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휴식․삶의 충전․시의 제전
시우주
통권 27호
2006년 3월
일 시: 2006년 3월 4일(매월 첫째주 토요일) 16:00 ~ 18:00
장 소: 3호선 동대입구역 2번 출구 앞 태극당 뒤편
서울 불광산사 3층 회의실
시우주 시낭송회
http://cafe.daum.net/siwoojoo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남산 기슭에서 삶의 정수인 '詩'의 즐거움을 이웃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좋은 詩'作과 '젊은 열정'이 어우러진 이 지역 詩人들이 일상과 사유의 화회,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詩朗誦을 통해 이뤄보고자 합니다. 전통과 문화의 고장인 이곳 구민들의 삶의 가락과 건강하게 윤활하고자 합니다. 시낭송을 '공연예술'로 승화시켜 詩의 宇宙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사 회: 류 승 도
시낭송 고두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외 2편
고영섭: [똥을 잘 눈 원효] 외 2편
권현수: [청정 상회]외 1편
김경성: [새들에게 출처를 묻다] 외 2편
김인구: [내 꽃대궁은] 외 2편
류승도: [소래포구 가다] 외 2편
박인숙: [하남에서 백석을 생각하다]외 2편
서주석: [잉어에게 길을 묻다] 외 2편
신채린: [겨울 강] 외 1편
안영희: [수취인 불명] 외 2편
이윤설: [불가리아 여인] 외 2편
이정자: [그 해 여름] 외 2편
정복선: [히야신스 꽃 컵] 외 2편
진동영: [고물] 외 2편
최윤경: [퇴근길] 외 2편
하 훈: [그녀를 읽다]외 1편
특 강 장경렬: [의미와 무의미] (50분)
뒷풀이 시골집 02-2278-6611
시인들:
고두현 100-791 서울 중구 중림동 441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 019-379-0238
고영섭 100-715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26 // 02-2260-3583/ 02-716-9185/
011-9022-9180/ koyoungseop@hanmail.net
권현수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436동 709호/
www.kwonhyonsue.pe.kr
김경성 139-701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sk아파트 105동 1906호
02-3394-9383/ 016-207-9383/gopraha@hanmail.net
김인구 122-828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43-55호 금강주택 A동 302호//
02-356-8151/ 010-6655-8151/ ingu8151@hanmail.net
류승도 431-771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달안동 1101-6 샛별아파트 205동 310호
s-d-yu@hanmail.met/ 011-753-5749
박인숙 서울시 중랑구 묵1동 68-2 신우빌라 5동 107호
010-4515-1612/ feelro67@hanmail.net
서주석 135-271 서울시 강남구 도곡 1동 192-2 혇대 파크 빌라 702호
02-571-3136 011-260-3136 seojs52@hotmail.com
신채린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평내마을 중흥s클래스 2206동 702호 031-595-7732/ 016-9596-3317// charin-s @hanmail.net
안영희 480-767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20 동아아파트 113동 403호//
031-878-0535/ 019-9166-0535/ aaayyyh@hanmail.net
이윤설 018-223-5335/ snowleeyun@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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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렬
정복선 139-800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 91 청솔아파트 802동 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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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훈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4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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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고 두 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빈 자리
열네 살 봄
읍내 가는 완행버스
먼저 오른 어머니가 남들 못 앉게
먼지 닦는 시늉하며 빈 자리 막고 서서
더디 타는 날 향해 바삐 손짓할 때
빈 자리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아침저녁 학교에서 못이 박힌 나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얼굴만 자꾸 화끈거렸는데
마흔 고개
붐비는 지하철
어쩌다 빈 자리 날 때마다
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
없는 먼지 털어 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
괜찮다 괜찮다, 아득한 땅 속 길
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 치는
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
끝내 앉지 못하고.
수연산방에서
-『무서록』을 읽다
문향루에 앉아 솔잎차를 마시며
삼 면 유리창을 차례대로 세어본다
한 면에 네 개씩 모두 열두 짝이다
해 저문 뒤
무서록을 거꾸로 읽는다
세상일에 순서가 따로 있겠는가
저 밝은 달빛이 그대와 나
누굴 먼저 비추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누구 마음 먼저 기울었는지
무슨 상관있으랴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에 앉은 동산도 두 팔 감았다 풀었다
밤새도록 사이좋게 노니는데
시작 끝 따로 없는
열두 폭 병풍처럼 우리 삶의 높낮이나
살고 죽는 것 또한
순서 없이 읽는 사람이
먼 훗날 또 있으리라.
* 수연산방(壽硯山房):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살던 서울 성북동 옛집.
*『무서록(無序錄)』: 이태준의 수필집. 순서 없이 엮은 글이라 하여 붙인 제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1963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다. 제 10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수상 현재 한국 경제 신문 문화부 차장
똥을 잘 눈 원효
고 영 섭
오어못의 물고기를 잡아 먹고
내기를 한 혜공과 원효가
연못을 뒷간 삼아
뒤를 보았다 때마침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두 마리 물고기를 보고
서로 '내가 눈 고기'라고
우기며 갈등했다 뜬 눈으로
자는 물고기를 먹고
문자 똥을 눈 원효와
물고기 똥을 눈 혜공이 빚어내는
무위의 천진 게임!
뒷날 이야기는 뒤바뀌어
전국구인 원효는 물고기를 누었고
지역구인 혜공은 똥을 누었다니
오지랖이 넓은 원효에게 나도 당할 수밖에.
넥타이 자르기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 들이대며 그 그늘을 벗어나
전위 예술계의 처녀림에 들어섰던
스물 일곱의 청년 백남준은
일생 동안 오롯이
컬러 티비와
로봇의 화두를 껴안고
용맹정진 하다 떠났다
죽음이 갈라놓은 이 길고 긴
이별의 길목에서 저마다
몸의 연장인 옷자락을 잘라
정인情人을 보내는 이별의 퍼포먼스!
거세시킨 권위 아래 맨발로
올곧게 섰던 그의 주검 위에서
레퀴엠의 가락 따라 펄럭이는
지인들의 넥타이 자락들.
백남준*
너무 앞서 가 외로웠던 그는
할 일이 아직 남았는데도 평생
빚어내던 찰나와 영원 따라
한 생의 고개를 넘어 갔나니
시간을 가로 지르고
공간을 세로 뻗으며
선과 빛의 이미지로 연
순간과 영원의 세상
분신이었던 ‘티비 부처'가
실체 없이 떠난 그를 위해
생사를 뛰어넘는 도리를
설하는 이 저녁 나는
모니터 뒤의 카메라가 찍은
분장한 보살의 머리와 가슴을
내 의식의 화면에 띄우며 한 생의
필름을 되돌리고 있나니.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지난 2006년 1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그에 대한 평가에는 “재미있고 유쾌하나 예술철학은 빈곤하다"는 폄도 있기는 하지만 그는 최전위에 서서 자본의 편리와 이기에 덧 씌인 우리들 눈의 비늘을 떼어준 이 시대 최고의 예술가였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 불교학과 석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했다. 1989년 <<시혁명>>, 1995년 <<시천지>>로 작품활동 시작. 1998~99년 월간 <<문학과 창작>> 2회 추천 완료(신인상). 시집으로는 『몸이라는 화두』, 『흐르는 물의 선정』, 『황금똥에 대한 삼매』(근간)가 있다. 현재는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청정 상회
권 현 수
청솔골 공기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서 태백산 깊은 골에서 퍼왔다는 싱싱한 공기를 한 자루 가득 샀다 자갈돌 사이를 돌아드는 계곡물 소리랑 상큼한 솔 향을 양념으로 치고 거칠 것 없이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던 바람 한줄기로 간을 하였으니 그 맛이 어떠하겠느냐고 주인어른 자랑이 대단하다. 성급한 마음에 얼른 한 모금 맛을 본다. 단전 깊숙이 들여 마셔보았더니 코끝에 맺혀있던 매연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귀지로 모여 있던 소음들이 하나 둘 보따리를 싸드니 과연 그 맛이 대단하다.
내친 김에 욕심을 내어본다. 폐 속 깊이 모여 있는 묵은 먼지랑, 취장 속에 담석으로 박혀있는 화 덩어리. 전두엽에 두통으로 붙어있는 쌓인 業까지 말끔히 지워줄 센바람 같은 것은 없느냐고 물어본다. 주인 양반은 왜 없겠느냐고 반색을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새 발명품으로 “강력청정풍 1호”를 보사부에 특허 출원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산 청정풍을 압축해서 수십 배로 농축한 제품이니 그 효과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강력 청정풍 1호”가 판매될 날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파랑새 보호구역
파랑새를 찾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보기 드문 파랑새들이 한 곳에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장단반도 구릉지
상수리나무 숲 속이라 하였다
수만 명의 군인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이를
파랑새들은 청록색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날고
백만 발이 넘는 지뢰가 깔린 DMZ 사이로
푸른 배를 드러내며 활짝 노래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민둥산이 싫어서
시멘트 숲으로 덮인 벌판이 싫어서
남도 북도 아닌 반도의 허리께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총부리는 저리 치우고 지뢰밭은 숨을 죽여라
그들이 한껏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나도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겨야겠다
파랑새들이 거기 오래오래 머물 수 있도록.
......................................................................................................................................................................................진주교육대학과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2003년 <<불교문예>>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새들에게 출처를 묻다
김 경 성
신갈나무 가지 위에 새집 하나 있네
발자국 묻어나지 않게
길이 보이지 않는 허공을 걸어 다니는 새들,
어떤 슬픔이 있어 바람 숭숭 드나드는
나무 위에 집을 짓게 했을까
문패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
기웃거리는 빗방울,
꽃잎 물어다 놓는 바람과 눈송이 걸려들어
새집의 무늬를 뜨고 있는 시간에도
또 다른 집을 짓고 있는 새가 있다네
허공에 떠있는 새의 발자국에 별빛이 고여
내 가슴을 찌르네
읽을 수 없는 깃털 편지 걸어놓고
알을 품고 있는 새들이여
물의 낯에 부리를 적시고 있는 새들이여
따스한 날개 밑으로 들어가 묻고 싶네
그대들이 걸어왔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초승달 거꾸러져
늙은 감나무 감꽃 던지는 속도에 맞추어
차갈 거리던 메밀 씨앗
밭고랑 모서리 뚫고
어린 순 밀어 올리며 꽃대 붉어졌다
초승달 거꾸러져,
꽃가루 털어내지 못하고
둥그렇게 부풀어 올라 밤새 뒤척거리고 다닌다
메밀밭 덩달아서 흰 꽃 터트렸다
파장(波長)|
살강거리며 불의 바다에 닿았던
꽃이 피어날 때까지의 시간
정녕,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베어져서 아직 풀물도 마르지 않은
구절초 꽃대가 아리다
볏단처럼 쌓아놓은 구절초 꽃
씨앗 아무는 일만 남아있었던 것을,
지금 말리고 있는 것은
시간을 뛰어넘고 있는
슬픔의 조각
약재로 쓰이기 위해
꽃이 지기 전에 스러져서
생의 진액을 빛으로 압착하고 있다
오, 견딜 수 없는 빛의 감옥
빛과 꽃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전북 고창 태어나 2005년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내 꽃대궁은
김 인 구
스무살 언저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시에게 다가가
영혼을 잠식당했는지 그 낯선,
첫날밤을 어떻게 지나 보냈는지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다
뭉뚱그려진 치기로 오가던 학교 앞 골목길
널부러진 꽃집과 낮게 엎드린 지붕들의 가난한
숨고름을 어떻게 들으며 지나 다녔는지
수사학과 문학전집으로 가리고 다니던
얄팍한 가슴 한켠으로 숨어 고요한 척
새침떨며 삐죽이던 입술사이로
스무살 언저리에 쏟아냈던 수다가 도무지
주워 담아지지 않는다
치열한 척, 얌전한 척, 상큼한 척---
했던 수 많은 항목의 죄목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스무살 언저리들
난 스무살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꽃대궁이었다.
강변 위에서
강변에 서서 연을 날린다
얼레를 감았다 풀으면 가오리는
금세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른다
벗어나려고만 하는 가오리의 아가미에
적당한 힘을 밀어 넣고 당기면
천천히 연은
달아나려는 마음을 이내 버리고
묶이려는 마음으로
다시 당기어 온다
무심히 허공을 가르는 연들의 횡단
그 아스라한 경계선에서
팽팽한 힘의 전율을 만난다.
풍천 장어
어느 강가 한 귀퉁이를 몽유하다
이 곳에 누웠을까.
내장까지 말끔히 발리어진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소금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랑 누워 있다. 아니 나를 향해 서 있다.
몸을 지탱하는 중심축 뼈대까지 제거된
무척추증으로 벌건 숯불을 등에 지고
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어느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다
인간의 덫에 걸리었을까.
축소된 세상으로 녀석을 교란시켰을 수족관에서
열닷새를 굶주리며 토해낸 세상살이
녀석이 살다간 흔적이
뿌옇게 부유하는 공간에서
소주잔을 들어 녀석의 어느 한 생애
둥근 몽유의 고리를 끊는다.
끊어준다.
.......................................................................................................................................................................................
1986년 <<옹벽>> 시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1990년 월간 {문예사조} 창간호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등이 있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창작 21} 편집장을 맡고 있다.
소래포구 가다
류 승 도
아마, 그곳에 협궤열차가 있었다지 소래
포구에 가보기로 했지 의미는
모르지만 포구에 거의 다 닿았는데 염전이
가까이 있었다는 말 들었어 한 번 보고
싶어졌지 집 떠난 한 사내가
견디었을 염천과 짜디 짠 사연
궁금해졌지 터라든가 흔적이라는 것들
늘 그렇지만 좀 막막하게
하지 게다 늦가을의 해질녘이라니 서로
쓸리는 갈대소리 한 들판이나
들었지 아마 저장창고였을 거야 부식된
함석지붕은 세월의 무슨
자국들처럼 널찍널찍 뚫려있었지 가을도
녹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 사내 고되게 석출하였을 보석
땀방울일까 눈물일까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늘 괴물에 잡혀 먹히고 있는지
몰라 단단하게 굳어 쩍쩍 갈라질 것
같은 펄도 전라도 사투리로 뭐,
농발게라던가 하는 놈이 구멍 숭숭
뚫어 놓았다니 삽질로 게 잡던 아저씨
얘기 해줬지 구멍 뚫는 놈
미워졌어 목젖을 확, 짜게 하는 것
무엇인지 소래포구 가다 협궤열차로 어쨌든
좀 새다가 아직 염전 터라니 당연히
짜다고 할 밖에 협궤열차 대신 협궤라도
보아야지 못 보더라도 포구에서 잠시
막걸리 한 사발 걸게 마셔야겠지 하지만
이 짠 맛이 가셔지겠어 거기서
또 절고 절은 짠 냄새를 맡을 테니까
버들개
버들강아지가 이미 커서 버들개가 되었다고 농담은 하지만요
버들류(柳)에 개포(浦)를 합친 것이고요
우리말로 버를개라고 제가 닉네임으로 쓰고 있지요
누구의 허락도 받지는 않았지만요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요
제 고향 유포리인데요 한자로 춘천인 봄내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가라 아직 바다는 서쪽 먼 곳에 있으니까요
버드나무는 따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요
이 곳 강이나 내까지 서해바닷물이 들어왔을 리는 만무일 테니까요
버드나무가 많이 들어선 냇물이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북쪽에서 쓰는 말인데요 이제,
그렇다고 짐작할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요
어느 저물녘이었던가 오래 전인데요 냇가의 버드나무 아래서요
어머니 아버지 나란히 앉으셔서요
서쪽 노을 멀리 바라보며 서로 어깨 기대었어도 좋았겠지요
늦가을 서북쪽 바람이 시작되면요
주렁주렁 붉은 사과마다 꿀이 가득 박히고요
동치미에 말아먹는 곱빼기가 보통이 되는 막국수 메밀면발은요
진품으로 툭 툭 툭 끊어지지요
마을 뒤로 마작산이 턱 버티고 앉아있는데요 능선의 소나무들은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되어서는요
줄이어 밤마다 어디론가 떠나가는데요
이 밤도 어머니 아버지 두 분 함께 늙어 가시고요
저 일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한 그 곳이지요
저로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은 곳
버들개지요, 그 곳 냇물이 맑아 버들개가 많이 살았었는데요
생물분류학적으로는 버들치와 구분이 되지만요
버들치의 방언으로도 쓰이지요
길,
이른 봄
눈 녹아
저린 강물 푸르고
은빛
버들치
푸른 물든다
물오른
냇가
버드나무 위
버들잎 가지마다
헤엄을 친다
동백
그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이리 추운 응어리 각혈을 하나
꽃이라 보고 싶은 것은 또 무엇인가
왠지 밉살맞아 동백 보러 온 길
절 앞 멀찍이 늘어선 식당 하나 골라
주거니 받거니 술타령이나 하네
널 봐준다고 술 한 잔이나 권하겠나
맘 없이 몸이나 아프겠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196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2004년 <예술세계> 신인상에 시 < 독법, 함정, 공룡 발자국> 등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강원대 환경학과(이학사)와 서울대 대학원 보건학 석사, 박사를 받았다.
하남에서 백석을 생각하다
박 인 숙
종이접기를 한다
티브이를 접고
쿨럭거리는 창문을 접고
개 짖는 소리를 접고
떠나간 나타샤의 얼굴을 접고
구겨진 그림자 하나
문 밖에 쌓인 어둠을 밀고 나가서
타박타박 종소리를 옮긴다
공원입구에 매어둔 당나귀를 접고
바늘이 사라진 시계를 접고
흰 바람벽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줄을 접고
고양이가 울음을 그치자
소나무 가지가 부러졌다
어둠을 싹둑싹둑 잘라가는
바람끝 가위질 소리
세상의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밤사이 뼈만 남은 초라한 골목
초승달의 힘겨운 바느질 자국이 선연하다
*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빌어 옴
개나리 유감
이른 봄, 친구 모친상엘 가니
목포 유달산에는 미친 개나리가 살아
시도 때도 없이 꽃망울을 퐁퐁 터트린당께
막걸리잔 기울이며 깔깔 웃던 그 애가
말더듬이처럼 피어
노란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중학교 졸업하고
방직공장 드나들던 시절에 만났던
조막만한 얼굴의 그 아이
검은 염색천 더미를 옮겨가다가도
한사코 내게 다가와 개나리처럼 웃더니
서른을 훌쩍 넘기고서야 대면한 생모를
껴안지도 밀어내지도 못한 채
머뭇머뭇 영안실 입구를 서성인다
그렇구나, 넌 너무 일찍 핀 꽃이로구나
잎보다 먼저 핀 꽃들이 생을 사랑할 틈이란
나뭇가지가 채 젖지도 못하는 시간뿐
유달산 개나리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내미는 건
사무치는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이 먼지 가득한 세상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헛디딘 발짝을 견딜 수가 있겠는가
허공에 패를 놓다
그 남자에게 불안이란
심장박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음 앉힐 그늘을 찾지 못하고
공중을 도색하는 그의 빠른 움직임은
흡사 용수철의 반동에 의한 흔들림과 같아서
생은 그에게 쾌적한 공기를 나눠줄 틈이 없었다
그러한 요동이 우물처럼 고이는 순간이
있었던가, 있었다 아주 잠시
그는 지하도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거리를 떠돌던 바람이 넘실대는 층계참에서
언 손으로 신문을 들고 서 있는 사내
그가 머문 시선은 신문에 담긴 세상도
신문팔이 사내의 궁색한 외양도 아니었다
그의 참을 수 없는 경멸은 오직
신문을 팔기 위해 떨고있는 흰 손
사라고 권하지도, 외치지도 못하고
다만 위태롭게 떨고 있는 손에 있었다
그는 신문팔이 사내를
아니, 공중에서 떠는 제 누각을 향해
노역을 멈추고 비명을 질렀다
제발 떨지마, 불안하단 말이야!
그의 시간이 단 한번 마디를 끊는 순간이었다
......................................................................................................................................................................................숭의여대를 졸업하고 1996년 <<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항생제를 먹는 오후>>가 있다.
잉어에게 길을 묻다
서 주 석
오끼나와 식물원 트램을 타고
꼭대기 까지 올라가면
정글의 샘 같은 연못 하나 있다
연못물에서 묵은 젖내가 난다
젖내를 따라 잉어들이 몰려온다
먹이를 향해 몸을 던지는 잉어들
니은자 리을 자로, 혹은 이응자로
언어를 만들어 내며 몸을 뒤 튼다
자신의 몸통마저 삼켜 버릴 듯
입질 해대는 잉어에게 밥을 먹이다
우리와 닮은 그들의 욕망이 궁금해져
손을 뻗어 직접 물어 보기로 한다
찌르르 찌르르 전기가 흐른다
통신이 가능하다는 신호
낯선 메시지가 손에 잡힌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몸 이룬 존재들의 만남
만남에 환희하는 몸 시“
인연의 새 옷 입은 모습 예쁘다는 전갈을 받는다
굴참나무 법문
눈이 오지 않은 초겨울 매봉산
마른 잎 새 두어 개 떨고 있고
산의 가슴 깊이 하늘이 들어와 앉아 있다
땅에 몸 박으며 합장 향공 하는 나무들
입었던 속 옷 모두 던져 주고
기도하는 굴참나무다 지장보살이다
신도들 삼천배로 머리 조아리던
지장보살 여기 모두 모여 있구나
바라문녀 벗은 몸 누가 볼까 쉬쉬하며
낙엽들 저리 모여 침묵하고 있다
눈이 와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기 전
벌거벗은 땅 속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아침부터 매봉산 바람이 바쁘게 움직인다
굴참나무 할머니 법문 들으러
나는 오늘도 매봉산에 간다
리와인드 버튼
차고 단단한
진주 목걸이 걸며 거울을 본다
먼 바다 조가비의 눈물방울들
동그란 원 그리며 깔깔거린다
다큐멘타리 흙백 사진처럼 생생한
기억의 덩어리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구슬같은 사리같은 것들 속에서
유난히 단단해 보이는
진주알 하나 집어 본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 입술 사이
내 던져진 엄마의 눈물방울
우유빛이다
우유빛 생각이다
목을 죄어 오는 생각의 구술
젖비린내가 확 풍긴다
진주 목걸이는 나에게
어제를 알리는 내일의 리와인드 버튼이다
........................................................................................................................................................................................195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94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했다. 숙명 여자 대학교 영문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죽란>>과 <<바라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겨울강
신 채 린
겨울강을 보러 갔습니다
사랑을 잃은 그녀와 함께 갔습니다
사랑을 잃은 그녀는
겨울강을 보면 쓸쓸하다고
눈물난다고
돌아서 가버렸습니다
오래 전에 사랑을 잃은 나는
겨울강을 보고도 담담했습니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산에 사니 산을 모르겠고
번뇌에 젖어 사니 번뇌를 모르겠다는
어느 지인의 말이
귓가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강은
두꺼운 얼음옷을 입었습니다
개구리, 가재, 메기, 쏘가리
겨울잠에 든 제 새끼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제 몸을 얼려서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인연
충무로 뒷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불낙전골 끓는 것을 본다
소고기와 낙지가 익으며 깊이 엉기고 있다
살아서는 인연은 맺지 못하고
죽어서 인연은 맺은 소와 낙지의
전생이 궁금하다
시낭송회를 끝내고
전골냄비 주위로 오붓오붓 모여 앉은 시인들
내노라하는 시인과
내놓을 것 없는 시인들이 마주앉아
이슬을 마신다
우엉조림과 멸치볶음을 안주 삼아
연애담과 시국을 안주삼아
찬 이슬을 마신다
시를 좇다가
사랑을 놓치고 돈벌이를 놓치고
변방을 떠돌다가
이 좁은 식당에서 만났구나
얼굴 맞대고 불낙전골 같이 먹고 있으니
내가 당신들인 것도 같고
당신들이 나인 것도 같다
........................................................................................................................................................................................200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했다.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시 창작 전문 과정을,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수학했다. 대입논술과 문예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양서
안 영 희
오늘은 큰 눈이 내린다고 했던가
동위원소 정맥주사를 맞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는 대기실
창유리 밖엔 잿빛 외투를 늘어뜨린
겨울하늘이 대기중이다
( “이 나이에 멘스가 끊겼어"
“이렇게 살아서 뭐얼해?"
“적혈구가 자꾸만 떨어진데!"
“메스꺼워? 지금도?"
“6개월, 6개월 뿐이라니!")
위기에 몰려
대중없이 튀어 오르는
횟집 수족관의 저 물고기들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실주의
통렬한 양서들을 읽었던가 그 질척이는 양분의 바닥을
피 흘리며 핥았었던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여인, 휠췌어에 얹힌 눈 뜬 데드 마스크, 홑이불로 싼 에스 오 에스, 피와 항암 주사액의 냄새냄새냄새애)
수심 깊어
소리도 없이 흐르고 있다 틈새로 틈새로 가만가만
한 줄기 응시의 맑은
급경사를 치며 갈가리 찢기던, 그
황톳물
봄맞이
외투갑옷 깊숙이 목을 잠그고 오르는
아침 언덕길에 난데없이
널브러져 쌓여있네
울음도 못 우는
파랗게 질린 속살 목 잘린 순결의
프라타나스 가지들
入春大吉, 대문짝에 써 붙이고
기러기 떼 서둘러 우수의하늘 멀리 날려보내며
떠나야 할 약속 누차
간접화법으로 상기시켰음에도
용서하소서!
저리 자주 저질었던 내 피의 우행들, 헛되이 터져나간
수 많은 욕망의 지난날들을
용,서,하소서!
뭉툭 베인
싱싱한 불구의 지체 하늘로 들어올리고
토막, 토막… 바치는
나무사제司祭
오 통한의 기도
수취인 불명
크고 작은 상자곽 집들
꽝꽝 콘크리트 친 포장도로의 틈새에서
불법이민자인 양 쭈볏쭈볏
봄이 발을 밀어넣고 있네
짓무른 동상의 발가락 끌어 간신히 당도했어도
정작 찬란한 선물보따리 던져 풀어 놔야 할
빈 자리가 없네
빨갛게 노랗게 거리마다 원색으로 만발한 간판들
겨울에도 팔 안에 드는 장미꽃 흐드러져
기다림이 촌스러워진 서울에 착지한 봄은
수취인 불명의 만삭의 소포뭉치
그나마 옹색하게 핀 빈혈의 꽃은
여기 저기 못이겨 뀌어져나온
슬픔이네
그리하여 내가 아네
저 봄 오는 듯 가리란 것을
저 먼 날 불시착했던
내 사랑처럼
......................................................................................................................................................................................
1990년 시집 {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물빛 창}, {그늘을 사는 법}, {가끔은 門 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낮게 그리고 느리게} 동인. www. anyounghee.pe.kr
불가리아 여인
이 윤 설
매일 창 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매일 창 여는 순간 일정하게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
자줏빛 붉은 함박꽃 모직코트를 여며 입은 그 몸은 뚱뚱하나
검게 불 타는 흑발,
영롱한 흑요석의 눈동자를
불가리아 여인, 이라 칭하기로 하자.
가본 적 없는데도 그 여인 볼 때마다
벽력처럼 외쳐지는
불가리아!
정염의 혀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열정이
조합된
발음!
가혹하게 태질하는 칼바람을
움츠려 깊이 찔러넣은
함박 핀 꽃은
불길하게도 피붉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불가리아 여인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내 창 앞 그 여인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겹쳐진 창문으로 지나가는 그 여인
부풀어 터질 듯 꽃핀 몸, 타오르는
흑요석 눈빛은 생각하겠지,
저 이방의 여인 코리아의 여인
창 속의 갇힌 듯 노랗게 뜬 얼굴 부르쥔 손
왜 내가 지나가는 이 시간 마다 일정하게 창을 여는 걸까.
어떤 이끌림이
그녀와 나의 눈동자 속 흑점에 맞추어지고
우리 서로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걸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불가리아 여인
코리아 여인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스치듯 안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길하게도 매일 일정하게.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가설무대
밤의 골목 끝
수화기를 든 여자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오직 깨질 듯 밝은 전봇대 등빛이
둥근 무대 위로 여자를 올려놓고
여자의 슬픔은 만천하에 고하여지도록
장치되어 있는 잔인한 밤의 익살을
벗어날 수도 없이
붙들렸다 이렇게는, 더는 살 수 없어요
노골적인 눈물은, 덜컥 덜컥
숨이 멎을 듯 동전을 삼켜버리고
무대로 올려진 소품처럼
여자의 다리를 부둥켜 안은 아이는 고양이같이 가느다랗게 울었다.
빛의 중앙, 양파처럼 발가벗기워진 매운 슬픔의 전류는
공중전화에서부터 흘러나와
날벌레같은 빗줄기가 휘둥그레 갓등 주위에 뿌려지고
한사코 어둠의 일원으로 숨죽인 행인들은
저마다 하나씩 암전된 사연의 동전을 꺼내어 보다
조심스레 여자로부터
아이로부터
빛나는 슬픔의 무대로부터
그치지 않는 비의 장막 사이로 멀어져가는 것이다.
.........................................................................................................................................................................................1969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명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희곡이 당선되었고,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해 여름
이 정 자
내 정신의 보물이라 생각하던 시집을 얻던 해
어머니는 육신의 보물인 가슴 한 쪽을 잃으셨다
오남매에게 젓을 물려 키우던 양식의 그릇이라
생각하던 내게 고희를 넘기신 어머니께는
여자의 꽃을 도려내는 아픔이라는 사실에 더 놀라웠다
수술을 받고 몇 번의 약물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며 고통을 지그시 눌렸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시를 썼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사치란
물질적 호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열망하는 것들을 이루며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해, 신은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셨지만
나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싶어졌다
꽃 피는 봄이 죄인입니다
의무만 있은 본처, 애첩처럼 살고 싶어
헌집 하나 버렸습니다, 버리는 동시 버려졌습니다
아니 놔주고 놓여놨습니다 실은
절대 절명의 피 말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글쎄, 그 게 화근이었어요
얼마 전 개울가로 나갔더니
갯버들 두 귀 쫑긋 세우며 말하지 않겠어요
산 속 깊은 곳에 숨은 복수초 변산바람꽃 얼레지가
햇살을 끌어당기며 점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덩달아 매화나무 생강나무 진달래 목련이
일제히 싹눈을 틔우며 거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구요
천지사방 열애처럼 꿈꾸던 혁명의 날이 올 거라 구요
그래, 나도 겨우내 갇혀있던 마음 속 감옥으로부터
탈옥의 꿈을 벼리었죠, 세상으로 난 길들을 소등하며
가장 순정한 꽃씨 하나 골라 꽃 피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프더군요
그러더니 점차 빈 항아리처럼 평온이 찾아 들었습니다
살았다 싶었지요, 내 안의 싹트는 새순 하나
이미 어쩔 수 없는 봄의 공범자입니다
죄가 있다면 꽃 피는 봄이 죄인입니다
매화 향기
내가 당신을 바라볼 때는
그냥 지나치시더니
꽃 피고 지는 시절에
어인 일로 그 눈빛
오래 건네시는지요
눈빛과 눈빛이 마주하면
마음과 마음이 마주하면
봄비 젖어드는 자리
새순 돋듯 새싹 트듯
다시 봄이 와
우리 사이
매화 향기 만발하겠습니까
......................................................................................................................................................................................충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불문과 졸업하고 1998 <<문예한국>>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능소화 감옥}이 있다
히야신스 꽃컵
- 西海詩 5
정 복 선
아버지가 생각나서
큰언니는 겨울마다 히야신스를 키우네
냉장고 서랍에서 열이틀 겨울잠을 재운 후
유리컵에 살풋 얹어두네
히야신스, 몸속에서 실을 잣기 시작하네
하얀 수염뿌리의 모습으로 물 속에 내리네
이윽고 보랏빛 흰빛 분홍빛 향을 터뜨리네
생전에는 아무 짬도 모르고 거부했던 아버지의
잔소리에 나, 기침나네
컵 속에는 부글대고 넘치고 몰려다니는 파도가 있다네
수런거리고 낄낄대고 울먹이는 소리가
한 움큼의 눈물이 나의 목마름을 적시고
내장 속 바다를 만나고 지구를 떠돌며
흙이 되었다가 나무, 금, 불이 되었다가 다시
바다로 가는 걸 나는 잊고 사네
큰언니의 겨울 히야신스는
내 젊은 아버지가 키우시던 히야신스라네
투명한 아버지 몸속에
실을 자아 하얀 뿌리의 모습으로 나, 내려가네
외딴 생生
주검을 독수리에게 바친다
탁한 생生은 뜯어먹지 않는다
맑은 생生만 누추한 옷을 벗고
알맹이가 된다 씨앗처럼
기린봉 5
그래요 나, 세상의 포효하는
파도쪽으로 자꾸 자맥질하는 동안
산쪽으로 산쪽으로만 올라가셨지요
세상에서 준 광채와 키와 신발들을
하나씩 하나씩 산자락에 벗어 놓고서
점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이제 깃털처럼
어느 물에도 적셔지지 않는
수련 꽃잎과도 같이 봉싯 떠오르셨군요
잠깐만요 아직은 거기 계셔요
캄캄한 어둠의 늪을 헤매다가
떠지지 않는 눈 비비며 깨어나고 싶을 때
나도 젖은 몸으로 따라 오르고 싶으니까요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대학교 영문학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는 <<작은 섬 하나 수 놓으며>>, <<맨발로 떠나는 사람>>, <<등불아래 서울>>, <<여유당 시편>> 등이 있다.
고물
진 동 영
성수 고물상 벽돌담 아래
등을 기대고 선 리어카
밑판을 댄 나무가 뒤틀려 있네
모서리마다 바스라진 합판
까실한 가시를 세우고 있네
사지를 버둥거리는 자라
등껍데기 안으로 숨어 드네
다 숨지 못한 발이 마르고 있네
언젠가 단칸방의 이삿짐이나
사과 감 落果를 등껍데기로 삼았을
리어카, 벽돌담을 등지고 꼼짝하지 않네
뻣뻣하게 하늘로 솟은 손잡이
전봇대에 에둘러쳐진 쇠사슬이
햇빛 속에서 몸을 트네
옥수동길
저물녘 새가 앉았던 자리마다
알이 하나씩 슬어있다.
유리관 속 오두마니 제 무릎을 감싸 안고
빈 둥지의 알은
스스로 제 몸을 덥히고 있다.
부화되지 못하는 것들
날개 대신 흑점이 자라고 있다.
흑점으로 알들은
파닥이고 있다.
옥수동길,
알의 길을 따라 걷는다.
불켜진 창 하나 골목 속에서 파닥이고 있다.
자가중독
뒤틀린 잎을 가지 끝에 달고
토마토가 마르고 있다
마른 잎을 흙 위에 떨구고
바스러뜨리고 있다
잎 진 가지마다
곤두선 잔털
가지 끝
물러터지는 석양
........................................................................................................................................................................................1978년 대구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5년 <<시인세계>> 가을호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는 재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퇴근 길
최 윤 경
닳고 닳은 삶의 고단함에
불현듯 한 송이 꽃이 하얗게 피어 오른다
무엇이 온 가슴을 희게 만들어 놓는 걸까
포장되지 않은 채 그 누군가에게 건네어 줄 수만 있다면
온전히 꽃이 되어 주고 싶다
새하얀 꽃 이파리 검은 열매로 남겨진
다정큼열매 의 붉은 즙 이 되어
한 방울 핏빛 상처로 자리 잡은 일상의 일들
병든 노모의 헛기침 소리로 시작 하는 아침도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보도블록의
낮은 구두 발자국 소리도 살아 있다는 흔적으로 기억 되리라
가진 것 하나 없는 그 가난한 마음에
빛처럼 남겨져 아른거리던 열매가
거뭇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이
힘들고 지친 나머지
정반대의 색깔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닐까
백지 상태로 시작한 아침이
저녁이면 만신창이가 되어 시꺼먼 재가 되어 버리는 것
한쪽이 닳아 뒤뚱거리게 된 신발창만 탓하며
구두 수선방을 향해 가는 걸음이
소스라치게 밝은 아픔이 되어 밟힌다
나무, 아침을 말하다
벌거벗어 웅크린 나무
성근 빗금을 긋고
어둠을 깨운다
언제 어떻게 잠들어
깨어나야 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주는 이 없건만
모든 것은 눈을 뜨고
바람이 살랑이며
세수를 시켜주면
말없이 가지를 흔들어
더 꼿꼿하게 서고야 마는
너는 침묵을 조용히 끌어안고
시작을 알리는 중인가 보다
하얗게 피운 서리꽃
마른가지 촉촉하게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눈 내리는 밤
누런 종이에서 오래된 이야기
냄새가 났다
인화되지 못한 흑백 필름처럼
과거는 그렇게 먼 곳에서
손을 흔들며
눈송이 방황하는 허공에
개 짖어대는 소리 묻어나는 밤하늘
깨알 같은 글씨들
낙서장이 된다
두런거리는 유년의 밤풍경이
순서도 없이 하얗게 그려져 있다
............................................................................................................................................................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제35회 사임당예능대회 시부문 입선, 제7회 서울시 여성문예원 여성백일장 시 부문에서 장원, 여성문예원 글향기 회원이다. 2005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다.
그녀를 읽다
하 훈
그 숲에 가면
오래된 지름길 하나 있었네
내가 서성이지 않도록
그녀가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았네
길목마다 이정표를 그려놓고
내가 가는 길을 살펴주었네
가파른 능선에서 힘들어하면
몸을 한껏 낮추어 주었네
암갈색 봉우리들은 완만한 구릉이 되고
곳곳엔 사과나무를 심어놓았네
간혹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숲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네
울음소리 따라가 보면
그녀 홀로 아직 불을 밝히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네
숲 여기저기 둥지를 튼 흔적들
그녀는 여린 짐승들을 품고 있었네
능선마다 제 살을 깎은 자국을 감추고
온통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었네
어젯밤 내내 그녀의 숲에서 길을 잃었네
분재
그의 땅에는 꽃이 지지 않는다 한눈팔지 않는 가지들 위로 꽃들은 일렬종대 피어나고 충직한 뿌리는 그의 성수만을 들이 마신다 잎사귀들이 그의 법문을 광합성 하자 찬란한 왕국은 완성되었다 그곳에서는 휘어진 가지나 일탈을 열망하는 꽃잎이며 허기진 실뿌리들의 내력은 헤아릴 겨를도 없이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변경으로 유배되었다 성소는 나날이 푸르러 갔고 꽃들은 화려해져 열락의 제한 구역이 되었다 살찐 명상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한국외국어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시바라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강:
무의미 시론의 의미
장 경 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
1
지난 2004년 시인 세계(가을호)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즐겨 애송하는 시는 2004년 가을에 작고한 대여 김춘수의 「꽃」이라고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여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로 끝나는 이 시는 자아와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함축적으로 시화한 작품으로, 어느 모로 보나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대여는 후에 가서 이 시의 끝을 장식하는 “의미”라는 단어를 “눈짓”으로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의미”라는 단어 자체는 비록 추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자신이 상대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되기 바란다는 뜻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반면, “눈짓”이라는 단어는 비록 구체적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를 혼란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서로에게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말 자체야 ‘시적 허용’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눈짓”이 되고 싶다는 말이 이 시에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너의 눈길을 끌거나 너의 눈길이 머무는 대상이 되고 싶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이 말은 ‘이름을 부른다’는 말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오직 인간만의 것일 수 있다. 적어도 언어를 소유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하다. 한편, 대상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대상을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뜻을 갖는다. 반면 눈짓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눈이 있는 생명체라면 어떤 것이든 취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일 수 있다. 즉, 대상에게 눈짓을 보낸다는 것은 반드시 대상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이름을 불림”으로써 상대에게 “눈짓이 되고 싶다”는 말은 ‘상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상대에게 별 의미가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식의 혼란스러운 뜻을 가질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묻지만,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대여가 “의미”라는 단어를 “눈짓”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가 주창한 바 있는 “무의미 시”라는 논리에 거슬리기 때문이었으리라. “무의미 시”라는 논리를 정립하면서 대여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식의 시적 진술, 그러니까 드러내놓고 의미를 갈망하는 과거의 시적 진술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다. 어쩌면 자신이 유의미한 시를 썼다는 사실까지 되돌릴 수 없더라도 적어도 이런 식의 시적 진술에 대해서는 손질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손질을 통해 그가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그는 그 자체로서 하자가 없는 시를 훼손하거나 시에 대한 혼란을 자초했을 뿐이다. 시란 결코 시론에 맞춰 쓸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무의미 시”를 쓰겠다는 행위 자체가 유의미한 것이고, 그런 이상 “무의미 시”라고 하더라도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무의미 시”는 ‘무의미한 의미’를 갖는 시이다. 이 때문에라도 결코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02년 김화영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한 문학 강연 자리에서 대여는 이렇게 말한다.
시의 세계는 그런 결론이 나기 이전의 아주 소프트하고 신선한 미지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세계, 뭐라고 명명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명명했다는 것은 벌써 의미가 성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미로서 굳어지기 이전의, 아주 신선하고 말랑말랑하며 융통성이 있는 세계, 유연한 세계가 바로 시의 세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중략) 그런 자각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나는 서술적인 이미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을 하자고 해서 그것을 한참 하다 보니까, 또 어떤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언어로서 그리는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역시 의미의 영역입니다. 내가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는 뭔가 의미에 천착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잘못된 것이 아닌가, 독자가 없는 시는 있을 수가 없는데,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독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당신 시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왜 모르느냐 하면, 자꾸 관념과 결부시키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 나빴던 면도 있지만, 언어 자체에 그런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 자체가 늘 의미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아무리 순수하게 쓴다고 해도, 의미의 그림자가 깃들여진다는 것입니다.
대여는 “무의미 시”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그러니까 자신의 시를 “관념”과 결부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그 이유를 “교육”과 “언어”에서 찾고 있다. 그의 판단은 옳은 것일 수 있지만, 동시에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교육”과 관계없이 “언어”뿐만 아니라 “시”도 “늘 의미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시란 언어를 재료로 하여 성립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는 언어가 아닌 소리를 재료로 하여 성립되는 예술인 음악을 “지향”(指向, 志向)할 수는 있어도 음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같은 강연의 자리에서 대여가 고백한 바와 같이, 시를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주문 비슷한 시”를 쓰더라도 “의미의 찌꺼기”는 남게 마련이다. 대여는 극단의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낱말도 해체시켜” “음절 단위의 시를 써”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전부 파괴되어” 버리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결국에는 “새로운 의미의 시”를 쓰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요컨대, 대여 자신도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한다. 물론 이 같은 고백에 이르기까지의 시 창작에 대한 대여의 모색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방법론에 대한 대여의 고뇌는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란 언어로 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벗어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에 등을 돌린 채 “무의미 시”가 불가능함을 시가 아닌 “교육”과 “언어”에서 찾았던 것은 대여의 방법론적 고뇌의 한계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세상일이 다 그러하지만, 무언가에 몰두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그 무엇 자체가 지니는 근원적 한계에 대해서는 눈이 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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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란 불가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 자체가 무언가의 의미를 담고 있거나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즉, 시란 의미를 유발하는 하나의 동기(動機, motive)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시란 의미를 능동적으로 ‘실체화’(hypostatization)하는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또는 독자)의 관찰 작업(또는 읽기 작업)의 과정에 생성되는 것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미국의 시인 아치볼드 맥리쉬(Archibald MacLeish)가 「시작법」(“Ars Poetica”)이라는 시는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논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시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법 / 마치 떠오르는 달과 같은 것이어야 하는 법 // 시란 그 자체로서 조응되는 것이어야 하는 법 / 무언가에 충실하기보다는. // 모든 슬픔의 역사에 대해서는 / 문에 이르는 텅 빈 길과 단풍잎 하나 // 사랑에 대해서는 / 고개 숙인 풀잎들과 바다 위의 등댓불 둘― // 시란 의미해선 안 되는 법 / 다만 존재해야 할 뿐. (A poem should be motionless in time / As the moon climbs // A poem should be equal to: / Not true // For all the history of grief / An empty doorway and a maple leaf // For love / The leaning grasses and two lights above the sea― // A poem should not mean / But be.) (제15-24행)
아마도 “시란 의미해선 안 되는 법”이며 “다만 존재해야 할 뿐”이라는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에게 시를 읽는 일은 꽃이나 바위나 새를 감상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시를 ‘올바르게’ 감상하는 데 무언가 시의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느끼면 된다’는 입장도 상당히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의미하는 ‘언어적 실체’로서의 시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시에 내재되어 있는 무언가의 특정한 의미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맥리쉬의 「시작법」이라는 시 자체가 하나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맥리쉬의 시가 한 편의 시인 이상 ‘시란 의미해서는 안 된다’라는 진술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시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시가 ‘의미해서는 안 된다’면 ‘시란 의미해서는 안 된다’라는 진술도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시가 의미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의미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 시의 역설은 ‘시란 의미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의미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논리를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시인의 전략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의미하기’란 시가 애초부터 지니고 있는 특성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요컨대, 시란 의미를 유발하거나 전달하는 언어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해서 무언가를 의미하도록 만들어진 것인 이상, 윌리엄 커츠 윔새트 2세(William Kurtz Wimsatt, Jr.)가 「시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What to Say about a Poem”)에서 말한 것처럼 “한 편의 시는 무언가를 말하거나 의미하고, 또는 무언가를 의미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란 한 송이의 꽃, 한 덩어리의 바위, 한 마리의 새와 같은 자연물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즉, 근원적으로 의미를 결여하고 있는 “다만 / 하나의 몸짓”일 수는 없다. 또는 이름을 불러 주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존재일 수는 없다. 시는 비록 꽃이나 바위나 새와 같이 ‘미적 감식’(aethetic appreciation)의 대상이긴 하나 꽃이나 바위나 새와는 달리 인위적 의도가 개입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가 없는 “무의미 시”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도 한 편의 시는 이미 ‘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요컨대, 무의미한 것―이 시라면, 또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시라면, 시란 진실로 꽃이나 바위나 새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리라.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 모든 아름다운 자연의 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굳이 인위적으로 시를 창작할 필요가 있겠냐는 식의 물음도 제기될 수 있으리라.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는 다름 아닌 대여의 시 「꽃」에서 찾을 수 있다. 꽃이나 바위나 새가 있음에도 여전히 인간의 인위적인 시가 필요하다면, 시 쓰기란 바로 꽃이나 바위나 새의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를 통해 세상의 만물은 이름을 얻게 되고 나아가 유의미한 그 무엇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 읽기란 바로 대상에 새롭게 부여된 이름이 무엇인가를 해독하는 작업일 수 있다. 대여의 말대로 시가 “관념”이 아니라면 바로 때문이다. 즉,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은 결코 관념을 투사하는 행위가 아니며, 시를 읽는 행위 역시 시에 투사된 관념을 읽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에 의해 사물에 새롭게 부쳐진 이름을 찾는 행위이다.
대여가 그토록 진지하게 추구했던 “서술적인 이미지”는 기실 이처럼 이름을 부여하고 새롭게 부여된 이름으로 대상을 부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어떤 이름을 부여하든 거기에는 시인의 의지가 들어가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서술적인 이미지도 의미 부여와 가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어떤 대상을 선정하여 시적 소재나 제재로 삼는 일 자체가 이미 의미 부여와 가치 판단의 행위가 아닌가.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대여가 서술적인 이미지의 대척점에 놓고 그토록 회피하려고 했던 “비유적인 이미지” 역시 서술적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대상에 부여했거나 부여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름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름이 상투적인 것으로 전락하여 무의미한 것이 된 대상에게 새롭게 이름을 부여하거나 아직 이름이 없는 대상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또 그 이름으로 불러 주는 작업이 이른바 ‘비유화’(比喩化)이기 때문이다.
3
“무의미 시”에 대한 대여의 추구에 인식론적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정지해야 한다는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적 인식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앞서 언급한 문학 강연 자리에서 대여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에 주목할 수 있다.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 내부에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미지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즉물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선적인 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관념을 일체 배제하고서 사물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에는 흔히 관념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관념을 떠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인데, 이것은 후설이라고 하는 철학자가 에포케라고 하는 말을 써서 표현한 것입니다. 에포케는 판단을 괄호 안에 넣는다는 것인데, 판단을 중지(보류)한다는 말입니다. 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판단이니까,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관념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판단으로 가기 이전의 상태를 본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회의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것이 제 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를 서술적으로 쓴다는 것은 순수하게 쓴다는 것이고, 배후에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관념”이라는 “판단”을 “중지” 또는 “보류”함으로써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대여의 논리이다. 또한 그런 방식으로 사물을 봄으로써 얻어진 것이 이른바 “서술적인 이미지”라는 것이 그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여의 논리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로, 우리는 우선 후설이 말한 “경험적 자아”라든가 “순수 자아”와 같은 개념에 주목할 수 있다. 후설은 판단이나 선입관으로 인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자아를 “경험적 자아”(das empirische Ich)―또는 “개인적 자아”(das persönliche Ich)―로 명명하고, 이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자아를 “순수 자아”(das reinen Ich)라고 부른 바 있다. 이 같은 용어에 기대는 경우 대여가 추구했던 것은 “경험적 자아” 또는 “개인적 자아”를 뛰어넘어 “순수 자아”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순수 자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한가이다. 후설은 “순수 자아”와 관련하여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때 체험되는 자아는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거나 또는 독자적 탐구 대상이 될 성질의 그 무엇도 아니다. “관련 양상”이라든가 “행동 양식”이라는 측면을 떠나서는, 그 어떤 본질적 요소도 완벽하게 결여하고 있으며, 그 어떤 설명 가능한 내용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아울러 자체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즉 순수 자아라는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만일 “순수 자아”란 “그 어떤 본질적 요소도 완벽하게 결여하고 있”는 동시에 “그 어떤 설명 가능한 내용도 갖추고 있지 않”고, 따라서 “독자적 탐구 대상이 될 성질의 그 무엇도 아니”라면, 심지어 언어조차 “순수 자아”의 영역에서 부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은 결코 상정될 수 없는데, 위에 인용한 후설의 언명이 하나의 반증 자료가 될 수 있듯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순수 직관에 도달해 있는가에 대해 알거나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언어는 그 자체로서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필요 불가결의 조건이기 때문에 일종의 역설을 피할 수 없다. 즉, 언어조차 부정되어야만 하는 순수 직관의 상황에서도 언어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 바로 이 같은 모순으로 인해 “순수 자아”란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비현실적 개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꿔 말해, 이론적인 사색의 자리에서가 아니라면 누구도 순수 자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순수 자아”에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순수 자아”의 경지에 이르려는 의지조차도 극복되어야만 한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완벽하게 비워야 한다면, 마음을 비우겠다는 마음조차 마음에서 비워야 한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겠다는 마음조차 마음에서 비우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비우겠다는 마음조차 마음에서 비운 경지에 이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바로 그 사람일 수 없다. 그는 이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의지에서조차 떠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대여가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좌절이 대여를 “주문 비슷한 시”로, 이어서 “음절 단위의 시”로, 결국에는 다시 “새로운 의미의 시”로 이끌어간 것이리라. 거듭 말하지만, 대여의 방법론적 고뇌와 탐구는 우리 시단에서 흔치 않은 것으로,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만큼 진실로 값진 것이다. 하지만 대여의 방법론적 고뇌와 탐구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대상을 위해 이름을 짓고 또 그 이름으로 대상을 불러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대상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 의미란 결국 모든 시인과 모든 독자가 피할 수 없는 것, 운명적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 일테면 운명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의미라는 사실―그것은 시인에게든 독자에게든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다. 아니,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저주인 동시에 저주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이다. (끝)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택사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대 인문대 영문학과 교수롤 재직 중이다. 평론집으로는 {미오에서 길찾기},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문학수쳡,2004) 등이 있다.
■□□ 시우주 : 특강/ 시낭송/ 암송시/ 음악 /시극 (가나다순)
2004년
제 1회: 이재무/ 고영섭 구순희 김영탁 박경림 이명훈 이영식 이재무 정병근/ 이대성(클라리넷) 이판사판(동국대 불교대 풍물패)
제 2회: 황훈성/ 고영섭 고운기 구순희 김영교 김영탁 김지혜 이명훈 이영식 채상우/
장미현(이화여대 대학원, 해금)
제 3회: 이도흠/ 고영섭 김영교 나호열 이명훈 이원 장석남 채상우 함성호
제 4회: 김탁환/ 고영섭 고현정 김탁환 나호열 여영현 이지현 차창룡 채상우
제 5회: 나호열/ 고영섭 김성오 김영교 김행숙 나호열 노명순 윤정구 이나명 이만식 조정인
진영대 최영규 채상우 한이나
제 6회: 윤재웅/ 고영 고영섭 김성호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문경 여영현 이나명
제 7회: 이만식/ 강상윤 고영섭 김성호 나금숙 나호열 문혜진 박정대 여영현 이만식 정복여
제 8회: 채상우/ 고영 고영섭 김경성 김민자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채상우 최윤경 하훈
제 9회: 고인환/ 강상윤 고영 고영섭 나금숙 나호열 배용제 안영희 여영현 이만식 정복선 황인숙
제10회: 정끝별/ 강상윤 고영섭 김상미 나금숙 나호열 안영희 이홍섭 정끝별 정복선
제11회: 김수이/ 강상윤 고영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박형준 안영희 이정록 정복선
제12회: 이승하/ 강상윤 고영섭 김기택 김명리 김영교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안영희 이승하
정복선/ 나유성
2005년
제13회: 박주택/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박주택 박찬일 안영희 이진명 정복선/
김순영
제14회: 엄경희/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류승도 박주택 안영희 윤의섭 이병률
정복선/ 김순영/ 노명순
제15회: 한명희/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김충규 나금숙 나호열 류승도 안영희 정복선
한명희/ 배홍배
제16회: 박철화/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신채린 안영희 장대송 정공량 정복선
한명희
제17회: 맹문재/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맹문재 안영희 이기와 이윤학
윤관영 정공량 정복선
제18회: 남진우/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나호열 남진우 류승도 박라연 안영희 오태환
정공량 정복선/ 김순영
제19회: 송용구/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박남희 송용구 신채린 안영희 이민하
정공량 정복선
제20회: 강상윤/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제21회: 이경교/ 강상윤 고영섭 권현수 김영탁 길상호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문창길 신채린
안영희 이경교 정복선 조용미 한명희/ 김순영
제22회: 허헤정/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신채린 정복선 허헤정 황병승
제23회: 권혁웅/ 강상윤 고영섭 권혁웅 김영교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손현숙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함민복
제24회: 김종태/ 강상윤 고영민 고영섭 김소연 김인구 김종태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하 훈 한명희 홍서혜
제25회: 김춘식/ 고영섭 길상호 김경성 김영교 김인구 김춘식 류승도 문태준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정용화 진동영 최윤경 한명희 한미영 허열
제26회: 심재휘/ 고영섭 권혁수 길상호 김경성 김인구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손택수 신채린
심재휘 안영희 안차애 정복선 정용화 진동영 최윤경 한명희 허열
제27회: 장경렬/ 고두현 고영섭 권현수 김경성 김인구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신채린 안영희
이윤설 이정자 정복선 진동영 최윤경 하훈
회원 명단 (가나다순):
강상윤, 고영, 고영섭, 길상호, 김경성, 김민자, 김영교, 나금숙, 나호열, 류승도, 민미옥, 신채린, 안영희, 여영현, 이만식, 정공량, 정복선, 최윤경, 채상우, 표규현, 하훈, 한명희, 홍정희
(년회비: 회장 24만원, 부회장 20만원, 명예회원 15만원, 운영회원(이사와 감사 및 정회원) 12만원, 일반회원 6만원)
*** 작품은 매월 15~20일까지 ingu8151@hanmail.net/ koyoungseop@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 시우주 시낭송회 연혁
연혁
2004년 1월 10일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후 4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들인 시인들이 '해당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뜻을 모아 시낭송회를 만들다(1월 2일). 뒤이어 서울 도봉구 방학 3동에 있는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교육장에서 이재무 시인의 특강 및 구순희 시인 등 10인의 시낭송회를 주축으로 '앎의 휴식', '삶의 충전', '시의 제전'인 시회를 개회하다. (고영섭, 구순희, 김영탁, 이명훈, 이영식 시인 발의)
2004년 2월 14일:
김영교, 채상우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3월 13일:
김경성, 김민자, 나호열, 최윤경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5월 8일:
이만식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6월 12일
김인구, 나금숙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8월 7일:
북한산 아카데미 하우스 위에 있는 구천폭포 물가에서 '숲속의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2004년 9월 4일 (매월 첫재주 토요일 오후 4시):
도봉구 창 1동에 있는 도봉구민회관 도봉문화원의 문화강좌실 II호로 옮기다. 안영희, 정복선 시인이 동참하다.
2005년 2월 5일:
류승도 시인이 동참하다.
2005년 3월 5일:
길상호, 한명희, 신채린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8월 7일:
도봉산 구봉사 아래 계곡에서 '숲속의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2006년 1월 7일;
중구 남산 충무로영상문화센터 신관으로 옮겨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진동영, 정용화, 허열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2월 4일;
중구 장충동 서울 불광산사 3층 회의실로 옮겨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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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주
2006년 3월호
제3권 3호. 통권 제27호
2006년 3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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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장
부회장
이 사 고영섭(총무), 김인구(편집), 신채린(홍보)
류승도(정보), (재정) (섭외)
정복선(국제), 안영희(운영)
감 사
카 페 http://daum.cafe.net/siwoojoo(최윤경,
김경성)
* 회비 및 후원회비를 받습니다:
입금계좌: 제일은행 114-20-516448 (시우주 시낭송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