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예루살렘에 결박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앎에도 그럼에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기어코 올라가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의 제자들과 아가보 선지자, 그리고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일행들까지도 모두 바울을 강하게 만류합니다(12절). 바울 앞을 가로막고 “안 돼요, 위험해요. 분명히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잘 아시잖아요? 올라가면 안 돼요.” 애원도 해보고, ‘성령께서 명확하게 예루살렘에서 당할 결박과 죽음의 위험을 말씀하시는 것은 멈춰 서라는 빨간불 신호가 아니겠느냐’ 하며 눈물로 설득도 해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합니다.
본문 13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3절)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결박과 죽음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바울의 일사각오입니다. 결박과 죽음을 향한 바울의 자발적 걸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합니다. 저는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바울의 투철한 사명감이요 견고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바울 바울 하는 가 봅니다.
그런데 결박과 죽음의 길을 걷는 그 사명과 각오가 기독교 안에서만 나타나는 유일성은 아닙니다. 불교 고승들에게도, 무슬림 신도들에게도, 독립투사들에게도, 간혹 일반 군인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을 품고 환난과 결박, 때로는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일이 제법 일어난다 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비장하고 숭고한 순교적 발걸음은 분명 존경스럽기 그지없지만, 본문을 그저 바울의 각오와 헌신을 칭송하고 바울처럼 살자고 촉구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안에 감춰진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9장 1-2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9:1-2)
바울(사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결박과 죽음으로 위협하는 자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신이 핍박했던 그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걷고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결박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바울의 모습을 말입니다. 서슬퍼런 몰골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그가 박해했던 그리스도를 위하여 결박과 죽음의 자리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억지의 걸음이 아닙니다. 마지못한 어쩔 수 없는 걸음걸이가 아닙니다. 이전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을 때보다 더 당당하고 사뿐한 발걸음입니다. 도대체 바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도행전 9장 3-4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9:3-4)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결박과 죽음으로 내모느라 여념이 없는 바울의 이름을 주님께서 불러 세우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바울아, 바울아”
그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18:9-10)
고린도에서 사역에 지친 바울을 주님께서 찾아와 다독이시고, 어루만지시며 설득하십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마, 염려 마. 내가 너와 함께 있잖니. 침묵하지 말고 말하렴. 일어나라. 가자. ”
이와 같은 일이 바울의 삶에 계속 반복됩니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하신 이는 주님이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바울을 먼저 찾아오셨고, 주님이 바울의 이름을 불러주셨고, 주님이 바울을 토닥이시고 설득하셨고, 주님이 바울을 이끌고 인도하셨고, 주님이 바울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붙들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
바울의 다음 고백을 기억하십시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15:9-10, 새번역)
결박과 죽음의 길일지라도, 비방을 받는 표적의 길일 지라도 마다치 않고 묵묵히, 그리고 담담히 걸어가고 있는 바울 뒤에서 바울을 밀어주시고, 바울을 붙잡고, 바울을 끌어주시는 그 주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일한 것입니다. 그 은혜가 오늘 내게도, 우리에게도 시작되었음을 신뢰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의 은혜로 오늘의 길을 걸어내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에 부탁하고, 은혜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나의 못남과 약함, 나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오롯이 은혜만 바라고 기대며, 하루하루를 은혜로, 은혜에 붙들려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은혜밖에는 다른 기대가 없습니다.
고수들은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는 법이 없습니다. 긴 안목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며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큰 것과 연결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진정 은혜에 사로잡힌 복음의 고수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 결박과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묵묵히 소명의 길을 걸어가, 마침내 그 길을 은혜의 길로 뒤바꿔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인생들을 위해 그 결박과 죽음의 길 위에 모범적인 발자국을 남겨 놓았으니 진정 고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과 마주앉았습니다. 한쪽에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자리를 잡았고, 맞은편에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 야고보와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양측의 만남은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이방 가운데에서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했고, 사도 야고보와 장로들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싸고 기저에 미묘한 긴장이 도사리고 있음을 저자 누가는 피하지 않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보고를 청취한 후 야고보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21절입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20-21절)
예루살렘교회 교인들 사이에 사도 바울에 관한 괴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바울이 이방 곳곳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오해입니다. 아니, 누군가가 진실을 왜곡하여 퍼뜨린 잘못된 정보입니다. 바울은 모세를 배반하지 않았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할례에 대해서도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가르쳤을 뿐입니다. 이 모든 소문의 시작과 끝을 다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결박과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이 예루살렘 방문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었을까요? 오해와 곡해, 음해를 사도 바울은 어떻게 통과할 생각이었을까요?
첫째, 기도입니다. 실은 바울은 이 방문을 앞두고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를 때 로마에 있는 교회에 쓴 편지 후반부에 예루살렘 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기도부탁을 합니다.
로마서 15장 30-31下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도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롬 15:30-31下절)
결박과 죽음의 위협을 예측한 사도 바울은 적대자들로부터 건져달라고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얼마나 더 기도했겠습니까? 이 일에 얼마나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절실히 필요했겠습니까? 기도는 모든 일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최상의 준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의 고수는 늘 기도로 준비합니다.
둘째는 나눔입니다. 기도로 예루살렘 방문을 준비한 사도 바울이 또 한 가지 준비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연보를 들고 왔습니다. 로마서 15장 25-27절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복음의 빚, 영적인 빚을 졌기 때문에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기쁘게 연보한 것을 모아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에 잘 보이기 위한 공물이 아닙니다. 거래와 타협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은혜의 원리를 따라 자발적으로 실천한 선행입니다. 믿음의 고수들은 늘 베풀고 나누는 것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나눔을 실천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자유도, 주머니도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소문을 잠재우고 바울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바울에게 제안을 하나 합니다. 즉, 나실인 서원을 한 네 사람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가난한 그들을 위해 비용을 대신 낼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함께 결례를 행하고, 자신의 비용을 들여 율법을 준수하는 순종의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티지 않고, 믿음의 고수답게 기꺼이 내어주고 또 내어줍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바울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도 종종 오해와 헛소문의 당사자가 되곤 합니다. 나의 선의가 곡해되어 악의적으로 확대재생산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나는 나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 타인을 선동하고 편을 나누는 사람의 이미지를 입어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처지에 놓이면 억울하고 갑갑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살아가는 믿음의 고수들은 오해 때문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괴소문과 헛소문에 당황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일치와 연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의 자유를 포기하고 희생도 할 수 있습니다. 모순의 표적이 되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의 고수들이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고 썼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의 악을 크신 선으로 응대하신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바울에게나 우리에게나 동일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그 사랑 안에 있음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면 설령 비방을 받는 표적의 자리에 놓일지라도 도리어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정결예식을 치른 바울은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인해 또 다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27-29절입니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여기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그 중심도시인 에베소지방을 말합니다. 에베소라고 하면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아서 부를 얻다가 바울이 우상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침으로 그동안 해오던 부를 축적하던 길이 막히게 된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큰 소요사태가 났던 곳입니다. 그 곳에서 바울은 죽음의 위기까지 갔다가 살아나온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던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곧바로 알아보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3년이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였으므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전 바깥뜰에 있던 바울을 본 에베소 유대인들은 그 곳에 있던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충동하다’라는 원어의 뜻은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소동을 표현할 때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비방하며 자극적인 말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는 가르침을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죄인인 이방인을 거룩한 성소에 들여와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이 오해이고 왜곡이었다는 것을 정결예식을 행함으로 보였고, 이방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 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행했던 것과 똑같이 다시 그를 붙잡고 폭행을 가하며 죽이고자 했고, 무리들은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소동을 벌였던지 천부장이 내막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바울을 그들로부터 떼어내서 성내로 데리고 들어가게 됩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바울은 그 와중에도 천부장에게 말할 기회를 얻게 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위기 때마다 바울을 보호하시고 복음을 전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39절-40절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하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수많은 모함과 비방과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었습니다. 이런 위기와 어려움 때문에 바울이 복음 전파를 포기하였다면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도 복음전도를 하려고 할 때에 어려움이나 민망함을 겪습니다. 듣기 싫어하며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복음전도를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모르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의 소식을 들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 그래서 복음의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이 ‘나’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삶으로 전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삶으로 복음전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은 복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복음전도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로 위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전도에 대한 부담이나 갈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우리의 구원받은 영혼과 변화되는 삶으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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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23절부터 시작된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에 관한 행적 중 오늘 본문까지 가장 많은 내용을 할애한 부분이 에베소 사역입니다. 사도 바울이 2,3차 전도에서 유럽의 발칸반도, 오늘날 그리스 땅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목회한 곳이 고린도였다면, 오늘날 터키 서부지역을 뜻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전도와 목회를 한 곳은 에베소였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상업 중심지였으며 에베소의 원형 대극장은 2만 5천 명을 수용할 정도였으니 도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대도시를 복음 확장의 요충지로 삼았기에 바울을 에베소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목회를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회당에서 3개월,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전하며 목회할 때 겸손과 눈물 없이 할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3년을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던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2차 전도 지역이었던 유럽의 발칸반도로 넘어갔습니다. 거기서 교인들을 보살피며 전도사역을 마치고 되돌아갈 때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지 않고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사적 유익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럽의 발칸반도에서 아시아의 드로아에 도착한 후 지체없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에베소에서 약 55km 떨어진 ‘밀레도’로 이동하였습니다. 비록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지 않았지만, 에베소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마지막 대면 권면이자 고별설교를 위해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고별설교를 마친 후, 자신을 보면서 크게 울며 배웅하는 에베소 장로들을 뒤로 한 채 예루살렘을 최종 목적지로 하여 이동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1-6절)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사도 바울의 전도팀은 에베소 장로들을 작별하고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약 70km 떨어진 ‘고스’, 그리고 ‘로도’를 거쳐 ‘로도’에서 약 85km 떨어진 ‘바다라’로 갔습니다. 이렇게 여러 개의 항구를 거쳐 간 이유는 ‘멜레도’에서 지중해 동쪽 해안 지역인 ‘베니게’나 ‘이스라엘’로 장거리 운항하는 무정박 선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라’는 당시 해양 교역으로 유명한 곳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선박이 경유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원했던 해로(海路)는 아시아 남부 연안 항구, 즉 오늘날 터키 남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선박이나 ‘구브로’, 즉 오늘날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 섬의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가는 경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해당하는 선박은 경유지 정박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큰 상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배가 ‘두로’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던 것입니다. ‘두로’는 ‘베니게’의 주요 항구 도시였고 갈릴리 북쪽 접경지역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도 바울 전도팀이 ‘두로’에서 일주일 동안 머문 이유는 배로 이동하는데 다음 행선지인 ‘돌레마이’로 가는 배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제자들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때 주님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도 바울에 닥칠 결박과 환난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7-12절)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두로’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지중해 항구 도시 ‘돌레마이’가 있었습니다. ‘돌레마이’의 위도(緯度)는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이나 뱃새다의 위도와 비슷했습니다. 여기서도 사도 바울 일행은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다음 경유지로 이동하였습니다.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돌레마이’에서 ‘가이샤랴’까지는 중간에 갈멜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육로로는 약 50~60km 정도 거리였습니다. 가이사랴는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위해 만든 도시였습니다.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Ⅰ)가 여기에 공관을 마련하고 거주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돌레마이’에서 ‘가이샤랴’까지 배를 탔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육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도착하여 초대 교회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빌립 집사는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박해를 피해 가이사랴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였고 빌립의 딸 4명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선지자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빌립의 딸들이 예언의 은사는 있었지만 사도 바울에 대한 예언의 유무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으며, 오히려 선지자 ‘아가보’가 사도 바울을 찾아와 예언을 하였습니다.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아가보 선지자는 두로에서 만났던 제자들처럼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도 바울의 결박과 환난을 알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도 바울의 결박이 있을 것임을 말로만 하지 않고 당할 일을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연한 사도 바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아가보 선지자의 퍼포먼스를 통한 예언을 들은 사람들이 울면서 사도 바울을 막자 바울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상하다’로 번역한 원어는 ‘두들겨 부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이, 울면서 만류하는 사람들로 인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매우 힘든 상황이었지만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과 죽음을 각오하였음을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큰마음 먹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희생적인 섬김을 하려고 할 때 누가 적극적으로 만류를 합니까?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녀, 또는 가까운 사람이지 않습니까? 어려운 봉사, 적지 않은 구제나 헌금, 그리고 금식 기도를 할 때 옆에서 ‘너무 힘들게 하지 마’, ‘그렇게 많이 할 필요 없어’, ‘이제 먹어도 돼’ 또는 ‘조금씩 먹으면서 해도 돼’ 이런 식으로 결연함을 누그러뜨리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만류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심히 상하였으니 ‘주님께서 이제 나를 막으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돌이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을 에베소 장로들에게 했던 고별설교에 이어 재차 천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명자는 사람의 정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명심하고 끝까지 수행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로와 가이사랴에서만 아니라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 고백하였듯이 성령님이 결박과 환난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유럽의 발칸반도에 있는 고린도를 포함한 대도시들을 복음 확장의 요충지로 삼았지만,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세계의 중심인 로마가 복음화된다면 복음의 확장이 더 잘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었습니다(행23:11참고). 사도행전 19장 21절을 보면, 바울은 3차 전도 기간 에베소 사역 중 로마행에 대한 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로마서가 에베소 3년 사역 이후 발칸반도의 고린도로 넘어갔을 때(행20:3)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가르쳐야 할 급하고 중요한 내용의 말씀을 미리 서신으로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전도 로드맵(road map)을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도 잊지 않았습니다. 14절은 이러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확인한 사람들이 했던 말입니다.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사람은 사도 바울의 결박과 환난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하나님의 계획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 때, 설령 그것이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처럼 명확하다고 할지라도 그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도 철저히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뿐만 아니라 그 이전 성령님이 각 성에서 사도 바울의 결박과 환난을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사도 바울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닥칠 사도 바울의 결박과 환난을 알았으니 그곳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고난의 장소, 결박과 환난으로 사도 바울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의 결박과 환난을 왜 알려주셨겠습니까? 그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합심기도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너희도 사도 바울처럼 어떤 결박과 환난을 만날지라도 사명감을 잃지 말라’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명자를 방해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사명자의 결연함이 무모하게 보일 때 아니라고 권면을 할 수 있겠지만,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생각을 전하되 마무리는 항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이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곧 입성합니다. 과거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했던 바울이, 주님을 만난 이후 자신을 살리시기 위해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선한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나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 죽으신 주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죄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선하심, ‘투브’(히브리어, 선)를 전하는 주님의 도구로 살아가십시다.
예루살렘으로(15-16절)
오늘 본문 1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도착한 곳은 가이사랴 항구였고,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km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거리는 3일은 꼬박 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것은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었고, 관광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13)”라고 답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요한 목적은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에게 구제금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행은 고린도와 마게도냐 각 지역 교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4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그와 함께했던 사람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습니다. 이 7명에 바울까지 합하면 8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에서 합류한 누가도 있었기에 바울 일행은 모두 9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몇 명의 제자도 합류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오래전 전부터 주님의 제자였던 나손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다 합하면 모두 15명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손이 바울 일행에 함께 했던 이유는 바울 일행이 그의 집에서 머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집을 소유하고 있던 나손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해주기 위해서 가이사랴에서부터 따라나선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15명 정도의 사람이 한 집에서 숙식을 한동안 하려면, 그 집이 얼마나 커야 하겠습니까? 나손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그 사람들을 모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큰 집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부자였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그것을 지켜야 하기에 눈치를 보기 쉽습니다.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고 투옥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손은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바울 일행을 섬기려고 가이사랴에서부터 동행했습니다.
구브로 출신의 나손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왜 가이사랴에 가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 바울 일행을 왜 예루살렘의 자기 집에 묵게 해 주려 했는지는 성경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신비한 손을 내밀어 역사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로 가득합니다.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해도, 인생에서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에 지난날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이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야고보를 방문하다(17-26절)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마침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이 방문은 바울이 회심한 후 4번째이자, 그의 생의 마지막이 됩니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모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맞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이 맞아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인지, 이방인 신자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런 몇몇 형제들이 맞아주었습니다. 바울은 사역하면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반대자들을 만났습니다. 돌에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그들을 피하려고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때를 만날 때마다 도와주었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찾았습니다. 바울이 만난 지도자들 가운데 이름이 나와 있는 사람은 야고보뿐이었습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사도행전 15장에서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바울과 야고보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만난 이후로 약 10년 만에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바울은 사역 보고를 하면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바울의 사역 중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물론이고, 병자들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지고 가서 환부에 얹기만 해도 병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또 많은 마술사가 자신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책들을 불살라 버리는 일도 일어났으며, 심지어 창에 걸터앉아서 말씀을 듣던 유두고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를 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모든 일을 자신이 행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도 바울과 비슷한 대답을 합니다. “뭐 제가 한 게 있나요! 하나님께서 하셨죠. 뭐!”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갑니다. “그럼, 나 말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다는 말입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같이 형편없는 사람을 통로로 삼아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전도사역을 들은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이 보인 반응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20a)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의 사역 보고를 듣고서, 바울에게 큰일을 했다고 찬사를 보내거나, 수고 많았다고 덕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이방인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바울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역사하셨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 보고를 들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20b-21)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사도행전 8장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큰 박해로 말미암아 사도들 외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유대와 사마리아 등지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에는 주님을 믿는 유대인이 수만 명 있다고 합니다. 아마 박해 때 흩어졌던 사람들이, 박해가 느슨해지거나 사라지자 돌아오기도 했을 것이고, 또 새로 믿게 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복음과 율법을 함께 지키며 사는 그리스도인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바울에 대한 소문은 세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첫째 소문은 모세를 배반했다는 것이었는데,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무시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바울은 은혜를 통하지 않고 율법을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 ‘율법 자체가 필요 없다’라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다’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소문은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구원의 통로로 생각하고, 할례를 받는 것과 구원을 받은 것을 동일하다고 하니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지, 할례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것이지, 내가 세례를 받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날 때, 그에게 할례를 베푼 일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소문은 유대인들의 관습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공휴일이나 명절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해외에서 삼일절, 광복절을 비롯하여, 추석, 설날 등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해외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의 달력이 아니라, 살고 있는 그 나라의 달력에 따라서 삶의 리듬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소문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에 대한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서 그가 ‘모세의 배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2-23a)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유대인의 관심을 무시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소문을 믿지 않고,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결책을 일러주었습니다.
(23-26)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교인 중에 서원한 사람이 네 명이 있는데, 그들이 서원이 막 끝나게 되었다며, 그들과 함께 결례(purification)를 행하고,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결례는 문자 그대로 ‘정결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너무 오래 떠나 있으면 그 몸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명절을 맞게 되면 그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 역시 성전을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 여느 유대인들처럼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가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네 명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였습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보통 30일 정도를 했는데 그 기간이 끝이 나면 성전으로 와서 머리를 깎으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 예물로는 번제물로 숫양 한 마리, 속죄제물로 암양 한 마리, 화목제물로 수양 한 마리 외에도 무교병과 과자 등(민 6:13-)을 드렸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그 비용을 대신 담당하는 것을 굉장한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을 바울에게 담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모세의 배반자로 여기는 그릇된 오해를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정결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본문의 바울의 모습이 굉장히 치사하게 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무슨 결례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과 타협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바울은 변절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백하기를 “나는 자유롭지만,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는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는 강철과 같았지만,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갈대와 같았다”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고, 그가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받았기에, 자신도 그 하나님의 선대하심의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선대하심의 통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27~37절)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그 이레가 거의 차매'란 표현은 아주 역설적입니다. 이날은 바울이 야고보와 장로들의 권면을 따라 나실인을 서약한 네 명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각종 희생 제물의 비용을 치러주고 그들의 희생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고 경건한 유대인인가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날입니다. 바로 이날이 눈앞에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를 붙들고'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그에게 손을 대다'입니다. 동일한 표현이 예수님께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눅 20:19, 요7:30), 사도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행 5:18,21). 이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그의 사도들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바울도 지금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받고 있음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손을 대며 바울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을 펼칩니다.
첫째, 바울은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근본 요소인 율법과 성전을 대적한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로, 이들의 이러한 주장의 구체적인 증거로, 지금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와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바울이 모든 지역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대적하려 가르치는 것도 부족하여, 한술 더 떠서 심지어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만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이방인들이 결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뜰은 제사장의 뜰 다음으로 성전에 가장 근접한 부분입니다. 더욱이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넘어가는 곳에 분명한 경계의 벽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출입을 엄중하게 금하는 경고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경고문은 헬라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어떤 외국인도 성전과 주변의 둘러싸고 있는 경계의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넘어가다 붙잡히는 자는 누구든지 이로 인해 빚어지는 죽음에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방인이 여인의 뜰로 들어오는 것도 즉시 사형에 처할 심각한 죄가 되는데, 이를 넘어 이스라엘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뜰까지 이방인이 들어왔다고 하면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주장에 심각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이스라엘의 뜰까지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나실인 서약을 한 경건한 유대인 네 명과 함께 온 것이며,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그들을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붙잡은 다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 남자의 뜰에 들어오지도 않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찾으려고 온 힘을 쓰고, 바울을 구타하면서 그가 어디에 있냐고 윽박질렀을 것입니다.
(31-32)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로마 주둔군의 최고 사령관 천부장에게 보고가 즉시 가능했던 것은 로마 주둔군이 성전의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안토니아 요새에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요새는 30m 정도 되는 높은 망대들이 여러 개 있어서 24시간 보초를 서는 로마 군인들이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즉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요새는 계단을 통해 성전 뜰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의 출입이 아주 용이했습니다.
(33-35)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천부장은 바울을 잡아 두 개의 쇠사슬로 결박하도록 했습니다. 아마 군인들은 한 사슬로 바울의 양손을, 다른 사슬로 양발을 묶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를 안토니아 요새 안으로 인도해 갈 목적이었으나 무리들의 폭력으로 인해 군인들이 바울을 들고 갔다는 사실은 바울의 발이 결박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이 결박된 사실은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21:10-11)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그를 없이하자'를 직역하면 '너는 그를 제거하라'입니다. 여기서 '너'는 천부장을 가리킵니다. '제거하다, 없이하다'로 번역한 헬라어 '아이로'는 유대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했던 외침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23: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함으로, 바울이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있음을 역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평생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 되어 그의 이름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이 이제 예수님과 하나 되어 고난받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이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는 '너는 그를 제거하라'고 외칠 때,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위한 고난도 자신의 사명임을 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정결함을 입증하기 위한 자리에서 한순간에 죄인으로 붙잡힌 바울이었으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도망치지도, 혈기로 맞받아치지도 않으며, 의연하게 고난을 받아들이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그 자리에서 결코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 나를 향해 적대적인 사람을 대할 때, 나를 위해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의연하게 악을 선으로 갚을 때, 우리의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37~40절)
(37-39)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과 천부장의 이 짤막한 대화는 계단 맨 꼭대기 영문 입구에서입니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아주 세련되고 예의 바른 헬라어로 "당신께 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제가 합당하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바울이 영내에 들어가기 직전에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말을 건넨 목적은 모여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이를 허락합니다.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바울은 주목하였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 히브리 방언 곧 아람어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정결함을 증명하기 위한 성전에서부터 죄인으로 결박되어 계단 위에 오르기까지, 이 모든 일이 삽시간에 벌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바울을 성전에 가도록 권면한 야고보와 장로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결과였습니다. 바울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바울은 자신을 성전으로 보낸 야고보를 원망해야 합니까? 아니면 야고보의 권면을 받아들인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야 합니까? 혹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헬라인을 찾으며 자신을 죽이려는 백성들을 증오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누구를 원망하지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증오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환난 당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환난을 당할 것이 분명함에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이유는 자신이 당하는 환난과 매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실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의 삶에 펼쳐진 환난과 매임 속에서 원망과 후회로 우리의 인생을 물들인다면, 우리의 인생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고난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더욱 깊이 그리고 바르게 알아가게 되며, 선하신 하나님은 고난을 통로 삼아 우리의 인생에 영원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울의 갑작스런 환난과 매임이었으나, 바울은 천부장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 히브리어로 수많은 유대인에게 자신을 변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복음 증거를 위해 허락하신 놀라운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자리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