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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소녀지심(小女之心)
- 소녀가 사랑을 알게 되면 여자가 된다
을가 형제나 진씨 조손이 본 아운의 일행은 참으로 이상한 무리였다.
우선 그들의 중심축이 나이 많은 묘운이란 사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남매인 듯한 남녀를 상전으로 모시는 것 같은 눈치다.
그렇다고 남매가 묘운을 함부로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굳이 말한다면 서로 공경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 소녀는 여소정이란 아가씨의 시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도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엔 아운이 있었다.
그는 의연하고 무심해 보이는데,
두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들은 모두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두 명의 소녀는 동경과 존경 이상의 눈빛으로 아운을 보고 있었으며,
여천악은 아운을 무척 두려워하는 듯 감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여소정이 아운을 보는 시선은 상당히 미묘했다.
두려워하면서도 뭔가 갈구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묘운조차 아운이란 청년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모두 제각각의 눈으로 아운을 보는 데 공통적인 것은 그를 향한 경외감
비슷한 것이었다.
‘누굴까? 결코 평범해 보이진 않는데.’
아운은 음식을 천천히 먹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자세히 본 을목진은 그가 음식을 먹으면서 무엇인가를
명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을 알기에 그의 동료들은 아운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묘운의 무공은 상당한 경지에 달해 있는 듯 보였고,
여천악과 여소정이라고 말한 둘의 무공도 젊은 측에서 보자면 상당한
경지에 달해 있는 것 같았다.
보기에 진성현과 비슷한 경지였다.
소림 속가 제자 중 최고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진성현의 무공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 하는 아운의 무공 경지는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전혀 무공을 배우지 않은 사람처럼 그의 몸에서 아무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였다.
자신이 알아 볼 수 없을 만큼의 고수이거나 정말 무공이 없거나.
그러나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을만한 무공을 지닌
자는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십영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신진이지만, 이미 그 경지가 허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북매남란,
흑룡과 기린(麒麟), 그리고 혈궁의 소궁주인 혈군이라면 가능 할지도
모른다.
아운이 그들 중 한 명 일리는 없었다.
결국 무공이 없다는 말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척 보기에도 명문의 자제
같은 여씨 남매나 무공의 경지가 상당해 보이는 묘운이란 자가 저렇게
어려워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을목진은 궁금했지만, 초면에 먼저 물어 보기도 쑥스런 일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은 을목진만이 아니라 진경화 조손이나 동생인 을국진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을목진은 술 한 병을 들어 올리며 묘운을 보았다.
“이리 오십시오.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시죠. 보아하니 나와 같은 강호의
동도 같은데, 서로 서먹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염치불고하고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정운은 그들에게 다가와 주는 술병을 들고 한 모급 들이켰다.
몇 달 쌓인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정운이 다가오자 마침 기회를 노리고 있던 진성현이 술과 몇 가지의 음식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여씨 남매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는 모른척한다.
불과 이장 정도 거리에 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서며,
진성현이 웃음을 지었다.
순해 보이는 인상이라 누구든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진성현입니다. 나이든 분들과 있으니 내가 겉늙는 느낌입니다. 싫지
않으시면 음식과 곡차라도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싫을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묵천악이 인사를 하였고, 묵소정 역시 심심하고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 참이라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으로 예쁜 웃음이었다.
진성현은 씩익 웃고는 두 명의 소녀를 보았다.
“두 분도 이리 오십시오.”
소설과 소산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가 보아라! 이젠 자신 있게 행동해도 된다.]
막 거절하려던 소설과 소산의 귓전으로 아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운의 말은 그녀들에게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용기가 생긴 소설이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깨끗하고 청초한 웃음이었다.
마치 꽃봉오리가 막 개화 할 때의 느낌이 이럴까?
묵천악과 진성현은 그녀의 하얀 치아 사이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달빛이
투명하게 부서지는 환상을 보았다.
‘실로 아름다운 소녀다. 아직 어리지만, 앞으로 삼 년 안에 그 미모가 빛을
발하면, 여 소저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다.’
진성현은 감탄하며 그렇게 생각하였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묵천악은 잠시 넋을 잃었다가 가슴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기랄, 내 거였는데. 아니지, 아직은 기회가 있다.’
보통 놓친 고기가 더 아까운 법이다.
묵천악에게 있어서 소설은 손에 들었다가 놓친 대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놓친 고기가 커 보이고 아까웠다.
그럴수록 묵천악은 아운에 대한 원성이 높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에 비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묵소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소설은 그저 시녀였었다.
한 번도 그녀에게 큰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시녀 그 이하도 아니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운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도 그냥 아운의 성격 탓이고,
주먹밥의 인연이 얽힌데다가, 어린 소녀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였다고
생각했다.
이미 소설에게 주먹밥을 주게 된 동기에 대해서 들었다.
그때의 고마움이 크게 작용해서 소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소설의 존재감을 인식하지 않았었다.
묵소정에게는 꿈이 있었다.
무림 최고의 협녀가 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으로 가는 지름길로 아운이라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부족한 무공은 아운에게 배우면 된다.
둘이서 다정하게 천하를 독보하며,
무림 최고의 미녀들이라는 삼봉을 누른다.
강호의 수많은 청년 고수들의 선망의 대상.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이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했다.
자신의 미모라면 언제고 아운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은 자신을 부정하지만, 남자란 누구나 다 같다고 생각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인 그녀는, 그래서 자신의 동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막은 거칠고 여자가 드문 곳이었다.
그 곳에서 며칠만 지내고 나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치마만 두르면
절색으로 보인다는 곳이었다.
하물며 자신처럼 보기 드문 미인이라면.
아무리 아운이라고 해도 성인 남자라면 그 오랜 여정 동안 여자를 그리워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기회라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일행 중에 여자가 자신 혼자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설과 소산은 그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아운의 곁에 있어도 그걸 인식하지 않았다.
감히 자신과 소설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도 우스운 일이었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월등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랬다.
한데 그녀는 지금 소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 어린 계집이 언제…’
한 번도 시녀들에게 욕을 한 적이 없던 묵소정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
치밀어 오르는 질투를 느끼며 상소리를 한다.
비록 속으로 한 욕이지만.
묵소정은 처음으로 소설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감사합니다.”
소설의 나긋한 목소리가 묵소정의 비위를 건드렸다.
‘감히 천한 계집이…’
묵소정의 눈에 불같은 감정이 어렸다가 사라진다.
“하하, 오호사해가 한 하늘 아래 있으니, 그 안의 사람은 다 이웃이요,
친구라 했습니다. 거기 계신 분도 이리 오십시오.”
진성현의 말에 넋을 읽고 소설을 보던 묵천악이 찔끔했다.
아운은 저 홀로 떨어져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사심 없이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운은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약 오 장 정도 거리에 있는 한 명의 짐꾼을
보았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고 초라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여러 일꾼들과 떨어진 곳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많은 감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아운은 잠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작은 키, 굽은 등.
처음에 노인이 걸어서 그 자리에 갈 때 보니 다리도 저는 듯 했다.
그렇지만 노인의 몸에 나타난 허허로운 기운이 아운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노인은 아운의 시선을 의식한 듯 돌아서서 아운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운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진성현과 묵소정 남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한동안 아운을 지켜본다.
아운이 다가오자 모두들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소설은 아운이 다가오자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지고 말았다.
그걸 보고 소설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일 것이다.
‘내 계집이었는데.’
묵천악의 눈이 질투로 활활 타올랐다.
‘감히 저 계집이 제 분수를 모르고.’
묵소정은 소설을 분수도 모르는 계집이라고 욕했다.
‘이 아가씨는 아운 공자를 사랑하는구나.’
진성현은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역시 아운 정도의 평범한 남자라면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소산이 소설의 옆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을처럼 붉은 얼굴과 어울린 그녀의 모습은 불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너 오늘 너무 예쁘다.”
소산이 귀에 대고 속삭이자, 소설이 조금 움찔하며 그녀를 보았다.
“여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 갑자기 어른이 된다더라. 그리고 예뻐진다고
그랬다.”
소설이 소산을 보자, 소산이 미소를 머금고 다시 속닥거렸다.
“그냥 들은 이야기야!”
소설은 더욱 얼굴이 붉어지고 소산은 웃는다.
정운과 을목진 일행은 술을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던 을목진은 결국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 아운 공자완 어떤 사이입니까?”
정운은 을목진이 가진 궁금증을 이해했다.
“그는 우리의 보호자입니다.”
그 말에 진경화와 을국진의 표정에 놀란 빛이 어렸다.
아운에 대해서 더 듣고 싶었지만 정운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요즘 강호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말을 돌린다.
이럴 땐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강호의 예절이었다.
“그다지 큰일은 없고, 한 가지 근래에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긴 합니다.”
정운의 눈이 반짝였다.
강호에서 소문이 가장 빠른 곳 중 하나가 표국이었다.
특히 금룡표국이라면 강호의 소식에 정통할 것이다.
“무슨 소문입니까?”
“나도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권왕이란 자의 소문입니다. 하지만 큰
신빙성이 없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문입니다.”
정운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소문입니까? 상당히 궁금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감숙성의 남단에서 이백 명의 고수가 한 사람을 협공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한데 그 자는 단 두 주먹으로 그 이백의 고수를
거의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권왕이라고 부른답니다.”
정운은 권왕이 바로 아운을 지칭하는 말임을 알았다.
아마도 그 당시 살아남은 자들의 입을 통해서 퍼진 소문이리라.
“들리는 말로는 권왕의 주먹은 번개보다 빠르고 강하답니다. 일 권에
꼭 한 명은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일 권에 수십 명이 죽었
다는 말도 있습니다. 좀 허황된 말이라서 믿을 것은 안 됩니다.”
을목소의 말에 을국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 강호의 소문은 언제나 부풀려지게 마련입니다. 내가 보기에 한
이십 명의 무명고수를 이긴 것이 심하게 확대된 말 같습니다.”
을국진의 말에 진경화가 조금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때로는 강호의 소문이 정확할 때가 많은데, 지금처럼 은밀한 소문은
비슷하게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문이야.”
“자자,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묘 무사님 일행은 어디로 가십니까?”
을목소의 물음에 묘운은 잠시 고만을 하다가 말했다.
“돈황까지 갑니다.”
“그럼 잘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도 그리로 가는 중이니 함께 가시면
어떻습니까?”
진경화의 제의에 정운은 난감했다.
그의 솔직한 심정으로라면 함께 가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묻혀서 숨어가기도 편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막을 처음 여행하는지라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함께 간다면 득은 있어도 실은 없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들에게 큰 피해가 갈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금룡표국의 을목진은 소림의 속가 장문인이다. 아무리 무림맹의 간이
커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운공자의 부담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정운이 국주에겐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을 때였다.
아운이 일어서서 정운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정운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피해보아야 사막에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누굴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습니까?”
“기운으로 보아 삼귀일 것 같습니다.”
정운은 아운을 보았다.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막을 지나가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곳이 십벽진이었다.
특히 사라신교로 갈려면 그랬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 당연했고,
그로 보아 자신의 짐작대로 맹주가 관련이 있음이 확실했다.
“조심하십시오.”
아운은 돌아섰다.
모두 아운을 바라볼 때, 아운의 신형이 바람처럼 언덕위로 쏘아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을목진과 을국진, 그리고 진경화 조손은 물론이고,
표두들과 표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 눈이 썩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을목진이 탄식을 하며 정운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많은 의문이 담겨 있었다.
정운은 갑자기 머리가 쑤셔온다.
방문 감사합니다..
오늘도 댓글 안 달면 운영진만 보게 만들계획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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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7월에도 더욱더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늘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핮니다
추천합니다
아운의 무공이 이제는 완성단계에 근접한것같네요 누가 아운을 부른것인지 다음회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