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같은 KTX 기차 여행 ... 청초 이용분
벼르던 여행이었다. 직장 관계로 전주에 사는 작은 아들집으로 요즘 가장 빠른 KTX 열차를 타고 아이들 삼남매와 내가 모처럼 모여서 가을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예전에는 경부선 쪽 시댁에 갈 적에는 그때 만해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제일 빠른 새마을 열차를 못타고 몇 십 년 동안을 중급행인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갔던 추억이 가슴에 아려오곤 한다.
이 새마을호를 타면은 늦게 떠났어도 그 당시 무궁화 열차가 안내 방송도 없이 무단히 오랜 시간을 정차하고 있어서 웬일인가?
하고 차창밖을 내다보면 뒤에서 새마을 열차가 위세 좋게 기적을 크게 울리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 허탈감이란...
요금이 조금 싼 기차를 타고 가며 느끼는 계층 간 위화감이란 생각이 들어 노상 마음속에 작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내가 사는 분당에서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가깝게 있어서 전주행 급행 버스를 타도 요금이 이만 원 미만 시간도 참을 만한 거리이기에 자주 이용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KTX 열차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분당에서는 광명역까지 승용차로 이동하여 차를 주차장에 주차시켜 놓고 열차를 갈아타야만 되는 코스다.
주차료도 만만치 않아 하루 주차비가 9천원 이박삼일이면 이만 칠 천원 고속버스 요금을 훌쩍 넘는다.
아무튼 큰 아들은 냅색을 메고 우리는 내 트렁크를 같이 끌고 광명고속철 역으로 진입했다. 우선 그 역구내의 높고 광대한 규모에 입이 열린 채 다물어지지 않는다. 때 맞춰 겨울 한파가 밀어닥쳐 우리는 우선 구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켜 언 몸을 녹였다. 예전 같으면 구내에서 김밥을 사서 점심을 해결하려 들었지만 세월이 변해서 아들은 커피를 산다.
시간에 맞춰 역구내 승강장으로 에스칼레터를 타고 이동 때마침 부산방향에서 오는 다른 열차가 앞에도 대가리가 뒤에도 대가리를 두개씩이나 달고 진입해서 정차를 하는 게 아닌가?
아들은 이런 열차를 타고 자주 오간 터라 잘 알겠지만 나는 생전 처음이라 도통 방향 감각이 안 잡힌다. 전에 증기 기관차 시절 눈에 익었던 망치를 든 열차 검사원은 없고 깨끗한 제복을 입은 묘령의 여성이 손에 뿔 달린 큰 스피커폰을 들고 진두지휘를 한다. 과연 여성의 능력과 위상이 남성의 위치를 능가 하여 이런 최첨단 일을 하는구나...
몇 분 간격으로 양방향 열차가 연속으로 쌩하고 달려 오가니 행여 우리가 예약한 호남선 열차를 그냥 보내 버리는 게 아닐까...
어디서 날아 왔는지 회색빛갈의 비둘기 한 마리가 머리를 연방 까딱거리면서 사람들 사이를 먹을 것을 찾아서 눈치껏 누비며 돌아 다닌다. 자세히 눈여겨 보니 두 발가락이 오그라 붙어서 불구이다. 어디서 어떻게 저리 다쳤을까...사람들이 무심히 버린 나이론 끈에 묶였나?...
한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가 타고 갈 호남선 열차가 프레트 홈으로 멋진 위용을 나타내며 들어온다. 용산 쪽에서 미리 탄 딸아이가 유리창 안에서 손을 흔들며 반색을 한다. 우리는 드디어 예약된 우리 좌석이 있는 자리로 찾아가서 딸과 합류를 했다.
생각해 보니 역에 들어 올 때도 역무원이 표 검사도 안하고 자리를 찾아가도 비어 있는 채 아무도 앉아 있지를 않았다. 핸드폰으로 예약을 하여 나온 차표 사진을 가지고 그 자리에 앉아가면 되니 무엇에 홀린 듯 어안이 벙벙하다. 과연 우리가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구나...
가족 여행을 가는지 애 엄마는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 아빠만이 아기 볼에 뽀뽀를 하며 귀여워하나 앞 의자 등받이 사이로 보이는 눈이 귀여운 아이는 낯선 나를 쳐다보느라 관심이 없다. 전에는 그 흔했던 ‘홍익회’ 판매원도 안다니고 간식을 먹으려면 따로 커피라도 사들고 오거나 집에서 가지고 와야 된다. 이미 경험을 한바있는 딸아이가 이것저것 준비를 해 왔다.
기차는 내가 상상하던 코스를 아주 벗어나 영 다른 길을 달려간다. 이왕에 있던 역사의 정겨운 풍경은 오간데 안보이고 낯선 들녘을 쏜살같이 달려간다. 배가 많이 나는 배가 나는 고장이면 제 가끔 손에 손에 누렇게 잘읶은 배를 치켜 들고 “내 배사이소 내 배사이소” 하며 몰려드는 허스럼한 시골 사람에 “내 김밥을 좀 사시요" 하고 제 가끔 기차 창가에 불쑥 내밀던 거칠은 손길도 없다. 오직 '어떻게든 가벼운 먼지처럼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까' 만을 계획한 운송 수단일 뿐 기차여행의 낭만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삭막한 여행길이었다.
여행은 역시 영화 스크린 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주변 풍광도 여유롭게 구경하고 중간 역에 서서 예전에 '대전 발 영시 오십분'
기차를 타고 대전 역 프레트 홈에서 단 몇분만에 차가 떠나기전에 '찐한 며루치 다시 국물에 유부가 몇개 뜬 가락국수' 를 후루륵 급하게도 먹었던 그 시절이 진짜 멋 진 여행이던 옛 추억이 새삼 그리워지는...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 하는 나의 추억 여행이 되었다.
첫댓글
ㅎㅎㅎ
맞아요
요즘 열차여행을 할 때면
왁자기껄 하면서도
정겹고 구수하던 완행열차 여행의 맛이
그립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더라구요
바쁘다 바빠 세상이어서 그런지
깔끔하고 조용하고 빨리 가는 건 좋은데
조금은 삭막하다 할까?
오징어 있어요~ 사이다 콜라도 있습니다 ~
삶은 계란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대전발 영시 오십부은 ~
역에서 파는 굵은 면발의 가락국수 먹는 재미는
아득한 추억이 되고 말았지요
옛날을 돌아보게 하는 글, 순식간에 읽어 내려왔네요
감사합니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은 세아이를 데리고
집안간 대소사를 치르느라 정말 새마을 호를 타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약해야 할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런게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진정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과 김밥 몇개 삶은 계란 하다못해 사탕 한알이라고 권하던 시절...
옆에 0을 두고는 혼자 먹지만 사람을 두고는 못먹는다는
인심이 따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언제 부턴가 그런걸 권하는게
구차하게 보이기 시작한 때가 다가왔지요.
바로 요즘처럼...