫 풀코스 대회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디에 화장실이 있나 살피면서 달리는데, 다행히 5km 지점에 이르자 주로 옆에 화장실이 보이기에 후다닥 뛰어 들어갔고 후다닥 팬티를 내리고 후다닥 용변을 보고 후다닥 팬티를 올리고 후다닥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왔으니 용변 본 시간이 딱 1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그날 내가 풀코스 첫 출전한 경주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기록은 신기하고 놀랍게도 3시간 45분이었다.
목표 기록하고 1분의 차이도 안 나게 정확하게 들어맞은 기록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기록을 1분은 더 단축할 수도 있었다. 화장실만 가지 않았더라면.
어쨌거나 나는 목표를 달성하고 의기양양해져서 그 선배를 만나서 요구를 했다. 약속대로 손으로 장을 지지시라고.
그랬더니 그 선배가 낄낄 웃으며 “이 사람아, 내가 자네에게 자극을 주었으니까 자네가 열심히 운동해서 목표 달성한 것 아닌가” 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첫 풀코스 뛴 지 며칠 지나서 다리에 부상이 오고 말았다.
몇 달 동안의 혹독한 달리기에 결국 탈이 난 것이다.
그때 병원에 몇 번만 가서 집중적으로 치료 받았으면 쉽게 나을 수 있었는데, 당시 마라톤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치료 방법을 잘 몰라서 어영부영 하다가 1년을 허송세월하게 되었고, 부상이 낫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하고 술만 마셔댔더니 체중이 무려 14kg이나 늘어나고 말았다.
내가 마라톤 입문할 당시 체중이 75kg이었는데, 몇 달 동안 맹렬하게 마라톤을 하니 체중이 67kg으로 내려갔다. 그러던 것이 경주 동아마라톤 끝나고 부상으로 마라톤을 쉬면서 1년 동안 14kg이 늘어 81kg까지 올라가고 말았고, 이후로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중이 좀처럼 빠지지 않고 81kg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그 당시 부상만 없었더라면, 아니 부상 금방 치료하고 계속 달렸더라면 나는 탄력을 받아 마라톤 풀코스 기록을 3시간 10분대까지는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기대를 했다. 그렇게 됐더라면 나는 지금도 서브4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준수한 마라토너가 되었을 것인데,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지금 나의 몸(키 168cm. 체중 81kg) 도저히 마라톤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경량급 씨름 선수 체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믿지를 않는다.
그래도 내가 형편없는 몸을 이끌고 끈질기게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의 축복이라 믿는다.
내가 마라톤 훈련 개조를 말했는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마라톤에도 개조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육상연맹 임원들 의식도 개조가 되어야 하고 마라톤 감독의 정신도 개조가 되어야 하고 선수들도 정신 개조가 되어야 하고 훈련 방식도 개조가 되어야 한다.
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할 생각은 않고 각 소속팀에서 느슨한 방식으로 훈련하고 그저 전국체전에서 입상하여 다음 연봉 협상에서 큰소리 치려고 하는 지금의 방식을 전면 개조하지 않으면 한국 마라톤의 영광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한국 마라톤을 어떻게 개조할 것이냐? 내가 입이 아프도록 역설했다. 또 다시 얘기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남자 30명, 여자 40명 정도 확보하여 숙소도 짓고, 대표팀 전용 트랙도 만들고, 기존의 인물이 아닌 새로운 인물 중에서 유능한 감독.코치도 영입하고, 훈련 방식도 개조하고, 마라톤 선진국에 전지훈련도 보내자는 것이다.
선수 영입하고 숙소 짓고 트랙 만드는데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업의 후원이라도 받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육상연맹은 이봉주. 권은주 같은 선수를 왜 써먹지 못하고 놀리느냐는 것이다.
육상연맹은 도대체 뭐하고 있나. 육상 천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만 바라고 있나.
대한체육회는 또 뭐하고 있나.
문화체육부는 또 뭐하고 있나.
대표선수들 처우도 개선해주고, 사고만 치지 않고 기본 훈련만 잘 소화한다면 선수 생활도 보장해주고, 사고뭉치들은 선수 자격을 영구히 박탈해버리고, 대표선수들은 국내 대회에 출전시키지 말고 오로지 외국 선수들하고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한국 마라톤을 개조하자는 것이다.
내 입이 아프다. 벌써 열두 번도 더 떠들었다.
그래도 오늘의 화두는 ‘개조’다
---- 새벽창가에서 ----
(나하고 같이 뛰던 여성 주자)
첫댓글 거제마라톤까지 굿~~~즐독하고 갑니다....항시 꾸준하게 달리는 모습 베리 굿~
달리자 즐기자 마라톤 ~ 走者不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