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인으로 환생한 시인, 석민재 시인과의 인터뷰
어제 뜬 걸 잊어버리고 다시 뜨는 태양처럼 엄마는 언니 낳은 걸 잊어버리고 나를 또 낳았다
시인의 시「내 이름에 침을 뱉었다」中에서
2016년 봄으로 기억한다. 나는 오랫동안 재직했던 일터를 명예퇴직하고 시 밴드 노마드로 발길 닿는 대로 시향을 유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구꽃이 만개한 날이었던가. 튤립이 활짝 피어난 날이었던가. 삼박한 순간은 그렇게 온다. 어느 시 밴드 시 감상 코너에 소개된 그의 시를 처음 접했다. 그 당시의 그는 내겐 다른 나라의 사람, 다소 과장하여 말하자면 가 닿을 수 없는, 천상계의 사람인 듯 신선하고 감미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비의 기분
비는 왼손잡이입니다
왼손잡이 자살하는 법, 매뉴얼을 보면서
방아쇠는 왼쪽 엄지발가락에 걸고
탕, 탕, 탕, 눈 대신 비만 오는데
비 맞은 산타클로스는 어디로 갔을까
비는 흰색입니다
저기 젖은 흰색봉투는 버려진 꿈이거나
총 맞은 쓰레기봉투거나
타지 않은 쓰레기로 하얗게 분리된 내가
푹푹 썩어가는 중이거나
비는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한 번은 모자라고
두 번은 남고
『시와 사상』(2015 하반기 신인상 당선작)
비가 “왼손잡이” 라니! 비가 “흰색” 이라니! “비는 비틀거리지 않” 는다니!
• 반갑습니다.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단작인「비의 기분」은 제겐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모든 시인은 왼손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왼손잡이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며,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태생적인 찬란한 슬픔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를 시인의 자화상 같은 시라고 읽었습니다. 이 시를 그런 의미로 읽어도 될까요?
• 대학 구내식당에 앉아 친구들의 손과 얼굴을 그렸던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나요. 자화상은 늘 실패했고요. 초상화는 닮았거나 잘 그렸다는 말을 들었어요. 왼손잡이, 왼발잡이여서 씨름 할 때마다 졌어요. 힘은 아주 센데, 왼손잡이 상대가 없어 샅바를 메거나 잡거나 제 방향과는 다르니까 힘을 낼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나의 시는, 내가 읽는 시는 왼손잡이, 왼발잡이가 많아 저랑 팽팽하게 겨루다 둘 다 지칠 때도 있고요. 한 방에 제가 엎어지고 자빠질 때가 수두룩해요. 그래서 그 어느 스포츠보다 음악 예술보다 시가 좋아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샅바를, 내가 샅바를 놓치지 않으면 재미있으니까요. 비가 왔어요. 나의 일기에는 비가 자주와요. “시 창작 교실에 괴물 하나 있는데, 잠도 안자고 시만 써.” “촌년인데 보통내기가 아니야.” 사람들이 나를, 나의 시를 “생경하다” 고 자주 말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이상하고 슬픈 시’ 를 자꾸 썼어요. 왼손으로 쓴 시처럼 불편하고 삐딱하게.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밤마다 만났어요. 참치 캔을 따듯 쩌-억하고 뚜껑을 열면 이 슬픔의 덩어리가 자폐처럼 앉아있었고요. 나는 다시 오, 슬픈 덩어리들을 만지고 안고 핥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자화상이 슬플까요? 초상화가 슬플까요?’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매일.
빅풋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 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 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빅풋」을 빠트리고서는 시인의 시를 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 시에 관해선 이미 여러 평론가들의 평론이 존재합니다만, 시의 정황상 적지 않은 기간,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 는 듯한 아빠와 “죽을까 말까 죽어 줄까 말까 / 아빠를 놀리고 있” 는 듯한 엄마를 지켜보았을 시인의 절절하고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아픈 기억이겠지만, 이 시의 탄생 비화秘話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 말기암환자인 어머니와 간병하는 아버지의 길고 긴 투병기를 산문시로 썼다, 지웠다 하면서 11행만 남긴 시에요. 11년간 암환자로 살면서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엄마의 의지에 따라 가족들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지요. 아파트를 버리고 텃밭이 있는 시골집을 구하고, 아침부터 아버지는 방울토마토며 각종 야채를 따서 엄마의 식탁을 준비했어요. 긴 병에 효자 효녀 없다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어머니를 위해 ‘빅풋’이 되었어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권력의 의미로 제 시 ‘빅풋’이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 가부장께서는 어머니의 발을 날마다 씻고 닦으며 제발 오래 살자고 두 손을 간절히 모았어요.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는 남아 엄마의 방 안에 마치 제단처럼 보이는 테이블을 놓으시고 첫물 과일, 첫물 고로쇠 수액, 첫물 녹차를 먼저 아내에게 올리고 계세요. 오래 오래, 무섭고 두려운 형편을 놀이처럼 서로 위로하며 살다 먼저 간 아내를 위하여 오늘은 아마 빗소리 들려주려 창을 활짝 열고 계실 거 같고요.
• 신춘을 대비하여 시작詩作하고 있는 예비시인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쓰지 않았던 것처럼 신춘문예를 준비하거나 등단을 위해 투고하고 낙방한 경험이 제겐 없어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읽고 썼으나 다만 ‘울 데가 없어’, ‘갈 데가 없어’ 시에 있었던 순간들만 있었어요. “제가 시인이 되도 돼요?” “제가 시를 써도 돼요?” “제 시가 시가 맞나요?” 라는 질문을 하며 어느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어요.
총각으로 죽은 친구의 영혼결혼식에 참석하러 지리산 산청, ‛내대’ 라는 곳에 갔어요. 교회에 다녔던 제겐 발걸음조차 정말 무섭고 무거웠던 날이었는데 끝내 굿 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차 안에만 있었던 날이었어요. 들려오는 징소리에도 소름 돋는데 무당이 정중히 내게 와 반절을 하고 “마을을 조금 더 벗어나 있어 달라.”고 했어요. “굿하는데 방해가 된다.” 며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었지만 그때 나는 마을입석이 있는 곳까지 무작정 걸어갔어요.
나는 말을 잘 들어요. 시의 말만 잘 들어요. 엄마의 기억엔 끝내 말 안 듣는 딸이었지만 시 앞에서는 정말 공손하고 겸손해져요. ‘비로소 사람이 되었지요. 시를 읽고 쓰면서’, 라고 나는 말해줘요. 외가는 무당이 줄줄이 나는 집안이고요, 친가는 좌파로 연좌제의 붉은 호적이 주홍글씨처럼 박혔던 집안이에요. 제가 시를 안 쓰고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하고요.
신춘문예 당선을 바라며 퇴고를 했거나 원고투고를 하지 않았어요. 지방에 있다 보니 원고청탁에 있어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합평회를 통해 장원으로 뽑힌 시 3편을 들고 있다가 세계일보신춘문예 마감 전날 보냈어요. 마치, ‘세상의 가장 큰 잡지’에 ‘시를 발표하는 마음’으로요. 신춘문예에 관심이 없는 나는 아주 옛날 1991년(예비고 시절)에 산 신춘문예당선작품 모음집이 전부고요. 한 번에 투고했다가 한 번에 당선된 선수라, 한 방에 추락할지도 몰라요. 히히. 그래서 후배들, 혹은 신춘을 준비하는 분들께 딱히 피터지게 해드릴 무엇이 없어 부끄러워요. 다만, 절실한 사람이 반드시 좋은 시를 쓴다는 말은 꼭 놓고 갈게요.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꼭. 안 쓰면 미칠 거 같은 사람은 꼭.
《대표시 모음》
유야무야(有耶無耶)
사랑하는 남자와 살기 위해 자기를 싫어하는 여자와 사는 거래 두 가지를 한 방에 하는 거래
뭐래, 개처럼 갑자기 뒷다리 하나를 들고 세 발로 서서 똥을 그럼, 똥을 밟고 사는 개 인생이 놀기에 딱이지 친애하는 네 처지는 눈물이네 날도 추운데 꼭 0까지 셀 거야 우유가 다 떨어졌는데 아내는 통화 중이에요 원한 산 적도 없는데 쪽팔리게 여럿이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노동자는 아무도 언급을 안 하네 오늘은 잉어라네 용감하다 사과야 쌍안경으로 보래 한창 예쁠 때를 다 먹었어 음악도 하고 입도 무겁지 등도 아프고 땀도 나고 야, 야 정물(靜物)을 먹으면 어쩌니 아버지는 팔팔하시고 너랑은 상관없고 유사시인데 일 분에 한 명씩 우선 말이야 잠시만 하느님한테 물어볼 게 있어 개는 무니까 안 되고
귀신이라니까 아니야 신이 맞아 접촉이 문제야 춘몽춘몽춘몽 원래 센 사람들은 안 웃어 김정일도 히틀러도 계속 밀고 나가면 봄이야 봄 그래 봤자 장미야 내일이 무슨 요일이지 엄마가 되어 달라는 무섭도록 멋진 부탁 울기보다는 물기를 박살 난 머리통을 찾으러 가는 사람과 머리통을 박살 낸 사람이 이 좋은 날에 평화평화평화 야쿠르트 아줌마도 지나가는데 여기는 군대가 아니야 인과 연을 끊고 살자고 말하면 된장라멘과 유부우동 볶음밥과 탄산이 당겨요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지만 동백꽃은 피었고요 빨간 발톱 긍지 있게 친하게 굴게요 다시 꿰매 줘요 세 겹으로 첫인상이 젤로 중요한데 어쨌든 아무래도 열아홉 살이니까 출세를 앞둔 두 번째 피해자니까 이국적이시니까 입부터 다물고
발아
따뜻한 봄날에 길을 걸었다
차 한 대가
차 문을 미리 열어 둔 채로 서면서
타, 라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호주머니에 총이 있다고 칩시다,
나랑 같이 걸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다
손짓으로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내며
차를 보내고
계속 걸었다
나는 자주
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얼마일까’
대개 ‘언제일까’
가끔 ‘어디일까’를 생각했었다
마카로니웨스턴
마트에서 달걀을 사고 우유를 사고 소시지를 사고 복어를 샀지만 내가 사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 삼팔 구경 리볼버,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식구들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꼭 해 보고 싶었어요 러시안 룰렛, 막내야 너부터 시작해! 우리 중 살아남은 사람이 내일 아침 하기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복어 배 속에서 난자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자꾸 닌자 닌자 닌자라는 말이 튀어나올까요 난자가 닌자라니, 정자를 만나지 못한 낭인(浪人)이라니, 총을 찬 복어라니, 총알 냄새와 복어 알 냄새는 비슷한가요?
케이블 TV 심야 영화 시간, 저렇게 발광하는 성기는 처음 봐요 셋 세기도 전에 성기가 몸을 먼저 버려요 여자가 짐승 짐승 하고 부를 때마다 정말 짐승 짐승이 나타나요 나는 오늘 밤 어떤 짐승과 할까요?
의사는 나더러 역류성 식도염이래요 그때 떠내려간 하얀 운동화 한 짝이 식도 어디쯤에 걸렸데요 앨범을 들출 때마다 가슴이 쓰리고 신물이 받쳐요 왜 하얀 것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까요 제대로 숨도 내쉬지 못하는 복어처럼 제대로 숨도 들이쉬지 못하는 총구처럼
• 공식 질문입니다. 시인님에게 시란 무엇인가요?
• 시간도 공간도 잊고 나만 있는 시간이 좋아요. 내가 있는지도 못 느낄 정도로 나는 집중력이 좋아요. 시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쓰는 순간만큼은 공중부양 한 듯 몸이 가벼워요. 접신이라는 말이 맞는가 봐요. 아픈데 안 아프고, 슬픈데 안 슬프고, 힘든데 안 힘들게 하는, 시를 쓰는 일은 ‘내가 내게 들어가’는 ‘들어오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를 만나는 일, 내게 말을 걸어 오늘 ‘나랑 함께 걸어 주시겠습니까?’ 하며 부탁하는 일.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나를 독대하는 일. 그러면서 혼자 추는 왈츠처럼 경쾌하고 외롭게 나를 내버려두는 일. 내가 나와 밀-당 하며 사랑하는 일. 그러다 또 배신하고 배반하며 독하게 나를 울리는 일. 지독하게 매일 구멍을 파며 어느 순간 혼자 갇혀버리다 끝내 미쳐 버릴 일. ‘시를 쓴다.’는 것은 이토록 재미있게 혼자 노는 일. 시는 혼자 왈츠 추는 내게 신이 되고 발이 되고 치마가 되요. 접신을 하는 내게 칼이 되고 총이 되고 방울이 되고 너머를 보게 하는 눈이 되고 입이 되고 그러다 내가 부를 이름이 되고요.
• 시는 언제, 어떤 계기로 쓰시게 되었는지요?
• 시를 쓰고 글을 짓는 가족들이 있어요. <이상 문학상 수상집>이나 <문학사상> 잡지는 유년부터 쉽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고 가족들은 올해의 소설이나, 좋은 작품상 이야기로 나의 사춘기를 불편하게 했어요. 국어교사를 하셨던 아버지가 계시는 집안 분위기가 늘 문학중심이었어요. 나는 시를 안 읽은 척, 문학을 싫어하는 척하며 영화나 음악과 노는 것에 더 관심 있었고 가족들은 정말 책과는 담 쌓은 아이처럼 나를 대했어요. 늘 삐딱하게 살았어요. 서른다섯 살 무렵, 하동 평사리문학 축제장에서 놀다가 백일장 시제를 알리는 방송에 귀를 열었지요. 그날 백일장 시제가 ‘예감’ 이었는데 주변을 스케치하던 4B연필로 시를 써 상을 받았어요. 그게 시작이었고 대학졸업 후 처음 쓴 시였어요. ‘시를 쓰고 싶은 여성’ 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섬진강 백사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또 다시 ‘내가 사는 이유’ 와 ‘나는 누구인가’ 를 자신에게 묻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었어요. 그리고 찾아 읽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의 시인들이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시를, 시집(김경주, 김민정, 문혜진, 황병승)을.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지요.
• 혹여,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시인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 춤추고 놀아요. 그러다 공포영화나 흑백영화를 봐요. 무성영화도 다운받아 보고, 프랑스영화 일본영화 마구 다운 받아 봐요. 메모 잘 하는 시인을 좋아하고 그들의 시를 믿어요. 작정하면 앉아서 시 한 두 편 쓴다는 시인처럼 나는 쓰지 못해서 시 한편 얻기 위해 한 달을 자학하듯 살아야 해요. 새살이 차올라 흉터가 보일 듯 말듯 한 상처도 다시 해부하듯 칼을 대면서부터 제 시는 시작돼요. 고통이 지난 후를 시로 쓰는 시인이 있고 저처럼 고통 그 자체를 쓰는 시인도 있고 고통을 고통처럼 쓰지 않고 돌려 말하는 시인도 있지만 제 시는 칼과 총으로 나 자신을 공격하면서 시작되기에 발상도 상처에서 시작되어요. 사람이든 세계든 일이든 그 어떤 현상이든 상처에서 출발하고 상처로 끝나요. 다만 하나도 안 아픈 것처럼 쌩-까면(절교 혹은 관계를 끊다)서 쓸 뿐. 보고 또 봐요. 다작을 하지 못하는 나는 보는 게 먼저예요. 보는 것도 쓰는 것인데 애써, 시를, 시로 완성하려 하지 않아요. 툭, 툭 대사처럼 자막처럼 던져놓은, 옮겨놓은 말들이 뭉쳐 지나고 보면 시가 되어 있어요.
• 저는 끊임없이 잘 쓰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절망하고 또 절망합니다. 시인님에게도 그런 시인이 있는지요? 혹은 롤 모델인 시인이 있다면요?
• 홍등이라는 말이 정말 예뻐서 뭉쳐놓고는 4년간 들고 있어요. 어느 시인이 앞으로, 홍등이라는 시로 저를 샘나고 질투하게 만든다면 정말 좋겠어요. 절망보다는, 끙끙 앓고 있는 나의 홍등 같은 시간을 편히 놓아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시를 읽어요. 그리고 시집은 꼭 사서 읽어요. 면에서 소읍으로, 소읍에서 인근도시로 여행하듯 외출해서 산 시집은 풀칠이 떨어질 때까지 읽는데 그런 시집 중 하나가 황유원 시인의『세상의 모든 최대화』예요. 나는 날것이 불쑥 불쑥 등장해 시 세계를 망치며 쓰고 있지만, 황유원 시인은 낱말 하나하나의 내부를 통해 큰 세상을 자신만의 보폭으로, 리듬으로, 라임으로 걸어가고 있죠. 나는 여성이지만 제 시를 읽은 독자들은 ‘중성’의 시, 같다고 말해요. 어느 시인은 자신의 습작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타인의 시를 읽다가 시를 건졌다고 말해요. 저는 반대로 습작하는 중, 절실한 한 줄이 안 터져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 때 타인의 시집을 펼쳐요. 그러면서 또 한 계절 지나가고 시집을 내고 그래요.
© 시인뉴스 포엠 |
• 작년에 첫 시집『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를 출간하셨습니다. 초기 시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과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를 알고 싶습니다.
• 시집에는 넣지 않은 원고 중 대부분은 ‘유서를 쓰려다 저주의 말이 되 버린 것’이 참 많더라고요. 시집을 내지 않고 아직도 ‘석민재의 시’ 라는 파일 명으로 노트북에 담아 두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매일, 유서 같은 말만 저주처럼 쓰고 있었을 거 같아 <파란>의 발행인, 채상우 시인께 참 고마워요. 원고만 함께 가리고 오타만 잡은 시집이라 출판 의도나 관통하는 주제에 대하여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시집은 시인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시적 자의식이 반드시 드러나는 곳이기에 나의 시 ‘계통’처럼, ‘세계의, 국가의, 사회의, 가정의, 나의’ 부당하고 부정한, 불편하고 불합리한 온갖 것들의 부조리에 대하여 시뻘건 얼굴로 ‘대들고’ 싶은 이야기를 갖다놓았다고 말하면 나의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 것 같아요.
• 시를 살펴보면 시인에게 어머니는 유독 각별하고 특별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 고향 남해에 관한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해주셨어요. 의상실을 하셨는데 재봉틀에서 내려오면 늘 소설을 읽고 시를 쓰셨던 분이세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해서 이발 기술을 배우고 양장을 배워 아버지 머리카락을 평생 잘라주셨고 양복천을 끊어 계절마다 아버지께 새 옷을 지어주셨어요. 물을 받아 늘 아버지 발을 씻어 드렸고 리본 핀을 만들어 딸의 머리에 꽂아 주셨어요. 시를 쓰셨는데 자기검열하지 않고 써야 하는 시 앞에서 정말 어려웠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어요. 오랜 동안 발표하신 수필 글을 모아 책을 내셨고요 작년 6월에 소천 하셨어요.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는 집에서의 저는 늘 말 안 듣는 둘째딸 역할을 했어요. 요즘, 책 정리를 하다 보물을 종종 발견하는데요, 서울서, 부산서, 광주서 만나는 선생님들의 초판시집이 우리 집에 벌써 있었어요. 그 보다 더 오래된 시선이나 기념시집 등을 보면서 정말 나는, 시에, 우리 집에 관심이 없었구나 하며 쏙 쏙 한 권 씩 뽑아 새로 읽고 있어요. 하나에서 열까지 불효녀여서 마지막으로 제 마음 편하고자 어머니 간병을 했고요, 임종준비를 하면서 벌벌 떨었고 마지막 세수도, 머리감기도 제 손으로 해 드린 것에 “아버지, 저, 시 쓸 자격 있지요?” 하고 삼우제때 뱉은 말이 이 말 한 마디였어요.
• 첫 시집의 표제인『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를 저는 저 나름으로 이렇게 읽었습니다. 시인은 시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시인의 몸을 얻어 시인으로 다시 환생한 것이 아닐까. “엄마가 나를 또 낳” 음으로서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 예지몽을 자주 꾸는 제게 아버지께서 “꼭, 엄마 같다, 그거 하지 마.” 하세요. 혹여나 아픈데 또 아플까봐 엄마처럼 아플까봐 아버지가 싫다 하면서 또 딸이 시인이라고,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되었다고 자랑하고 계세요. 형평에 있어서 어머니의 삶은 부정하면서도 나의 모성은 깊고, 히틀러 같은 아버지는 부정하면서 남편에게는 순종하고, 그러면서 자기 살을 깎듯 혼자 학대하고 위로하며 또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모순이지요. 요즘은 엄마랑 살던 아파트에 제가 들어 와 살고 있어요. 처음엔 두려웠는데 이젠 따뜻해요. 엄마가 시를 쓰던 방에서 제가 글을 쓰고 있어요. 재봉틀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쇳덩어리가 되고 있고요, 부모님께서 읽으셨던 책을 제가 읽고 살아요. 천재시인 랭보의 ‘모음들’ 을 가져와 제 시집에 해설을 달아주신 평론가의 긴 글에 위로 받았어요. 詩라는 본의 아닌 煞과 異端의 피를 지닌 빨강의 시들을,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 냈던 랭보처럼, 음성이 지닌 울림만으로 개별성을 찾아내어준 평론가에게 무한 감사를. 분명하면서도 간결한, 혹은 과감하면서도 세련되게 ‘음성의 감각’ ‘감각의 음성’ 으로 명랑한 상상력의 사태에 대하여 정리된 첫 시집을 어머니의 무덤에 올려드리며 다시 쓰를 쓰고 있는 나는, 다만 쓰는 중이라고.
• 두 번째 시집에서 추구하고 싶은 시세계는요?
• 고향으로 돌아와, 친정집으로 돌아와 쓰고 있는 중이니까 좀 더 따뜻하고 평온한 불안에 대하여 쓸 거 같아요. 노량바다, 금오산, 술상마을, 양포, 발꾸미 등의 이야기에 연상되는 자유로운 감각의 리듬으로 시각화하지 않을까 하고요, 늘 그래왔듯 명확하고 구체적인 시세계가 없는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 음성의 결을 더듬어 가며 나도 모르는 낯선 연상의 사태에 고향이라는 따뜻한 추억이 더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게요.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시죠?
• 오늘 아침에도 고성에 사는 서형국시인과 시 창작 이론서에 대하여 이야기했어요. 둘 다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 <무한화서>가 따뜻하여 마치, 곁에서 친절하게 이야기 하듯 문장이 상세하고 편하여 좋다고 했어요. 저도 <무한화서>를 처음 만났을 때 꼭 안고 잠들었어요. 시보다 더 꼼꼼하게 필사했고요. 만나는 예비시인께 혹은 아직 시집이 없는 시인들께 가방에서 꺼내 읽고 있던 손바닥만 한 책, <무한화서>를 전도하듯 선물 드리며 기뻐했어요. 굴렁쇠이야기를 저도 인용하기를 좋아하는데요, ‘굴렁쇠 굴리듯 말이 앞서 절로 굴러가게 하고 나는, 시인은, 뒤에 따라가면 된’ 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스스로 알기 위해 제가 쓴 시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아두고 굴렁쇠는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피며 퇴고 했어요. 아포리즘을 읽는 내내 나의 시를 꺼내놓고 혼자 아, 맞다, 아니다 하면서요. 처음처럼, 다시 읽어요.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하라는 대로 이젠 말 잘 듣고 싶어요. 시의 말, 시인의 말은.
다소 많은 질문들에 성심을 다하여 답변하는 시인에게 나는 감동 받았고, 인터뷰 내내 나는 왠지 모를 슬픔으로 울고 싶어졌다. 진심은 항상 사람을 울리기 마련이다. 그는 몇 년 전 뇌종양을 앓았고 현재도 투병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인이여, 부디 건강하시라! 그의 시의 한 구절처럼 언제나 건강한 “빨강”으로 병마를 딛고 우뚝 서시라! “정말 빨강”의 에너지를 널리 널리 펼치시라! 그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지독히 어느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은근히 고집 센 나이지만, 인터뷰를 마칠 때쯤엔 나도 시인처럼 이젠 말 잘 듣고 싶어졌음을 밝힌다. 시의 말, 시인(석민재)의 말은.
계통
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
파랑 같아도 이건 빨강
노랑 같아도 이건 빨강
오렌지 같아도 바나나 같아도 이건 빨강
지금 이게 빨강이라고요?
네 얼굴이 아무리 붉으락푸르락 해도 이건 빨강
나는 빨강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노랗게 생리통이 와도
청바지에 검은색으로 슬쩍 비쳐도
나는 여자가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이건 빨강, 정말 빨강
《석민재 시인》
2015년 <시와 사상> 신인상,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가 있다.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 도서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